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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5-21 18:00
   <제3부> 작은 교회에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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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1,871  


<제3부>
                    작은 교회에 특별한 사명이 있습니다.

1.

  지금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오랫동안 명성교회, 사랑의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초대형교회들이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고 한국교회의 모델처럼 되어 왔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이끌어오기 위해 온갖 수고를 다했습니다.
  그러나 지난 십년간 기독교 인구가 14만명이나 감소했다는 통계보고는 한국교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아가 초대형교회들이 주도해 온 한국의 교회성장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70년대에는 기독교가 2.4배나 성장했는데 지금에 와서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면 지금 한국교회를 휩쓸고 있는 “성장제일주의”는 근본적으로 파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대형교회의 성장은 대개의 경우 작은 교회들이 열심히 전도해서 모은 교인들이 수평이동을 통해 대형교회로 옮겨진 결과였습니다. 큰 교회들은 교인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잘 발전시켰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로 찾아오게 하는 데에는 실패한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형교회의 급속한 성장의 이면에는 매년 수백 수천의 작은 교회가 문을 닫는 슬픔이 있어 왔습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기독교의 신뢰가 떨어지게 된 원인을 초대형교회의 성장제일주의가 야기한 현상들, 즉 물질만능주의, 상업주의, 개교회주의와 같은 메가처치 신드로움(mega church syndrome)에서 찾고 있습니다. MBC나 SBS의 기독교 고발도 이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대형교회들은 “성장제일주의”의 선두주자들입니다. 이 교회들은 교인들이 교회생활을 열심히 잘 하도록 훈련시키는 제자훈련 프로그램 덕분에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는 신앙생활의 긴장은 있어도 십자가는 찾기 어렵습니다. 고난이 있어도 예수님처럼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신앙 안에서의 행복한 삶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잘 짜여진 훈련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상업주의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또 대형교회는 교인들을 세상 속으로 내 보내지 않습니다. 교회가 교인들이 원하는 프로그램을 다 제공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교회 밖으로 나갈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원튼 원치 않든 개교회주의가 되고 맙니다.       
  또 기독교의 모든 중요한 재정부담을 초대형교회들이 하다 보니 초대형교회는 본의 아니게 교회권력이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초대형 교회의 비위를 상하게 하려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초대형교회의 재력이 한국교회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지나간 70년대에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은 제자훈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수백, 수천의 교회 젊은이들이 독재와 싸우다가 감옥 가는 모습을 보고 예수 믿으면 저렇게 강해지는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생각하고 교회로 몰려 들어왔습니다.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70년 대에는 자기 교회에 매주일 열명 씩 새 신자가 자기 발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래야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전도해도 매주 한 명 정도 새 신자가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교회가 열심히 제자훈련을 하는데도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교회에서 예수님처럼 사는 모습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초대형 교회의 모습은 자기들끼리 安住하고 自足하는 모습뿐이었습니다. 70년대와 같은 감동이 없다 보니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게 되고 그래서 교회로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초대형 교회들은 한 편으로 한국교회의 모델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 모든 문제의 진원지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는 岐路에 서 있습니다. 계속 대형교회 중심의 성장제일주의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성장제일주의가 더 이상 한국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함을 절감하고 크게 방향전환을 할 것인가의 기로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고 자기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쓰게 됩니다. 이렇게 초대형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살려는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하게 되면 교회의 이미지가 크게 바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지나간 70년대의 ‘기적적인 성장’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2.

