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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5-14 21:03
   작은 교회 성장론(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주최 국제세미나 강연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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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2,593  


        작은 교회 성장론 


                                    서경석 (나눔과 기쁨 상임대표, 서울조선족교회 목사)


  한국교회가 퇴조하는 현상에 대해 어떤 대책을 강구해야 하나? 또 기독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는 현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이 점들은 오늘날 한국교회가 반드시 답변해야 하는 핵심적인 질문들이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필자는 서울조선족교회의 경험과 <나눔과 기쁨>경험을 가지고 답변을 시도하고 최종적으로 “작은 교회 성장론”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I. 

  요즈음 한국교회가 퇴조하는 원인을 정확하게 진단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 진단을 빨리, 잘 할수록 교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그런데 이점을 보려면 먼저 지나간 70년대에 어떻게 2.4배나 성장했는가부터 알아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후 30년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기에 지금에 와서 성장이 중단되었는가를 분석해야 한다.
  지난 70년대의 교회성장은 실로 경이적이다. 강남교회 전병금목사님의 회고에 의하면 지난 70년대에는 자기 발로 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매주일 열명은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 요즈음은 매주일 새 신자가 한 명 내지 두 명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 신자들도 적극적으로 전도를 해서 온 새 신자이지 자기 발로 찾아온 신자가 아니라고 한다. 이 말은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준다. 
  지난 70년대에 교회가 어떻게 크게 부흥했는가? 이 점에 대해 그 원인을 빌리그래헴 전도대회, 엑스플로어 74대회와 같은 복음주의 진영의 움직임에서 찾는 경향과 70년대의 진보적인 기독청년학생들을 중심으로 한 교회의 인권운동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이 두 가지 경향이 다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현상이 주된 원인인가는 반드시 규명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필자는 주된 원인이 단연코 교회의 인권운동이었다고 말하고자 한다. 먼저 한국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비쳐져야 많은 사람들이 자기발로 교회를 찾아오게 된다. 다음에 교회가 새 신자들을 영적으로 잘 양육해야 한다. 그런데 교회가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희망으로 비쳐져야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가게 되어 있다. 교회사를 보더라도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비쳐졌을 때 사람들이 교회로 찾아왔다. 이런 현상이 교회사에 두 번 있었는데 한 번은 1919년 삼일운동 당시이고 또 한 번은 지나간 70년대다. 삼일운동 당시 기독교가 민족운동의 선봉에 섰었고 그래서 사람들은 예수를 믿어야 독립을 찾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독립운동가, 지식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문을 두드렸다. 또 70년대에는 수천명의 교회 젊은이들이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감옥을 갔다. 대부분의 민주인사들이 교회 주변에 몰려들었고 교회의 도움을 받았다. 사람들은 나라가 민주화되려면 예수를 믿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반면에 영적각성운동은 교인들의 영적인 요구를 충족시키지만 세상 사람들을 교회에 나오게 하는 데에는 별로 도움을 주지 않는다. 여러 실증적인 조사도 이점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면 70년대의 교회의 인권운동은 어떻게 해서 그렇게 성공적이었고 또 그 결과로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었는가? WCC는 당시 NCC를 중심으로 한 한국교회의 인권운동을 조사한 후 이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한 바 있다. 그 보고서는 한국교회의 인권운동이 활발해져서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된 이유를 제도교회(ecclesiastical institution)와 전위적 기독교운동(avantgarde movement)과의 협력/보완관계 때문으로 요약하고 있다. 당시의 전위적 기독교운동은 산업선교, 기독학생운동, 기독청년운동, 기독자교수운동, 인권목회자운동 등이고 제도교회는 NCC, 총회, 노회, 일반교회를 의미한다. 그런데 전위적 기독교운동이 인권운동에 앞장서고 감옥에 가는 등 투쟁을 하면 제도교회는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보호하고, 재정지원하고, 홍보하는 일들을 했다. 그리고 제도교회와 전위운동을 매개하는 역할을 NCC가 수행해 냈다. 이러한 상호협력 및 보완활동을 통해 기독교의 인권운동이 크게 확산되었다. 3.1운동 당시의 기독교도 교회활동만이 아니라 미션스쿨을 중심으로 한 만세운동이 있음으로 해서 기독교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었다. 
  그래서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려면 제도로서의 교회와 운동으로서의 교회가 서로 협력/보완해야 한다. 기독교운동만 있어도 안 되고 제도교회만 있어도 안 된다. 제도교회가 기독교운동을 끊임없이 제도권내로 흡수하고 또 기독교운동이 끊임없이 제도교회에 신선한 자극을 주어야 한다. 지나간 70년대의 NCC를 중심으로 한 에큐메니칼 운동이 이 점을 잘 이루었기 때문에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었고 또 그래서 크게 부흥할 수 있었다. 

II.

