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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마가 2: 15-17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요한 절기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탄절을 Merry Christmas라고 말합니다. 기쁜 성탄이라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날이 기쁜 날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탄절이 기쁜 이유는 아기예수 탄생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을 명확하게 알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자신을 보여주시기 전에는 하나님을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이들과 대화를 하려면 아이들의 눈높이까지 낮아져야 하듯이 하나님이 우리의 눈높이까지 낮아지셔야 우리는 하나님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기 아들 예수님을 인간이 되게 하여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믿을 뿐만 아니라 구원까지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탄일이 우리에게 기쁜 날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은 초자연적인 존재로 계신 분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우리와 똑같이 살고, 사람들에게 가르치고 또 행동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은 신앙의 그리스도임과 동시에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사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어떻게 사셨나를 보면서 예수님의 삶을 통해 보여주신 하나님의 뜻이 헤아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님의 삶이 어떤 것이었나를 대표적으로 보여준 본문입니다. 예수님이 레위라는 세리집에 가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었습니다. 그러니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항의를 했습니다. 왜 예수는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예수님이 답변하셨습니다. “건강한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가 있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이 대목은 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는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이 땅에서 사실 때 항상 천대받는 사람들, 버림받은 사람들의 편이었다는 점, 그래서 당시의 주류세력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질타를 받으셨다는 점, 그리고 끝내는 그들의 음모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다는 점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여기에 성탄절의 또 하나의 의미가 있습니다. 한편으로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이 오셨지만 다른 한 편으로 예수님은 그 중에서도 특히 세상사람들로부터 비난받고 소외당하고 죄인취급 받는 사람들을 위해 오셨다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 점은 일견 보기에 서로 배치되는 것처럼 생각됩니다. 그러나 좀 더 깊게 생각하면 이 두 가지 생각은 서로 보완적입니다. 예수님은 인간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인간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려면 그중에서도 가장 소외된 사람들을 특별히 더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야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어떻게 인간을 사랑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기예수가 탄생했을 때 아기예수를 맞이한 분들도 소외된 사람들인 양치는 목동들, 늙은이들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이 태어나신 곳도 마굿간이었고 눕혀진 곳도 말구유였습니다. 가장 낮고 천한 곳에서 태어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심으로해서 가장 낮고 천한 곳이 가장 성스러운 곳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성탄절의 또 하나의 의미는 소외되고 차별당하고 버림받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오심을 통해 처음으로 인간대접을 받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인간대접이 처음 시작된 날이 바로 성탄절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은 특별히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날이어야 합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다 기뻐해야 하지만 소외된 사람들, 사회에서 버림받는 사람들에게는 이날이 특별히 신나는 날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인들이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새길 때 특별히 가져야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편에 서겠다는 생각, 가장 소외당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처럼 섬기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번 크리스마스에 두 가지 아주 섭섭한 일을 겪었습니다. 하나는 파룬궁 문제입니다. 파룬궁이라고 하면 우리 동포들은 무척이나 싫어하시죠. 그런 줄 나도 잘 압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파룬궁에 속한 한국여성 한분이 계신데 그분이 걸핏하면 저를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몇십 명의 파룬궁이 한국에 난민신청을 했는데 기각당해 법원에 호소를 해서 지방법원에서는 승소를 했지만 고법에서는 패소를 했기 때문에 대법원에 다시 상고했는데 만일 대법원에서 패소하면 중국으로 추방당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중국에서 감옥가야 하므로 목사님이 도와주세요.” 라고 했습니다. 더욱이 이분들 대부분이 조선족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서경석 목사님이라면 도와줄 수 있으리라 생각해서 저를 찾아왔다는 것입니다. 내가 “곤란한데... 내가 파룬궁의 편에 서면 중국에 가지 못하는데...”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은 “중국이 머지 않아 망할 것이니까 걱정없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당신들을 돕는다면 그 이유는 돕는 것이 옳기 때문에 돕는 것이지 돕더라도 내게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돕는 것은 아닙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또 그 파룬궁 여성은 제게 파룬궁은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고 역설했습니다. 그 점에 대해서도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만일 파룬궁을 돕는다면 파룬궁이 사이비종교가 아니기 때문에 돕는 것이 아닙니다. 사이비종교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인권은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나는 파룬궁이 사이비 종교같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는 파룬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제가 아주 반대하는 생각은 파룬궁이 사이비종교와 비슷하므로 파룬궁의 인권은 보호할 가치가 없다고 하는 생각입니다. 참으로 저는 난처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나는 정말로 파룬궁 문제에 관여하기 싫었습니다. 지금 내가 짊어지고 있는 십자가도 충분히 무겁습니다. 더욱이 우리 서울조선족교회 교인들이 파룬궁을 무척이나 싫어합니다. 그런데 만일 한국에서 파룬궁을 돕는 사람이 정말로 없다면, 기독교인 중에서 파룬궁을 돕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면 하는 수 없이 나라도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누군가는 이들의 인권을 보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 가지 따질 점이 있습니다. 이들이 중국으로 강제송환되면 정말로 감옥이 기다리고 있는가? 만일 그럴 가능성이 크다면 나는 이들이 중국으로 강제송환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그동안 중국정부가 탈북난민을 북한으로 강제송환하는 것을 반대해 왔습니다. 북한에서 정치범수용소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 제가 파룬궁이 강제송환되는 것에는 침묵을 지킨다면 저는 일관성이 없는 사람이 됩니다.
