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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가 하나님의 말씀만 전해야 하나? 서경석목사
세상을 향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사명이다. 어떤 기독교인도 이 점에 이의가 없다. 그런데 말씀을 전하는 일을 단지 "傳하는" 일로만 이해하면 안 된다고 본다. 말씀을 입술로만 전하지 않고 온몸으로, 우리의 삶 전체를 바쳐 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이 잘 전달되지 않는다. 서울역 앞에서 아무리 열심히 예수믿고 천당가자고 외친다고 해서 전도가 되지 않는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복음으로 삶이 얼마나 변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왜 저 사람은 저렇게 헌신적으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는가? 무엇이 저 사람으로 하여금 저토록 헌신하게 만들었는가? 진정한 전도자는 주위 사람들로부터 이런 질문이 나오도록 행동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질문이 나올 때가 바로 전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그때 전도자는 예수님과 만난 후에 나는 이렇게 변화되었습니다하고 고백하게 되고 또 그때 전도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전도와 사회적 실천을 구분되지 않는다. 사회적 실천이 있을 때 복음이 전해지는 법이다. 백이십년의 한국교회 역사를 돌이켜보아도 이점은 분명하다. 그동안 전도가 가장 잘 되었던 시기는 1919년 삼일운동 당시와 지나간 70년대였다. 1919년에 교회가 민족운동, 독립운동에 앞장서면서 교회는 우리 국민에게 민족의 희망으로 비쳐졌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독립하려면 예수 믿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해졌다. 또 70년대에는 교회가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면서 한국이 민주화되려면 예수 믿어야 한다는 분위기가 다시 우리사회를 휩쓸었다. 이 때문에 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다. 지금과 지나간 70년대를 비교하면 70년대의 한국교회가 지금에 비해 특별히 더 영적으로 각성되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그때나 지금이나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경건하게 살고 본이 되는 삶을 살고 계시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70년대에는 한국교회가 민족의 희망으로 비쳐졌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뿐이다. 그래서 우리민족이 위기에 처할 때에는 교회가 위기극복에 나서야 한다. 그래야 복음이 힘차게 전해진다. 문제는 기독교가 정치적 행동을 할 것인가의 여부가 아니라 정치행동의 한계가 어디까지 인가이다. 그런데 이 한계는 상황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우선 교회는 정치행동을 할 때 항상 두 가지 위험성을 고려해야 한다. 첫째 교회가 얼마든지 잘못된 주장을 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되어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그 잘못된 주장이 얼마든지 교회의 영적인 권위를 훼손시킬 수 있다. 그래서 교회가 사회문제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할 때에는 차라리 성경에 입각한 원론적인 주장에만 머무르는 것이 낫다. 둘째 교회가 정치행동을 하면 하는 만큼 부담을 짊어지게 됨을 알아야 한다. 교회의 본래의 목적이 정치적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가 정치적 행동을 자주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정치 지향적인 사람들이 교회의 중심에 서게 되고 영적 지도력을 가진 사람들이 뒷전으로 밀리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교회의 성격이 변질될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래서 정치적 행동을 하고 나면 다시 본래의 자세로 되돌아오기 위해 배전의 노력을 해야 한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과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꼭 필요한 정치행동은 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민족의 희망이 되고 또 그래야 복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교회가 사회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보다 구체적으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옳다. 또 교회가 본래의 신앙공동체로 되돌아가는 복원력이 크면 클수록 더 많은 정치적 행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교회는 세상과 동떨어져 변화산 위에서만 살 수 없다. 반면에 세상 속의 日常에 빠져 정치집단처럼 살 수도 없다. 세상 속에 있으면서도 세상을 초월해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을 초월하는 능력과 세상 속으로 파고드는 능력을 함께 가져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초월할 수 있는 능력만큼 세상 속으로 파고 들어간다. 이 팽팽한 긴장관계 속에 있을 때 우리는 복음을 가장 잘 전할 수 있다. 교회가 사회적 행동을 할 때 겪어야 하는 이러한 어려움들을 피하기 위해 교회와 기독교NGO가 서로 역할분담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즉 사회적 잇슈에 보다 민감하게, 보다 구체적으로 대응하는 일은 기독교NGO가 하고 교회는 상황을 충분히 파악한 연후에 영적인 권위를 가지고 사회문제에 대해 큰 방향에서 발언하는 것이다. 지나간 7,80년대에 NCC를 중심으로 한 진보교회는 이러한 방식으로 교회의 영적 권위를 지키고자 했다. 그래서 사회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은 기독학생운동, 기독청년운동, 산업선교, 인권목회자 운동 등 전위적 기독교운동에 맡기고 교단 총회와 NCC는 보다 원칙적인 입장에서 발언하고자 애를 썼다. 이러한 교회와 기독교운동 간의 역할 분담 및 상호협력이 한편으로 한국교회의 영향력을 크게 키우고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영적인 권위를 유지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09:1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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