  그렇다면 오늘의 교회는 왜 침체했나? 그 이유를 박종화박사는 “한국사회가 국민소득 일인당 1만불을 넘어서면서 양적 경제성장 욕구가 질적 경제발전의 욕구로 변화하면서 삶의 질적 향상을 추구하게 되었고 이러한 파라다임의 변화로 2만불 국민소득에 상응하는 질적인 삶의 욕구를 성숙한 신앙생활과 성숙한 신학적 뒷받침으로 충족시키지 못한 때문”으로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점도 있겠지만 그러나 이 설명은 지난 70년대에는 별반 부흥하지 못했던 가톨릭교회가 최근 십년동안 70%나 성장한 사실을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교회위기가 교회의 질적 미성숙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나간 70년대의 개교회와 지금의 개교회는 별반 다르지 않다. 예나 지금이나 문제가 많은 목회자들이 있었고 또 대부분의 목회자들은 목회자다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교회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다. 
  또 목회자 중심에서 회중중심으로 변모되어야 교회가 부흥한다는 생각도 동의가 되지 않는다. 아마도 지난 70년대에 비해 지금 교회가 훨씬 더 회중중심일 것이다. 목회자가 권위주의에 빠져서는 안 되지만 반대로 영적인 권위가 없어도 안 된다. 또 교회가 마땅히 회중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그렇다고 교회가 교인들에 의해 끌려 다녀도 안 된다. 하나님 말씀의 선포를 통해 회중에게 끊임없이 도전하는 것이 목사의 할 일이다. 

  그렇다면 지금의 교회가 왜 정체를 면치 못하는가? 다시 한 번 전병금목사님의 증언으로 돌아가 보자. 한마디로 “지금 자기 발로 찾아오는 새신자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한국교회의 최대 위기는 우리 민족에게 희망이 되지 못하는데 있다. 그래서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은 두 가지다. “지난 70년대에 우리민족의 희망이었던 교회가 왜 지금은 희망이 되지 못하는가?” 그리고 “어떻게 하면 교회가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나?”이다.

  오늘의 한국교회가 더 이상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책임은 진보적 기독교운동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보적 기독교운동은 과거 군사독재 시대에 인권운동, 민주화운동으로 고난당하면서 우리국민의 희망이 되었었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은 투쟁의 한 가운데서는 항상 독선에 빠지는 유혹을 받는다. 상대방은 악마의 세력이고 우리는 정의의 세력이라고 규정해야 강력하게 투쟁할 수 있다. 사실은 투쟁의 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자기반성능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러나 70년대의 진보적 기독교운동은 투쟁의 한 가운데서 독선적 경향에 빠지고 말았다. 민중신학은 예수는 민중이다라는 말을 넘어서서 민중은 예수다라는 데까지 나아갔다. 뿐만 아니라 주체사상에 입각한 운동까지 했다. 이렇게 기독교 운동이념이 독선으로 흐르면 독재와 싸울 때에는 공고한 투쟁에 도움이 되지만 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과정에 들어서면 거꾸로 질곡으로 변하게 된다. 세상이 변하여 합법적인 공간이 주어지고 혁명으로 정권이 바뀌지 않고 투표로 정권이 바뀌는 세상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진보 기독교는 자기반성 능력을 상실한 채, 계속 과격한 변혁론의 노예가 되어 변화된 상황에 신축성있게 대처하지 못하고 미국과 노태우에 대한 규탄만 계속했다. 이렇게 되자 87년 6월 민주화대항쟁을 적극 지지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이 89년에 이르러서는 진보 기독교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말았다. 이에 따라 진보 기독교는 국민들로부터 고립되고 NCC는 급속하게 영향력을 잃고 말았다.   
  그동안 독재권력의 시녀역할을 했던 복음주의 진영은 나설 체면이 되지 못해 진보교회가 리더십만 잘 발휘해 주면 열심히 그 뒤를 따르고 싶어 했다. 그러나 진보교회는 리더십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옥중성도였던 손양원 목사님이 출옥한 후 환영나온 기독교인들에게 “나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으나 정신적으로는 자유로왔다. 여러분은 육체적으로는 자유로왔지만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어려운 상황에서 교회를 돌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는가? 이제부터 같이 손을 잡고 한국교회를 부흥시키자”라고 말했다. 민주화과정 이후 진보교회 지도자들도 복음주의 교회를 향해 “우리는 독재 밑에서 고생했지만 여러분은 그 대신 교회를 크게 부흥시켰으니 너무도 감사하다. 이제부터 같이 손을 잡고 한국교회를 부흥시키자.”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러나 진보교회는 보수교회를 향해 “전두환정권 하에서 조찬기도한 것을 회개하시오”라고 손가락질을 했다. 물론 회개하지 않은 보수교회에 더 책임이 있다. 그러나 당시 공은 진보교회에 있었다. 진보교회가 아량을 가지고 보수교회를 껴안으려고 했더라면 한국교회는 대연합을 이루어내고 더 큰 부흥을 향해 갔을 것이다. 지금처럼 NCC와 한기총으로 나뉘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진보교회 지도자들은 한국교회뿐 아니라 민족 전체의 지도자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지금도 그때를 회고하면서 당시의 에큐메니칼 운동이 독선으로 흐르지 않고 포용력을 발휘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필자도 이점에 있어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III.
 
