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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민교수의 질문에 대해 답변드립니다.
서경석목사
한일장신대 교수인 김교수가 영락교회 기도회에 대해 골방에서 기도하지 않았다고 문제 삼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과 제자들도 회당에서 기도하셨습니다.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진실되게 기도하지 않고 남에게 보이려고 기도하는 위선을 지적한 말씀이지 교인들이 다 같이 모여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을 반대한 것이 아닙니다.
과거 박정희 군사독재시절에 NCC를 중심으로 한 진보교회들이 인권기도회를 많이 했습니다. 그때마다 당시의 관변인사들은 왜 골방에서 기도하지 않는가하고 따졌습니다. 지금 또다시 관변인사들은 똑같은 논리로 비난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역사는 반복 되는가 봅니다.
영락교회를 “예수님이 결코 곱게 보지 않을 부자교회”라고 비난하고 있습니다만 교회가 성장해서 큰 교회가 되었다고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과거 군사독재시절에 대형교회가 독재에 침묵하고 가난한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였다는 이유로 비난받은 적이 있었지만 그때에도 교회가 크다는 이유로 비난받지는 않았습니다. 더욱이 지금 영락교회는 북한 주민의 인권문제에 관심을 가지면서 우리 자신의 무관심을 회개하는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통곡기도회에서 한 연설의 중요부분을 첨부합니다. 아울러 북한인권문제에 대한 저의 발제원고의 중요부분을 첨부합니다. 비판하더라도 인테넷 기사를 읽고 비판하지 말고 제 글을 읽고 비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3월1일 통곡기도회에서의 서경석목사 멧시지> “저는 젊은 시절에 좌파였습니다. 통일혁명당 사건에 연루되어 중앙정보부에 붙들려가서 반공법,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조사받은 적도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미국유학을 가서 6년 동안 미국에 있는 동안에 북한방문을 하고 온 재미동포들을 수없이 면담하고 나서야 북한에 대한 저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되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1996년에 북한동포들이 굶어죽는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을 창립해서 북한동포 돕는 일에 앞장섰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밤12시까지 일했습니다. 내가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면 한 사람의 생명이라도 더 살릴 것이라는 절박한 마음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평양을 6번 방문했습니다. 그런데 평양을 갈 때마다 안내원이 개선문도 안내하고 주체사상탑도 안내하곤 했는데 나는 그때마다 맨 뒤를 따라가면서 속으로 울었습니다. 안내원은 황홀한 표정으로 안내를 했지만 내 눈에는 한심하기 그지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신세가 처량했습니다. 과거 박정희 유신독재에 항거해서 감옥을 세 번이나 갔었는데 유신독재보다 백배는 더 독재인 김일성-김정일 수령독재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물자만 갖다 주어야 하는 내 처지가 너무 한심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때 제게 크게 위로가 된 것은 조총련이었습니다. 경실련 사무총장 시절에 일본 조총련사람들을 만났었습니다. 그때 조총련 사람들이 낮에 하는 말과 밤에 하는 말이 전혀 달랐습니다. 낮에는 열심히 김일성 수령님을 찬양했지만 밤에는 육두문자를 써가며 말할 수 없이 김일성에게 욕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참다못해 마구 항의를 했습니다. 당신들은 어쩌면 한국의 중앙정보부보다 더 심하게 북한을 욕하는가 내가 도저히 듣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들은 “남한에서 본 분들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북한을 60번, 70번 다녀왔습니다. 여러분은 북한의 실상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렇다면 당신들은 조총련을 떠나 민단으로 옮겨와야 하는 것 아니오?” 하고 되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은 “우리는 인질 때문에 갈 수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알고 보니 조총련사람들은 66년 니이가다 항에서 북송선을 탔던 10만 명 북송교포들의 형제자매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기의 형제를 위해 북한을 계속 다녀야 했고 먹을 것을 갖다 주어야 했습니다. 북한을 계속 왕래해야 하기 때문에 조총련을 떠날 수 없는 것입니다.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회상하며 크게 위로받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북한동포돕기를 계속해야 하는 이유도 북에 인질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한 동포들이 인질이고 김정일 정권이 인질범입니다. 