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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기독교사회책임 운동을 하게 되었나?(2005년 2월에 쓴 글임)
1. 왜 이글을 쓰게 되었나
<기독교사회책임>을 생각할 때마다 곤혹스러움을 느낀다. 나로 인해 <기독교사회책임>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아서다. 그동안 386세대 젊은이들 몇몇이 나를 집중적으로 비판하면서 개인문제에서부터 어느 당과 가깝다느니, 혹은 야심이 있다느니 하는 말을 해 왔다. 또 내가 누구를 대권후보로 지지한다는 소문도 있는 모양이다. 이렇게 되니까 <기독교사회책임>의 기본취지에 동의하는 사람조차도 당분간 지켜보자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로서는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게 되었다. 이제는 어쩔 수 없이 <기독교사회책임>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향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다. 그리고 글도 단답형 답변이 아니고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까지도 포함하여 깊이 있는 글을 쓰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이글은 어디까지나 서경석 개인의 글이지 <기독교사회책임>의 공식적인 글이 아니다. 따라서 이글을 <기독교사회책임>에 대한 다양한 설명 중의 하나로만 이해해 주기 바란다.
2. 나라살리기 운동이 필요하다.
경실련 사무총장을 그만 둔 후, 그리고 잠깐동안 정치생활을 했었던 십개월의 기간 이후 나는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창립해서 북한동포돕기운동을 하고, 지구촌나눔운동을 만들어 가난한 나라 사람들 돕는 운동을 하고, 서울조선족교회를 세워 조선족동포를 돕는 일을 해 왔었다. 이중에서도 내가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앞으로 몰두하고자 했던 단체는 <지구촌나눔운동>이었다. 이렇게 생각한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경실련운동을 하는 5-6년의 기간동안 정의에 대한 관심에서 사랑에 대한 관심으로 나의 생각이 변화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가져다 준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 93년인가 나는 한국의 젊은이들과 함께 연변에 가서 연변의 조선족 젊은이들과 통일문제에 대한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세미나를 할 때에는 조선족 젊은이들은 별로 말이 없었는데 세미나가 끝난 후 한 조선족처녀가 내 곁으로 와서 한마디를 했다. “우리들 연변 조선족들은 한국 사람들이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도 자격도 없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깜짝 놀라 “그게 무슨 말이냐?” 하고 물었다. 그 처녀는 말하기를 “한국사람들이 우리들 연변의 조선족들을 손톱의 때만큼도 못하게 업신여기는데 어떻게 우리보다 인구가 열배나 더 많고 우리보다 훨씬 더 못사는 북한동포들을 제대로 돌볼 수 있을 것입니까? 우리는 절대로 믿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마치 뒤통수를 망치로 한대 얻어맞은 것처럼 큰 충격을 느꼈다. 나는 논쟁을 하면 좀처럼 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처녀의 말에 나는 한마디도 답변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서는 그 후부터 정의실천 운동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고 사랑실천 운동에 대해서는 큰 관심과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정의가 실현되지 않아도 나라는 유지되지만 사랑이 없으면 사회는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노태우, 전두환 두 대통령이 수천억원의 비리가 드러나 옥고를 치르게 된 뉴스를 접하면서 저렇게 부정부패가 창궐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유지될 수 있었다는 것이 너무도 신기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나서 나는 사람들 눈에 크게 띠지는 않지만 많은 교회와 사람들이 어려운 사람을 돕고 구제활동을 해 왔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만큼 유지될 수 있었다는 점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그 때부터 나는 경실련 사무총장직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한 일차적인 이유는 경실련은 즉 서경석목사다 라는 식의 등식을 피하고 싶어서였다.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무척이나 부담스러웠고 경실련이 정말로 모든 사람의 경실련이 되려면 창립자인 내가 이 단체를 떠나서 경실련을 無主空山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내심으로 더 중요한 이유는 경실련 활동이 지루하게 느껴져 새로운 일을 해보고 싶어서였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은 북한동포돕기운동, 가난한 나라 돕기운동, 그리고 국제시민사회운동(Global Civil Society Movement)이였다. 그래서 나는 1995년 2월에 경실련 사무총장직을 사임한 후에 이러한 운동을 시작했었다. 그런데 사무총장직을 그만둔 후 반년이 지났을 즈음 내가 정치에 나와야 한다는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은 정치참여를 결행했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하면 그 결정은 참 잘못한 것이었지만 그 당시에는 이 요구가 너무도 크게 내게 다가왔었다. 당시 김대중씨가 평민당을 놔두고 국민회의를 새로 만들던 시기였다. 당시 언론은 이를 크게 비난했었고 이부영, 김원기, 제정구, 이철, 유인태, 노무현, 김정길, 원혜영, 박계동 등의 정치인들이 국민회의로 가지 않고 잔류를 선언했었다. 나는 이들이 국민회의로 가지 않고 잔류한 것을 크게 지지했었다. 그런데 그것이 화근이었다. 이들이 맹주정치와 지역할거주의를 반대하는 정치개혁의 깃발을 올리면서 자기들의 힘만으로는 큰 세력을 만들기 어려우니 시민운동권의 정치세력화가 이루어져야 하고 서경석목사가 반드시 참여해야 한다고 이부영선배, 장기표선배 등이 내게 집요하게 요구해 왔다. 그런데 나는 국회의원이 되는 것을 매력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었다. 조금 건방진 생각이지만 당시 나는 경실련 사무총장으로서 국회의원 열명 몫은 한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 당시 노무현 前의원도 “서경석목사가 국회의원이 되는 것은 지위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지위가 내려가는 것”이라고 유세장에서 말하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정치참여를 결심했던 것은 지역할거주의와 맹주정치를 극복하는 정치개혁이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래서 호남, 영남, 충청 등 지역표의 도움 없이 국회의원에 당선되는 사람이 20명이 넘어 원내교섭단체만 만들 수 있다면 우리는 반드시 선진정치를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선거결과는 참패였고 소위 스타군단이라는 사람들이 대부분 낙선하고 말았다. 나 역시 양천구에서 낙선했고 통합민주당 실험은 너무도 이상주의적인 실험으로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나는 이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다. 일반 대중으로부터 ‘결국은 서목사도 별 수 없구나. 정치에 나가기 위해 시민운동을 했구나’ 하는 비난을 받았다. 