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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사랑 숙명자랑
요조숙녀라고?
서경석 목사
아내와 연애를 하던 시절, 아내는 요조숙녀 타입에 아주 순종적인 여성이었다. 더구나 숙명까지 나왔으니 요조숙녀는 아예 보증수표일 터이었다. 그래서 나는 지극히 만족해서 이 여자와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하고 구애를 했다. 뿐만 아니라 아내는 전나무 같이 굳굳한 여성이었다. 민청학련사건으로 내가 징역 20년 형을 받았고, 적어도 5년은 감옥 살 각오를 했었는데 내처는 아직 결혼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면회가 안 되는 데도 십 개월 동안 한 주일에 세 번씩 꼬박꼬박 구치소에 와서 영치금 넣고 책 넣고 빨래를 가져가는 일을 했다. 애인 없이 감옥 간 후배들로부터 부러움을 산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감옥 뒷바라지가 이렇게 철저하니 감옥생할 힘들다는 말은 꺼낼 처지도 되지 못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지나간 70년대에 감옥신세를 세 번이나 졌다. 그러던 아내가 미국 유학생활을 하면서 영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성사회학 공부를 한 것까지는 좋았는데 무슨 래디칼 페미니즘인가 뭔가를 공부하고 나서는 딴 사람이 되었다. 이론 무장도 철저해서 남녀평등 문제를 밤늦게 까지 토론하고 나서는 나는 아내에게 항복하고 말았다. 게다가 나의 모든 행동거지를 분석하고 나를 전형적인 가부장제적 인물로 규탄하기 시작했으니 가정이 편할 날이 없었다. 부엌에 가서 무엇을 도와줄까라고 말했다가 호통을 맞았다. 지가 알아서 열심히 해야지, 무엇을 도와줄까 라니? 지금은 아내의 그 분노가 무엇인지 잘 알지만 처음에는 그야말로 아닌 밤중의 홍두깨였다. 처음 연애할 때 마누라가 이렇게 변할 수도 있음을 미리 알았어야 했는데... 숙명도 알고 보니 만만한 학교가 아니었다. 6년 후 귀국하고 나서는 상황이 개선되었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면서 어머니가 집안일을 해주시니 나나 내 아내나 바깥으로 나돌아 다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내도 나이를 먹으면서 많이 양순해졌다. 그래도 아내가 내 커피 타줄 때보다는 내가 아내 커피 타줄 때가 더 많다. 그리고 어쩌다 아내가 타주는 커피를 한잔 얻어 마시기라도 하면 나는 그냥 감격한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09:1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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