  90년대 이후 한국교회는 여러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되었다. 첫째로 우리민족의 희망으로서의 NCC의 역할은 새로 출범한 경실련 등 시민운동에 그 자리를 내주게 되었다. 경실련과 같이 새로 출범한 시민운동이 민족의 새 희망으로 자리잡게 된 것은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경실련을 시작한 사람들은 NCC가 좀 더 포용적이었더라면 NCC운동을 열심히 할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진보적 기독교운동이 지나치게 이념화하여 온건한 세력들을 개량주의로 매도하며 내쫓아버렸고 쫓겨난 사람들이 갈 데가 없어서 경실련 운동을 시작했다. 그때 경실련 운동이 기독교 안에서 시작되었더라면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자리잡았을 것이고 교회는 90년대에 큰 발전과 부흥을 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민주화 과정에서 경제적 불의, 환경오염 등의 문제를 시민운동을 통해 해결하는 일이 가장 중요했지만 기독교는 이러한 일을 할 시민운동을 만들지 못했다. 기독교운동이 약하니까 “제도로서의 교회”와 “운동으로서의 교회” 사이의 상호협력과 보완도 성공할 수 없었다. 결국 진보교회는 더 이상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없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교회의 중심축은 복음주의 쪽으로 옮겨갔다.
  둘째로 한국교회가 하나로 통합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민주화대항쟁 후에 NCC 주도로 교회연합기구가 통합되었어야 했는데 이 일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 후에는 한국교회의 하나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되었다.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나뉘어져 있는 것은 흠이 되지 않는다. 권위주의 체제하에서는 정권에 의해 포섭당한 관변세력과 포섭당하기를 거부한 재야세력으로 응당 나뉘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화후에는 그렇지 않다. 불교도 가톨릭도 다 하나의 통합기구를 가지고 있는데 유독 기독교만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는 것이 얼마나 큰 문제를 야기시켰던가? 항상 김수환추기경, 송월주스님만 부각되었지, 기독교 지도자는 부각되지 않았다. 
  한국교회를 총괄하는 연합기구가 존재하지 않음으로 해서 기독교내에 많은 문제가 발생하였다. 첫째로 교회갱신이 불가능했다. 무인가신학교 문제, 자격 없는 목사안수문제, 자격없는 교단문제 등이 전혀 해결되지 못했고 따라서 교회의 수준이 업그레이드되지 못했다. 둘째로 초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이끌도록 방치되었다. 교회연합기구가 초대형교회를 통제하지 못하고 거꾸로 초대형교회의 재력의 노예가 되었다. 그런데 초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이끌 때 오는 결과는 참담하다. 초대형 교회의 목사들이 세습을 하여 구설수를 만들면 상황은 더욱 참담해진다. 여기에 지난 좌파정권 하에서 공중파 방송들이 초대형교회의 反노무현정권 성향이 미워 기독교를 향해 공격을 가하면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된다. 초대형교회들은 상업주의, 이기주의, 황금만능주의에 젖어있으니 공중파 방송이 앞 다투어 교회를 매도하면 교회는 앉아서 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초대형교회와 가톨릭의 김수환추기경을 비교해보라. 기독교가 얼마나 참담하게 비교되는지... 왜 그동안 가톨릭은 크게 성장했고 개신교는 침체했나? 이미지홍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개신교는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지 못하고 가톨릭은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기능했기 때문이다.
  이 지점에서 교회가 꼭 알아야 하는 점은 일반 국민은 초대형교회로부터 감동받지 않는다는 점이다. 감동은 어디서 오는가? 오히려 작은 교회 목사님이 독거노인의 손을 잡고 기도하는 모습에서 온다. 초대형교회는 오히려 경원시 당한다. 그리고 反기독교세력은 이러한 시민들의 심리를 놓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한다. 그래서 이들을 사탄의 세력이라고만 매도할 수 없다. 교회가 이미 빌미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세 번째로 교회연합기구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면 교회내의 양극화에 대한 견제가 불가능해진다. 연합기구는 항상 큰 교회 중심이고 작은 교회들은 항상 외면당한다. 수평이동으로 큰 교회는 계속 성장하고, 계속 교회당을 증축하는데 작은 교회는 매년 3천교회가 문을 닫는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가 교회연합기구 내에서 한 번도 제대로 제기된 적이 없다.
  그런데 큰 교회 목사님에게는 작은 교회가 안중에 없다. 일반 사회는 그렇지 않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사이에 襟度(금도)가 있다. 대기업은 생필품을 제조하는 일에는 뛰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중소기업의 몫이다. 대기업은 반도체, 선박, 자동차, 철강, 중화학 등의 업종을 벗어나지 않는다. 만일 벗어나면 한국사회가 그 기업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는 철저한 약육강식이다. 마치 정글과도 같다. 그래서 큰 교회는 절대로 스스로 양극화문제를 고치지 못한다. 
  뿐만 아니라 교회연합기구는 재개발 지역에서 자립교회가 당하는 고통, 임대교회가 당하는 고통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멀쩡한 자립교회들이 신도시 재개발이 되면서 정부로부터 수용당하고 일방적인 보상금을 받는다. 그렇지만 종교부지는 턱없이 비싸서 들어가지 못한다. 결국 교인들은 흩어지고 교회는 미자립교회가 된다. 새로운 종교부지에는 인근의 큰 교회가 대신 들어선다. 상가임대교회는 더 심각하다. 이사비용만 받고 내쫓긴다. 그런데 다시 개척한 교회가 있는 지역이 재개발이 되면 또다시 내쫓긴다. 내쫓김이 되풀이된다. 그러나 교회연합기구는 교회의 양극화 문제를 철저하게 외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세상사람들의 신뢰를 얻지 못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IV.