그래서 나는 속이 뒤집어지는 것을 참으면서도 말 한마디 불평하지 못하고 계속 인질범들에게 굽실거리며 북 돕기를 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그동안 전쟁을 막기 위해 한반도에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 우선이고 북한인권문제는 평화가 실현된 다음에 제기해도 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마 지금도 많은 한국인들이 상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북의 인권문제가 있는 줄 잘 알면서도 이 문제에 대해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국의 젊은이들이 북의 실체도 모르고 친북 경향으로 흐르는 것을 보고 너무 안타까왔습니다. 그래서 나 같은 사람이 더 이상 북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같이 젊은 시절에 좌파였고 지금도 북한동포 돕기를 열심히 하는 사람이 좌파 젊은이들이 잘못 가고 있다고 야단쳐야 하는 것이 아닌가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랬다가 62명의 탈북동포들이 북한에 강제송환되었다가 전부 처형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서는 이런 상태에서도 내가 침묵하는 것은 정말 죄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북한에 들어가는 것이 영영 불가능해 지더라도 기독교인으로서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재작년 말부터 북한 인권문제를 말하기 시작했고 탈북동포를 돕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탈북동포를 돕다보면 탈북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저는 솔직히 그분들과 부딪치기 싫었습니다. 저는 지난 7년 동안 서울조선족교회를 담임하면서 조선족동포들로부터 지겨울 정도로 시달려 왔습니다. 그런데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조선족 이야기보다 열배는 더 비참한 이야기들 아닙니까? 그래서 나는 정말 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어디 피할 수 있나요? 내가 기독교인이 아니면 모르되 기독교인인 이상 그들의 현실과 맞닥뜨리지 않을 수 없지요. 피할래야 피할 수가 없지요. 그렇게 되니 결국은 그들의 말을 듣게 되고 또 그들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지난날 저의 생각이 너무도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한반도의 평화부터 실현하고 인권문제는 나중에 제기하자는 말이 무슨 말인지 아시나요? 김정일이 북한주민에게 가하는 온갖 탄압과 인권유린에 대해 눈을 감는 댓가로 전쟁방지 약속을 받아내자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북한으로부터 전쟁위협을 받지 않는 댓가로 북한 인권문제는 외면한다는 약속입니다. 이것은 마치 일제시대의 가쯔라태프트 밀약과 같은 것입니다. 가쯔라태프트 밀약은 아시는 바와 같이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는 것을 일본이 양해하고 대신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을 미국이 양해한다는 밀약입니다. 이 밀약이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평화실현일지 모르나 우리민족에게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고착화를 의미합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우선이라고 말할 때의 평화가 바로 이런 평화입니다. 북한주민의 인권을 외면하고 이에 대해 눈감는 것을 댓가로 주어지는 평화입니다. 우리만 위협받지 않고 전쟁만 없으면 된다는 그야말로 극도의 이기주의적 발상입니다. 이런 평화는 거짓평화입니다. 이런 평화는 우리가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습니다.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왜 이런 말을 하셨겠습니까? 예수님이 가장 싫어하신 것이 바로 이 거짓평화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들 기독교인은 북한인권을 외면한 댓가로 얻어지는 평화를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죄악입니다. 평화는 그 안에 인권개선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그 만큼 평화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남북대화도 그 안에 인권개선이 조금이라도 있어야 그 만큼 대화의 진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오늘 인권을 위한 기도회를 갖는 이유도 진정한 의미의 남북대화, 진정한 의미의 평화를 실현하기 위함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북한인권보다 인도적 지원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물론 인도적 지원이 중요하지요. 그래서 저도 그동안 열심히 인도적 지원에 몰두해 왔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짐승이 아닌 이상 빵만으로 살 수 없습니다. 빵과 인권이 함께 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인권 없이는 빵도 없습니다. 97년에 수백만의 북한동포들이 굶어죽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당시에 김정일은 김일성의 시신이 안치된 만수산기념궁전을 수억 불을 들여 지었습니다. 만일 김정일에게 인권의식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그래서 그 돈으로 식량을 구입했더라면 북한주민은 절대로 굶어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수백만을 굶겨 죽인 김정일을 도저히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빵과 인권은 둘 중의 하나를 택일할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권이 없으면 빵도 없습니다. 이점을 우리가 명심하고 또 명심해야 합니다.“
