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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6-11-17 05:48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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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3,286  
   시민사회운동의_과거현재미래.hwp (64.1K) [56] DATE : 2006-11-17 05:48:56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과거, 현재, 미래

                                                                                                서경석  선진화국민회의 사무총장

1.  재야운동의 시대 

지나간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한국의 주류 시민사회운동은 반체제적 재야운동이었다. 권위주의 체제가 사회 각 분야를 포섭하고 포섭당하기를 거부하는 세력을 탄압했기 때문에 당시의 시민사회운동은 반체제적 운동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암울한 시대에 萬難을 이겨내며 독재와 싸우기 위해서는 흑백논리적 이념으로 무장할 수밖에 없었고 나아가 혁명사상까지도 스스럼없이 수용하였다. 그랬기 때문에 당시 재야운동의 중심세력은 김일성주체사상(NL), 맑스레닌주의(PD), 모택동주의 등으로 무장했고 이에 따라 내부의 이념투쟁도 심각하였다. 반면에 기독교운동은 민중신학론, 해방신학론 등의 또 다른 흑백이념으로 무장하였다. 이러한 흑백논리는 엄혹한 상황에서 敵의 정체를 명확히 하고 我軍을 단결시키는 데에는 매우 큰 도움이 되었으나 다른 한편으로 이러한 흑백논리는 자기반성적 성찰 능력을 키워주지 않아 87년 민주화 대항쟁을 거쳐 민주화과정에 진입한 후에는 사회운동이 변화된 상황에 유연하게 적응하는 데 큰 장애가 되었다. 세상이 변하여 일반 대중이 일상생활에서 하나도 정치적 억압을 느끼지 못하고, 합법적으로 자기의 의사를 표출시키는 기회를 만끽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재야운동이 이에 적응하기를 거부하고 비합법 운동을 계속하며 모든 잘못을 미국과 노태우정권의 탓으로 돌리고 사회주의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생각은 일반국민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에 재야운동은 점차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게 되고 87년 6월 민주화대항쟁 당시 재야운동을 지지했던 도시의 중간층은 이러한 지지를 철회하고 다시금 보수화의 길을 가게 되었다.

2. 시민운동의 시대

2-1 경실련의 출현

1989년 7월 경실련의 출범은 시민사회운동에서 매우 큰 의미를 갖는 대사건이다. 경실련 창립자들은 우리 사회가 보수화의 길을 가는 모습을 보면서 크게 걱정하였다. 방금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사회로 전환을 시작하면서 산적한 개혁과제를 앞에 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다시 보수로 회귀하는 것은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실련 창립자들은 보수화를 막는 방법이 재야세력의 강화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재야세력이 커질수록 우리사회는 그 반동으로 더욱 보수화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바른 해답은 보통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새로운 시민운동을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보통 시민층은 과거에는 재야운동에 의해 길거리에서 구경만하는 기회주의자로 비난 받았지만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지 않고 투표로 정권이 바뀌는 세상이 되면 오히려 정권의 향배를 결정하는 세력이 된다. 이들은 안정 속의 개혁을 원하는 세력인데 안정보다 개혁을 원하면 야당을 찍고 개혁보다 안정을 원하면 여당을 찍기 때문이다. 그래서 보통시민들(중간층)의 의사에 따라 정권의 향배가 결정되기 때문에 이들이 신뢰하는 사회운동이 가장 큰 영향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보았다. 그래서 경실련은 출범하면서 자신을 시민운동으로 명명하고 보통시민이 주체가 되는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천명하였다.