  지금까지 필자는 한국교회의 실패이유를 설명하고자 노력했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진보교회의 성공이 70년대의 부흥을 가져왔고 진보교회의 실패가 90년대의 침체를 가져왔다. 그러나 2천년대에 와서는 기독교의 침체를 진보교회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 이미 진보교회는 기독교의 중심축에서 밀려났고 초대형 교회를 중심으로 한 복음주의 진영이 한국교회를 이끌어 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부터는 책임을 복음주의 교회에 물어야 한다.

  그러면 복음주의 교회가 기독교를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려면 지금의 시대에 맞는 기독교운동을 만들어내야 한다. 일제시대에는 민족운동이 시대정신이었고 권위주의 시절에는 민주화운동이 시대정신이었다. 그리고 90년대에는 시민사회의 자율화와 활성화가 시대정신이었다. 그러면 지금은 무엇이 시대정신인가? 단연코 선진화다.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 경제선진국 뿐만 아니라 복지선진국, 생태선진국, 정신선진국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선진화를 지향하는 기독교운동이 활성화되어야 한다. 제도교회 기구의 활동만으로는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없다. 기독교환경운동, 기독교 경제정의운동, 기독교 복지운동, 기독교 북한인권운동 등이 등장해야 한다. 그동안 기독교는 북한동포돕기, 가난한 나라돕기, 외국인노동자 돕기, 조선족 돕기, 태안반도 자원봉사 등 몇 개 분야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너무 멀다. 
  선진화 운동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선진화를 위한 개혁운동이다. 우리사회를 보다 경쟁적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이것 이외에도 가난한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시스템을 만들고 생태사회 건설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교회는 특별히 경제위기 상황에서 대량 배출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보면 정부와 기업의 부담이 덜어진다. 정부재정을 복지부문에 너무 많이 쓰면 성장에 장애가 되기 때문에 복지부문의 민관협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 교회는 정부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책을 마련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조선족동포, 장애인, 세입자, 재개발 지역 주민 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 
  또 교회는 생태사회 건설에도 앞장서야 한다. 이 일은 정부의 역할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국민적 차원에서 생태적 삶을 위한 운동이 나와야 한다. 유기농 음식을 먹고 생태건축물에서 살고, 전기자동차를 타고, 태양광발전을 하고 빗물을 저장해서 쓰고 재활용품을 즐겨 쓰고 근면절약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이러한 일에 교회가 적극 나서야 한다. 
  또 한 가지, 교회가 선진화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운동이 있는데 그것은 친북좌파 척결운동이다. 이 운동은 당장은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할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국민들이 고마워할 것이다. 꼭 이승만대통령에 대한 평가와 같다. 2-30년 전만해도 대부분의 한국 지식인들은 이승만 대통령을 분단주의자로 비판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않다. 그때 이승만 대통령이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남한 만이라도 단독정부를 세우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맥아더가 인천 상륙작전을 해서 북한공산군으로부터 한국을 지켜내지 못했더라면 우리민족은 어떻게 되었을까? 생각만 해도 아찔한 일이다. 지금 보수기독교가 친북좌파와 맞서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당장은 젊은이들에게 냉전주의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나 이 일은 꼭 해야 하는 일이다. 훗날 한국국민은 2천년대에 결연하게 좌파와 맞선 보수교회에 대해 크게 고마워할 것이다. 사학법 재개정운동과 지금의 사학법 폐지운동도 마찬가지다. 시간이 지나면 우리국민은 반드시 이러한 운동의 선견지명을 감사할 것이다. 교회는 때로는 국민 대다수의 지지가 없더라도 민족의 미래를 바라보고 옳은 길, 바른 길을 가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려면 선진화를 지향하는 기독교운동만으로는 안 되고 이 운동이 각 교단, 노회, 개교회 등 제도교회와 상호협력, 보완관계에 놓여야 한다. 제도로서의 교회와 운동으로서의 교회를 매개하는 역할을 교회연합기구가 해 내야 한다. 과거 70년대에는 NCC가 이러한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 냈다. 특별히 NCC 총무이셨던 김관석목사님의 리더십을 잊을 수 없다. 지금도 한국교회의 가장 중요한 일은 제대로 된  교회연합기구를 건설하는 일이다.