<북한인권문제와 햇볕정책, 접목이 가능한가?> “1. 북한인권문제와 햇볕정책은 반드시 접목되어야 한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햇볕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서로 대립되는 것처럼 인식되어 왔다. 그리하여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북한 인권문제 제기를 타부시해 왔고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해 온 사람들은 햇볕정책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런데 이러한 대립의 원인은 양쪽에 다 있었다고 생각된다. 첫째 북한 인권문제를 앞장서 제기해 온 사람들이 북한붕괴를 지지해 온 사람들이다보니 인권문제 제기는 곧 북한의 체제붕괴를 획책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햇볕정책 지지자들은 북한 인권문제를 내심 인정하면서도 인권문제 제기는 곧 북한붕괴를 노리는 미국이나 극우세력의 입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둘째로 햇볕정책에도 문제가 있었다. 햇볕정책이 지난 50년간 계속되어 온 적대적 관계를 청산하고 남북 간 화해의 길을 연 것은 매우 바람직하나 투명하지 못한 뒷거래와 퍼주기, 그리고 끌려 다니기 등으로 햇볕정책 전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져 왔다. 이 과정에서 햇볕정책에 대한 논의가 우리 사회의 이념적 지형에 의해 좌우되면서 이에 대한 공정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로 인해 햇볕정책 지지자와 북한인권 문제 제기자 사이의 대결구도는 더욱 심화되어 왔다. 그러나 북한인권문제와 햇볕정책은 어느 하나도 소홀히 될 수 없으며 어떤 형태로든 반드시 접목되어야 한다. 전 세계가 걱정하는 북한주민의 억압과 고통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다. 반면에 핵문제 해결과 군비축소, 인도적 지원과 경제협력을 통해 적대적 남북관계를 화해와 평화의 관계로 전환하는 일도 결코 소홀히 될 수 없다. 또 원칙적으로 인권문제를 바르게 제기하는 것은 곧 햇볕정책을 바르게 실천하는 것과 같아야 한다. 최상의 상황은 하나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두 가지 흐름이 상호 수렴되지 않고 끝없는 대결로 치닫게 되면 남북관계는 결코 제대로 풀릴 수가 없다. 한반도의 문제는 북한과 한국, 그리고 미국, 중국 등 주변 열강이 다같이 합의점을 찾을 때에만 해결의 길이 있다... 그렇다면 북한인권문제와 평화협력 문제를 함께 다루어 나감으로써 미국과 남, 북의 공통분모를 찾아야 한다. 늦은 것 같지만 이 길이 가장 빠른 길이다. 국내적으로도 마찬가지다. 남북관계는 어디까지나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을 좌우 이념대결의 격전장으로 만들면서 북한의 비위를 맞추어 성급하게 합의에 도달하는 것은 반드시 역작용을 낳아 결과적으로는 더 늦는 길이 된다." "2. 접목을 위해서는 몇 가지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북한인권문제와 햇볕정책의 접목이 성공적으로 되려면 햇볕정책 지지자들에게 몇 가지 인식의 변화가 있어야 한다. 첫째 북한인권보다 평화정착이 우선이라는 생각은 바뀌어져야 한다. 인권과 평화는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할 일이 아니다. 인권을 포기하는 대가로 얻어지는 평화는 거짓평화다. “인권보다 평화정착이 우선”이라는 입장에서의 평화는 김정일 수령 독재체제의 혹독한 인권유린과 이로 인한 북한주민의 고통을 외면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지나간 70년대에 박정희정권이 민주화운동 세력이 소요를 일으킨다며 “평화위협 세력”으로 간주했을 때 민주화운동은 인권이 없는 평화는 거짓평화라며 독재정권의 사이비 논리를 통박했었다. 그런데 지금 민주화운동을 계승했다는 노무현정부가 똑같은 사이비 논리에 매달리고 있다. 지나간 70년대에 민주화운동 세력은 한국인권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적극 환영하면서 독재정부가 한국 상황의 특수성을 들어 인권제한이 불가피함을 역설할 때 정부 논리의 허구성을 맹공했었다. 그런데 과거 70년대에 박정희독재를 비판했던 국제사회가 지금은 김정일 독재체제를 규탄하고 있다. 그런데 70년대에는 박정희정권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을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들이 지금은 북한사회의 특수성을 언급하면서 북한에 대한 인권문제 제기는 옳지 않은 것처럼 말하고 있다. 참으로 납득이 안 가는 이중 잣대다. 평화는 북한체제 내의 인권이 개선되는 만큼 이루어진다. 북한주민의 인권이 개선되는 평화여야 진짜 평화다.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져버리는 평화는 거짓평화요, 추구할 가치도 없는 위장평화다. 북한정권의 성격이 바뀌어서 좀 더 인권을 존중하는 정권이 되어야 전쟁도 방지되는 것이지, 북한정권의 본질이 조금도 변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평화약속을 한들 그것은 가치 없는 헛된 약속일뿐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평화우선이라는 말의 의미가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여 우리의 삶이 북한으로부터 위협당하지 않기 위해 우리가 북한주민의 고통을 외면하겠다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것은 극도의 이기주의다. 