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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4-05 22:59
   <나눔과 기쁨>과 <반찬나눔>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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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2,233  
   나눔과_기쁨_설명회_연설문.hwp (64.1K) [47] DATE : 2009-04-05 22:59:18




        <나눔과 기쁨>과 <반찬나눔>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서경석 목사(나눔과 기쁨 상임대표)

  안녕하십니까? 저는 <나눔과 기쁨>의 상임대표인 서경석 목사입니다. 오늘 이 시간 여러분에게 <나눔과 기쁨>이라는 단체에 대해 설명드리고, 이어서 왜 <나눔과 기쁨>이 반찬나눔운동을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드리고자 합니다.

<나눔과 기쁨>은 어떻게 시작되었나? 

  먼저 <나눔과 기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나눔과 기쁨>이라는 아이디어가 나오게 된 경위는 IMF경제위기 시절까지 소급됩니다. IMF 경제위기가 왔을 때 저는 정부나 기업이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아니라 동네 안의 문제를 일차적으로 동네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해결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동네 안의 교회, 학교, 기업, 병원, 식당, 점포,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정기모금을 해서 그 돈으로 그 동네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운동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네 안에서 가장 어려운 사람들은 차상위 계층입니다. 차상위 계층이란 극빈자임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있어서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자식이 있으면 그가 감옥에 있든지, 장애인이든지, 실업자든지, 혹은 연락을 끊고 살든지 관계없이 정부가 돕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실제로는 자식의 도움을 받으며 살면서도 그렇지 않은 것처럼 처신하면 정부가 이를 규명하기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역대 정부들이 고민만 하다가 결국은 이들을 지원하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들이 가장 어렵습니다. 어떤 사람은 거지노릇을 해서 자식까지 먹여 살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차상위계층은 정부가 하는 사회안전망(기초생활보장법에 따른 극빈자 지원)의 사각지대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을 민간이 돕지 않으면 안 됩니다.
  저는 처음에는 洞단위까지 조직이 있는 새마을 운동이 이 일을 하면 잘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에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새마을 운동도 저의 제안을 받아들여 몇 년간 민간사회안전망이라는 이름으로 이 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 운동이 새마을운동의 체질과는 잘 맞지 않아서 결국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서 하면 잘 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저의 오랜 친구인 송진섭 안산시장과 의논을 해서 안산시가 이 일에 앞장서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안산시가 <나눔과 기쁨>훼스티발을 하는 등 앞장서서 열심히 켐페인을 했습니다. 그런데 市가 나서니까 홍보는 아주 잘 되는데 막상 동네에서 모금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을 하는 활동가를 찾는 일은 市가 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또다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로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이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활동비 지원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 번은 기업인을 만나서 도움을 청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독거노인을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당신이 매달 3십만원을 한 사람에게 주면 한 가정을 도울 수 있지만 만일 그 돈을 저를 주면 제가 열 가정, 스무 가정을 도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국교회의 80%가 작은 교회들입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면 열심히 어려운 이웃들을 만나러 다닐 용의가 있는 분들입니다. 그래서 이분들에게 월 30만원씩 6개월을 지원하면 이분들이 동네에서 열심히 나눔네트워크를 만들어서 백만원, 2백만원을 모금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이분들이 가장 어려운 이웃을 열 가정, 스무 가정을 도울 수 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이 일을 돕겠다고 했습니다. 저는 “기왕에 도우려면 크게 도와주십시오. 