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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화합의 방향과 실천적 과제> 논찬
서경석 목사
정성헌 선배는 논문이라기 보다는 격문의 형태로 뜨거운 가슴과 해박한 지식을 동원해서 우리민족의 나아갈 방향을 역설하고 있어 이 글을 읽는 이로 하여금 진한 감동을 느끼게 하고 있다. 또한 정선배는 큰 틀에서 볼 때 문제를 바르게 짚고 있어 논찬자로서도 특별히 제기할 다른 이견이 없다. 다만 발제문은 세계화의 도전에 성공적으로 대처해서 오늘의 위기를 이겨내기 위해서는 국민화합을 통해 민족적 역량을 최대한으로 결집시켜야 한다는 원론적 입장을 강조하는데 많은 지면을 할애한 반면에 국민화합을 이루어내기 위해 지금 우리가 극복해야 할 문제점과 대안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이 부족하다. 따라서 나는 논찬을 통해 지금의 국론분열이 왜 생겼으며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가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분석과 제안을 함으로써 발제문을 보완하고자 한다. 다만 지역주의 문제는 - 발제자는 이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었으나 - 정부와 국민이 성실하게 나라의 문제를 잘 풀어가다 보면 자연히 해소될 문제로 보고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론분열에 있어서 현 정부의 책임이 크다.
얼마 전에 노무현 대통령이 연정을 제안하면서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노선 차이가 거의 없다는 발언을 해서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말씀이 옳다고 본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향해 가야 한다는 점, 세계화의 좋은 점은 수용하지만 세계화의 약점은 극복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세계화의 격랑에서 살아남기 위해 국가경쟁력을 최대한 높이되 사회적 형평도 함께 추구해야 한다는 점 등의 원론적 방향에 있어서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이후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의 세 대통령 시절을 비교해 볼 때 지금처럼 국론분열이 심한 적은 없었던 것 같다. 어느 시대에도 보수와 진보가 있었고 사회적 갈등이 있었지만 이러한 갈등들은 집권여당의 국론통합 노력에 의해 적절하게 조정되어 왔다. 그러나 노무현 정부 시절에는 과거와 상당히 다른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로 어느 사회나 좌파가 있기 마련이고 특별히 지난날 격렬한 민주화과정에서 극단적 이념과잉 현상을 경험했던 한국으로서는 左성향의 목소리가 커질 수 있는 소지가 있어왔으나 이러한 左의 목소리가 합리적 진보세력에 의해 적절하게 조정, 절제되지 못함으로써 지난 정권시절보다 훨씬 과도하게 표출되었다. 둘째로 左성향 세력의 과도한 표출은 이를 염려하는 보수세력의 결집을 초래함으로써 사회 전체적으로 좌우 양극화현상이 심화되었다. 원래 보수세력은 주류의식 때문에 좀처럼 결집하지 않는 성향임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정부이후에는 결집의 절박성을 느끼면서 행동세력으로 전환하고 있다. 셋째로 이러한 사회적 갈등을 해소하려는 정부의 사회통합 노력이 과거 김영삼, 김대중 정부와 비교해서 노무현정부에게 상당히 부족했다. 노무현정권의 지지기반이 진보세력이라 하더라도 정권을 잡은 후에는 균형감각을 가지고 사회통합을 위해 진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노력이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작년에는 편가르기와 밀어붙이기가 심해 지지율이 크게 저하하고 사회적 저항도 매우 커졌었다. 금년 초에 국민통합과 민생문제에 올인하는 방향으로 국정방향을 바꾸면서 이러한 긴장이 상당히 해소되었지만 그러나 그 후에도 행정수도 이전문제 등 편가르기와 밀어붙이기가 여전하여 낮은 지지율이 좀처럼 상승하지 않고 있다. 국민통합을 위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는 사회주체는 다름 아닌 정부 자신이다. 정부는 대화를 통한 국민적 합의 형성노력, 경제살리기와 민생안정 노력 등을 통해 국민의 욕구를 잘 수렴함으로써 국민통합을 성공적으로 이룩해야 한다.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침묵이 문제의 근원이다.