V.

  2000년대가 거의 다 지나가고 있다. 2010년대에는 한국교회가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나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몇가지 자각이 필요하다. 
  첫째 한국교회 지도자들이 나라의 선진화를 위해 교회가 특별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는 점을 자각해야 한다. 지금 교회가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하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을 향해 順航할 수 없다. 꼭 이명박 장로가 대통령이 되서가 아니다. 한국의 시민운동이 좌편향으로 가면서 기독교 없이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 사회중심세력을 만드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그래서 교회는 평신도들을 교회에만 묶어두지 말고 세상 속으로 보내어 선진화를 위한 시민운동을 하게 해야 한다.
  둘째로 교회지도자들은 기독교시민운동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이를 육성해야 한다. 개척교회 지원보다 더 중요한 것이 기독교시민운동 지원이다. 아직은 기독교시민운동이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들을 반드시 키워야 한다. 
  셋째로 기독교시민운동과 제도교회 사이에서 매개기능을 감당할 교회연합기구를 제대로 건설해야 한다. NCC에 이런 기대를 할 수 없다면 한기총이 이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한기총은 대표회장을 선출하는 시스템이 잘못되어 한국교회를 이끌 지도가가 대표회장이 되는 것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형편이다. 그래서 교회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무엇보다 한기총의 개혁, 한기총의 기능회복에 나서야 한다. 그래서 한기총은 시민운동이 제기하는 문제들을 교단과 각 교회로 확산시키면서 시민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일을 해야 한다. 
  넷째로 한국교회는 초대형교회 중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더 이상 초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서는 안 된다.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의 삶을 따르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한다. 그래야 교회가 세상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VI.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해야 할 점이 있다. 기독교의 사랑과 정의 실현운동이 보여 주어야 하는 점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셔서 이 땅에서 지금도 사랑과 정의를 위해 일하고 계신다는 점이다. 지나간 70년 대에도 기독교 젊은이들이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재와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은 하나님이 살아계시는구나하고 생각했다. 신앙 없이는 투쟁이 불가능함을 느꼈다. 이러한 젊은이들을 보며 사람들은 예수믿기로 작정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기독교인들이 목숨 내놓고 사랑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면서 세상사람들은
하나님이 계심을 믿게 되고 또 그래서 전도가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시민운동”은 행동으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해야 한다. 나는 이점을 <나눔과 기쁨>과 서울조선족교회의 경험을 예로 들면서 설명하고자 한다. 
 
  <나눔과 기쁨>은 동네 안의 교회, 학교, 기업, 병원, 식당, 점포,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정기모금을 해서 그 돈으로 그 동네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인 차상위 계층을 돕자는 취지로 2005년에 출범한 단체다. 처음에는 새마을 운동 혹은 지방자치단체가 나서면 잘 될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그래서 나중에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나서면 되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돈을 크게 모금해서 작은 교회 목사님이 동네에서 나눔 네트워크를 만들어 극빈자를 도우면 매달 30만원씩 6개월을 지원하겠다고 홍보했다. 그랬더니 전국에서 3백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신청을 했다. <나눔과 기쁨>은 그 분들을 나누미로 호칭하고 동네에서 나눔네트워크를 조직하게 했다. 그리고 매달 CMS 자동이채로 돈을 모으게 했다. 
  그런데 3개월 후에 확인하니 이중 2백명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은 것이 드러났다. 그냥 돈만 받아간 것이다. 나는 너무 실망했다. 이때 나는 정기적 지원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사실을 엄청난 댓가를 지불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나서 목사님들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바꾸었다. 무조건 매달 얼마씩 주지 않고 실적에 따른 지원으로 바꾸었다. 즉 나누미 활동가가 매달 정기모금을 CMS로 십만원을 하면 20만원을 지원하고, 십만원을 더 모금하면 또 20만원을 추가 지원하고 또 십만원을 더 모금하면 다시 20만원을 지원하여 나중에는 이분에게 애초에 약속한 지원금인 백오십만원을 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모금한 돈의 15%는 무조건 행정비로 사용하도록 했다. 이렇게 하면 매달 정기적으로 70만원을 모금하면 거기서 매달 10만원이 목사님에게 가게 된다. 2005년 3월에 시작했는데 연말에 확인하니 남아있는 나누미는 120명에 불과했다. 나는 절망에 빠졌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중 30명은 정말로 열심히 활동했다. 그들 중에는 CMS를 월 백오십만원까지 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CMS를 그 정도하면 非CMS도 그 정도가 된다. CMS를 원치 않는 사람들은 CMS 대신 일년치 돈을 한꺼번에 내기 때문이다. 또 장사하는 사람은 돈보다 물품기증을 더 원한다. 그래서 매월 수백만원어치의 물품을 지원받는다. 그러면 나누미 목사님은 이렇게 모금한 물품과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 용돈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발 맛사지를 하고, 병원도 같이 가고, 말동무도 해 준다. 그러면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한다. 처음에는 목사신분을 밝히지 않았다가 나중에 목사인 것을 알게 되면 그분은 “우리 동네에 진짜 예수님 같은 목사가 있다”고 동네방네 선전을 한다. 작은 교회가 큰돈을 쓰면서 사람들을 도우니 소문나지 않을 수가 없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교회에 나오고 모금에 참여한 사람도 교회에 나온다. 그러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다.
  경남 고성군의 김인수 목사님은 처음 시골교회에 부임했을 때에는 교인이 한명 밖에 없었다. 너무도 어려워서 월 30만원의 지원을 받으려고 <나눔과 기쁨>에 참여했다. 그런데 그분은 지금 CMS만 月백오십만원을 모은다. 교인수도 30명이 넘었다. 농촌교회로서 이제는 자립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35세의 젊은 나이에 郡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有志가 되었다.
  안산시 와동의 김병천목사님도 교인이 2-30명에서 1백오십명으로 늘어났다. 뿐만 아니라 4층 건물을 사서 이제는 중형교회가 되었다. 물품까지 합해 매달 1천만원을 모금하면서 와동에서 가장 유명한 목사님이 되었다. 김병천 목사님은 요즈음 동네일보다 <나눔과 기쁨> 경기도연합회 일로 더 바쁘다.   
  충남 아산의 박선호목사님도 처음 <나눔과 기쁨>을 시작할 때에는 교인이 2-30명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백오십명이 된다. 모금도 물품까지 오백만원이 넘는다. 그리고 발맛사지, 요양보호사 파견센터, 공부방 등 안하는 프로그램이 없다. 나는 박목사님께 그동안 몇 명을 도왔는데 지금 몇 명이 교회에 나옵니까 하고 물어 보았다. 그랬더니 그동안 백명을 도왔는데 2-3년이 지나니까 그중 70명이 교회에 나오더란다. 
  이렇게 도움 받는 분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고마워서 보답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분들이 나누미 목사님의 행동을 보면서 감동이 되어 하나님이 계신가보다 하고 생각하게된 것이다. 전에는 인생이 너무 힘들고 절망이 커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할 수 없었지만 이제는 목사님이 예수믿자고 하니 그러겠다고 답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나누미 목사님의 행동을 보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고 희망을 찾게 된 것이다. 

