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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총>은 때려잡자 김정일인가? - 정강길님께 드리는 답변 -
안녕하세요. 서경석목사입니다. 정강길님은 제가 한번도 만나본 적도 없는 분인데 성의있는 글을 올려주셔서 송구스럽습니다. 그러니 제가 답변드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인식의 차이가 너무 커서 답변을 드리려니 너무 힘이 드네요. 그러나 정강길 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기도 하여 외면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 많은 문제제기 중 몇 가지만 골라 답변하겠습니다.
1. 왜 보수진영의 영향력이 커졌나?
보수진영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과 보수진영이 운동을 통해 당당하게 자기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그동안 사회운동이라고 하면 범 진보진영만 있었습니다. 그런데 보수세력이 구체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지 약 3년 정도가 됩니다. 보수세력이 자기 존립의 위협을 느껴서 큰 목소리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 안에 진보세력의 “지나침”에 대한 위기의식과 걱정이 커지면서 보수세력이 당당하게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보수의 목소리가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게 된 것입니다.
한번은 내 친구인 이종오교수가 - 실명을 거론해서 이교수에게는 죄송합니다만. - 내게 전화를 해서 한국의 사회운동, 특히 진보진영이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않는 것에 대해 크게 걱정을 했습니다. 진보는 침묵하는데 보수가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니, 이 때문에 오히려 보수에게 사회적 명분을 주고 있다며 안타까와 했습니다. 나는 이교수의 분석과 문제의식에 동의합니다.
진보진영은 자기반성을 열심히 하지 않고 항상 잘못된 원인을 남에게서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점이 진보진영의 실패의 원인이기도 합니다. 한가지 예를 들까요. 88년 제가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서리를 할 때입니다. 당시 제가 볼 때는 민족민주운동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엄청나게 떠나가고 있는데도 당시 <기사연리포트>는 “도도히 흐르는 민족민주운동의 대오는 아무도 막지 못 한다”고 썼습니다. 왜 그러했나? 대부분의 운동권사람들이 모든 것은 다 미국과 노태우 잘못이고 운동권은 잘못이 없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니 사물의 흐름을 정확하게 짚어내지 못하고 아전인수로만 해석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재야운동권은 쇄락하고 대신 시민운동에게 사회운동의 주도권을 넘겨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금 다시 비슷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노무현정부의 실패를 보면서 단지 노무현정부만의 실패가 아니라 진보진영의 실패이기도 한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무엇에 실패했는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2. 북한 인권문제를 반공이데올로기, 미국의 대북경제재제, 네오콘의 활동과 연결시켜 보려는 견해에 대하여
진보진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념의 잣대로 사물을 보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일에 실패하고 있습니다. 북한인권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탈북자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과거에 민중신학이 storytelling을 강조했던 것과도 같습니다. 민중의 이야기를 통해 민중의 처지와 실체를 아는 것이지요. 이념의 안경을 벗어던지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그 이야기를 인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합니다. 절대다수의 우리국민은 그렇게 사물을 인식하는데 유독 진보진영은 이념의 안경을 쓰고 사물을 봅니다. 그러니 진보진영은 일반국민으로부터 유리될 수밖에 없습니다.