이 운동이 앞으로 반드시 성공할 터인데 한 달에 1억원씩 6개월을 도와주시면 우리는 당신네 기업이 도와주어서 이 운동이 크게 성공했다는 점을 열심히 홍보하겠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이 우리를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6억을 전부 돕지는 못하고 전부 5억 천만원을 도와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으로 나눔과 기쁨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도와준 기업이 바로 JU네트워크입니다. 그때 만났던 주수도 회장은 지금 감옥에 갇혀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때 그 분이 <나눔과 기쁨>을 도와준 것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교계신문에 홍보를 해서 작은 교회 목사님이 동네에서 나눔 네트워크를 만들어 극빈자를 돕는 일을 하면 매달 30만원씩 6개월을 돕겠다고 홍보했습니다. 그랬더니 전국에서 3백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신청을 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이분들을 나누미라고 호칭하고 동네에서 나눔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매달 얼마씩 돈을 걷을 수가 없기 때문에 CMS 자동이채를 하도록 했습니다. 그래서 농협을 접촉해서 농협이 가장 적은 수수료를 받고 자동이채를 해주도록 했습니다. 또 모든 나누미에게 홈페이지를 만들어주고 모든 것을 홈페이지에 공개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3개월 후에 이분들의 활동을 확인했습니다. 그랬더니 이중 2백명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돈만 받아간 것이었습니다. 저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1억8천만원을 그냥 낭비한 셈입니다. 저는 이때 매달 얼마씩 정기적으로 돕는 일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사실을 엄청난 댓가를 지불한 후에야 비로소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세 번째로 실패를 한 셈이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목사님들에게 활동비를 지원하는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무조건 매달 얼마씩 주지 않고 실적에 따른 지원으로 바꾸었습니다. 즉 나누미활동가가 매달 정기모금을 CMS로 십만원을 하면 20만원을 지원하고, 십만원을 더 모금하면 또 20만원을 추가 지원하고 또 십만원을 더 모금하면 다시 20만원을 지원하여 나중에는 이분에게 애초에 약속한 지원을 다하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모금한 돈의 15%는 무조건 행정비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매달 정기적으로 70만원을 모금하면 거기서 매달 10만원씩 목사님에게 지원이 되게 됩니다. 이렇게 활동비 지원방법을 바꾸니까 나누미로부터 약속위반이라는 항의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저는 꿈쩍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바꾸지 않으면 <나눔과 기쁨>은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한 때가 2005년 3월이었는데 2005년 말에 다시 확인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계속 활동을 하고 있는 나누미는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눔과 기쁨>운동이 또 실패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중 30명은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들 중에는 CMS를 월 백3십만원, 백오십만원까지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CMS를 그 정도하면 非CMS도 그 정도가 됩니다. 사람들 중에는 CMS를 원치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CMS 대신 일년치 돈을 한꺼번에 내려고 합니다. 그래서 CMS가 백만원이 되면 비CMS도 매달 그 정도가 됩니다. 그리고 그쯤 되면 물품지원도 커집니다. 장사하는 사람은 돈보다 물품기증을 더 원합니다. 그래서 매월 수백만원어치의 물품을 지원받습니다. 그러면 나누미 목사님은 이렇게 모금한 물품과 돈으로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서 용돈을 주고, 먹을 것을 주고, 발 맛사지를 해주고, 아프면 같이 병원도 가고, 말동무도 해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합니다. 처음에는 목사신분을 밝히지 않았다가 나중에 목사인 것을 알게 되면 그분들은 “우리동네에 진짜 예수님 같은 목사가 있다”고 동네방네 선전을 합니다. 작은 교회가 엄청나게 돈을 쓰면서 사람들을 도우니  소문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교회에 나오고 모금에 참여한 사람도 교회에 나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남 고성군의 김인수 목사님은 처음 시골교회에 부임했을 때에는 교인이 한명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도 어려워서 월 30만원의 지원을 받으려고 <나눔과 기쁨>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분은 지금 CMS만 月백오십만원을 모읍니다. 그리고 교인수가 30명이 되었습니다. 농촌교회로서 이제는 거의 자립한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나이 35세의 젊은 목사님인데 그 郡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有志가 되었습니다.
  안산시 와동의 김병천목사님도 교인이 2-30명에서 1백오십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4층 건물을 사서 이제는 중형교회가 되었습니다. 물품까지 1천만원을 매달 모금하면서 와동에서 가장 유명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김병천 목사님은 요즈음 동네일보다 <나눔과 기쁨> 경기도연합회 회장일로 더 바쁩니다. 
