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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신문> 말로만 북핵을 반대할 것인가?
서경석 목사
3주전에 서울조선족교회 교인들에게 세 가지 질문을 했다. 북한이 핵을 꼭 폐기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전원이 그렇다고 대답했다. 북핵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놀랍게도 대다수가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햇볕정책으로 대해야 한다고 답변했다. 세 번째로 햇볕정책을 쓰면 북한이 핵을 폐기할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손들어보라고 했더니 한 사람도 손들지 않았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하고 물었더니 대부분이 조선족아줌마인 교인들이 웃음으로 답변을 했다. 그런데 이 자가당착은 꼭 우리 교인에게만 있는 것같지 않다. 사회 전체가 이 자가당착에 빠져 있다. 먼저 이 나라 위정자들에게 핵폐기를 관철시키겠다는 의지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 의지가 있었다면 작년에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했을 때 강력하게 대응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때 정부는 사실이 아닐 거라며 딴전을 피웠다. 이러한 모습을 보고 북은 안심하고 핵실험하기로 결정했을 것이다. 또 핵실험 이후에도 한국은 핵실험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더욱이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으로 북핵을 폐기할 수 있다며 경제제재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조선족아줌마들의 눈에도 상식과 맞지 않는다. 이번에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한 것도 안보리를 중심으로 한 대북제재와 중국의 강력한 압박 때문이었지 햇볕정책 때문이 아니다. 결국 김대중씨의 대북제재 반대 주장은 결과적으로 말로는 북핵을 반대하지만 실제로는 북에게 끌려 다니며 눈치 보며 살자는 말밖에 되지 않는다. 김대중씨는 햇볕정책 때문에 긴장이 완화되어 핵실험을 해도 공포분위기가 없다고 말하지만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북한을 거스르는 일은 전혀 하지 말자는 말과 같다. 북이 핵실험을 해도 대북제재를 하지 않고, 오로지 북한의 비위만을 맞추어 얻은 평화는 위장평화일 뿐이다. 우리가 북한에 문제제기를 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기 때문이다. 김대중 씨의 ‘대화로 핵을 폐기시킬 수 있다’는 말은 북과 맞설 필요가 없어 우리 귀에 달콤하게 들리지만 바로 이 때문에 우리국민은 지금 안보불감증에 빠져있는 것이다. 김대중씨가 군사적 도발을 반대하고 북미대화를 주장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대화와 압박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옳지 않다. 어느 나라나 국가 간의 관계에서 대화와 제재, 당근과 채찍을 병행한다. 그런데 유독 북한에 대해서는 당근만 써야 한다는 주장을 어떻게 우리국민이 납득하란 말인가? 더욱이 압박도 없는데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와 핵을 포기하겠는가? 오히려 파키스탄처럼 핵보유국가로 인정해 달라고 강하게 요구할 것이다. 지금은 국제사회의 요청을 저버리고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분노를 터뜨려야 할 때다. 그래서 핵을 폐기하면 체제보장 뿐 아니라 전폭적인 경제지원까지 하지만 그렇지 않으면 국제공조를 통한 제재와 더불어 금강산관광, 개성공단을 통한 현금지원까지 일체 중단하고 인도적 지원도 꼭 필요한 일 이외에는 전면 중단해야 한다. 순진한 감상주의나 근거 없는 낙관주의는 절대금물이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도록 압박하는 것만이 장기적으로 북한당국이나 북한주민들을 진정으로 돕는 길이다. 식량도 쌀로 지원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쌀은 일반주민에게는 안 가고 군 당국, 당 간부, 건설현장 등에만 간다는 사실이 명확해졌고 분배확인도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주민들은 당 간부가 장마당에 판 쌀을 돈을 주고 사먹을 뿐이다. 그렇다면 다시 대량餓死의 위기가 오면 쌀을 보낼 것이 아니라 옥수수가루를 대량으로 보내야 한다. 옥수수가루는 저장성이 낮아 쉽게 부패하므로 주민들에게 분배되지 않을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정치인은 국민을 안보불감증에서 깨어나게 하여 단호한 의지로 북핵에 대처하게 만드는 정치인이다. 처칠처럼 국민에게 피와 땀을 요구하는 정치인, 케네디 같은 결단의 정치인이 필요하다. 그리고 우리국민은 북핵을 반드시 폐기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로 무장해서 입술로만 북핵을 반대하고 실제로는 북핵의 인질이 되어 굴종하며 살려고 하는 쓰레기 정치인들을 내쳐야 한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09: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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