VII.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나누미 목사님들의 목회에 큰 변화가 생긴 점이다. 알고 보니 자기가 하는 일이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삶은 병자를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 자기가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이다! 그동안 나누미 목사님들은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할까만을 열심히 고민하면서 교회성장세미나를 수없이 찾아다녔는데 교회는 성장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에 목사가 예수님처럼 사니까 그 목사님의 행동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하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리고 교회가 성장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누미 목사님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내가 여태까지 잘못 목회를 했구나” “교회성장 전략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결단하는 것이 중요하구나”하고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새로운 목회철학이 생기게 되었다. 이제는 교회성장전략도 교인수도 중요하지 않다. 목회의 성공여부가 교인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얼마나 분투하는가에 있다. 목회철학이 바뀌니까 그 다음부터는 큰 교회 목사님 앞에서도 당당해진다. 노회에 참석해도 주눅이 들지 않는다. 목회가 너무도 신나고 행복하다. 열심히 예수님처럼 사는 것만으로 나의 목회는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 <나눔과 기쁨>의 나누미가 된 후 지역주민을 만나기도 쉬워졌다. 개척교회 명함을 가지고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어려웠는데 나누미가 된 후에는 누구든지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공무원들은 교회는 도와주려고 하지 않고 <나눔과 기쁨>은 얼마든지 도와주려고 했다. 
  이렇게 <나눔과 기쁨> 나누미의 삶이 달라지니까 주위의 친구목사들이 질문을 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니? <나눔과 기쁨>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바뀌었어. 그래? 그러면 나도 하자. 이렇게 해서 나누미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2008년 말에는 나누미가 천삼백명이 되었고 지금은 3천명을 넘었다. 
  이렇게 <나눔과 기쁨>이 발전하면서 이 운동에 대한 설명도 바뀌었다. 과거에는 <나눔과 기쁨>을 민간사회안전망운동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었다. 

VIII.