  충남 아산의 박선호목사님도 처음 나눔과 기쁨을 시작할 때에는 교인이 2-30명에 불과했습니다. 지금은 교인이 백오십명 정도가 됩니다. 모금도 물품까지 오백만원이 넘습니다. 그리고 발맛사지, 요양보호사 파견센터, 공부방, 등 안하는 프로그램이 없습니다. 저는 박목사님께 그동안 몇 명을 도왔는데 지금 몇 명이 교회에 나옵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백명의 어려운 분들을 도와왔는데 2-3년이 지나니까 그중 70명이 교회에 나오더랍니다. 
  이렇게 도움받는 분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이 당연합니다. 고마워서 보답으로 나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분들이 나누미 목사님의 사랑의 행동을 보고 감동이 되어 하나님이 계신가보다 하고 느끼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인생이 너무 힘들고 절망스러워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전혀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나누미 목사님들의 목회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하는 일이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무엇입니까? 병자를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자기가 똑같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나누미 목사님들은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할까만을 열심히 고민해 왔습니다. 교회성장세미나를 수없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런데도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목사가 예수님처럼 사니까 그 목사님의 모습이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그러면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나누미 목사님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잘못 목회를 했구나” “교회성장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분투하는 것이 중요하구나”하고 깨닫습니다. 그리고 새로운 목회철학이 생깁니다.  이제는 교인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회의 성공여부가 교인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얼마나 분투하는가 입니다. 목회철학이 바뀌니까 그 다음부터는 큰 교회 목사님들 앞에서도 당당해 집니다. 노회에 참석해서도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너무도 신나고 행복한 목회가 됩니다. 내가 열심히 예수님처럼 사는 것만으로 나의 목회는 성공입니다. 
  나누미 목사님들은 제게 “목사님께서 저희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그동안 개척교회 명함을 가지고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매우 어려웠답니다. 전도하려고 한다며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 실무자의 명함을 가지고는 누구든지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명함을 가지고 구청관리들을 만나면 종교편향 소리를 듣기 싫어서 도와주려고 하지 않는데 <나눔과 기쁨> 실무자로 가면 얼마든지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목사님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주위의 친구목사들이 질문을 합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니? <나눔과 기쁨>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바뀌었어. 그래? 그러면 나도 하자. 이렇게 되어서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2008년 말에는 천삼백명이 되었습니다. 중간에 안 하겠다는 사람들을 다 정리하고도 이렇게 성장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 운동

  시간이 가면서 <나눔과 기쁨>운동에 대한 설명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나눔과 기쁨>을 민간사회안전망운동이라고 설명했는데 지금은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전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눔과 기쁨>의 목사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도가 너무도 쉽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기만 하면 전도는 그냥 된다는 것입니다. 전도는 목표가 아니라 삶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나눔과 기쁨>전도법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점은 저의 목회경험과도 너무 일치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경실련이라는 시민운동으로 세상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시민운동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입니다. 목사직을 계속 유지하려면 제가 목회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직을 반납해야 하는데 서경석 목사가 갑자기 서경석 선생으로 바뀌면 세상사람들은 제가 교회 안에서 징계라도 받은 줄 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목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조선족 동포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에 와서 고단한 삶을 살기 때문에 심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시민운동을 하고 일요일에만 교회에 가서 설교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서울조선족교회를 세웠습니다. 목사직 유지를 위한 얄팍한 생각인 셈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세우고 조선족동포들을 만나보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고통이 너무 심한 것입니다. 가정이 깨지고, 빚이 천만원이고, 자식이 아프고, 감옥에 있고, 암이 걸리고.... 세상에 이렇게 불행한 민족이 있는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거의 다 불법체류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잡혀가고 추방당합니다. 빚도 갚기 전에 중국으로 추방당하면 이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동포들은 나한테 매달립니다. 목사님 살려주십시오. 나는 목사직 때문에 교회를 세웠는데 잘못 걸려들었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도 많이 하고 기도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조선족동포들을 살리시기 위해 나를 보내셨구나 하고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이들의 편에 서서 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각오했습니다. 금년 6월이면 우리교회가 창립 십주년을 맞이합니다. 그런데 지나간 십년 동안 저는 단식을 여섯 번이나 했습니다. 죽을 각오를 하고 단식했습니다. 