경실련은 운동방법론에서도 재야운동과 전혀 다른 입장을 취했다. 첫째로 이제는 더 이상 비합법운동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일단 정부가 합법적인 공간을 허용한 이상 합법적인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해야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둘째로 계급적 입장을 포기하고 사회적 공공선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과거처럼 정치권력이 기득권과 결탁하여 기층운동을 억압할 때에는 민중의 편에 서는 것이 정의로운 것이지만 누구든 합법적으로 집회 및 시위를 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뿐 아니라 약사, 의사, 한의사, 교사가 다 자신의 의사를 마음껏 분출시킬 수 있는 상황에서는 시시비비를 가려서 누구의 입장이 사회적 공공선에 부합하는가를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제는 노동자가 탄압을 당하고 있는지, 아니면 집단이기주의를 표출시키고 있는 것인지를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가 탄압당할 때는 그들의 편에 서지만 집단이기주의를 표출시킬 때에는 기업주의 편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 경실련의 생각이었다. 셋째로는 이제 더 이상 변혁론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고 합리적 대안모색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길거리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데모하는가가 중요하지 않고 도덕성을 견지하면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전문적 역량을 가진 운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넷째로 경실련은 우리사회의 발전이 시장경제의 역동성에 기초하되 다만 시장이 가져다주는 빈부의 양극화현상을 정부가 개입하여 시정함으로써 경제성장과 사회적 형평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제는 더 이상 기업을 적대시하면 안 되고 기업인까지도 시민운동에 동참시키고 기업인과 노동자를 생산자계층이라고 한다면 생산자 계층의 편에 서서 불로소득 계층과 맞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경실련은 재야운동으로부터 개량주의라는 비난을 받았고 기득권층으로부터는 얼굴을 바꾸어 나타난 또 하나의 재야운동으로 간주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경실련은 우리사회의 주류 사회운동으로 자리 잡게 되었고 5년 후에는 시민운동이 완전히  재야운동을 대체하게 되었다. 

2-2. 참여연대의 출범 

1994년 참여연대의 출범 역시 시민운동의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참여연대의 출범은 마지막까지 재야운동에 남아 있었던 사람들이 시민운동으로 전향함으로써 재야운동이 소멸하는 것을 의미했지만 동시에 재야운동의 연장선상에서 진보적인 시민운동이 등장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했다. 경실련이 과거의 재야운동과 선을 긋고 재야운동과는 전혀 다른 철학을 가지고 출범한 단체였다면 참여연대는 재야세력이 사회주의 혁명노선을 포기하고 시민운동에 합류하기는 하였지만 계급주의 노선의 유지와 북한에 대한 무비판, 그리고 비합법  운동론의 유지라는 점에서 지난날의 재야운동을 계승한 단체였다는 차이를 갖는다. 그리고 진보적 시민단체의 출범에 이어 좌파 이념으로 무장한 386세대가 시민운동의 실무자로 들어오면서 시민단체들은 점점 더 좌편향으로 흐르게 되었다. 이로 인해 94년에서 2천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한국의 시민사회는 경실련식의 온건시민운동과 참여연대식의 진보시민운동의 각축시대를 맞게 되었다. 두 단체는 부정부패, 경제정의, 시민참여 문제 등에 있어서는 노선차이를 드러내지 않았으나 노사문제, 남북관계에서는 선명한 차이를 드러내었다. 경실련이 노사문제에서 시시비비의 입장이었다면 참여연대는 親勞의 입장을 분명히 견지했고, 북한문제에 있어서도 경실련이 북에 대해 종종 비판적이었다면 참여연대는 반미친북의 입장을 분명하게 견지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민은 이러한 노선차이를 감지하지 못했다. 단지 과거에는 온건했던 시민운동이 강성이 되었다는 느낌을 가졌을 뿐이었다. 