  그래서 이제는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살려는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의 싸이즈가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의 크기가 교회를 평가하는 잣대라는 생각이 바로 성장제일주의인데, 바로 이 생각 때문에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지나간 70년대에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고난 당하는 교회들은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교회성장은 교회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목사님들은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설교만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교회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었고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발로 교회를 찾아온 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누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 우리는 특별히 작은 교회를 주목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작은 교회가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교회도 큰 교회와 똑같이 성장제일주의라는 병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다만 작은 교회는 회개와 결단이 쉽습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 힘들었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쉽게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강도만난 자를 지나쳤지만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은 참된 이웃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는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부름 받았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작은 교회를 美化해도 안 되지만 주눅이 들어도 안 됩니다. 교회의 자립여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들이 연대해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바꾸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작은 교회들이 가장 쉽게 예수님처럼 사는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작은 교회들만의 일은 아니지요. 그러나 먼저 작은 교회들이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들은 서로 단결해야 합니다. 수천, 수만의 작은 교회들이 함께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결단하기가 매우 어렵지만 공동으로 하면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면 그 대열에 함께 서는 중형교회, 대형교회들이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또 초대형교회들 중에서도 반드시 함께 하는 교회가 나올 것입니다.

3.

  초대형교회가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심각하게 제기한 사례가 바로 사랑의 교회 건축 件입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평가되어 온 사랑의 교회가 대법원 앞에 2천억원짜리 교회를 짓는다고 했을 때 수많은 기독교인이 이 뉴스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도 별 수 없구나 하는 개탄을 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초대형교회가 과연 한국교회가 본받아야 할 모델인가하는 질문이 심각하게 제기되었습니다. 
  사랑의 교회에 관한 토론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우리가 비판해야 할 대상은 메가처지 신드로움이지, 메가처치가 아니라는 온건론과 메가처지 신드로움에서 자유로운 메가처지는 없다는 과격론이 아직도 대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는 온건론이 옳지요. 교회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면 되는 것이지, 교회가 크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과격론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한국교회에서 메가처치에 대한 분석이 충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메가처지 비판에 적극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메가처치에 찍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만큼 메가처치는 재력으로 한국교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메가처치가 돈을 내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아무 것도 하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삼성 등 초대형 기업이 돈을 내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성, 사랑의 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 역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재력이나 동원력 만이 아닙니다.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와 정치적 영향력이 더 중요합니다. 그래서 “메가처치 신드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운 메가처치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하는 질문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사랑의 교회는 메가처치 신드로움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믿음을 한국교회에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사랑의 교회가 진정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로 평가받으려면 적어도 다음 세가지의 행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로 <사랑의 교회>는 돈으로 한국교회를 좌지우지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의 교회>가 무서워서 사랑의 교회를 비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교회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모든 일을 자기가 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자기교회 헌금은 전부 자기가 쓰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둘째로 <사랑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섬기고 전도하는 일은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합니다. 이일은 작은 교회가 훨씬 더 잘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교회예산의 상당 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고 발표했습니다만 이것만으로는 메가처치 신드로움은 극복되지 않습니다. 이 모습은 모든 것을 <사랑의 교회>가 하겠다는 욕심의 표현이고 사랑의 교회의 권력의 확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와 선교를 위해 사용하려고 생각했던 재정들을 전부 작은 교회에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을 작은 교회에 분배하는 일까지도 제3의 기관에 맡겨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작은 교회가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시간이 걸려서 수평이동을 통해 다시 큰 교회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로 사랑의 교회는 교회의 재정을 완전히 공개해서 세상사람들의 비판을 받으려고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세상사람들로 부터 공개적으로 야단맞을 생각을 할 때 진정으로 존경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교회가 진정으로 감동적인 모습을 보이면 다른 교회들도 다 사랑의 교회를 따를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사랑의 교회는 자기의 사명을 다하는 것이 됩니다.

4.