틀림없이 이런 질책을 받을 것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정치개혁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나는 순진하게 이런 질책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당시에 민자당이나 국민회의로 출마했더라면 나는 틀림없이 과반수 득표로 여유 있게 국회에 진입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선택은 나는 꿈도 꾸지 않았다. 국회의원이 되는 것이 나의 목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지역표의 도움 없이 국회의원이 되어야 우리가 바라는 정치개혁이 되는 것이고 또 내가 萬難을 무릅쓰고 정치를 할만한 값어치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비현실적인 결정이었지만 이상주의와 현실론이 충돌할때 항상 이상주의적 선택을 해왔던 나의 성향을 고려할 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낙선한 후 나는 정치인의 길을 포기했다. 낙선했기 때문에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국회의원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얼마든지 될 수 있었다. 실제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국회의원이 되었다. 정치를 그만 둔 이유는 정치인으로 지낸 10개월 동안 내가 행복했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고 정신적으로도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애국심만 가지고 정치에 뛰어들었는데 알고 보니 정치는 권력투쟁이었다. 웃으면서 상대방 등에 칼을 꼽을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그런 삶을 감당할 수 없었다. 또 정치인으로 있은 십 개월 동안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시민들이 ‘정치인이니까 저런 말을 한다’는 식으로 반응하고 나의 순수한 애국적인 생각도 전부 정략적인 것으로 보아 버리는 것을 나는 내 자존심이 너무 상해 견딜 수 없었다. 또 주민들에게 표를 달라고 굽실거리고 비위를 맞추는 일도 너무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다. 또 한 가지, 돈이 없이는 정치를 할 수 없었는데 그것도 견디기 어려웠다. 경실련 사무총장으로서 나는 그동안 추호의 비리도 없어 깨끗하게 살았다. 그런데 내가 정치인으로 성공하려면 이러한 시민운동가로서의 덕목을 포기해야 했었다. 나는 도저히 그것을 포기할 수 없었고 따라서 정치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세 번째로 나는 정치로 갈 때 목사직을 사임했었다. 혹시나 나의 행동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목사직을 사임하고 나니 나의 아이덴티티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목사가 아닌 삶을 견딜 수 없었다. 마치 공중에 붕 떠서 사는 것 같았다. 정치인 생활을 하면서 나는 비로소 내 자신이 목사임을, 목사로 살아야 함을, 목사직이 내 천직임을 알게 되었다. 네 번째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을 돕는 운동을 하고 싶은 것이 나의 가장 큰 꿈이었는데 국회의원이 되면 이 꿈을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국회의원으로 살아가는 것이 가난한 나라 사람들 돕는 일보다 더 의미있는 일로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은 정치인이 내 갈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정치를 포기했다. 정치를 그만두고 나서 곧 바로 영등포노회에 목사직 복귀를 신청했다. 그럴 경우에는 노회원의 삼분지 이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주위 사람이 내게 귀띰을 했다. 아직 노회 분위기가 익지 않았고 호남사람들이 서목사에 대해 반감을 갖고 있어 삼분지 이의 동의를 얻기 어려우니 다음 노회에 신청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러나 나는 이에 동의하지 않았다. “한번에 안 되어도 좋다. 삼분지 이를 얻지 못하면 다음 노회에서 얻으면 된다. 중요한 것은 목사가 나의 천직이라는 나의 생각이다. 이 생각이 분명한 한 지체없이 복귀신청을 하는 것이 옳다..” 이것이 나의 생각이었다. 그 해에는 삼분지 이 찬성에서 몇 표가 모자라 복귀가 실현되지 않았고 그 다음 노회에서 절대다수의 동의를 얻어 목사직에 복귀했다. 그 후에도 많은 사람들이 내게 앞으로 정치할 생각인가 하는 질문을 해 왔다. 나는 정치를 하기에는 나의 꿈이 너무 크다고 답변했다. 실제로 선거철이 올 때마다 항상 여야 정당으로부터 영입제의가 있었다. 여에게든 야에게든 나는 매우 ‘영양가 있는’ 영입대상이었고 좋은 지역구 혹은 높은 순번의 전국구를 제안하며 집요한 교섭을 받았지만 나는 번번이 거절했다. 내 처인 신혜수도 최근의 4.15 총선 때 두 정당으로부터 최고 순번의 비례대표 영입제의를 받았다. 나는 속으로 긴장했는데 내처도 결국은 그 제의를 다 물리쳤다. 내 처는 가장 존경하는 은사인 이효재 교수처럼 고상하게 살고 싶고 그래서 국회의원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나는 내처에게 고마워했다. 만일 처가 정치인이 되면 나는 소신껏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 동안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하는 재미 때문에 정치인이 되거나 정부 고위직에 들어가는 것을 다 사양했는데 처 때문에 그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말로 유감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정치를 그만두고 시민사회로 복귀한 후에 내가 한 일은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지구촌나눔운동, 서울조선족교회 활동, 그리고 한국시민단체협의회 사무총장직과 경실련 상집위원장 활동 등이었다. 그러나 내가 최종적으로 전념하기를 원했던 단체는 <지구촌나눔운동>이었다. 나는 우리나라가 앞으로 우여곡절이 있겠지만 결국은 선진국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우리국민이 선진국민 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이러한 국민의식의 변화가 훨씬 더 어려워보였다. 그래서 정부와 기업이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 일에 전념한다면 시민사회는 우리국민을 선진국민으로 만드는 일에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일이라면 내 삶을 전부 바칠만한 값어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를 위해 지금부터 우리 것을 우리보다 어려운 나라 사람들과 나누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지구촌나눔운동>이라는 단체를 만든 이유가 바로 이점 때문이었다. 한 나라가 얼마나 자기 것을 남과 나누는가를 재는 기준이 있다. ODA(official developmental assistance)라는 것인데 쉽게 말해 GNP 중 몇 퍼센트를 가난한 나라를 위해 쓰는가를 보여주는 수치다. 유엔은 0.7%를 권장하고 있지만 그 수치 이상으로 남을 돕는 나라는 스웨덴, 노르웨이, 네델란드, 덴마크, 룩셈부르그 이렇게 다섯 나라 밖에 되지 않는다. 미국은 0.1%, 일본은 0.2% 수준에 불과하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0.05% 정도다. 그런데 덴마크는 국민적 합의에 의해 매년 GNP의 1%를 가난한 나라를 위해 쓰는 나라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에게 ‘내가 죽기 전에 반드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는데 그것은 우리나라의 ODA가 1%가 되는 것을 보고 죽는 것이다’라고 말해 왔었다. 물론 이 꿈은 허황된 꿈으로 끝나고 말 것이다. 그런데 2년 전 대통령선거 시기에 나는 이 꿈이 꼭 꿈으로 끝날 일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는 대통령 선거캠페인을 보면서 양당 후보가 우리나라를 잘사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공약은 남발하면서 왜 우리나라를 존경받는 나라로 만들겠다는 공약은 하지 않는지가 의문스러웠다. 