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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이라크 파병, 제3의 길 찾자
서경석목사(경실련 중앙위의장)
이라크 추가파병이 임박하면서 테러 위협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이라크 무장단체가 미군군수물자를 수송할 경우 한국선박을 공격대상으로 삼겠다고 발표하여 이라크 파병의 前途가 더욱 어두워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8월 파병방침에 변함이 없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김선일씨를 참수한 테러리스트에게 굴복할 수도 없고 경제, 안보 등 국익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보아도 파병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이렇듯 파병을 찬성하는 측이나 반대하는 측이 다같이 매우 설득력이 있기 때문에 파병문제는 더욱 꼬여가고 있다. 그러나 정부가 파병을 원색적으로 밀어붙인다면 한국은 엄청난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은 어떻게 해서든 제3의 방안을 찾아야 한다. 파병의 가장 큰 문제는 파병의 명분인 ‘평화재건’ 목적이 수사학에 불과할 뿐, 한국 국민도 이라크 국민도 전혀 이를 믿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라크 저항세력은 한국군을 미군의 연장선으로 보고 공격대상으로 삼고 있다. 너무도 유감스럽지만 우리는 이점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면 필자의 주장은 한국이 이러한 이중적 태도를 고집하지 말고 차제에 명실상부하게 평화재건을 목적으로 하는 <평화재건단>을 보내자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들은 미국 평화봉사단처럼 당연히 민간요원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우선 소수의 선발대를 파견하여 이라크 임시정부 및 아르빌의 주민대표와 공동 협의하여 평화재건 계획을 수립하고 그 틀 안에서 한국이 담당해야 할 몫을 정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평화재건 팀이 천오백 명씩 될 이유가 없다. 인원은 훨씬 줄이되 대신 프로젝트의 재정규모를 늘이는 것이 이라크에 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아직 치안이 유지되지 않는 상태에서 민간인만을 보낼 수는 없다. 평화재건단의 안전을 위해 경호부대가 함께 가야 한다. 경호부대는 민간인보다 훨씬 더 큰 규모가 되어야 이들의 안전을 지킬 수 있다. 그리고 재건지역의 치안이 제대로 안될 때에는 그 지역의 치안까지 감당해야 한다. 재건활동은 치안이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선일씨의 죽음 이후에도 한국이 변화를 도모하지 않는 것은 결코 자랑거리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미국은 국면전환을 위해 예정보다 일찍 주권을 이양했다. 미국도 변화를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첫째로 주권이양이 이루어진 이상 한국은 파병문제를 이라크 임시정부와 다시 논의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라크 임시정부는 파병보다 <평화재건단>을 선호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둘째로 평화재건단을 경호하는 경호부대는 성격상 다국적군 사령부의 작전통제를 받을 필요가 없어야 한다. 이미 일본은 해외에서의 무력행사를 허용하지 않는 自國헌법을 이유로 미국에 독자적인 지휘권을 인정할 것을 요구하여 결국은 독자적인 부대가 되었다. 그렇다면 평화재건단 경호부대는 성격상 더욱더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점이 분명하게 되면 한국은 <평화재건단>이야말로 진정으로 이라크 국민을 위한 평화재건 노력임을 이라크국민을 위시한 국제사회에 적극적으로 홍보해야 한다. 美軍의 연장선 상에서 파병부대를 보내는 것은 실은 미국을 진심으로 돕는 방법이 아니다. 한국의 <평화재건단> 아이디어는 미국의 眞心이 이라크의 평화와 재건, 그리고 민주주의에 있음을 명확하게 이라크 국민에게 보여주는 방식이 된다. 또 이 방법은 이라크의 테러리즘을 근본적으로 무력화시키는 방법이기도 하다. 평화재건을 위해 일하러 온 민간인과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미군의 지시를 받지 않고 행동하는 경호부대를 향해 이라크무장단체가 테러를 감행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한국의 전례를 따라 이라크에 평화재건팀을 보내는 나라들이 많이 생길 수도 있을 것이다. 한국이 이런 방식으로 이라크에 간다면 절대다수의 이라크 국민은 틀림없이 한국을 열렬하게 지지할 것이다. 이 주장은 일견 허황되게 보일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 방법은 단언하건대 파병강행보다 좋고 파병철회보다 좋은 방안이다. 미국과의 관계를 훼손시키지 않으면서 이라크 국민과도 좋은 관계를 맺는 방안이다. 무엇보다 김선일씨의 죽음과 같은 또 다른 비극을 막는 방법이다. 더구나 우리는 파병을 둘러싼 심각한 국론의 분렬을 막아낼 지혜를 기필코 짜내야 한다. 그렇다면 시도안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09:0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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