작년에도 25일간 단식을 했습니다. 10일, 17일, 23일, 10일, 18일, 25일이 되는데 단식할 때마다 법무부가 완전히 항복할 때까지 계속했습니다. 한 번은 단식 23일을 하던 시기에 단식 17일째가 되었는데 위출혈이 났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시꺼먼 짜장면을 대야로 하나를 쏟았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다가 정신을 잃었는데 붉은 피를 입으로 한 대접을 쏟았습니다. 그리고 병원으로 실려가서 수혈을 하고 다시 정신을 차렸습니다. 위출혈이 무서운 줄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긴급하게 병원에 가지 못했더라면 생명이 위험할 뻔 했습니다. 레이저로 피 나오는 곳을 지진 후에 나는 다시 단식을 계속했습니다. 단식 23일이 되니까 법무부가 완전히 손을 들었고 저는 다시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피를 쏟던 장면을 지켜보았던 조선족 동포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끼리 토론했는데 도저히 해답을 모르겠습니다.  왜 목사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십니까? 목사님이 중국에 와서 인민대회 의원이 될 것도 아니고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목숨을 바치십니까?” 저는 그분들에게 “당신들이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한 달 동안 예배에 참석해서 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분들이 한 달 동안 제 설교를 듣고 나서 다시 제게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아무리 예수천당을 외쳐도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전도는 전도의 때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2-3년 전에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예장통합측 총회가 창립 백주년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목사님들의 후손을 초청해서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저의 증조부가 황해도 소래에 한국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운 서경조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그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제주도 선교를 처음 하신 이기풍목사님의 막내 따님을 만났습니다. 그 권사님이 이기풍목사님의 이야기를 전해 주셨습니다. 이목사님이 제주도에 가서 정말로 헌신적으로 주민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주민들이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듣게 되었는지 저는 정말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전도는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죽을 각오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면 됩니다. 이슬람선교가 매우 어렵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어렵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주민을 죽을 각오로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나라 주민들이 반드시 질문하게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이역만리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때가 바로 전도의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면 그들은 반드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여러분 전도가 절대로 어렵지 않습니다. 목숨걸고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각오하면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주십니다. 저는 조선족 동포 2천8백명과 함께 18일간 단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인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투쟁이 끝나면서 동포 7백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명성교회를 빌려 7백명에게 세례를 준 적이 있었습니다. 몇 시간 연속으로 세례를 베풀었는데 팔이 떨어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목숨걸고 사랑을 실천하면 안 되는 일이 없습니다. 바로 이 길이 <나눔과 기쁨>이 가려는 길입니다. 

반찬나눔사업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이 작년 말부터 새로 시작하는 사업이 있습니다. 부산의 나누미 목사님 두 분이 반찬나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반찬나눔을 하게 된 이유는 밥은 전기밥솥에 버튼만 누르면 밥이 되는데 반찬은 먹거리를 사서 조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누미 목사님들이 매주일 일주일분 반찬을 50개씩, 70개씩 만들어서 어려운 이웃에게 돌리는 일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반찬을 받는 분들이 너무 좋아하더랍니다. 뿐만 아니라 반찬 만드는 비용도 시간이 지나면서 더 싸졌습니다. 주위에서 돕는 사람들이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은 이 사업을 전국적으로 전개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제일 먼저 성남시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지난 2월, 분당의 만나교회(담임목사 김병삼목사)가 도시락을 매주일 4백개씩 만들고 성남시의 50명의 목사님들이 일인당 열 개씩의 반찬을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었습니다. 두 달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목사님의 숫자도 65명으로 늘어나고 반찬도시락의 숫자도 7백개로 늘어났습니다. 다음에는 천안시에서 하늘샘교회가 매주일 5백개의 반찬을 만들고 50명의 나누미 목사님들이 이 반찬도시락을 나누기 시작했습니다. 3월 5일에는 대구시 나눔과 기쁨이 3백명의 나누미를 포함하여 1천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구 외채상환기념공원에서 반찬나눔운동 출범식을 가졌습니다. 김범일 대구시장이 참석하여 축사를 했고 대구시내의 모든 매스콤이 총동원되어 취재경쟁을 벌였습니다. 그동안 대구의 기독교행사 중에서 이렇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이 없었습니다. 김범일 대구시장도 공무원이 이 일을 하려면 예산을 스무배 들여도 불가능하다며 교회에 수없이 감사를 표했습니다. 이어서 대구시의 가장 큰 교회 열 개가 전부 반찬만들기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전국의 거의 모든 주요도시에서 반찬나눔 출범식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서울, 인천, 수원, 안산, 경기도 광주, 남양주, 의정부, 부천, 의왕, 일산, 대전, 전주, 광주, 제주, 부산, 울산, 포항 등 17개 도시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하이라이트는 5월 7일 서울 시청 앞에서 있을 전국 반찬나눔운동 출정식입니다. 여기에는 전국에서 8천명의 나누미 부부가 참석할 예정입니다. 이미 나누미의 숫자가 2천7백명을 넘어섰는데 그때가 되면 족히 4천명이 될 것입니다. 