탈북자의 소리를 들으세요. 한국에 와있는 7천명이 넘는 탈북자들의 소리는 한결같습니다. 강철환씨가 쓴 <평향의 어항>이라는 책을 읽어보세요. 인권은 추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동북아생명권이라는 너무도 어렵고 추상적인 표현들은 인권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노력을 오히려 방해합니다. 인권을 이해하는데 그런 어려운 말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옛날 박정희정권과 싸울 때 항상 가졌던 시간이 <민중의 소리>시간이었습니다. 노동자가 농민이 도시빈민이 나와서 그들의 고통의 소리를 외칩니다. 당시 기독청년들은 그들의 호소를 듣고 투쟁을 다짐했었답니다. 마찬가지로 북한 인권문제를 다룰 때에는 탈북자의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정치범수용소에 아무 이유도 없이 잡혀가서 95%가 죽어나갑니다. 쥐와 뱀을 잡아먹고, 지렁이를 잡아먹습니다. 기독교인은 가차없이 패서 가장 일찍 죽어나갑니다. 지금도 재판도 없이 공개처형을 합니다. 영아살해에 온갖 고문과 악행이 자행됩니다. 자기는 굶어 죽어가면서도 장군님만 편안하시면 됩니다 라고 말하며 죽어 갑니다. 이 엄청난 자기기만을 보면서 나는 북한을 갈 때마다 속으로 울며 다녔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엄청난 인권유린과 악행 앞에서 침묵해야 하는 나의 처지를 너무 슬퍼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북한 인권문제를 소리 지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탈북자들의 수기를 읽고나면 강정길님도 다시는 “삼층집을 짓기 위해서 일층과 이층도 제대로 짓지 않은 채 무턱대고 삼층부터 짓자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말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반공이데올로기 말씀을 하시니 제 이야기를 하나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91년인가 경실련 사무총장 시절에 일본에 가서 조총련 사람들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랬더니 이 사람들이 낮에는 수령님 존칭을 깍듯이 하더니 밤에 만나니까 육두문자를 쓰면서 김일성 욕을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정색을 하고 당신들은 왜 한국의 안기부보다 더 심하게 북한을 욕하는 거요 하고 대들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들이 “당신들 남한에서 온 사람들은 북한이 어떤 나라인 줄 모릅니다. 우리는 북한을 60번, 70번 갔다 왔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내가 받은 충격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당시 안기부에서 하는 말은 일체 믿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 자신이 북을 여섯 번 다녀오고 나서는 우리가 지난 날 전혀 믿지 않았던 안기부의 모든 보고들이 전부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옛날에 반공이데올로기의 노예가 되는 것을 거부했지만 내용을 전부 알고 나서는 그 반공적인 주장들이 전부 사실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정강길님은 저보고 반공이데올로기의 노예라고 말하실 것입니까?
북한인권문제가 미국의 대북강경정책과 맞물려 있다는 주장역시 내게는 조금도 동의가 되지 않습니다. 북한의 인권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미국의 대북강경정책이 나온 것이지요. “대북경제원조 차단 및 대북금융 제재 봉쇄 그리고 에너지 중단과 전기공급의 결핍 등은 북한 인민들을 결국 사방으로 완전 포위해서 점점 굶겨 죽이겠다는 것”이란 주장도 매우 황당합니다. 오히려 부시행정부는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말하면서도 식량지원은 계속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미국의 입장에 대해 사실왜곡을 하지 않고 실사구시적인 접근을 해야 합니다.
“북한 인권문제를 말하려면, 일단 북한 인민들을 살리고 나서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주장역시 맞지 않습니다. 내게는 이런 주장은 과거에 박정희 정권이 한국식민주주의를 주장하면서 일단 경제성장을 한 후에 민주주의를 하자는 말과 똑같이 들립니다. 나는 3년 전에 만수산 기념궁전에 간 적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시신을 안치해 놓은 곳이지요. 대리석으로 치장을 한 너무도 웅장한 곳입니다. 정확한 금액은 기억이 안 나는데 수억 불의 돈을 들여 이 궁전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2백만 명이 굶어죽었던 바로 그 때에 지은 건물입니다. 만일 이 궁전을 지은 돈으로 중국에서 옥수수를 샀다면 한명도 굶어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시 나는 굶어 죽어가는 북한동포를 살리려는 북한동포 돕기운동을 못하게 막았던 김영삼, 권오기, 권영선 세사람을 절대로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공언했었는데 후에 만수산 기념궁전을 보고서는 나는 절대로 김정일을 용서하지 못한다는 말을 공언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북한에 인권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에 북의 인민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죽어나가는 사람들이 쌀이 없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시장에 쌀이 넘쳐나는데 인민들은 굶어죽고 있습니다. 인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북한당국이 외부세계에 식량부족의 실상을 잘 보여주면서 이들에 대한 외부세계의 접근만 가능하게 하여도 국제사회의 대북지원은 몇 배로 늘어날 것입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김정일 정권이 정말로 인민을 위하는 정권이냐 아니면 몇백만이 죽어도 체제유지가 최우선이라고 생각하는 정권이냐의 문제입니다. 이번에 한기총 인권위원회는 북한을 향해 “북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한다면 이제까지 북을 지원한 금액을 열배이상 증액시키겠다”는 제안을 예정입니다. 만일 북한인권만 개선된다면 한국교회뿐 아니라 전 세계가 앞을 다투어 북한을 도울 것입니다.