노무현 정부는 다른 문제와는 달리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일관되게 침묵하고 있다. 정부는 북핵 등 당면한 남북문제를 해결하고 화해를 실현하기 위해 이점이 불가피하다고 생각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우리사회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있다. 첫 번째 문제점은 이러한 정부의 입장이 남북관계를 바르게 해결하는 방안이 아니라는데 있다. 모두 다 알고 있는 바와 같이 남북문제의 근본원인은 북한체제의 모순에서 비롯된다. 이러한 모순이 시정되거나 완화되지 않는 한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진전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체제모순을 완화시키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바로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어렵더라도 한편으로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을 진행시켜야 한다. 이 길이 늦더라도 제대로 가는 길이고 끊임없이 북의 농간에 놀아나면서 시간만 허비하는 것을 피하는 길이다. 또한 이 길은 한국정부가 진정으로 북의 체제붕괴를 원치 않고 북한체제의 소프트 랜딩을 원한다면 반드시 택해야 하는 길이기도 하다. 두 번째 문제점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정부의 침묵이 한국사회 내부의 이념적 갈등의 근본원인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탈북자들의 입을 테이프로 막지 않는 한 우리는 그들의 증언을 들을 수밖에 없으며, 상식인이라면 그들의 말을 들으면서 북의 인권유린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죄악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날 북한주민이 대규모로 굶어 죽어갈 때 그들을 돕지 않은 것이 죄악이었다면 지금 탈북자의 증언을 듣고도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하는 것 역시 죄악이 아닐 수 없다. 최근에 극우세력의 힘이 상당히 신장된 것도 한동안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발언을 그들이 독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한국정부가 계속 북한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할 경우 우리나라의 보수 세력은 이 문제를 현 정부가 좌파정부인 구체적인 증거로 보고 일체의 협력을 거부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서 정부가 진정으로 보수와 진보간의 대화를 원하고 사회통합을 원한다면 북한 인권문제 거론은 피할 수 없는 과제임을 인식해야 한다. 북의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수준은 정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국내의 어떤 정치세력도 더 이상 북의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다.
실사구시적 시민운동이 해결책이다.
발제자도 강조하고 있는 바이지만 국가적 과제를 다룸에 있어서 이념의 잣대가 아닌 실사구시적 접근이 요구된다. 그렇지 않으면 국민적 합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특별히 실사구시적 시민운동이 균형추 역할을 해야 사회통합이 이루어진다. 원래 시민운동이 처음 출범할 때에는 실사구시의 깃발을 들고 등장했고 바로 그 이유로 시민운동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면서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94년 이후 재야운동이 시민운동으로 전환하면서 다시금 이념적 시민운동이 시민운동의 전면에 등장하게 시작했다. 그리하여 바른 말을 하는 시민운동이 아니라 진보적인 말을 하는 시민운동이 시민사회의 주류가 되면서 시민운동은 이념적이고 편향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 사회운동을 문제제기형 운동과 사회통합형 운동으로 나눈다면 시민운동 초기에는 기득권세력과 재야운동 사이에서 시민운동이 사회통합형으로 발전한 반면에 95년 이후에는 사회통합형 운동 보다 문제제기형 운동이 전면에 부각되고 우리사회 내의 사회통합적 기능이 급속히 후퇴함으로써 사회갈등이 더욱 심화되는 양상을 보여 왔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는 진보성향, 보수성향, 그리고 중도성향의 운동으로 시민운동이 분화하고 있다. 그러나 실사구시적 접근의 필요는 과거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 문제를 실사구시적으로 따져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않고 무조건 친북 혹은 친미를 하거나 무조건 親자본 혹은 親노동의 입장을 취하면 국민통합은 불가능할 수밖에 없다. 사회통합과 正論을 지향하는 실사구시적 시민운동이 사회운동의 주류로 등장할 때에만 지금의 난국을 극복하는 사회통합이 가능해 질 것이다. 실사구시적 접근과 관련해서 더 할말이 있다. 이제는 하루빨리 낡은 보혁구도를 청산해야 한다. 과거에는 보수와 진보의 구분이 사회현상을 분석하는 틀로 유용했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의 ‘진보’세력은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도, 노동자의 집단이기주의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다. 그리고 오히려 기득권에 안주하여 자신의 이익을 지키기에 급급한 형편이다. 원래 진보는 끊임없는 자기개혁에 나서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통일과 단결을 강조하고 그 속에 안주해 오면서 그들은 상황의 변화에 자주적으로 대응하는 자유정신을 상당부분 훼손시켰다. 그리하여 새로운 상황에 부딪쳐서 독자적으로 판단하고 소신있게 발언하는 것을 잘 하지 못한다. 