  나누미들은 처음에는 반찬나눔부터 시작하지만 그 다음에는 민간사회안전망을 위한 모금과 차상위 계층 돕기를 하고 나아가 발맛사지샵, 요양보호사 파견센터, 지역아동센터, 다문화센터, 노인대학, 무료급식, 재활용센터, 생필품가게 등 <나눔과 기쁨>의 모든 프로그램을 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지금과 같은 경제위기 상황에서 반찬나눔의 의미가 매우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 경제위기는 하나님께서 한국교회에 주신 특별한 기회입니다. 이때 기독교가 앞장서서 가난한 사람들을 껴안아야 합니다. 이미 전국의 150여개  큰 교회 목사님들이 자기 수입의 5%를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데 쓰겠다고 한 바 있습니다만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에 앞장선다면 한국교회의 부흥에 큰 계기가 될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의의는 작은 교회가 가난한 사람을 돌본다는 데 있습니다. 작은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큰 교회 보다 잘 돌볼 수 있습니다. 큰 교회가 큰 돈을 들여 가난한 사람들에게 선물을 나누어주어도 가난한 사람들을 별로 감동하지 않습니다. 그냥 당연하다고 생각하지요. 그러나 작은 교회는 다릅니다. 선물이 기껏해야 2천원짜리 반찬도시락이라 하더라도 가난한 사람은 그 도시락을 받고 눈물을 흘립니다. 그 도시락에는 그 도시락을 들고 찾아간 목사님의 사랑이 듬뿍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 목사님 자신이 많은 고통과 시련을 밟으며 살아 왔지요. 그렇기 때문에 그 작은 교회 목사님에게는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격려하고 힘을 줄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지요. 그래서 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들은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큰 교회는 중산층, 지식인층, 부자들을 전도하는 일을 담당하고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전도는 작은 교회의 몫으로 하자는 것이지요.
  마지막으로 반찬나눔사역의 의의가 있습니다. 이 반찬나눔이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함께 하는 共生프로그램이라는데 있습니다. 큰 교회는 반찬을 만들고 작은 교회는 반찬을 돌림으로써 이 프로그램은 작은 교회와 큰 교회 사이의 갈등을 치유하는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사실 작은 교회 목사님의 고통과 恨에 대해 잘 알지 못합니다. 제가 섬기는 서울조선족교회가 꼭 작은 교회가 아니기도 하지만 우리교회가 편안하면 한국교회도 편한할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요. 그런데 나눔과 기쁨 활동을 하면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고통과 恨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는 제 자신이 얼마나 개교회주의에 빠져 있었는가를 크게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과거에는 조선족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났는데 지금은 작은 교회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이 나옵니다. 어떤 여목사님은 열심히 주일학교를 해서 아동들의 숫자가 50명이 되었는데 어느 여름에 인근의 큰 교회에서 하기성경학교를 하니까 아이들의 삼분지 이가 큰 교회로 옮겨갔더랍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상가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하필이면 큰 교회 셔틀버스가 자기교회 앞에서 교인들을 실어 나르더랍니다. 그것도 후라이펜을 하나씩 선물로 주면서... 이 모습을 본 목사님은 억장이 무너지지요. 저도 작은 교회의 애환어린 이야기들을 듣고 나서는 큰 교회에 가서 예배보는 것이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잘 아는 목사님이 서울 근교에서 교회를 세웠는데 급속도로 성장해서 교인수가 수천명이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서도 축하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자꾸만 인근의 수십개 교회가 문을 닫았겠구나 하는 생각만 났습니다.