  요즈음은 전도가 잘 되지 않는다. 그러나 <나눔과 기쁨>은 생각이 다르다. 전도가 너무 쉽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면 전도는 저절로 된다. 전도는 우리의 목표도 아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면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물이다. 사람들이 우리의 삶을 보면서 하나님의 實在를 경험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나눔과 기쁨>전도법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점은 필자의 서울조선족교회 목회경험과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필자는 조선족목회를 하면서 동포들을 위해 6번 단식투쟁을 했다. 한 번은 단식 23일을 했는데 단식 17일째에 위출혈이 나서 피를 너무 많이 쏟아 정신을 잃었다. 긴급하게 병원에 후송되어 살아났는데 다시 단식을 계속해서 결국은 싸움에서 승리했다. 그런데 내가 피를 쏟던 장면을 지켜보던 동포들이 나를 찾아와 질문했다. “목사님, 우리는 도저히 모르겠습니다. 왜 목사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십니까? 목사님은 조선족도 아니고 중국에 와서 정치인이 될 것도 아닌데..” 나는 그분들에게 “이유를 알고 싶으면 한 달 동안 제 설교를 들으세요”하고 했다. 한 달후에 이분들이 다시 찾아와서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나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전도는 아무 때나 되지 않는다. 전도는 전도의 때가 있다.
  몇 년전에 이기풍 목사님의 막내따님 권사님으로부터 이기풍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목사님이 제주도에 가서 헌신적으로 주민들을 섬겼더니 나중에 주민들이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고 했다고 한다. 어쩌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듣게 되었는지 나는 참으로 감동되었다.
  조선족 목회를 하면서 조선족 동포 2천8백명과 함께 18일간 단식한 적이 있었다.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인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다. 투쟁이 끝날 때 동포 7백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나섰다. 그래서 명성교회를 빌려 7백명에게 한꺼번에 세례를 주었다. 중요한 것은 말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사랑을 행동으로 보임으로써 그분들이 하나님이 계심을 느끼게 하는 것이다.
  전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이슬람선교조차도 어렵지 않다.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주민을 죽을 각오로 사랑하면 된다. 그러면 그 나라 주민들이 반드시 질문하게 되어 있다. “도대체 당신은 이역만리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십니까? 도대체 당신의 비밀은 무엇입니까?” 그때가 바로 전도의 순간이다. 그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면 세상에 주님을 영접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IX.

 <나눔과 기쁨>이 금년에 반찬나눔 사업을 시작했다. 극빈자들이 밥 하기는 쉬운데 반찬은 먹거리를 사서 조리를 해야 하므로 어렵기 때문이다. 분당의 만나교회가 도시락을 매주일 7백개를 만들고 60명의 성남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반찬도시락을 극빈자에게 나누어준다. 천안시에서 하늘샘교회가 5백개를, 아산에서 아산제일교회가 3백개를 대구의 10개교회가 1천2백개를, 인천에서 순복음인천교회가 6백개를, 광주에서 열 개교회가 1천개의 반찬도시락을 만들고, 나누미 목사님들이 이를 나누고 있다. 이 외에도 서울, 수원, 안산, 경기도 광주, 남양주, 의정부, 부천, 의왕, 일산, 대전, 전주, 제주, 부산, 울산, 포항에서 반찬나눔을 준비하고 있다. 반찬나눔사역을 하면서 나누미의 숫자가 천3백명에서 3천명으로 늘어났다. <나눔과 기쁨>은 금년 9월까지 전국의 모든 시군구에서 이 사역을 할 예정이다.
  그런데 반찬나눔 사역의 의의가 말할 수 없이 크다. 
  첫째는 지금의 경제위기상황을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교회가 앞장서서 가난한 사람들을 껴안는 일을 한다는데 있다. 
  둘째로 더 중요한 점은 작은 교회들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특별히 부름받았다는 자각을 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작은 교회는 큰 교회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더 잘 돌볼 수 있다. 큰 교회가 돈을 들여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어도 가난한 사람들을 별로 감동하지 않는다.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다르다. 2천5백원짜리 반찬도시락 하나지만 가난한 사람은 그 도시락을 받고 눈물을 흘린다. 그 도시락에는 도시락을 들고 찾아간 목사님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 목사님 자신이 많은 고통과 시련을 겪으며 살아 왔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에게는 이들을 위로할 영적인 힘이 있다. 고난당한 자만이 고난당하는 자에게 힘을 줄 수 있다.
  이제까지 작은 교회는 애물단지처럼 취급당했다. 노회든, 지역 연합회든 어디를 가도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다. 그러나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면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작은 교회 목사로서의 특권”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일뿐만 아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은 예수님을 따르기가 큰 교회 목사님보다 훨씬 쉽다. 대제사장이나 서기관처럼 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되기가 훨씬 쉽다. 또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는 발언하기도 훨씬 쉽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 중에서 수천 수백의 작은 예수가 나올 수 있다. 
  셋째로 이 사역의 가장 큰 의의는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함께 하는 프로그램이라는데 있다. 큰 교회가 반찬을 만들고 작은 교회가 반찬을 나눔으로써 작은 교회와 큰 교회 사이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다.
  필자는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면서 작은 교회 목사님의 고통과 恨이 얼마나 깊은가를 잘 알게 되었고 그분들의 스토리를 들으면서 내가 얼마나 個교회주의에 빠져 있었는가를 반성한 적이 있다. 그 다음부터는 대형교회에서 보는 예배가 은혜가 되지 않았다. 주변의 수십개 교회가 문을 닫았겠구나 하는 생각만 났다. 나도 이런데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심경은 더 할 것이다. 그런데 작은 교회에서 큰 교회로 수평이동하는 교인들을 막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면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배려해야 한다. 최소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교는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한다. 그런데 반찬나눔사역이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간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을 하게 되니 참으로 감사할 일이다. 
  넷째로 중요한 점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반찬나눔 사역을 하면서 작은 교회끼리 힘을 합하면 어떤 일도 해낼 수 있음을 깨닫게 된 점이다. 성남시의 한 작은 교회 목사님은 반찬나눔 사역이 시작된 것에 감격하면서 지난 십년동안 작은 교회 목사들이 연합하여 공동사업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런데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단결하니까 안 되는 일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잘 만나주지 않던 큰 교회 목사님도 쉽게 만날 수 있다. 市의 대접도 달라졌다. 국회의원도 호출하면 영낙없이 온다.
  그리고 앞으로 훨씬 더 큰일을 해낼 수 있다. 이를테면 작은 교회들이 無점포 생필품가게를 만들어 모든 물건을 파격적으로 싸게 팔게 되면 극빈자에게 생계비를 지원하는 효과가 생긴다. 뿐만 아니라 재활용가게와 싸게 파는 약국도 만들고, 무료급식, 노인대학, 지역아동센터, 요양보호사 파견센터, 다문화센터, 발맛사지샵 등도 낸다. 또 길거리에서 헤메거나 버려진 사람들을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당번이 되어 돌볼 수도 있다. 
  이렇게 작은 교회들이 힘을 합하면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선진국은 GNP가 높은 나라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선진국이다. 선진국이 되기 위해 복지에 과도한 힘을 쏟으면 성장에 지장이 되지만 <나눔과 기쁨>같은 운동이 커지면 성장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게 사는  나라를 만들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독교는 틀림없이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다. 70년대처럼 기독교 인구가 2.4배나 증가하는 놀라운 역사를 재현시킬 수 있다.