나라면 우리나라 GNP가 10% 쯤 내려가더라도 우리나라가 전 세계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나라가 된다면 그 편을 택하고 싶은데 말이다. 이 생각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해 보았더니 듣는 사람들마다 찬성을 했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선거가 있기 두 달 전에 <자랑스런 나라 운동>이라는 한시적인 단체를 만들고 캠페인을 시작했다.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향후 5년 내로 우리나라 ODA를 0.2%까지 올리자는 것이었고 이러한 목표에 동의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그 힘으로 양당에 정치적 압력을 가하겠다는 심산이었다. 이 숫자를 30만 명까지 올려보고 싶었는데 실제로는 1만3천명만 모으고 말았다. 시민단체들이 연대해서 운동을 전개했는데 시민단체들은 말로는 협력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제대로 협력하지 않았다. 회원정보를 공유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만3천명의 회원만 가지고도 우리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유효한 압력을 가할 수 있었고 한나라당은 집권기간 동안에 ODA를 0.2%까지 올리겠다는 공약을 했고 당시 민주당은 숫자를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최대한’ 올리겠다는 공약을 했다. 이 실험이 일단 성공적이라고 자평했다. 그리고 만일 5년마다 0.2%씩만 올라갈 수 있다면 내가 죽기 전에 1%가 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다음번에는 훨씬 더 큰 규모로 대통령선거가 오기 1년 전부터 이 운동을 전개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종교를 초월해서 하는 것보다는 기독교의 힘을 똘똘 뭉쳐 대응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겠다는 판단을 했다. 지난 대통령선거 시기에는 너무 급박했고 또 조직이 너무 광범위해서 오히려 힘이 약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지난 7-8년 동안 나눔운동에 몰두해 왔고 남과 함께 더불어 사는 의식의 확산을 위해 노력해 왔다. 그동안 북한동포 돕기를 위해 만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은 국내 최대의 민간 나눔운동 단체가 되었고 조선족 돕기를 위해 세운 <서울조선족교회>도 국내체류 조선족을 위해 가장 열심히 일하는 교회가 되었다. 그리고 <지구촌나눔운동>도 국내 5대 해외원조 NGO의 하나가 되었다. 이 세 단체들은 다 크게 보아 선진국민이 되기 위한 의식개혁 운동을 하는 단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금년 초 어느 날 나는 갑자기 정신이 부쩍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조선족교회만 하더라도 그동안 내가 노력을 많이 해서 조선족동포들이 많이 한국에 왔는데 이들 중 약 40%가 직장을 갖지 못하고 실업자로 놀고 있었다. 애써 한국에 왔지만 돈을 벌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남을 돕는 것도 우리가 먼저 잘 살게 된 다음의 일이다. 내 모습을 보니 지금 안방이 무너지고 있는데 나는 사랑채에서 계속 남에게 퍼주기를 하고 있는 격이었다. 고심 끝에 최소한 몇 년간은 나의 관심사를 국외 문제에서 국내 문제로 전환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나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과 <지구촌나눔운동>의 직책을 사임하지는 않지만 일단 관심을 끄기로 했고 서울조선족교회의 경우에는 설교를 매주일 하는 것에서 한달에 두 번하는 것으로 바꾸고 대부분의 교회 일은 수석부목사에게 맡기고 교인수가 줄어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는 나라 살리기를 위한 국민운동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이 운동을 통해 나라 살리는데 도움이 되는 움직임은 적극 지지하고 나라를 주저앉게 만드는 움직임은 적극 반대하는 일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관심이 <기독교사회책임>의 모습으로 나타난 데에는 지난 봄학기에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한 학기동안 “기독교와 NGO”라는 강의를 한 것이 큰 계기가 되었다. 대부분이 목사님이신 십여 명의 학생들에게 매주일 강의를 했는데 강의가 끝나면서 학생들이 이구동성으로 기독교NGO를 만들자는 제안을 내게 했다. 그렇게 되면 자기들이 열심히 회원을 모으겠다고 했다. 이러한 목사님들의 반응에 힘을 얻어 나는 기독교NGO를 만드는 일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평소에 잘 알고 있었던 고직한 선교사와 김요한목사님께 처음 이 문제를 상의하게 되었다. 그런데 내가 기독교NGO에 뛰어들게 된 것은 우연한 일은 아니었다. 사실 나는 대학시절부터 경실련을 창립하기 직전까지 기독학생운동, 기독청년운동, 산업선교운동, 기독교연구원 활동에 종사하면서 20년간 오로지 NCC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기독교운동에만 전념해 왔다. 그리고 항상 어떻게 하면 기독교인이 다른 사상이나 철학(이를테면 맑시즘)을 가진 사람보다 더 철저하고 헌신적일 수 있을까, 그리고 기독교세계관이 어떻게 다른 사상보다 우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씨름해 왔었다. 그랬기 때문에 경실련을 창립하였을 때에도 나는 경실련을 ‘가지지 못한 자의 가진 자를 향한 증오와 적개심을 조직화해서 가진 자의 것을 빼앗으려는 운동이 아니라 가진 자든 가지지 않은 자든 상관없이 우리 사회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속에 있는 선한 의지를 조직화해서 그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 즉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익명의 기독교운동’이라고 설명했다. 이 점에서 기독교는 나의 정신세계의 원천임과 동시에 삶의 뿌리였다. 그런데 1989년 이념갈등이 극심했던 때에 나는 ‘온건하다는 이유로’ 진보적 기독교운동에서 튕겨져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나니 갈 데가 없었다. 나는 복음주의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다. 갈 곳이 없어서 새로 시작한 것이 경실련이라는 시민운동이었다. 그리하여 그 후 지난 15년 동안 나는 기독교를 떠나 일반 시민운동에 종사해 왔고 지금에 와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시민운동가가 되어버렸다. 기독교운동을 하지 않은 지가 하도 오래되어 이제 와서 나의 아이덴티티를 바꿀 수는 없다. 그래서 앞으로도 나는 계속 일반 사회운동가로 살 것이다. 그렇지만 나는 내가 더 늙기 전에 기독교를 위해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왔다. 그래서 내가 가지고 있는 시민운동의 노하우와 교회의 인적자원이 합쳐져서 새로운 기독교 시민운동을 만들면 그 운동은 경실련보다 몇 배는 더 힘이 있는 시민단체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더욱이 우리 집안은 기독교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나의 증조부인 서경조 목사님은 한국 최초의 소래교회를 세우셨고 증조부의 형님이신 서상륜 할아버지는 우리말 성경을 최초로 중국 봉천에서 한국으로 가지고 오신 분이다. 또 어릴 때부터 예장 통합 측과 합동 측의 분열을 안타까와 하셨던 할아버지의 눈물의 기도를 항상 들으며 자랐었다. 그래서 기독교가 요즈음처럼 어려움을 겪을 때에는 나는 교회를 위해 무슨 일이든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왔다. 나는 결국은 일반 사회운동으로 돌아갈 것이지만 그래도 기독교NGO가 어느 정도 정착될 때까지는 이일에 헌신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3. 왜 기독교NGO가 필요한가?