  지금 큰 교회는 점점 더 커져서 교회를 다시 더 크게 짓습니다. 반면에 작은 교회는 매년 3천교회 씩 문을 닫습니다. 큰 교회들은 기독교가 계속 부흥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요. 그러나 실제로는 지난 십년동안 교인수는 14만명이나 감소했습니다. 이 사실은 큰 교회의 성장이 수평이동에서 비롯된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교인들이 자발적으로 수평이동하는 것을 아무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배려해야 합니다. 최소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교는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큰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제가 잘 아는 큰 교회 목사님께 <나눔과 기쁨>에 대해 설명합니다. “작은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열심히 돌보니까 교회가 성장합디다.” “아 그래요. 그렇다면 우리가 가난한 사람들을 열심히 돌보겠습니다.” 저는 <나눔과 기쁨>을 재정적으로 도와주기를 바라서 말씀을 드렸는데 그 목사님의 교회가 직접 그 일을 해버립니다. 작은 교회가 일할 공간을 마련해 주지 않습니다. 그만큼 큰 교회의 개교회주의는 너무도 심각합니다. 한국교회는 마치 정글과도 같습니다. 철저한 약육강식의 세계입니다. 일반 사회에는 그래도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襟度가 있습니다. 대기업은 선박,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업종만 합니다. 수건, 세수비누 등 중소기업이 하는 업종에는 절대로 들어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큰 교회에는 이런 襟度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 반찬나눔 일을 준비하면서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큰 교회마다 반찬 만들기를 사양하지 않고 기꺼이 응해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큰 교회와 작은 교회 간의 상처가 컸었는데 이 상처가 반찬나눔운동을 통해 치유되고 있습니다. 정말로 감사할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자각이 있어야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점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자신의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는 일입니다. 이제까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일종의 애물단지처럼 취급당했습니다. 어디를 가도 작은 교회 목사님들을 제대로 대접해 주는 곳이 없습니다. 노회에 참석해보면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항상 구경꾼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점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한국교회를 일으키기 위해 택함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입니다. 저는 이점을 정말로 땀 흘려가며 외치고 싶습니다. 이제는 작은 교회 안에서 한국교회 지도자가 나와야 합니다. 교회의 크기로 지도자의 크기를 결정하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그동안 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했지만 오히려 교회에 대한 사회의 신뢰는 더 떨어졌습니다. 우리사회는 교회를 바라볼 때 교회의 크기로 지도자를 평가하지 않는데 기독교 안에서는 교회의 크기로 지도자를 평가합니다. 목회자에 대한 평가는 누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가를 가지고 평가해야 합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 목사님은 예수님을 따르기도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편이 되기도 큰 교회 목사님보다 훨씬 쉽습니다. 부자가 천국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했는데 대형교회 목회자도 예수님처럼 살기가 어려울 것입니다. 부자청년처럼 가진 것이 많으면 예수님 따르기가 너무 힘듭니다.
