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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8-26 16:02
   교회건축에 대한 <사랑의 교회>의 한 교우의 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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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2,546  


교회건축에 대한 <사랑의 교회>의 한 교우의 반론

<이 글은 사랑의 교회의 교우 한분이 올린 댓글입니다. 제 글에 대한 진지한 반응이기 때문에 이 곳에 글을 소개합니다. 곧 이 글에 대한 답변을 쓰겠습니다. >

1.

솔직히,
현재 사랑의 교회 건축은 분명히 타당성이 있고 일반적으로 이해할만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800명때 지은 건물을 8만명까지 사용했다면 안지을려고 버틸만큼 버틴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아이들의 주일학교 현실을 보면 정말 건물의 붕괴가 우려되거나 혹은 압사의 우려는 빈번할 정도로 공간이 너무 좁습니다.
공간 때문에 사람들이 못들어 오고 복음 사역 자체가 위기에 처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제 학창시절 친구 하나도 사랑의 교회가 나름 존경받는다고 해서 가봤는데 사람이 너무나 많은데 교회는 좁아 터져서 한번 가고 더이상 교회에 안나간다고 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현재 지식인들을 비롯해서
심지어 상당히 교회에 비판적인 분들까지도 포용할수 있는 도심에 하나의 영적인 기지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랑의 교회가 건축 자체를 안했다고 사랑의교회를 존경하는거라기 보다는
건강한 목회철학과 균형잡힌 설교와 사역, 모범적인 사역계승과 깨끗한 면모를 보고 존경하거나 인정하여 사랑의 교회라면 한번 나가볼 생각을 갖고 있는 일반인들이 상당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가고는 싶은데 가보면 거의 압사당할 정도로 좁고 사람이 많아서 도무지 못간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더이상 교회에 안나간다고 합니다.
사랑의 교회만이 끌어들일수 있는 사람들 마저 공간으로 인해서 주님 앞으로 나오지 못하는 일까지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공간때문에 주님을 구세주로 믿지 못하고 구원반열에 서지 못하는 실정입니다.

사랑의 교회의 건축 자체는 타당합니다. 충분히 이해할만 합니다.
서목사님이 선지자적 말씀을 하셨을 수도 있죠. (근데 왜 지금 갑자기? 좀 의문이..)

사랑의 교회가 지역사회와 협력해서 건축한다면 건축자체는 문제되지 않습니다.
분립을 하면 지성전을 세운다고 또 문제가 될 것이고 되려 지역교회들에게 더 안 좋습니다.
사랑의 교회의 역할을 잘 할 수 있는 방안이어야죠.

2.

강남지역에서 천주교의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서 높고
개신교의 비율은 상대적으로 낮은 게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왠고 하니, 그곳은 교육수준이 높아서 개신교에서 존경받을 만하지 않으면
잘 나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강남에도 구원받아야할 사람이 수없이 많고,
그중에 지식인같은 경우에는
사랑의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분명히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조차도 한번 와보고는 거의 압사당할 지경이니
도저히 못나오고 더이상 교회에 나오지 않는 실례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런 통탄할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리고 그 지역이 그러니까

어쩔수 없이 정당한 값을 지불하는것인데
잘 알지 못하면서 그저 무조건 금액을 들이대는것 또한
공정치 못한 일입니다.

건축을 하면서 교만해 지면 그 종교나 교회는 망합니다.
그러나, 훌륭한 건축을 하면서도 겸손할수 있다면 그것은 오히려
도약의 발판이 될수 있습니다.

지금 불교에도 강남 한복판에 어마어마한 넓이와 크기로 봉은사가 있습니다.
그리고 영국에도 웨스트민스터사원이 있습니다.
그리고 천주교는 천진암 성지라고 해서 거기다가 2만 5000명이 들어가는
대성당을 짓는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건물이 어떠하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거기서 어떻게 사역하느냐가 더 큰 문제입니다.
사람들을 많이 수용할수 있다고 해서 그것자체가
잘못됬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물론 버스를 돌려서 쓸어가는 식으로 하거나 해서는 절대로 안되지만
사랑의 교회만의 특성을 통해 할수 있는 지식인 내지 교회에 비판적인 분들을 끌어들일수 있는 공간마련은 가능합니다.