북한주민이 굶어죽는 것이 미국의 탓인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이야말로 지극히 이념적입니다. 기본적으로 김정일이 죽일 놈이다. 그러나 미국도 문제가 있다. 이렇게 말한다면 그 말에 나도 동의하겠습니다. 그런데 미국이 죽일 놈이고 미국 때문에 김정일이 할 수 없이 저렇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에큐메니칼 운동이 “왜 우리는 북한인권을 말하지 않아야 하는가”를 자꾸 이론화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헛된 일입니다. 어린아이의 눈으로 돌아가면, 모든 것이 잘 보이지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어린아이가 되어서 상식의 눈으로 북한을 쳐다보세요. 모든 사람들의 눈에 너무도 뻔히 보이는 일을 자꾸 안 보려고 애쓰지 마세요. 3. <한기총>은 “때려잡자 김정일”이라는 입장인가?
<한기총>의 입장은 “때려잡자 김정일”이라는 입장이 아닙니다. 이번 12월 10일에 한기총은 광화문에서 북한인권을 위한 촛불기도회를 할 것입니다. 20만명이 모일지 30만명이 모일지는 그때 가보아야 알겠습니다만 한기총은 그런 입장이 아닙니다. 지난 6월 25일 대학로에서 모인 한기총 주최의 <북핵반대와 북한인권을 위한 국민화합대회>에서도 그런 말은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한기총은 순수한 차원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룰 것입니다. 한기총이 12월 촛불기도회를 발표하면서 최성규 대표회장이 발표한 멧세지에서 일부를 인용하겠습니다.
“넷째 국민화합을 위해서도 이러한 집회가 필요합니다. 한기총은 북한의 인권상황을 규탄하고 김정일 정권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보수세력의 생각에 충분히 공감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방지하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대화와 협력을 해야 한다는 정부당국이나 진보단체의 생각도 충분히 이해합니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생각이 서로 조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이점이 대부분의 한국국민의 뜻이라고 믿습니다. 한기총은 북한에 빵만 주려고 하는 진보측의 생각이나 인권만 주려고 하는 보수측의 생각을 넘어서서 빵과 인권을 동시에 주는 입장을 취하기를 원합니다. 남북대화가 북측에 끌려만 다니는 대화가 아니라 힘들더라도 인권을 조금이라도 개선시키는 대화가 되기를 원하여 이번 촛불기도회를 개최합니다. 이번 촛불기도회가 한국국민의 뜻을 한데 모으는 국민통합의 계기가 되기를 원합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한다는 公敎會가 “때려잡자 김정일”이라는 주장을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한국정부의 일차적 과제는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는 것인데 그러려면 북한당국과 좋게 지내야 합니다. 다만 한국정부가 정말로 북한붕괴를 원치 않는다면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정말로 남북대화의 진전을 원한다면 이산가족 만남의 확대이든지, 피납자의 송환이든지, 김동식목사의 생사확인이든지, 기독교 비판 중단이든지, 정치범수용소의 폐쇄이든지 하는 진전을 얻어내야 합니다. 이런 것은 다 빠진 채 김정일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얻어진 합의로는 안 됩니다. 그래서 인권문제를 말해야 합니다. 북이 싫어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말할 수밖에 없다고 해야 합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인권개선을 얻어낼 수 있습니다.
