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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06-04 19:32
   <서울조선족교회 창립7주년 설교> 서울조선족교회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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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3,647  


<서울조선족교회 창립7주년 설교>

                      서울조선족교회의 의미

                                                                          마태 7: 21-23              서경석  목사

  오늘은 서울조선족교회가 세워진지 7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7년이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지만 우리에겐 참으로 긴 시간이었습니다. 지난 7년동안 우리교회에는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 수없이 데모했고 항의집회를 하고 수없이 단식투쟁을 했습니다. 저만해도 10일씩 두 번, 18일간 한번, 20일간 한번, 23일간 한번을 했습니다. 23일 단식할 때는 17일째에 위출혈로 의식을 잃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로 생명이 위험했던 순간이었습니다.
  투쟁의 하이라이트는 고향에 돌아갈 권리찾기 운동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운동으로 우리 교회가 큰 주목을 받았지만 또 그 운동으로 같은 동포교회로부터 극심한 비난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도 옛날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비난받았던 내용들이 전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든 사건들은 그동안 우리 교회가 얼마나 거친 파도를 헤쳐왔는가를 보여줍니다.

  그러나 사실은 제가 서울조선족교회를 처음 세울 때에 동포들을 위해 투쟁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처음 교회를 시작할 때 저는 무임(無任)목사 4년째였습니다. 무임이라 함은 지금 목회를 하고 있지 않다는 말입니다. 제가 속한 예장 통합측은 5년간 무임이면 목사직을 박탈당합니다. 근자에는 이 기간이 3년으로 줄었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지 않고도 전도목사가 되는 길을 찾으려면 찾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이 구차스러워서 저는 작은 목회처를 찾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국인을 상대로 한 목회는 아무리 작은 교회라 하더라도 심방을 해야 하기 때문에 반드시 전임(專任)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조선족목회였습니다. 조선족교회를 세우면 심방을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주말에만 교회일을 하고 주중에는 시민운동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래서 작은교회의 목회자가 되어 무임목사를 면해보겠다는 것이 저의 얄팍한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시작하고 보니 동포들의 고통이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적당히 동포들을 도우면 되겠지 하고 쉽게 생각했는데 동포들의 고통이 너무 크다 보니 그들의 문제에 몰입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년에도 몇 번씩 투쟁집회를 하게 되고 그들의 문제해결을 위해 온몸으로 정부와 맞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처음부터 원했던 것도 아니었지만 서울조선족교회는 행동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말씀만 전하는 교회가 아니고 말씀을 행동으로 보이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해 서울조선족교회는 동포들의 문제를 끊임없이 해결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우리교회는 조선족 동포사회의 희망이 되었고 저 역시 조선족의 대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세워진지 7년이 된 지금, 서울조선족교회가 갖는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됩니다. 저 자신도 서울조선족교회 담임목사라는 점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교회의 중요성은 교인수나 교회재정만으로 평가될 수는 없습니다. 저도 미국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귀국한 후에 한때 목회를 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지만 그때에는 서경석목사는 운동권이라고 하여 그 길이 열리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바람에 저는 경실련이라는 시민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 연장선 상에서 서울조선족교회 목회도 하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하나님께서 저를 이 길로 인도하신 셈입니다. 그리고 서울조선족교회가 비록 교인수가 4백명 정도에 불과하고 지금도 다른 교회의 선교헌금이 있지 않으면 유지가 불가능한 교회이지만, 그래서 제가 계속 구걸하고 다녀야 하는 목사이지만 저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당당하고 떳떳합니다. 그만큼 우리교회가 갖는 역사적 신학적 의미가 크기 때문입니다. 