나는 평소에 기독교 시민운동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해 왔다. 특별히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한국교회가 퇴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다. 요즈음 한국교회는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마이너스 성장의 이유가 우리도 이제는 서구교회처럼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렇다면 이는 어쩔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이 점이 진짜 이유라면 개신교뿐만 아니라 가톨릭도 마이너스 성장을 해야 한다. 그렇지만 가톨릭은 완만하지만 지금도 플러스 성장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마이너스 성장의 일차적인 이유를 외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교회 내부에서 찾아야 한다. 이 원인을 분석하려면 2-3십년 전의 한국교회가 어떻게 급성장했는가를 분석하고 그 당시와 지금을 비교해야 한다. 지나간 7, 80년대는 교회가 급성장했던 시기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나? 당시의 한국교회는 우리 사회의 희망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120년의 한국교회 역사를 돌이켜 보면 교회가 우리 사회의 희망이었던 시기가 두 번 있었다. 한 번은 삼일운동 당시이고 또 한 번은 지난 7,80년대의 민주화운동 시기다. 그리고 이 시기들은 동시에 한국교회가 급성장했던 시기이기도 하다. 교회가 국민에게 희망으로 비쳐질 때 크게 성장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지금도 한국교회가 다시 국민에게 희망으로 비쳐질 수 있다면 교회는 다시 크게 성장할 것이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다시 한국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이 질문의 해답을 찾아내려면 지나간 7,80년대에 한국교회가 어떻게 희망이 되었는가를 분석할 필요가 있다. 당시 교회의 인권 운동, 민주화 운동은 전 세계 크리스찬에게 敬畏의 대상이었다. 어떻게 역사가 백년도 채 되지 않은 한국교회가 그렇게 빛나는 인권운동을 할 수 있었는가가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때 세계교회협의회(WCC) 관계자들이 한국교회 운동을 분석하고 나서 그 원인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한국교회 내부에는 제도교회 기구(Ecclesiastical Institution)와 전위적 기독교운동(Avantgarde Movement)라는 두 축이 있는데 이 두 축이 서로 공고한 협력관계 속에 있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위적 운동은 기독학생운동, 기독청년운동, 산업선교운동, 인권목회자운동, 기독자교수운동 등인데 이들이 감옥 갈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결연히 독재와 싸우는 일을 하면 NCC나 교단과 같은 기구는 이들을 보호해주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이들의 뜻을 일반교회에 확산시키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전위적 기독교운동이 제도교회에 자극을 주었고 또 제도교회는 기독교운동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일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호협력관계가 한국교회의 영향력을 극대화시키고 많은 민주인사들로 하여금 한국교회의 울타리 안으로 들어와 보호받도록 하였으며 급기야는 한국사회의 민주화를 관철시키는 데까지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전위적 기독교운동이 보수적인 기성교회를 공격하는 대신 독재와 맞서 싸웠고 또 그랬기 때문에 기성교회는 이에 자극을 받아 기독교운동을 지원한 점은 지금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그래서 나는 항상 기독교운동은 교회비판보다는 세상 속에서 사랑과 정의의 운동을 열심히 하는 일에 목표를 두어야 하고 이러한 사회참여운동의 모습을 보고 교회가 자극을 받으면서 갱신의 길을 가게 된다고 나는 생각해 왔다. 지나간 70년대에 나도 이러한 경험을 했다. 당시에는 새문안교회 대학생회가 유신체제와 싸우는 일을 열심히 할 때인데 새문안교회 대학생회가 헌신예배를 본 후 광고시간에 유신헌법을 철폐하라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그랬더니 당연히 교회에서 난리가 났다. 즉각 당회가 열려 새문안대학생회를 기능정지시켰다. 이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반성을 했다. 교회는 반독재투쟁을 하는 우리를 보호할 힘이 없다. 공연히 교회에 무거운 책임을 안겨 줄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밖으로 나아가 고난당하는 길을 택하자! 그래서 그 다음에는 새문안교회 언더우드학술강좌 후에 40명의 대학생회원이 교회 앞마당에 모여 밖으로 나가면서 광화문을 향해 기습시위를 했다. 가슴 속에 숨겨온 플라카드를 꺼내 펼쳐들었고 밤이라 어둡기 때문에 횃불을 들고 시위를 했다. 이들 데모대가 광화문까지 진출했는데 그 곳에서 뒤늦게 온 닭장차에 실려 전원이 연행되었다. 이 일을 겪고 나니 이번에는 새문안교회가 정부당국을 향해 강력하게 학생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이 바람에 학생들은 큰 고생 없이 전원 석방될 수 있었다. 이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소중한 지혜를 깨닫게 했다. 교회를 비판하거나 교회 내에서 문제제기를 하는 것보다는 우리 자신이 세상에 나아가 고난당하고 희생당하면 그 모습을 보고 교회가 감동하고 변화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이 교회갱신의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기독교 NGO들 중에 교회개혁을 위해 활동하는 NGO가 있다. 그분들은 교회의 세습이나 비리, 혹은 스캔들을 들추어내서 이를 사회에 고발하고 교회 앞에서 피켓시위를 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나는 그분들의 심경은 이해하지만 그런 방식이 교회를 갱신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교회를 더욱 방어적이 되게 한다고 본다. 한국교회에 더 필요한 운동은 이런 식의 네가티브 운동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정의를 위해 일하고 교회가 이러한 운동을 뒤따라오도록 하는 포지티브 운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한국교회가 지금처럼 쇠락하지 않고 다시 부흥하려면 무엇보다 교회가 새롭게 갱신되어야 하고 이를 위해 제일먼저 교회가 크게 회개해야 한다고 많은 사람들이 강조한다. 