미국의 네오콘과 한국의 <한기총>은 연결되지 않습니다. <한기총>은 미국국민이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에 대해 고맙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미국과 좋은 관계를 갖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한기총>은 미국의 구상 하에서 움직일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한기총>은 주체적으로 사고하고 행동합니다. 이번 12월에 프리덤하우스가 하는 국제회의가 한기총과 아무 관계가 없는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미국정부가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질 때에는 어느 정도 정치적인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이점은 미국정부만이 아니고 모든 나라가 다 같습니다. 그래서 정치적 이유가 있다는 것이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북한에 인권문제가 있는가가 중요하지,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나라가 정치적인가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폴러첸은 독일의사이고 호로위츠는 워싱튼에 사는 유태교인입니다. 이분들은 서로 거의 알지 못하는 사이입니다. 호로위츠는 작년까지는 북한붕괴론의 입장에 서 있었는데 금년에 들어와서 입장을 바꾸어 북한정부 당국이 북핵을 포기하고,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정치범수용소를 철폐하고, 식량배분을 공정하게 하고, 이산가족의 만남을 실현한다면 김정일정권을 반대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습니다. 이 바람에 김상철 변호사와도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저는 호로위츠를 처음 만났을 때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호로위츠와는 대화를 할 필요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이분의 생각이 크게 바뀌었더군요. 그렇다면 관계를 맺어도 좋겠다고 생각하고 지금은 대화하고 있습니다.
또 북한인권법에 의한 자금은 북한 독재정권에 저항적인 해외인사들에 대한 자금지원에는 쓸 수가 없습니다. 이 돈은 미국인만이 쓸 수 있습니다. 하다못해 탈북자를 구출하는 데에도 이 돈을 쓸 수 없습니다. 지금 이 돈을 받을 가능성이 높은 단체는 Mercy Corps라는 대북지원을 주로 하는 미국NGO입니다.
미국이 남한사회가 북한 인권문제를 주장해주길 강력히 소망하니까 인권문제를 말하는 것은 미국에게 놀아나는 것이라는 논리는 정말로 오랜만에 듣습니다. 과거 박정희 정권 하에서 한 때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은 바로 북한의 김일성의 주장과 같기 때문에 용공이라고 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박정희정권의 논리와 너무도 같습니다. 그래서 한기총이 미국이 좋아하는 일을 하여 결과적으로 미국에 놀아나는 것이 되면 가짜 교회가 되는 것입니까? 미국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가짜교회이고 싫어하는 일을 하면 진짜교회가 됩니까? 왜 우리가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행동을 결정할 때 미국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가와 관련을 시켜야 합니까? 미국이 하니까 무조건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미국이 하니까 무조건 반대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사대주의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한기총 집회에서 나도 거북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것이 한국교회의 수준이구나”하고 생각합니다. 젊은 시절 새문안교회 장로님들의 수준에 대해 갑갑함을 느꼈었는데 나중에 보니 새문안교회는 그래도 수준있는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한기총 집회에 참석한 목사님들의 기도내용을 들어 한기총을 비난하지는 맙시다. 그것은 한국교회 전체를 비난하는 것입니다. 어머니의 젖가슴이 아무리 쭈글쭈글해도 그것은 나의 생명줄이었던 어머니의 젖가슴입니다. 한국교회의 수준 낮음을 탓하지 말고 어떻게 수준을 높일 것인가를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봉수교회에 관한 정강길님의 질문은 제가 쓴 “에큐메니칼 운동의 옛동료, 후배에게 드리는 글”을 다시 읽어보아 주시기 바랍니다.