 서울조선족교회의 사회적 의의는 한국인과 조선족사이의 교량역할을 했다는 점일 것입니다. 저희 교회가 없었더라면 조선족과 한국인 사이의 정신적 단절이 매우 심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교회가 있음으로 해서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의 화해를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아마도 두고두고 서울조선족교회는 이점에서 크게 평가 받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 이 시간에 저희가 생각해 보고 싶은 점은 서울조선족교회의 경험이 주는 신학적 의미를 찾아보자는 것입니다. 저는 세가지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교회가 사회행동을 하려고 하면 그만큼 더 신앙적인 교회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교회가 동포문제를 위해 투쟁에 나서면 투쟁집단처럼 됩니다. 그러면 자연히 투쟁을 잘하는 사람들이 교회활동의 전면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투쟁할 수 있는 처지에 있지 않은 사람들은 자연히 뒤로 처지게 됩니다. 그래서 투쟁이 끝난 후에는 교회가 큰 후유증을 겪습니다. 교회는 원래 투쟁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신앙적 깊이가 있지 않으면 이 후유증을 극복하기 힘들고 원상태로 돌아오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정으로 사회행동의 필요를 느끼는 교회라면 그전에 보다 신앙적으로 깊이가 있는 교회가 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한편으로 치우친 교회가 되고 믿음생활과 사회적 실천을 조화시키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러한 균형잡힌 신앙적 자세를 갖추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중국의 조선족교회들이 사회문제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교회였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중국의 조선족교회는 일제시대의 한국교회와 비슷한 교회입니다. 그러다 보니 서울조선족교회가 동포자녀의 여름방학 한국방문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교회가 말씀전하는 일에 전념해야지, 왜 쓸데없는 일을 하십니까?”하고 항의하는 집사님들도 있었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예수님의 변화산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여기가 좋사오니 하나는 엘리야를 위해 하나는 모세를 위해 하나는 예수님을 위해 초막셋을 짓자로 했지만 예수님은 그 말씀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우리 교회역시 세상과 동떨어져서 변화산 위에만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반면에 세상 속에 몰입해서 시민단체처럼, 정치집단처럼 살아갈 수도 없습니다. 교회는 세상 속에 있지만 동시에 세상을 초월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초월하는 능력과 세상 속으로 파고드는 능력을 함께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는 초월할 수 있는 능력만큼 세상속으로 파고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팽팽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서울조선족교회의 경험은 우리에게 행동하는 교회만이 전도하는 교회가 된다는 점을 깨닫게 해주고 있습니다. 교회를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서 많은 동포들이 저희 교회를 보고 제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왜 목사님은 우리를 도우십니까? 제가 중국에 가서 인민대표가 될 것도 아니기 때문에 동포들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중에 교회가 원래 그렇게 돕는 일을 하는 곳인줄 알고 나서는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을 우리도 믿겠습니다.”하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옵니다. 매주일 우리교회의 새신자가 이십명 이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다만 이렇게 찾아오는 동포들을 다 교인으로 만들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기는 하지만요. 이런 현상은 한국교회에는 없는 일입니다. 대부분의 큰 교회도 새신자는 매주일 몇 명에 불과합니다. 더욱이 요즈음 한국교회는 침체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최근 센서스 조사에서 개신교의 인구는 지난 10년동안 14만명이 줄어서 850만에 불과합니다. 같은 기간에 가톨릭교회는 두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이 통계가 주는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교회성장에 위기를 느끼고 있는 한국교회는 요즈음 ‘어게인 1907’운동에 열심입니다. 1907년의 평양 대부흥 사건이 다시 오도록 하자는 것이지요. 물론 마땅히 필요한 운동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침체가 영적 각성이 부족한 데에서 온 것은 아닙니다. 영적각성 운동은 꼭 필요하지만 이것이 침체문제의 대안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한결같은 주장입니다. 저는 주장합니다. “3.1운동을 봅시다. 왜 삼일운동 당시에 교회성장이 폭발적으로 일어났습니까? 교회가 독립운동에 앞장서면서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라고 사람들이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70년대의 한국교회를 보십시오. 이때 교회가 급성장을 한 것은 교회가 민주화운동, 인권운동으로 고난을 받으면서 국민들에게 교회가 민족의 희망으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민족의 희망이 되면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오는 법입니다.”
  그리고 나서 저는 우리 서울조선족교회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왜 동포들이 서울조선족교회로 몰려 오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교회가 동포들의 문제 해결에 앞장서면서, 교회가 조선족들의 희망이 되면서 조선족이 살려면 예수믿어야 한다고 조선족 동포들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목회를 하면서 조선족동포들이 “왜 목사님은 우리를 도우십니까?”하고 질문을 던지는 그 질문 속에 교회부흥의 열쇠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전도는 무조건 열심히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열심히 전도하기만 하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왜 기독교인 수가 감소하겠습니까? 매년 오천내지 만명의 목사들이 배출되는데 왜 교인수가 감소합니까?  그 이유는 전도는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서울역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예수믿고 천당갑시다라고 말한다고 해서 전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전도는 온몸으로, 우리의 삶 전체로 해야 하는 법입니다. 복음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혁명적으로 변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착합니까? 어쩌면 그렇게 남을 위해 헌신하고 정의를 위해 온 몸을 바칩니까? 당신의 삶에 무슨 비밀이 있길래 당신은 그렇게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을 사십니까? 그점을 알고 싶습니다.” 사실은 주위사람들로부터 우리에게 이런 질문들이 물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기독교인답게 살아왔다면 적어도 평생에 몇 번은 이런 질문을 받은 적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이런 질문을 받는 순간이 바로 전도가 이루어지는 순간입니다. 예수믿기로 결심한다는 것이 어디 쉽게 되는 일인가요? 그것은 우리의 영혼과 상대방의 영혼이 부닥쳐서 불꽃이 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입니다. 우리의 온 인격을 던져서 헌신할 때, 그래서 상대방의 인격과 온몸으로 부딪칠때, 그리고도 성령께서 함께 하실 때 비로소 이루어지는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진정으로 교회성장에 관심을 갖는다면 무엇보다 행동하는 믿음이 되어야 합니다. 저는 이점을 서울조선족교회의 목회경험을 가지고 확신을 가지고 한국교회를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과거 민족운동에 앞장서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던 것처럼 한국교회의 나라의 위기를 극복하는 운동에 나서야 합니다. 극빈자들, 어려운 사람들을 내몸과 같이 사랑하는 운동에 나서야 합니다. 그래서 또다시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이미 조선족사회에서는 교회가 조선족사회의 희망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니 교회를 중심으로 동포들이 뭉치고 있지 않습니까?” 성도여러분, 우리 서울조선족교회에 대해 자부심을 가집시다. 우리교회가 비록 작고 보잘 것 없는 교회이지만 그러나 우리교회는 이미 큰일을 이룬 교회입니다. 