잘못하면 보수로 찍혀 왕따 당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오늘의 진보진영은 아직도 과거의 낡은 사고에 갇혀 더 이상 바른말을 하는 세력이 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보수세력에게 희망이 있는 것도 아니다. 보수세력은 그동안 기득권세력으로 안주하면서 부패와 특권, 그리고 구태에 빠져 있었기 때문에 보수가 아무리 바른 말을 해도 사람들이 그 말을 믿지 않고 있다. 따라서 지금 우리사회에는 진정한 진보도, 진정한 보수도 존재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제는 허위의식을 재생산하는 보수와 진보라는 구분을 당분간 버리고 선입관 없는 실사구시적 성찰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선진화를 목표로 하는 국가방향이 설정되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국가목표는 先進化여야 한다. 다만 성장 위주의 선진화가 아니라 삶의 질이 보장되고 품격을 갖춘 선진화여야 한다. 빈부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환경이 파괴되는 사회는 우리의 목표가 될 수 없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도 이러한 선진사회를 실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성헌 선배의 말대로 지금 우리에게는 시간이 많지 않다. 중국의 추월이 빠르고 고령화 사회로의 진입속도가 빨라 앞으로 과연 우리에게 십년의 시간이 남아 있는지조차도 의문이다. 따라서 우리는 하루빨리 경쟁력을 강화하여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경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을 돌보아서 그들도 다시 경쟁대열에 서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사회전반의 개혁을 이루고 모든 부패와 특권을 척결하여 한국을 기업하기 좋은 나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짜야 한다. 사물을 보수와 진보로 구분하고 보수나 신자유주의는 무조건 나쁘다는 식의 사회통념이야말로 선진화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안보를 튼튼히 하고 성장 잠재력을 키우며 사회질서를 바로 잡지 않으면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폐쇄적인 민족주의 안에 고립되어서도 안 되지만 국적없는 세계화도 옳지 않다. 또 대중영합적인 포퓰리즘을 배격해야 하지만 지나친 엘리뜨주의도 함께 경계해야 한다. 전문가의 식견과 대중의 숨결이 같이 가야 한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은 양보할 수 없는 기본가치이지만 그러나 반드시 공동체주의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다만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토론이 우리사회에 너무 부족하다. 한쪽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고 다른 한쪽은 지나치게 현실적이다. 그리고 역사는 항상 현실적인 사람들에 의해 주도된다. 그래서 시민운동은 이상과 현실을 잘 결합시키기 위한 토론을 열심히 해야 한다. 지금 우리는 누가 한국을 선진국으로 만들 것인가를 놓고 정당 간에 경쟁을 하는 선진화경쟁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시민운동은 선진화경쟁을 감독하고 부추기는 선진화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선진화의 걸림돌이 되는 모든 움직임을 반대하고 선진화에 기여하는 모든 움직임을 지지해야 한다. 이러한 선진화세력이 커지면 자연히 보혁갈등은 진정되고 사회통합이 자연스럽게 실현된다. 국민통합은 보수와 진보간의 대화로 되는 것이 아니고 선진화세력이 보수와 진보간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선진한국을 실현해 갈 때 비로소 실현되는 법이다.
남북문제 해결을 위해 여야간, 보혁간 협력이 필수적이다.
국민화합의 문제에서 마지막으로 짚어야 할 부분은 남북문제의 해결을 위해 사회각계가 어떻게 서로 협력할 것인가의 문제다. 남북문제 부문이야말로 여야간, 보혁간 상호협력이 긴밀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분야다. 남북대화에서 여당은 북과의 대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만 야당은 북한과의 협상이 잘못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경계하는 일을 해야 한다. 여당은 남북교류협력에 더 열심이라면 야당은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더 열심이어야 한다. 그럴 때에만 우리는 민족통일이라는 가장 어려운 과제를 지혜롭게 풀어갈 수 있다. 중국이나 미국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우리사회 안에 상대적 親美와 상대적 反美, 그리고 상대적 親중국, 상대적 反중국이 다함께 있어야 한다. 고구려사 문제, 조선족 문제, 탈북자 문제를 놓고 중국과 대결하는 세력이 있어야 하지만 경제협력, 문화협력, 동북아 평화문제를 놓고 중국과 잘 지내는 세력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역할분담이 국익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지금처럼 우리들 끼리 서로 상대방을 친북 좌파세력과 수구꼴통 친미세력으로 비난하면서 적대하기만 해서는 우리민족은 결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우리나라의 좌파와 우파는, 그리고 여야는 서로 한 발짝씩 앞으로 나와 서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그리고 민족의 생존전략을 위해 자발적 역할분담에 나서야 한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09:1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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