X.
 
  그런데 <나눔과 기쁨>의 민간사회안전망 운동은 가난한 나라에서도 꼭 필요한 프로그램이다. 안식년을 맞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돌아왔다가 <나눔과 기쁨>을 알고는 이 프로그램이 자기네 피선교지에서 훨씬 더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렇게 해서 <나눔과 기쁨>이 해외로 수출되었다. <나눔과 기쁨>은 그 나라 목사님들이 자기 동네의 가장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모금운동을 동네 안에서 하게 한다. 그래서 모금이 이루어지면 <나눔과 기쁨>은 그 모금 액수만큼 매칭펀드를 기부하고 이 활동을 하는 목사님들에게 활동비를 지급한다. 그러나 철저하게 실적에 따른 지원을 하여 그 나라 목사님이 더 열심히 주민 속으로 파고들게 한다. 
  한인 선교사가 현지교회 목사에게 봉급을 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현지교회 목사들을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는 행동이다. 목사들이 현지 주민에게 파고 들어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선교사들이 봉급을 주면 주민들을 만날 생각은 하지 않고 선교사들의 뒤만 따라다니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선교사들이 현지교회를 주민들로부터 격리시키는 결과를 빚는다. 선교사들이 예수님처럼 살려고 해야지, 돈 뿌리는 선교를 하면 안 된다. 이점에서 보면 한국교회 초기의 미국선교사들은 참으로 훌륭했다. 그분들은 네비우스 방법을 통해 自傳, 自治, 自給을 추구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우리 힘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었고 오늘의 한국교회의 영광을 이루어냈다. 해외의 한인선교사들도 지금 당장 네비우스 방법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방법은 현지교회를 도우면서도 현지교회를 병들게 하지 않고 현지교회가 빨리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방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네비우스 방법보다 더 적극적이다. <나눔과 기쁨> 방법론이 해외에 확산될 필요가 있다. <나눔과 기쁨>은 복음전도를 앞세우지 않는다. 그보다 현지에서 죽도록 사랑과 정의를 실천한다. 교회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목표로 한다. 그러면 오히려 전도가 더 잘 된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은 한인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사랑과 정의 실천에 앞장서도록 지원하고자 한다.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행동으로 보일 때 복음이 가장 잘 전파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XI.

  작은 교회는 어떻게 하면 성장하는가? 가장 중요한 일은 작은 교회 목사님이 “작은 교회 목사님에게 주어진 특별한 사명”을 자각하는 일이다. 그리고 예수님처럼 살 각오로 가난한 사람에게 한없는 사랑을 베푸는 일이다. 그리고는 작은 교회들이 서로 연대해서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정의실현에도 앞장서야 한다. 과거에도 민주화운동에 앞장 선 교회들은 다 작은 교회들이었다.
  그러면 이 과정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대량으로 복음이 들어갈 것이다. 한국교회가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고 교회가 세상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된다. 초대형교회가 앞장서는 것이 아니라 “작은 교회 연대”가 앞장서게 된다. 지금 한국교회가 퇴조하는 이유는 대형교회의 교인이 감소해서가 아니라 작은 교회들이 문을 닫기 때문이다. 작은 교회가 크게 각성해서 다시 부흥의 길로 들어서면 한국교회도 다시 부흥의 계절을 맞이할 것이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4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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