4. 사형제를 지지하면 인권을 운운할 자격이 없는가?
나는 사형제문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보수, 진보의 문제도 아닙니다. 보수 안에도 찬반이 있고 진보 안에도 찬반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형제를 지지하면 인권을 운운할 자격이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나부터 이 문제에 대해 사형제 폐지 쪽이 아닙니다. 나는 사형제는 그대로 두되 사형집행은 하지 말자는 의견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한기총 내에서 사형제 존속을 주장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형제는 존속시키되 사형집행은 하지 말자는 의견을 갖고 있더군요. 사형제를 폐지하면, 종신형을 받은 사람은 감옥 안에서 마음대로 사람을 죽여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더 이상의 처벌이 없으니까요. 그래서 이 문제는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에는 존속과 폐지 양쪽을 뒷받침하는 구절이 다 있습니다. 한기총 내에도 찬반이 있지요. 다만 한기총에는 존속 쪽의 목소리가 높았을 뿐입니다. 저는 이 문제를 가지고 최성규목사님께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무엇이 옳은가를 떠나 한기총이 어떤 입장을 택할 때에는 산하교단과도 협의해야 한다. 예징통합 측과 정반대되는 주장을 통합측과 논의 없이 선포한 것은 문제있다는 것이 나의 문제제기였습니다.
5.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 : 한기총에 대한 성토를 읽고
정강길님의 한기총에 대한 성토를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읽으면서 좀 슬펐습니다.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기총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지금 한기총은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습니다. 한기총은 지금 보수적인 교회만을 대변해서는 안 되고 한국교회 전체를 대변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한기총이 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에큐메니칼 운동도 변해서 보수교회를 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정강길님의 글에서는 그런 의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포용하겠다는 생각이 있으면 한기총을 그렇게 “지독스럽게” 비난하지는 않겠지요.
둘째 한기총을 같은 믿음의 형제로 생각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한기총은 어디에 뚝 떨어져 있는 단체가 아닙니다. 한국교회의 몸통에 해당하는 교회들의 집합체입니다. 기독교는 이론이나 논리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의 확신을 가지고 믿음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교회공동체가 성장합니다. 신학도 논리도 기독교운동도 그 공동체에 기반을 두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공동체는 죄인들의 공동체이면서 동시에 주님 안의 형제자매들입니다. 그렇다면 한기총을 대할 때 같은 형제자매로서의 애정을 가지고 비판해야 합니다. 그런데 강정길님의 글을 읽으면서 우리가 같은 믿음의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 점이 안타까왔습니다. 서로가 같은 믿음의 공동체 속에 속해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80년대 말에 민주화가 되고 나서 많은 운동가가 기독교를 떠났습니다. 나는 사실은 신앙이 별로 없다. 그러니 정치권으로 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민주화가 되고 나서 진보적 기독교운동은 오히려 왜소해 졌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확실하게 신앙의 기반 위에서 기독교 운동을 하는 것입니다. NCC와 한기총은 서로 상대방에게 그런 신뢰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앞으로 한기총과 NCC는 전혀 상대방을 의식하지 않고 그냥 갈 것 같습니다.
셋째 에큐메니칼 운동이 남을 비판만 할 것이 아니라 자신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혹시나 독선이라는 죄를 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젊은 시절에 저 자신 스스로 개혁세력이라고 생각하고 교회개혁의 목소리를 소리높이 외쳤습니다. 그러나 환갑이 눈앞에 있는 지금에 와서 나는 너무도 큰 죄인이라는 생각밖에 없습니다. 나는 개혁대상입니다. 나의 목회는 정말로 형편없습니다. 오히려 조용히 주님과 함께 목회를 하는 동료 목사님들에게서 큰 감동을 받습니다. 그리고 누가 교회개혁을 외치며 나서면 저는 속으로 안스러워합니다. 진정한 개혁은 성령께서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항상 개혁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09:1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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