2-3. 2천년 낙선낙천운동의 의미 

2천년 낙선낙천운동은 시민운동 성격의 변화를 가져다 준 대사건이었다. 낙선낙천 운동은  초기의 시민운동이 견지한 기본성격을 전면적으로 뒤집었다. 낙선낙천운동은 선거법은 악법이기 때문에 지키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낙선낙천운동이 국민의 열렬한 지지를 얻었기 때문에 국민으로부터 정당성을 인정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낙선낙천운동이 정한 낙선자 리스트는 無誤한 것이라 하여 일체의 변경을 허용하지 않았다. 결국 낙선낙천운동은 초기 시민운동의 합법노선을 거부하고 법위에 군림하면서 스스로 판관이 되어 정의의 잣대를 독점하는 운동으로 국민 앞에 보인 셈이고 결과적으로는 시민운동의 묘혈을 판 운동이 되었다. 낙선낙천운동은 당시에는 한 달 내내 일면 톱기사였지만 이 운동으로 인해 시민운동은 더 이상 공정성을 추구하는 운동이 되지 못하고 국민에게 편향적인 시민운동으로 비쳐지게 되었다. 그 결과 낙선낙천운동은 특정정당을 지지하는 운동으로 간주되었고 영남지역에서는 오히려 반작용을 일으켜 야당세력의 확대를 초래하였다. 뿐만 아니라 낙선낙천운동은 비합법운동 노선으로 인해 국민 앞에 법과 질서를 호소할 수 있는 도덕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우리사회에서 포퓰리즘이란 용어가 유행하게 된 것도 낙선낙천운동 때문이었다. 원래 시민운동은 옳고 그름의 판단을 다중의 여론에 의존하지 않고 시민운동가 개인의 양심적 판단에 의존했었다. 이러한 시민운동이 낙선낙천운동을 겪으면서 포퓰리즘 운동으로 전락한 셈이다. 그런데 낙선낙천운동의 폐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제까지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시민운동이 두려움의 대상으로 변했으며 시민운동의 권력화 현상이 강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시민운동 내부의 동맥경화 현상으로 言路가 막히고 낙선낙천운동을 비판한 사람들은 거꾸로 시민운동에서 추방당했다. 낙선낙천운동을 계기로 진보적 시민운동과 온건 시민운동과의 각축은 진보적 시민운동의 승리로 결판이 났지만 이로 인해 그 후의 시민운동은 홍위병적, 좌편향적 성격을 더욱 강화시켜 가게 되었다.

2-4. 미선이효순이 촛불시위

2002년 말의 미선이효순이 촛불시위 역시 한국의 시민사회운동 역사에서 또 하나의 전기가 되었던 사건이다. 이 시위의 가장 큰 의미는 노무현 정권의 등장에 크게 기여했다는 점일 것이다. 그러나 그 외에도 이 사건은 두 가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첫째는 한국의 진보적 시민운동과 좌파세력이 결탁하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박원순, 최열과 같은 시민운동 지도자들은 미선이효순이 사건이 평등한 한미관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넘어서서 반미운동으로 비화하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다. 이로 인해 우리국민은 진보적 시민운동과 친북좌파운동을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하여 반미친북세력에 대한 규탄이 커질 때 진보적인 시민운동도 함께 비판의 대상이 되었고 이제 와서는 이 둘의 구분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둘째는 미선이효순이 촛불시위가 반미운동으로 발전하면서 우리사회의 우파세력이 위기의식을 심각하게 느끼고 결집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동안 조용히 지내오던 우파들이 궐기의 명분을 갖고 행동하는 사회세력으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이로 인해 한국의 사회운동은 종래의 진보 내지 중도 중심의 운동에서 보수와 진보의 대결구도로 전환되었고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등 우파시민운동이 등장하고 나아가 국민행동본부,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등 극우세력의 결속도 강화되었다.