그런데 이 말은 신학적으로는 옳은 말이지만 사회학적으로는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우선 지나간 7,8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기성교회 기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때에도 일부 교회는 부패했고 사회적으로 무관심했고 일부의 성직자들은 윤리문제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이라고 그때에 비해 특별히 부패하거나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대부분의 성직자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말씀을 따라 경건하게 살고 있다. 그래서 나는 교회가 회개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를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 주장에 대해 큰 감명을 느끼지도 않는다. 내가 볼 때 한국교회 쇠락의 문제는 교회가 회개를 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시대정신에 맞는, 올바른 방향을 가진 기독교운동이 존재하지 않는 데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기독교운동이 등장해서 제도교회기구와 공고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게 되면 한국교회가 다시 한국사회의 희망이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렇다면 어떤 기독교운동이 나와야 하는가? 그것은 시대에 따라 다른 모습을 가질 수밖에 없다. 1920년대의 시대정신은 독립운동, 민족운동이었다. 이러한 운동을 주도하는 세력은 민족의 희망이 된다. 당시의 한국교회는 국민의 1%에 불과했지만 민족운동에 앞장섬으로 해서 민족의 희망이 되었다. 197,80년대의 시대정신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이었다. 그리고 이때의 한국교회도 민주화운동에 앞장섬으로 해서 또다시 민족의 희망이 되었다. 그렇다면 지금의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그것은 나라살리기 운동, 선진국이 되기 위한 운동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덴마크의 구른트비히 목사처럼 나라살리기 운동에 기독교가 앞장서는 일이다. 이러한 운동 목표를 가진 기독교NGO가 등장해서 나라살리기 운동을 적극 전개하고 나아가 이러한 운동들이 기성교회 기구와 상호협력 함으로써 한국교회의 큰 도약을 이루어내자는 것이다. 다만 지난 7,80년대와는 달리 지금에 와서는 NCC 뿐만 아니라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도 함께 제도교회기구로서의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4.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기독교사회책임>은 우리나라가 위기에 처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러한 위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나라살리기 국민운동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점이 한마디로 <기독교사회책임>의 출범이유다. 그래서 이 운동에 대한 작명을 할 때 마지막까지 거론된 명칭이 <나라살리기 기독교운동>이었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오늘의 상황을 위기로 보는가? 한마디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게 된 가장 큰 문제는 노무현 정부가 국민의 뜻을 외면하고 이념적이고 정략적인 개혁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밀어붙이기”와 이로 인한 “편가르기”가 노무현 정부뿐 아니라 386 급진세력, 시민운동 세력, 노동운동 세력 등 신 主流세력에 의해 강력하게 뒷받침되고 있기 때문이다. 4대입법과 수도이전 등 노무현 정부의 일련의 개혁조치는 국민의 눈에 지배세력을 교체하기 위한 이념적인 개혁, 열린우리당 의 장기집권을 위한 정략적인 개혁으로 비쳐졌으며 그 결과 우리사회에 많은 위기를 배태시켰다. 첫째는 경제위기다. 세계경제가 평균 5% 성장할 정도로 호황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지난 해에 겨우 4% 정도 성장했다. 그것도 주로 세계경제의 호황 탓이고 내수경기는 형편없었다. 물론 경제위기를 전부 노무현 정부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그러나 일차적인 책임은 현 정부에 있다. 경제가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경제살리기에 힘을 쏟지 않고 4대입법 등을 밀어붙이는 정부를 보면서 국민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나라의 기본틀까지 흔들리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을 하였고, 이러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기업과 개인으로 하여금 투자를 하지 않고 많들었고 나아가 많은 돈과 사람이 해외로 도망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산업은 공동화되고, 내수경기는 얼어붙고 서민들의 고통은 악화되었다. 둘째는 좌우의 양극화현상이다. 정부가 국민의 뜻을 따르지 않고 일방적으로 개혁을 밀어붙이면서 국민 사이에 위기의식이 심화되고 나라는 완전히 좌우로 갈라지고 말았다. 해방직후를 제외하고는 이렇게 우리 사회가 양극화된 적이 없었다. 김영삼정부나 김대중정부 시절에는 국민의 뜻을 헤아리며 정치를 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이렇게까지 양분되지 않았다. 이러한 양극적 상황에서는 경제살리기, 북핵문제, 한미관계, 남북화해 등 그 어떤 국정과제도 제대로 풀어나갈 수가 없다. 이로 인해 앞으로는 국민통합이 가장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게 되었다. 셋째로 국가정체성의 혼란이다. 특히 현 정부의 국가보안법 폐지주장은 많은 국민으로 하여금 현 정부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고 하는 국가정체성을 흔들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를 심화시켰다. 더욱이 현 정부의 지지기반인 진보세력이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미국에 대해서는 무조건 반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이러한 우려는 더욱 증폭되었다. 