우리가 말하는 평화가 진정한 평화가 되려면 그 평화는 일차적으로 북한주민들의 평화여야 한다. 한국의 안보를 위해 북한독재체제와 일정하게 타협해서 얻어내는 평화, 그것도 김정일 체제를 보장해서 김정일이 마음대로 북한주민을 억압하고 유린하는 것을 방치하겠다는 보장과 함께 얻어지는 평화가 “평화우선”의 의미라면 그것은 식민지시대에 한국을 침탈한 일본과 필리핀을 침탈한 미국이 서로의 약소국 지배를 용인하면서 맺은 가츠라-테프트 조약과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어느 체제를 바르게 보려면 그 나라 민중의 시각으로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탈북자의 눈으로 북한체제를 바라보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정부는 탈북자의 증언을 외면하고 민중을 억압하는 김정일 및 그 하수인과 평화를 논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과거에 유신체제와 격렬하게 싸웠던 사람들이 지금 과거 유신체제보다 백배는 더 억압적인 김정일 세습체제 앞에서 침묵하고 있다. 이것은 잘못되었다. 둘째 북한인권보다 인도적 지원이 우선이라는 생각도 고쳐져야 한다. 북한인권보다 빵이 더 중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왜 둘 다 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인권과 빵은 동시에 추구되어야지 그 중 어느 하나를 택할 일이 아니다. 지난날 유신정부가 경제개발을 위해 민주주의를 유보하자고 했을 때 민주화운동은 빵만으로 살 수 없다며 이에 저항했다. 우리는 빵과 인권이 다 같이 필요하면서 북한주민은 빵만으로 살라는 것은 북한주민을 인간으로 대하는 태도가 아니다. 노무현정부가 정말로 민주화운동을 계승했다면 빵과 인권을 함께 주어야 한다. 작년에 유엔총회가 북한 인권결의안을 통과시켰을 때 한국정부는 또다시 기권을 했다. 한국의 민주화운동을 계승했다는 노무현정부가 인권결의안에 기권한 것이다. 과거 미국이 국익을 이유로 전두환 정권을 지지했을 때 한국의 민주세력은 이에 반대하여 반미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지금 노무현 정부는 과거 미국이 했던 것과 똑같이 국익을 이유로 독재정권인 김정일 정권을 뒷받침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 주민에 대한 배신일 뿐만 아니라 한국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배반하는 행위다. 또 국민화합을 위해서도 빵과 인권을 함께 주어야 한다. 지금 우리나라는 북한의 인권상황을 규탄하고 김정일 정권을 강력하게 비난하는 보수 세력과 전쟁을 방지하고 남북관계를 진전시키기 위해 대화해야 한다는 진보세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이 두 입장을 조화시키기 위해서도 빵과 인권을 동시에 주는 길을 찾아야 한다.... 셋째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남북대화에 찬물을 끼얹는다는 생각도 잘못되었다. 한국정부의 대화노력을 바르게 돕기 위해서도 민간차원의 인권문제 제기가 있어야 한다. 인권개선이 포함되지 않은 채로 북한당국의 구미만 맞추어 타결되는 협상은 진정한 남북관계의 진전이 아니다. 그래서 민간운동이 적극적으로 인권문제를 제기하여 한국정부가 북과의 대화에 인권문제를 포함시키도록 해야 한다.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위한 노력은 한국정부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정부는 북한붕괴를 반대해야 한다. 전쟁을 막아야 하는 한국정부로서는 반드시 북한과 대화해야 하는데 북한붕괴를 획책하면서 북과 대화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진정으로 북한붕괴를 원치 않는다면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래야 체제가 유연해져서 개방사회로의 연착륙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한국정부가 북한 인권문제 제기에 앞장설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민간운동이 대신 앞장서서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넷째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미국의 음모에 말려드는 것이란 주장도 사라져야 한다. 북한 인권문제를 한국인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바라보지 못하고 미국이 인권문제로 북한붕괴를 획책하고 있으니 우리는 이를 반대해야 한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은 참으로 비주체적이고, 사대주의적인 발상이다. 우리는 미국과 상관없이 한국인으로서의 주체적인 입장을 먼저 정하고 그 입장에 서서 미국을 설득하려고 해야 한다. 이를테면 미국이 북한에게 인권문제를 압박하는 것이 지나쳐 군사적인 해결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이를 극력 반대해야 한다. 또 구체적인 사안을 놓고 미국과 한국이 역할분담을 할 수도 있다. 이는 국내에서 정부와 민간사이에, 여와 야 사이에 역할분담을 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한국 사람이 북한 인권문제에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것을 미국 네오콘의 음모라는 식으로 이념의 프리즘으로 바라보는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은 앞으로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 반면에 북한인권문제 제기자들도 생각이 바뀌어야 한다. 