3. 애국운동의 시대 

3-1 뉴라이트 운동의 등장

2004년 가을 뉴라이트 운동의 등장은 우리나라 시민사회운동사에 또 하나의 획을 긋는 대사건이다. 노무현정부가 국가보안법, 과거사법, 언론법, 사학법의 개폐를 밀어붙이고 편가르기를 하면서 우리사회는 또다시 심각한 좌우 대결국면으로 들어서게 되고 노정권에 대한 심각한 민심이반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으며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뉴라이트 운동, 선진화운동이 새롭게 등장하면서 국민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선진화국민회의나 기독교사회책임은 스스로를 우파운동이라고 칭하지 않았지만 언론은 선진화운동을 뉴라이트 운동의 한 갈래로 취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뉴라이트의 등장의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나라가 과거 권위주의시대에서 민주화시대로 전환하면서 종래의 재야운동이 민주화시대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자 시민운동이 재야운동을 대체하게 되었다면 이번에는 시민운동이 좌편향으로 흐르면서 한국사회의 위기국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자 이를 대체하기 위해 등장한 운동이 뉴라이트이기 때문이다.
권위주의사회에서 민주화사회로 전환과정은 나라에 따라 다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이 과정은 순탄하지 못하다. 성숙되고 良識있고 절제된 민주주의로 가기 보다는 민주주의의 과잉현상으로 치닫는다. 한국의 경우에도 민주화과정은 김영삼 정부에서 김대중 정부, 노무현 정부로 이어지면서 좌편향으로 치달았다. 그리하여 집단이기주의와 포퓰리즘이 난무하고 사상의 자유를 과도하게 주장하고 과도한 경제민주주의를 요구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민주주의 과잉현상은 심각한 사회위기로 이어졌다. 우리나라가 꼭 이러한 위기를 경험을 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민주화과정이 제대로 관리되지 않아 원치 않는 결과를 빚은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종래의 좌편향적 시민운동은 더 이상 할 일이 없고 새로 등장한 애국운동이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시민운동은 우리사회가 민주화과정에 들어서면서 시민적 자유와 권리를 제도화하고 시민사회를 활성화해야 하는 시대의 요구에 부응해서 등장하였지만 일단 우리사회가 좌편향으로, 민주주의의 과잉으로 치닫게 되면 나라를 좌파세력으로부터 지키고 나라를 선진화하기 위한 애국운동이 전면에 나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뉴라이트 운동, 선진화 운동은 지금의 상황을 위기상황으로 진단한다. 이 상태로 가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가 급속도로 고령사회로 가고 있어서 향후 15년 내로 선진국이 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지금처럼 년4%의 경제성장으로는 국민소득 3만 불 수준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가까운 시일 내에 사회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브라질, 아르헨티나, 체코처럼 선진국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주저앉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선진화세력을 강력하게 구축하여 선진화를 가로막는 세력을 강력하게 제압함으로써 나라가 선진국을 향해 順航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선진화를 가로막는 강력한 사회세력이 존재한다. 이 세력은 소위 친북좌파세력이다. 이 세력은 구(舊)좌파처럼 사회주의혁명을 지향하지는 않지만 여전히 계급주의적, 수정주의적 역사관을 가지고 세계화를 반대하고 평등주의에 집착하는 세력으로 신(新)좌파라고 표현할 만하다. 필자는 그동안 이들을 좌파라고 부르지 않았었다. 도대체 지금처럼 공산권이 망하고 북한도 비참한 상황 속에 있는데 한국에 어떻게 좌파가 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좌파라는 말은 극우세력의 메카시즘적 공격에서 비롯된 표현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랬다가 맥아더동상 철거시위로 큰 충격을 받고 나서야 우리나라에 친북좌파가 강력하게 존재하고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들 세력은 민노총, 민노당, 전교조, 한총련, 전농, 범민련, 통일연대, 민중연대 등으로 4-50만의 세력을 포괄하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직세력이다. 이들은 반미친북의 입장에 서서 북한인권 문제 제기를 반대하고 국가보안법의 즉각 폐지를 주장한다. 그래서 미순이효순이 촛불시위와 탄핵반대시위, 맥아더동상 철거시위, 평택 미군기지 이전반대 시위를 주도해 왔다.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씨를 대통령으로 만든 세력도, 한미 FTA를 반대하는 세력도 이들이고 기업은 어찌됐든 임금만 높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대기업 노동자들이나, 경쟁력은 아랑곳없이 균형발전만 강조하는 평등주의자들도 여기에 속한다. 그리고 이 세력 위에 얹혀있는 열린우리당은 맥아더 동상 철거에 대해서도, 평택에서 열린우리당 임종인의원이 범대위와 함께 공권력에 도전하는 행동을 한 것에 대해서도 오로지 침묵으로 일관했다. 노대통령의 끊임없는 편가르기 발언이나 열린우리당의 오만과 독선도 따지고 보면 이 세력에 대한 러브콜이었다. 여당 국회의원들이 다 정치 전문가들인데 여당이 오만과 독선에 빠지면 안 되는 것을 왜 모르겠는가? 특히 열린우리당의 온건파 국회의원들은 이대로 가면 망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당내의 좌파세력의 강력한 견제 때문에 침묵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부여당은 자기의 지지기반인 집토끼(좌파 세력)를 놓치지 않기 위해 국민의 소리까지 외면하면서 편가르기와 밀어붙이기 개혁을 강행했고 그 결과로 자기들에게 우호적인 세력의 지지까지 잃은 것이 지난 5.31선거의 결과이자 연이은 열린우리당의 선거참패인 셈이다. 이 친북좌파를 척결하지 않고서는 나라를 지키는 일도 구하는 일도 다 불가능한 것이다.   