현 정부가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의 입장에 분명히 서 있다면 남북간의 평화협력을 위한 노력과 북의 인권문제를 함께 풀어나가려고 하는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한다. 이러한 위기의식이 가장 크게 부각되었던 때가 작년 9,10월이었다. 그리고 이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가장 컸던 때도 이때다. 10월4일 보수세력의 시청 앞 대규모 집회가 있었던 때도, 노무현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진 때도 이즈음이었다. <기독교사회책임>은 바로 우리 사회에 위기의식이 팽배했었던 시기의 산물이다. 이러한 절망적인 상황에서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 <기독교사회책임>이 출범했다. 그래서 나라경제를 살리고, 사회통합을 이루어내고, 균형잡힌 남북관계를 만들자는 점이 <기독교사회책임> 출범선언문이 제시한 목표였다. 그런데 11월 22일 <기독교사회책임>의 출범이후 변화가 생겨났다. 행정수도 이전이 헌재판결에 의해 좌절된 후 집권여당 내에서도 自省의 분위기가 커졌고 상생정치와 사회통합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도 커졌다. 그 결과로 여야 간에 대화와 타협을 위한 노력이 생겨났다. 비록 정기국회의 성적표가 좋은 것은 아니지만 상생정치를 이루려는 정치인의 움직임이 크게 부각되었다. 2005년 신년의 분위기는 작년과 사뭇 다르다. 제일 먼저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목표가 달라졌다. 국민통합과 경제살리기에 올인하겠다는 것이 대통령이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는 발언 내용이다. 작년의 대통령 자신의 모습에 대한 반성의 자세도 보여주었다. 이에 따라 열린우리당도 상당히 정돈되는 분위기다. 2005년이 되면서 원하든 원치 않든 여야는 이미 어느 정치세력이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 것인가 하는 선진화 경쟁시대에 돌입한 것으로 보인다. 아직은 많은 국민이 노무현 대통령의 이러한 태도변화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대통령의 言明만 가지고도 지지도는 크게 상승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이 과연 선진국을 향한 길을 잘 갈 것인가에 대해서는 나도 미심쩍은 점이 많다. 그러나 바로 그 점 때문에도 <기독교사회책임>과 같은 운동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아마도 <기독교사회책임>의 출범도 현 정부가 이제까지의 행보를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가도록 결심하는데 일조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기독교사회책임>의 역할은 너무도 분명하다. 현 정부가 선진국을 향한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방향을 제시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더욱이 <기독교사회책임>이 주장한 ‘남북협력관계와 북의 인권문제를 함께 중시하는’ 문제는 아직 노무현 정부가 동의하지 않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기독교사회책임>은 선진화의 길을 가로막고 있는 집단이기주의 노동세력, 급진정치세력, 편향적 시민운동세력과 결연하게 맞섬으로써 정부가 다시 금 이들에 의해 휘둘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래서 작년과 같은 “악몽의 해”가 다시는 오지 말아야 한다.
5. <기독교사회책임>은 무슨 일을 해야 하나?
<기독교사회책임>이 뉴라이트인가 아닌가, 보수인가 중도인가, 혹은 反盧인가 아닌가, 잠재적 정치세력인가 아닌가 등을 놓고 그동안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이 추상적이고 관념적으로 이루어져 그다지 유익하지 못했다. 구체적인 일감을 놓고 실사구시적인 토론을 해야 토론이 유익해진다. 그동안 <기독교사회책임>은 공석과 사석에서 여러 가지 운동과제들을 토론해 왔다. 아직 새해 사업계획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구체적인 과제를 가지고 토론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야 아직 <기독교사회책임>이 어떤 단체인지 잘 몰라 참여를 주저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그동안 제안된 중요 과제들을 내 자신의 의견까지 첨부하여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1) : 국가보안법 문제 이번 국가보안법문제는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원내대표가 의원총회에서 표결에 붙이기만 했어도 ‘여야합의의 대체입법안’이 의원총회를 통과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체입법으로 국가보안법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은 개정을 주장한 한나라당과 폐지 및 형법보완을 주장한 열린우리당 사이의 절충안으로서 여야가 합의로 문제를 풀려고 할 경우 유일한 대안이 되는 방안이다. 이 방안은 기존의 국가보안법을 폐지한다는 점에서 여당에게 명분을 주고 내용적으로는 국가보안법 개정과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야당에게 실리를 주는 방안이다. 금년 2월 임시국회에서 국가보안법을 다루더라도 대체입법안 이외에 다른 방안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사회책임>은 현재 열린우리당이 주장하는 방안과 대체입법안 사이의 차이가 무엇인가를 따져보고 무엇이 바람직한 대안인가를 토론하는 공청회를 열 필요가 있다. 그래서 대체입법이 최선의 방안임이 확인되면 이를 관철하기 위한 운동을 광범위하게 전개할 필요가 있다.
2) 사회통합을 위한 노력(2): 사립학교법 개정문제 사립학교법 개정문제는 지난 정기국회가 미처 공감대를 마련하지 못한 채 금년으로 넘어온 사안이다. 또 이 문제는 여야간 합의 못지않게 與와 사학재단 사이의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기도 하다. 사학재단이 무조건 고집부리는 것도 옳지 않고 사학재단을 무시하고 정부가 밀어붙이는 식으로 개혁하는 것도 옳지 않다. 사학제도의 근간은 훼손하지 않되 참여와 투명성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사학비리는 주로 사립대학에서 발생하고 중고등학교는 거의 문제되지 않으므로 대학과 중고등학교를 구분해서 대처하는 것이 옳다. <기독교사회책임>은 이 문제를 가지고 공청회를 개최하여 정부여당과 사학재단이 함께 합의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이 방안의 공감대 확보에 나설 필요가 있다.