첫째 북한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은 대북 인도적 지원과 햇볕정책 등의 남북화해노력이 남북관계를 크게 개선시켰고 또 그 기반 위에서 우리가 북한 인권문제를 말할 수 있게 되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남북관계가 적대적일 때에는 북한 인권문제 제기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한다. 지난날 남북관계가 적대적일 때 수없이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했지만 그것은 북한에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지금 북한 인권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남북관계가 많이 풀려 경제협력이 활성화되고 인도적 지원이 행해지고 수 만 명이 북을 왕래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인권문제는 햇볕정책의 기반 위에서 제기되어 왔고 또 앞으로도 햇볕정책과 함께 가야 할 사안임을 알아야 한다. 둘째 일거에 모든 것을 얻어내려 하지 말고 북한체제를 건드리지 않는 인권개선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인권개선도 시간이 걸리는 일임을 인정하고 우선 북한당국이 할 수 있는 인권개선부터 요구해야 한다. 이를테면 김동식 목사의 생사확인을 위시한 피납자와 국군포로의 송환, 공정한 재판과 고문금지, 정치범수용소의 인권개선, 종교자유의 실현, 이산가족의 만남, 식량의 공평하고 투명한 배분, 문타폰 유엔인권보고관의 북한입국 허용 등과 같은 것이다.정치범 수용소의 폐지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다 실현된 후에 착수하는 것이 옳다. 북한이 노력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인권개선을 북한에게 요구하면 북한도 우리의 문제제기를 북한붕괴를 꾀하기 위한 정치공세로 이해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북한도 우리의 문제제기를 진지하게 검토할 여유를 가질 것이다. 이 길 만이 현 상황에서 북한 인권문제를 조금이라도 개선하는 방안이다." "3. 인권문제와 인도적 지원의 연계방식 그러나 인권문제와 평화문제, 인권문제와 인도적 지원을 병행하는 구체적인 방안을 강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인권문제를 이유로 인도적 지원을 중단시켜서도 안 되고 인권문제와 상관없이 인도적 지원을 조건 없이 제공하는 것도 옳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적절한 방안을 찾아야 한다. 첫째로 이제까지 북에 주어온 식량과 비료, 그리고 금강산, 개성공단 등 기존의 협력관계는 앞으로도 계속되어야 한다. 특별히 식량과 비료는 북한주민의 생존권과 직결된 것이므로 이러한 지원을 무기화해서는 안 된다. 둘째로 다만 북에 지원되는 비료와 식량에 대한 모니터링(분배확인)은 철저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북한은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식량지원을 거부했는데 그 이유는 유엔이 모니터링을 철저하게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국은 모니터링을 사실상 하지 않아 북한은 한국만 지원을 계속하면 된다는 생각에서 유엔의 지원을 거부했다. 이러한 일은 있을 수 없다. 한국도 당연히 유엔이 그동안 해온 똑같은 수준의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셋째로 앞으로 신규로 지원되는 거대 프로젝트는 그것이 정부부문이든 민간부문이든 상관없이 인권문제 개선과 연계시켜야 한다. 이것은 일종의 포지티브 인센티브(positive incentive) 전략이다. 한국정부도 북이 핵을 포기하면 전기를 주겠다는 제안을 한 바 있는데 이 제안도 일종의 포지티브 인센티브 전략인 셈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도 작년 12월, 북한이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면 대북 인도적 지원을 10배로 증액하겠다는 제안을 한 바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모든 대규모 신규지원 계획이 북한의 인권개선과 연계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현재 노무현 정부는 남북교류협력기금을 대폭 증액하여 公社의 형태로 대북지원활동을 할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사전에 북한과 인권개선 협상을 하고 개선 약속을 얻어낸 후에 신규계획을 세워야 한다. 또 종교계, 지방자치 단체 등 민간부문도 인권개선이 있지 않으면 그 약속이 있을 때까지 신규지원을 자제해야 한다. 넷째로 對北 인도적 지원활동과 인권개선 활동 사이에, 정부의 대화노력과 민간의 인권개선 노력 사이에, 여와 야 사이에 우호적 역할분담이 이루어져야 한다. 한 개인이나 단체가 인도적 지원활동과 인권개선 활동을 동시에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민간이 강력하게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정부는 못이기는 체하며 이를 받아 인도적 지원과 북한 인권문제를 연계시켜야 한다. 이러한 역할 분담이 잘 되어야 북한으로부터 더 많은 것을 얻어낼 수 있다. 또 그래야 남북관계의 획기적인 진전도 가능하고 한미관계도 크게 개선된다. 뿐만 아니라 국민화합도 잘 되게 된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09:1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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