왜 한국에서 이토록 때늦은 좌파세력이 발호하는가? 따지고 보면 이 세력의 존재는 우리사회가 지난날의 권위주의 체제를 아직도 완전히 청산하지 못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 군사독재와 싸우기 위해 민주세력이 맑스주의, 주체사상 등의 혁명사상으로 무장했고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전교조, 민노총, 민노당 등을 구축하고 시민단체의 실무자도 되면서 강력한 좌파 이념세력을 구축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권위주의 시대의 후유증 때문에 선진국을 향한 順航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3-2 애국운동의 향후과제

그렇다면 향후 사회운동의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이 땅의 애국운동이 우국인사들을 조직화하여 이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는 것이고 더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과제들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바른 한미FTA를 실현하는 것이다. 한국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한미FTA는 불가피하다. 물론 실사구시적 관점에서 FTA가 실익이 있는가를 마지막에 반드시 따져야 하고  득보다 실이 많다면 한일FTA 협상처럼 마지막에 중단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를 타결시켜야 한다. 이렇게 실사구시로 판단하지 않고 미국패권주의에 반대하고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반대하기 때문에 FTA를 반대하는 것은 옳은 입장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념적으로 한미FTA를 반대하는 세력은 날로 거세어져서 FTA에 대한 지지여론도 80%에서 50%로 낮아졌다. 따라서 이대로 가다가는 한미FTA가 이루어지지 않을 가능성도 크다. 더욱이 미국에서 민주당이 원내 다수당이 되면서 보호무역의 장벽이 높아진 상태다. 어느 정도의 반대는 협상에 도움을 주지만 지금처럼 반대의 정도가 지나치면 나중에 반미운동으로 비화하고 대선에도 큰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이 때문에 선진화국민회의는 원론적으로 FTA를 찬동하는 모든 단체와 개인을 초대하여 <한미FTA를 위한 경제교육 운동>을 전개할 생각이다.
 FTA문제와 관련해서 농촌살리기 운동도 필요하다. 우리농촌은 FTA와 상관없이 심하게 피폐해 있다. 그래서 FTA 지지여부와 상관없이 다 같이 힘을 합쳐 농촌살리기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농촌살리기 운동의 핵심은 도시민이 우리농산물을 소비하는 것이다. 수입농산물과 우리농산물을 구별해서 우리국민이 수입농산물을 사먹지 않게 되면 수입개방이 되어도 상관없다. 그 대신 우리농산물은 친환경농산물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일은 친환경농산물 인증제도의 발전, 친환경농산물 유통구조의 획기적 발전, 그리고 도시민의 친환경농산물 소비 켐페인이다. 그래서 시민들이 집근처 수퍼에서, 혹은 인터넷 판매를 통해 친환경농산물을 사먹을 수 있게 되면 농민들도 희망을 가지고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둘째는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방지하기 위해 평화부터 실현하고 인권문제는 나중에 제기하자는 말은 김정일이 북한주민에게 가하는 탄압과 인권유린에 대해 눈을 감는 댓가로 전쟁방지 약속을 받아내자는 말과 같다. 이것은 마치 일제 시대의 가쯔라태프트 밀약과 같은 것이다. 가쯔라태프트 밀약은 미국이 필리핀을 점령하는 것을 일본이 양해하고 대신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는 것을 미국이 양해한다는 밀약이다. 이 밀약이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는 평화실현일지 모르나 우리민족에게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의 고착화를 의미했다. 평화우선이라는 생각은 우리만 위협받지 않고 전쟁만 없으면 된다는, 극도로 이기적인 생각이다. 이런 평화는 거짓평화이며 우리가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다. 또 빵과 인권 중에서 빵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빵만 주겠다는 생각은 북한주민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평화와 인권을 함께 실현하고 빵과 인권을 함께 주어야 한다. 북한인권 문제를 위한 켐페인을 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운동이 탈북자들의 강제송환을 반대하는 운동이다. 2008년 북경올림픽이 있기 때문에 중국은 지금 세계여론에 민감하다. 그래서 북경올림픽 이전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한다. 