  또 작은 교회는 눈치보지 않고 소신을 지키기도 훨씬 쉽습니다. 잃어버릴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은 주님으로부터 부여받은 특권이 매우 큼에도 불구하고 이점을 깨닫지 못하고 지내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자기에게 주어진 특권이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제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 중에서 수백 수천 명의 작은 예수가 나와야 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껴안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나눔과 기쁨>은 어떤 단체인가? 이 단체는 주님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을 부르고 계시다는 점을 일깨워주는 단체입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나눔과 기쁨>을 통해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결단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에 앞장선다면 한국교회는 틀림없이 크게 부흥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

  그런데 <나눔과 기쁨>이 꿈꾸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입니다. 선진국은 GNP만 높은 나라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가 바로 선진국입니다. 이러한 선진국을 위해 과도하게 복지에 힘을 쏟으면 성장에 지장이 생기지만 <나눔과 기쁨>과 같은 운동이 커지면 성장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도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번에 반찬나눔 사역을 출범시키고 나면 다음에는 無점포 생필품가게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두루마리 화장지가 하나에 천원이라고 합시다. 그런데 이 화장지를 공장도 가격으로 사면 6백-7백원에 팔 수 있습니다. 2만원짜리 화장품을 3천원에 팔 수 있습니다. 약품도 만원짜리 약을 천원에 살 수 있습니다. 한 달에 30만원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사람에게 물건을 싸게 공급하면 한 달에 25만원에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는 그분에게 월 5만원을 드리는 셈이 됩니다. <나눔과 기쁨> 나누미가 이미 3천명이 되었습니다. 앞으로 이 숫자가 5천명이 되면 우리는 얼마든지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습니다. 재활용가게도 만들고, <나눔과 기쁨>약국도 만들고, 무료급식, 노인대학, 지역아동센터, 요양보호사 파견센터, 다문화센터 등 가난한 사람들의 공동체를 위해 우리가 할 일들이 무궁무진하게 우리 앞에 있습니다.
  또 나누미가 중심이 되어 복지119도 만들 수 있습니다. 길거리에 버려지고 절망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을 돌보는 일들을 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책임지자는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기독교가 정말로 가난한 사람들을 책임지게 된다면 기독교는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그리스도의 계절이 오게 할 수 있습니다. 지나간 70년 대처럼 십년동안에 기독교 인구가 2.4배가 증가하는 놀라운 역사가 다시 재현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그런데 <나눔과 기쁨>의 민간사회안전망 운동은 가난한 나라에서도 훌륭하게 적용됩니다. 안식년을 맞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왔다가 <나눔과 기쁨>을 알고는 이 프로그램이 자기네 피선교지에서 훨씬 더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나눔과 기쁨>이 미얀마로, 우간다로, 중국으로 수출되게 되었습니다. <나눔과 기쁨>은 그 나라 목사님들이 자기 동네의 가장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모금운동을 동네 안에서 하게 합니다. 그래서 모금이 이루어지면 <나눔과 기쁨>은 그 모금 액수만큼 매칭펀드를 기부하고 이 활동을 하는 목사님들에게 적은 돈이지만 활동비를 지급합니다. 그러나 철저하게 실적에 따른 지원을 함으로써 그 나라 목사님들이 더 열심히 주민들 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합니다. 
  선교사들이 현지교회 목사님들의 봉급을 지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행동은 현지교회 목사님들을 정신적으로 병들게 하는 행동입니다. 목사님들이 현지의 주민들에게 파고 들어가서 복음을 전해야 하는데 선교사들이 봉급을 주니까 주민들을 만날 생각은 하지 않고 선교사들의 뒤만 따라다닙니다. 이렇게 되면 선교사들이 현지교회를 죽이는 결과를 빚습니다. 선교사들이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해야지, 돈 뿌리는 방식으로 선교활동을 하면 안 됩니다. 이점에서 보면 한국교회 초기의 미국선교사들은 참으로 훌륭한 분들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네비우스 방법을 통해 自傳, 自治, 自給을 추구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우리 힘으로 교회를 세울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선교사들의 선교정책이 오늘의 한국교회의 영광을 이루어냈습니다. 해외에 파견된 한국선교사들은 지금부터라도 네비우스 방법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 방법론은 현지교회를 도우면서도 현지교회를 병들게 하지 않고 현지교회가 빨리 자립할 수 있도록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네비우스 방법보다 더 적극적인 방법입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은 <나눔과 기쁨 전도법>을 한국 뿐만 아니라 세계 속으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현지에서 교회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 실현을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죽도록 사랑과 정의를 실천합니다. 그러면 오히려 더 전도도 더 잘될 것입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의 최종목표는 해외에 있는 한인선교사들이 현지에서 사랑과 정의 실천에 앞장설 수 있도록 돕는 일입니다. 이제 세계선교의 사명은 한국교회의 어깨 위에 놓여져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더 <나눔과 기쁨>의 사명이 중요합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국내선교 뿐 아니라 세계선교를 위해서도 부름받았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드는 일을 위해 <나눔과 기쁨>이 크게 쓰임받기를 소망합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4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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