우리들 기독교인은 파룬궁에게도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먼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이면 누구든 다 사랑한다는 점을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파룬궁까지도 사랑하는 하나님을 발견해야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파룬궁의 강제송환을 반대한다는 목소리를 냈고 그러한 내용으로 언론과 인터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안 우리 교회 교인들로부터 항의와 원망을 들었습니다. 그 항의를 들으면서 나는 아주 속이 상했습니다. 오늘 여러분들도 내가 강제송환 당하는 파룬궁을 돕는 것을 반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나는 여러분에게 절규하고 싶습니다. 나는 지금 파룬궁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중국사회의 죄인들입니다. 중국사회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으로부터 추방당한 사람들을 예수님은 친구로 삼고 인간대접을 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그들을 인간대접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이점이 바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또 하나의 이유였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성탄절을 맞아 “파룬궁도 인간이다”라고 선언하고 그들의 편에 서는 한국인이 그렇게 없었다니 나는 너무 속이 상합니다. 나는 파룬궁의 편에 서는 십자가를 지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할 수 없이 떠밀려 이 십자가를 졌습니다. 아마 중국가기는 다 틀렸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하는 수 없습니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또한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을 설교하는 목사로서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여러분 눈치, 중국정부 눈치 때문에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나는 또 한 가지 속상하는 일이 있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국방부가 대체복무를 허용하지 않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이라는 종교가 있습니다. 이 종교는 이단종교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증인은 병역의무를 거부합니다. 총을 드는 것을 반대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난 수십년간 이들은 군대가는 대신 3년간 감옥살이를 했습니다.
그런데 지난 정부가 여호와의 증인을 무조건 범법자로 만들 것이 아니라 군복무 대신 대체복무를 하게 하자는 여론이 커졌습니다. 그 대신 군복무를 피하기 위해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사람이 없도록 대체복무를 훨씬 더 힘들고 더 기간을 길게 하자고 했습니다. 기간도 18개월의 두 배인 36개월로 하고 정신병자나 한센병, 치매환자들 돌보는 힘든 일을 하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 정권이 대체복무를 허용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이명박 정부가 들어와서 국방부가 대체복무 방침을 백지화하기로 한 것입니다. 보아하니 한기총은 대체복부 폐지를 환영하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이단이니까 그런 것 같습니다. 나는 대체복무를 지금의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게 했으면 좋겠습니다. 아예 18개월간은 간벌사업에 투입시켜 산의 나무 베는 일을 시키고, 나머지 18개월은 정신병자나 치매환자, 한센씨병 환자를 간호하게 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여호와의 증인을 범법자로 만들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호와의 증인은 아주 이상한 종교이고 이단이고 한국사회에서도 아주 소외된 집단입니다. 우리 사회의 지도층 중에 여호와의 증인을 믿는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 때문에 군대 갈 수 없다고 한다면 대체복무의 길을 열어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소수자의 인권입니다. 나는 예수님은 이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쪽에 서 계시다고 믿습니다. 동성애도 마찬가지입니다. 동성애는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교회는 성경말씀을 따라 마땅히 동성애가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동성애를 할 수 밖에 없도록, 일종의 선천성 환자로 태어났다면 우리는 그 상황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입니다. 그 사람이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사회에서 버림받으면 안 됩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아주 부끄러운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매도도 당하고 버림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아무리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기독교는 그런 종교이고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으로 사는 일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우리 생각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죄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버림받은 사람의 편에 서는 것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또 하나의 이유라면 우리는 예수님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신 말씀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말 깊게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성탄절을 맞이하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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