셋째는 북핵을 철저하게 반대하는 일이다. 지금 정부여당은 북핵을 악착같이 폐기하겠다는 의지가 없다. 악착같이 북핵을 반대한다면 핵보유 시에는 남북관계는 끝장이라는 분명한 메시지를 북에 보냈어야 했는데 한국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또 북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한국정부는 남북교류, 인도적 지원, 경제협력, 그 어느 것도 중단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한국이 분노조차 터뜨리지 못한다면 북한은 핵실험하기 잘했다고 생각할 것이 틀림없다. 북핵문제는 당연히 대화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당근만으로 북핵을 폐기시킬 수는 없다. 채찍이 함께 가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지도자들은 경제제재를 하면 안 되고 햇볕정책과 대화로 충분히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는 귀에 듣기 좋은 달콤한 말로 국민을 유혹하면서 대화만으로 북핵을 폐기시킬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국민에게 심어주어 우리 국민을 안보불감증에 빠지게 하는 행위다. 핵실험까지 했는데도 ‘괜찮다, 괜찮다. 개성공단이든 금강산 관광이든 모두 계속하자’는 식의 태도로는 결코 북핵을 폐기시킬 수 없다. 또 북한이 핵을 폐기하겠다는 의사가 국제사회에 의해 확인되기 전에는 인도적 지원도 원칙적으로는 중단해야 한다. 다만 머지않아 북한에서 대규모 餓死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데 이것만큼은 막아야 하므로 옥수수 가루(옥수수가루는 저장성이 낮아 반드시 하층 주민에게 배급된다.), 결핵약, 어린아이를 위한 이유식 등 생명과 관련된 최소한의 지원은 논외로 쳐야 한다.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운동도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가 한미연합사 해체를 반대해야 하는 이유는 한미연합사야말로 가장 강력한 전쟁억지력이기 때문이다. 한미연합사가 존속하는 경우 한국이 공격을 받으면 미국이 즉각 60만 병력과 5개 항공모함전단, 3000여 대의 최신예 항공기를 투입하는 ‘작전계획 5027’이 작동되지만 연합사가 해체되면 이 작전계획은 폐기된다. 더욱이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하고 끝없이 무력을 증강하고 있어 과거 어느 때보다 긴장이 격화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연합사를 해체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 한미연합사 해체는 가장 많은 돈을 들여 가장 약한 안보체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할 뿐이다. 지금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 단독행사를 염두에 두고 계획한 <국방개혁 2020>에서 2020년까지 총 621조원의 국방비를 투입해서 한국군을 현대화하려고 하고 있다. 이 비용만으로도 가구당 5천4백만 원에 해당하는 엄청난 액수이지만 한미연합사 조기해체는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한다. 우리는 이토록 엄청난 국방비를 쓸 수 없다. 한미국방장관회담에서 한미연합사 해체결정이 났다고 해서 변경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과거에 카터대통령이 미군철수를 결정하고 철군을 진행시켰다가도 이를 중단한 적이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흔들림이 없이 반대운동을 계속해야 한다.

넷째 관심사는 노사관계다. 지금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집단이기주의에 정면으로 맞서지 않고서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할 수 없다. 대기업정규직은 고임금을 받고 있으면서도 계속 파업하면서 임금을 더욱 상승시키고 있다. 사실은 비정규직을 생각한다면 임금을 동결하는 대신 비정규직의 임금을 크게 올려달라고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라는 말도 안 되는 주장만 계속하고 있다. 이 땅의 애국운동은 이러한 대기업정규직의 집단이기주의에 단호하게 대처해야 한다.

그 외에 최근의 집값폭등문제나 도박문제도 서민의 가슴을 멍들게 하는 문제들로서 애국운동이 반드시 다루어야 한다. 애국운동이 좌파와의 싸움에 몰두한 나머지 기득권세력을 옹호하는 결과를 빚어서는 안 된다. 나라를 선진화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체제를 구축하기 위해 모든 기득권세력과 맞서야 한다. 또 경쟁에서 낙오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민간차원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운동에도 몰두해야 한다. 한나라당에 대해서도 침묵하지 말고 한나라당이 잘못된 방향으로 갈 때 이를 가차 없이 비판해야 한다. 그리고 후보단일화에 실패하지 않도록 유권자들을 강력하게 조직화하여 대선주자들을 압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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