3) 경제살리기 운동(1): 투명경영과 노동자의 이기심 억제를 위한 캠페인 <기독교사회책임>은 뜻을 같이하는 다른 NGO들, 다른 기독교단체들과 함께 경제살리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특별히 기업의 투명경영을 촉구하고 이를 선언한 기업의 경우, NGO들이 전문가를 동원, 투명경영 여부를 감독해야 한다. 그리고 투명경영을 실천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과거분식회계에 대해 처벌하지 않는 것도 고려할 만 하다. 또 투명경영 때문에 세금이 많아지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과거와 마찬가지로 세금을 내도록 하는 조처도 필요하다. 경제살리기의 또 다른 과제는 노동조합의 이기심 억제 문제다. 이미 대기업노조는 엄청난 임금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임금인상 투쟁을 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관철하여 전부 고임금을 받게 되면 한국기업 중에 살아남을 기업이 거의 없게 되고 청년실업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오히려 정규직의 임금을 동결해서 여유자금으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를 줄여나가야 한다. 그러나 정규직 노동자의 임금동결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우리 사회에서 거의 들리지 않고 있는 형편이다. <기독교사회책임>은 뜻을 같이 하는 NGO들과 함께 기업에게는 투명경영을 촉구하고 노동자에게는 이기심억제를 촉구해야 한다. 4) 민생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 민간사회안전망 구축작업 나눔운동을 활성화하여 극빈자들을 도와야 한다. 정부는 기초생활보장법에 의거해서 극빈자에게 재정지원을 하고 있으나 자식이 있는 극빈자는 구호대상에서 제외하고 있다. 그러나 자식이 실업자여서 부모를 부양하지 못하는 가정은 더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다. 이러한 사각지대에 있는 극빈자들이 훨씬 더 많은데 이들의 문제는 민간이 나서서 도와야 한다. 교회가 나서서 동네 안에 있는 학교, 기업, 병원, 약국, 가게, 식당, 지역주민들을 조직화하여 이 네트워크가 동네의 극빈자들을 돕도록 해야 한다. 다만 교회가 주동적인 역할을 하더라도 종교를 초월한 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동네안의 모든 사람이 동참하도록 해야 한다. <기독교사회책임>은 이 일을 한국교회가 열심히 할 수 있도록 매개하는 일을 해야 한다. 이같은 민간사회안전망 구축작업은 지금과 같은 어려운 경제상황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책이 될 수 있다. 나아가 교회의 위상을 높이고 교회의 성장에도 획기적인 기여를 할 것이다. 5) 균형있는 남북관계 대처 : 탈북자 강제송환저지운동 및 김동식목사 생환문제 지금까지 한국정부는 탈북자문제,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제대로 된 문제제기를 하지 않아왔다. 이점은 사실은 충분히 이해할 만한 일이다. 평화적인 남북관계를 구축과 북의 인권문제 제기를 동시에 하는 일은 매우 부담스러운 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지금처럼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정착된 상황에서 더 이상 이 문제를 뒤로 미룰 수는 없다. 정부는 남북관계에 어느 정도 영향이 있더라도 북의 인권문제와 평화적 관계 구축문제를 동시에 다루어나가야 한다. 북의 인권문제를 방치한 채 평화적인 남북관계를 정착시키는 방안은 없다. 진정한 평화는 이 두 토끼를 함께 좇을 때 이루어진다. 우리가 진정으로 북의 붕괴를 원치 않고 북이 연착륙하기를 원한다면, 북의 체제붕괴가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는 미국의 속 마음에 반대한다면 정말로 열심히 북의 인권문제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북의 모순이 누적되어 나중에는 체제붕괴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게 된다. 어렵더라도 인권문제를 함께 풀어가는 것이 장기적으로 보아 남북문제를 바르게 해결하는 길이다. 이렇게 생각할 때 중국정부를 향해 탈북자들을 북한으로 송환하지 않도록 촉구하는 운동과 김동식 목사의 생사확인 및 송환을 촉구하는 운동은 너무도 중요한 운동이다. 이 두 가지 운동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입장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운동이야말로 한국교회가, 특별히 <기독교사회책임>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운동이다.
6. <기독교사회책임>과 뉴라이트 운동
그동안 기독교사회책임의 출범과 관련한 여러가지 토론들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뉴라이트와 관련한 토론이 가장 주목을 받았다. 이 문제에 관해 필자와 김진홍 목사님과의 사이에 견해차가 있어왔다. 그러나 운동을 추상적으로 설명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구체적인 과제를 놓고 토론하면 생각의 차이가 없을 것이다. 구체적인 과제에 대해 생각이 같으면 추상적인 설명방식이 좀 다르더라도 별 상관이 없다. 그러나 추상적인 설명방법도 단일화되는 것이 좋기 때문에 이 논의를 피하기 힘들다. 김목사님은 <기독교사회책임>을 중도보수운동으로 보고 따라서 뉴라이트 운동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러한 방식의 설명도 충분히 가능하지만 그러나 나는 다음 몇 가지 이유 때문에 여전히 중도통합과 개혁이라는 슬로건을 고집하고 싶다. 첫째로는 기독교 본연의 입장 때문이다. 김목사님 말씀대로 기독교 주류는 좀 보수적이다. 큰 교회일수록 그렇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의 근본목표는 지상에 있는 교회의 성향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눈으로 볼 때 보수일 수도, 진보일 수도, 중도일 수도 있다. 오히려 기독교운동은 이러한 이념적 설명을 초월하는 것이 옳다. 그런데 자꾸 언론이 이념적 성향을 질문하니 할 수 없이 중도라고 답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中道는 좌와 우의 중간지점이 아니다. 중간의 기회주의나 타협론은 더욱 아니다. 우리가 말하는 중도는 사회적 正論을 말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좌와 우를 배격하는 것이 아니라 좌우를 전부 포용하면서 그 실체를 드러내어 비교검토하고 무엇이 정말로 바른 길인가를 찾아내는 노력이 중도다. 그러나 나는 김진홍 목사님의 설명을 이해한다. 큰 틀에서의 성향은 있을 수 있다. 나는 기독교운동이 진정으로 사회적 정론을 추구한다면 과거 박정희, 전두환 정권 때는 진보의 입장에 서야 하고, 노태우 정권 때는 중도 좌, 김영삼정부에서는 약간의 중도 좌 편향, 김대중 정부에서는 중도, 그리고 2004년의 노무현 정부에서는 중도右 편향이 맞다고 본다. 그러나 이 설명도 정권의 성향과 비교해서 억지로 표현해 본 것일 뿐이다. 기독교운동은 원론적으로 중도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다. 둘째로는 정치적 판단 때문이다. 뉴라이트라는 용어는 동아일보가 창안하고 동아, 조선이 확산시킨 용어다. 그런데 이 용어 창안의 배후에는 意圖가 있다. 지금의 한나라당, 그리고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고 있는 반핵반김 세력을 가지고서는 집권여당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는 인식에서 이 용어가 창안되었다. 