  2013년 부산에서 WCC 총회가 개최됩니다. 이 총회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6억의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교회지도자 6천명이 2주간 한국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보수교회는 WCC반대운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 안에서 WCC 찬반토론이 한창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WCC를 놓고 찬반토론을 할 때가 아닙니다. 한국교회가 WCC 총회에 온 세계교회 지도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만일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특별히 보여줄 것이 없다면 이번에 한국에서 WCC 총회를 개최할 특별한 의미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제 머리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명성교회, 사랑의 교회와 같은 초대형교회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러나 틀림없이 WCC 지도자들은 뒤로 흉을 보면서 성장제일주의가 가져온 폐해들을 지적할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진보교회가 내세울 만한 것이 있는가? 그것 역시 없는 것 같습니다. 진보교회는 북한인권문제조차 침묵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도하게 이명박 대통령 규탄에만 열을 올리면서 이념의 덧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WCC총회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새로운 기독교 운동을 통해 세계교회에 보여줄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과거만 우려먹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3년을 정말로 값어치 있게 써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독교운동은 어떻게 되어야 하나? 
  첫째로 새로운 기독교운동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이 있다는 복음주의 신앙관에 굳게 서되, 신앙적 확신이 부족한 기독교인들도 함께 포용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부족한 부분은 반드시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잘 해결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바리새적 분리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둘째로 새로운 기독교운동은 복음적 신앙에 기초하되 예수님처럼 살고자 애쓰면서 동시에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운동이어야 합니다. 이미 한국교회는 그러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삼일운동 당시의 한국교회가 그러했고, 70년대의 한국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스스로를 희생시키며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지금도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의 편에 서야 합니다. 
  셋째로 한국교회를 하나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가 만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세계교회를 향해 보수와 진보의 하나 됨을, 로잔느와 WCC의 하나 됨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이 운동은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는 운동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운동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절실히 깨닫기 때문에 회개운동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에 두 개의 움직임이 기독교 내에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에큐메니칼 운동진영에서 그리스도인 선언을 발표한 것이고 또 하나는 WCC반대 대책위원회 결성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움직임은 각각 자기중심적인 편향적인 움직임이었을 뿐 한국교회 전체를 하나 되게 하겠다는 움직임이 아니었습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파당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바로 작은 교회들이 그동안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처럼 살 것을 결단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기독교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별히 <나눔과 기쁨>이 이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눔과 기쁨>의 나누미 활동가의 숫자가 3천2백명입니다. 이 숫자는 금년 내로 5천명까지 늘 수 있고 내년에는 1만명이 될 수 있습니다. 이 1만명이 정말로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결단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차상위 계층을 섬기고 돌보면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또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한다면,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갈릴리에서 하신 일들을 한다면 우리는 세상 속에서 정말로 엄청나게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아가 2012년에 나누미의 숫자가 2만명이 된다면 그 때는 정말로 엄청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나눔과 기쁨>은 2013년 WCC총회 때에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자랑스럽게 내어 놓을 수 있는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나누미가 가난한 사람을 열심히 섬기면 그 나누미 목사님의 교회가 반드시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점이 그동안의 <나눔과 기쁨>의 경험입니다. 소외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나누미 목사님의 사랑의 손길과 만난 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자신이 버림받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분은 교회의 초청에 반드시 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동안 전도가 잘 안되었는가? 사랑의 기적이 체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면서 입술로만 전도를 했지 사랑의 실천으로 전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눔과 기쁨>이 처음 출범예배를 가졌을 때 돌아가신 김준곤 목사님께서 문준경전도사님 예를 들으시며 설교를 하셨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은 증도에서 병들어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거지들을 위해 “대신거지” 노릇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밥을 짓는 집마다 돌아다니며 누룽지를 얻어다 죽을 끓여 병든 거지들을 돌보았습니다. 문준경전도사의 이 모습을 보고 섬안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왜 주민을 백퍼센트 예수 믿게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 목사들이 문준경 전도사님처럼 살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백퍼센트 예수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이야말로 <나눔과 기쁨>의 모델입니다. <나눔과 기쁨>은 온 국민이 예수 믿는 기적이 얼마든지 가능함을 굳게 믿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정말로 예수님처럼 사느라고 분투했더니 교회가 크게 부흥하다라는 경험을 세계교회에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58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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