  세번째 목회를 하면서 깨달은 점은 예수님을 영접하고 주 안에서 살아가는 것만이 우리 삶의 가장 근본적인 길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사실 교회를 처음 세웠을 때 영혼구원문제를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동포들의 복지문제, 법률문제, 건강문제 등이 산더미여서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녔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러한 문제들은 사실은 근본적인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문제들은 피부에 난 상처같은 것입니다. 심장병과 같은 위중한 병은 오히려 마음의 병입니다. 동포들의 삶이 일그러져서 가정이 파괴되고 부부가 이혼하고 자녀교육이 실패로 돌아가고 인생의 목적이 없이 방황하고 살아가는 것이 사실은 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복음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면  치유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찾아와서 자신들의 문제를 해결합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고 나서는 다시 사라집니다. 마음 속에 병이 가득한데도 마음의 병을 고칠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아니 마음속에 얼마나 심각한 병이 있는가 조차도 잘 깨닫지 못합니다. 이들이 왔다가 그냥 가는 이유는 마음속의 병을 고쳐야 한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자기 문제를 다 해결한 후에도 계속 남아서 교인이 되는 사람들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 자신의 마음의 병을 고치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단지 마음의 병을 고치는 데에서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사명을 지닌 使命者로 새로 태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의 병은 우리의 인생의 사명을 자각하고 그 사명에 헌신하겠다고 결심할 때 비로소 근본적으로 고쳐집니다.
  우리교회에 열심히 헌신하는 사람들은 이 사명을 깨닫고, 이 사명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분들의 삶의 목적은 복음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입니다. 이러한 일을 통해 조선족사회를 밝게 하고 세상을 바르게 만드는 일을 합니다. 목사님을 도와 서울조선족교회를 열심히 섬기고 키워서 이 교회를 통해 큰일을 도모하려는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인생의 목적이 분명한 사람들은 氣가 아주 쎈 것 같습니다. 제가 암마를 해주는 조선족아줌마가 계신데 처음 저를 만났을 때 저보고 아픈 데가 없냐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픈 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 아줌마가 암마를 하면서 내 몸을 진단하고 나서는 기가 막힌다고 합니다. 온몸이 병이랍니다. 그런데 제가 氣가 쎄어서 병이 있는 줄도 모르고 산다는 것이지요. 기로 모든 병을 제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언젠가 맥이 탁 풀리게되면 완전히 드러눕게 된다는 것이지요. 이만큼 인생에 삶의 목표를 가지고 갖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앞으로도 우리교회는 동포들의 건강문제, 직장문제, 인권문제 등을 위해 열심히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교회가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동포들이 주님과 만나 삶의 변화를 체험하고 사명자로 새로 태어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마태복음 7장 21절입니다. 나더러 주여주여하는 자마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갈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요즈음 다른 교회에서 설교할 일이 있으면 저는 무조건 이 구절을 택합니다. 바로 이 말씀이 우리 주님께서 이 시대의 한국교회를 향해 주시는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또한 우리 서울조선족교회를 향해 주시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행동하는 신앙입니다. 나라를 위해, 정의를 위해, 사랑을 위해 결단하고 행동해야 합니다. 
 
  물론 우리교회 안에 부족한 점이 너무 많습니다. 때로는 목사님들끼리도 싸우고 교인들끼리도 싸웁니다. 그러나 오늘은 우리의 부족한 부분보다도 긍정적인 부분을 더 열심히 생각해 보십시다. 그리고 그 긍정적인 힘으로 우리의 부족한 부분들을 극복해 가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09:1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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