그래서 수구보수가 아니라 좀 제대로 된 보수, 부패하지 않고 노블리스오블리쥬를 실천하는 보수, 경륜과 목표를 가진 보수를 원하고 있었는데 마침 <자유주의연대>와 <기독교사회책임>이 비슷한 시기에 출범하면서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 같으니까 이 둘을 묶어 뉴라이트라고 명명한 것이다. 그래서 뉴라이트라는 용어는 처음부터 보수의 필요에서 태어났다. 그러면서 뉴라이트 용어 창안자들은 열린우리당을 향해 당신들은 앞으로 뉴레프트가 되라고 말한다. 그런데 열린우리당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황당하다. 열린우리당이 그동안 주장해 온 바는 민노당은 진보, 한나라당은 보수, 자기들은 중도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중도에서 뉴레프트로 가라고? 그것은 어림없는 소리다. 그래서 뉴라이트라는 용어는 처음부터 열린우리당에 대한 고려를 배제한 채 창안된 용어였다. 그런데 이 용어는 보수진영의 개혁을 위해서도 좋은 화두가 아니다. 뉴라이트라는 용어를 가지고 한나라당의 개혁을 토론하면 한나라당은 개혁되지 않는다. 신진세력을 뉴라이트라고 명명하여 범보수 진영 내에 묶어두면 이 세력이 최종적으로 갈 곳은 한나라당 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기독교사회책임>이 뉴라이트로 명명되면 이 운동은 불가피하게 ‘찻잔속의 태풍’이 되고 그 결과 한나라당은 뼈를 깎는 개혁을 하지 않게 된다. 한나라당이 개혁하지 않으면 이 세력은 열린우리당을 지지할 수도 있고, 그래서 한나라당이 또다시 열린우리당에게 집권기회를 놓치게 된다고 생각되어야 한나라당이 마지못해 개혁을 한다. <기독교사회책임>이라는 새 운동이 등장하면 이 운동은 여야 양쪽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 이 운동을 통해 與는 수구좌파를 극복하고 野는 수구우파를 극복해야 한다. 나아가 여야가 함께 선진화경쟁을 해야 한다. 이 점이 바로 <기독교사회책임>의 창립이유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주장을 듣고 열린우리당이 심각하게 반성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기독교사회책임>이 범 보수진영의 일부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셋째로 <기독교사회책임>이 진정으로 정론을 피력하고 사회통합을 위해 일하려면 뉴라이트라고 표현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우리를 중도보수라고 설명하는 순간 사회통합을 위한 역할을 잘 할 수 없게 되고 또다시 좌우 의 어느 한 편에 서게 된다. 또 우리가 무슨 말을 하면 언론은 <기독교사회책임>의 목소리를 正論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건전한 보수의 목소리로 듣게 된다. 이것은 말할 수 없는 손해다. <기독교사회책임>이 한마디를 하면 사회 전체가 우리 방향으로 따라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당연히 정론을 말하는 단체여야 한다. <기독교사회책임>이 왜 출범하기도 전에 사회적 주목을 받았는가? 나는 가장 중요한 이유를 기존의 시민운동이 지나치게 편향적이 되어 정론을 말하는 사회운동 되기를 포기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 사회에 더 이상 바른 말을 하는 세력이 없어졌는데 앞으로 <기독교사회책임>이 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여 주목을 받은 것이다. 실제로 작년 노무현 정부의 ‘이념적이고 정략적인 밀어붙이기 개혁’은 마땅히 심각한 비판을 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종래의 시민운동은 아무도 이를 비판하지 않았다. 그러한 상태에서 <기독교사회책임>은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개혁을 정면으로 비판하면서 등장했다. <사회책임>의 등장 자체가 예언자적 목소리였다. 시민운동이 바른 말을 하지 못하므로 우리가 바른 말을 하는 단체가 되겠다며 등장한 것이다. 그런데 종래의 시민운동이 좌편향이니까 우리는 우편향이 되겠다고 말한다면 우리 역시 기존의 시민운동처럼 부분적인 조명밖에 받을 수 없게 된다. 넷째 최근 정치적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새해에는 정부여당은 ‘정략적이고 이념적인 밀어붙이기 개혁’을 포기하고 상생정치, 사회통합, 경제살리기, 언론과의 성숙한 관계 등에 올인 하겠다고 한다. 새해에는 사회 전체가 좀더 右로 이동하게 될 것이라는 예고다. 사실 전 세계가 右로 가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左편향에 빠져 있는 것은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가 정말로 우향우를 하고 나라 전체가 그 분위기에 따라간다면 <기독교사회책임>은 中道의 위치를 제대로 지키게 되고, 중립적인 위치에서 여야로 하여금 선진국을 향한 경쟁을 하도록 촉구하고 감시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이 역할이 우리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역할이다. 그래서 선진국을 향한 길을 가로막는 어떤 움직임에도 결연히 맞서고 나라를 살리려는 어떤 움직임도 적극 지지할 수 있게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사회책임>을 나라살리기 운동 혹은 선진화를 위한 국민운동이라고 말해야지, 뉴라이트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7. 글을 마치면서
그동안 <기독교사회책임>이 지금보다 훨씬 크게 발전할 수 있었는데도 나에 대한 여러 문제제기로 많은 차질을 빚게 된 것이 너무 죄송스럽다. 나는 결점이 많은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체를 창립하면서 이렇게 인신공격을 받은 적은, 그것도 기독교인들로부터 받은 적은 처음이다. 나는 복음주의 좌파가 <기독교사회책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비판의 수준과 방식이 우리의 인격적인 대접을 받기에 너무 미흡했던 점은 매우 아쉽다. 아무리 젊은 사람들이지만 ‘복음주의 좌파’도 기독교의 일부일 진대는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경심은 있어야 했다. 그리고 성숙한 토론을 통해 서로 성숙하게 발전하는 것이 필요했었다. 특별히 <뉴스엔죠이>는 자신을 돌이켜 볼 필요가 있다. 기독교 언론이 반드시 가지고 있어야 하는 덕목이 교회와 기독교인에 대한 애정인데 <뉴스엔죠이>는 이점을 돌아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기독교사회책임>을 지켜보고 있는 기독교인들에게도 드리고 싶은 말이 있다. 이번에 <기독교사회책임>을 제안하고 시작한 몇몇 사람들에게 이 일을 맡겨 놓을 것이 아니라 모든 뜻있는 기독교인들이 함께 이 책임을 감당할 수 있기를 호소한다. 더구나 나같은 사람은 기독교NGO에 한시적으로 참여한 사람이다. 모처럼 일반 언론이 주목하고 있는 지금과 같은 기회는 또다시 오지 않는다. 과거에 한국교회가 민족운동을 하고 민주화운동을 한 것처럼 이번 나라살리기 운동에 기독교가 적극 나서서 이 기회를 한국교회 중흥의 호기로 삼아야 한다. 나의 친구가 되는 목사님들, 선배 및 후배 목사님들, 평신도들에게 부탁하고자 한다. 이 운동에 참여해 달라. 지금은 이 땅의 기독교인으로서 애국심이 필요하고 正論을 말하려는 결단이 필요한 때다. 이번 기회를 반드시 살려내야 한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09:1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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