공간이 크다고 해서 그저 비판받지는 않습니다. 그 공간이 마음문을 열수 있는 감동을 주는 건물이라면, 주변과 조화를 이루면서 크다면 좋은 효과를 낼수 있습니다.

다만 그걸 보는 분들조차 감동을 받을수 있을 정도의 깊이가 있어야죠.


3. 
 
어느 종교나 상징적인 건물들이 있고 그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감화를 받는 일도 또한 분명히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위엄입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을수 있는 상징입니다.
그런데 개신교는 그런게 약합니다.
가톨릭은 그런걸 나름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유럽에서
그나마 가톨릭 국가들은 그래도 여전히 가톨릭 인구가 많은 반면,
개신교 국가에서는
훨씬 무신론자가 많은 걸 볼수 있습니다. (강한 신앙운동이 매우 중요한건 분명하나 그 바탕이되는 것들도 봐야.)

우리는 이런 것들을 지나치게 강조해서는 안되지만 적정하게 인정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명동성당이나 조계사나 봉은사 같은
도심에서 상징적인 건물들이 그 종교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교적 엄위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교회는
이런 부분이 부족한게 사실입니다.
대표할만한게 없습니다. 많은 부분이 무슨 센터같아요.
지금 만일 사랑의 교회가 건축을 하면서 교만해 진다면 그 즉시 하나님은
촛대를 옮기실 것입니다.
그러나 건축에 있어서 주님앞에 엎드리는 자세가운데 할 수 있고 그 자세가 지속될수 있다면 주님은 오히려 이 건축을 통해서 영적인 구심점을 만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오히려 신축 부지는 부유층 지역으로부터 떨어져 있습니다.
지금 현재 자리가 오히려 강남역 옆으로 더 부유한 지역입니다.
그 지역에 제가 살아 서 아는데 청정한 지역이고 주위에는 서민들 내지는 중산층이 많이 살고 있습니다.

대법원 앞이라 깨끗하고 오피스텔이 상당히 많아서 지금 부지보다 주위 주민들에게
불편을 덜 끼칠수 있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지역자체가 문제가 된다면 강남에는 교회를 아예 안세워야 할 것입니다.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오고 오히려 거기서 십자가의 정신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건물, 지역이 어떻다고 해서 시비 걸어서는 안됩니다. 그건 오직 수단이니

4.
 
건축은 양날의 검과도 같습니다.
잘못하면 망할수도 있지만 잘하면 영적인 구심점과 국민들의 마음속의 고향으로서 영적인 역할을 크게 감당할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현재 성 베드로 대성당입니다. 그걸짓느라고 엄청나게 많은 죄를
천주교는 지었고 그로인해 종교개혁이 일어났습니다.
그로인해 가톨릭은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일단 지어진 후에
요한 바오로 2세같은 분이 나와서 그 자리에서 십자가 정신으로 사역하자
베드로 대성당의 장엄한 강점이 살아났습니다. 지금 그곳은 모두가 경외하는
상징이 됬습니다.

그로 인해 2000년대 이후에 가톨릭의 베드로 대성당은 전 세계 수많은 경외심의 상징이 됬습니다. 여기에는 카롤 보아티외가 십자가의 정신으로 사역하고 그 가운데의 베드로 대성당의 장엄함이 합쳐져서 상승작용을 일으켰습니다. 그 전에는 비판의 대상이 되던 것이
십자가와 평화의 사역을 하자 오히려 역작용을 해서 엄청난 존경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큰 건물 그 자체로서는 오히려 어마어마한 타격이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장엄한 아우라 가운데 십자가의 사역이 펼쳐지고 주님의 장엄함이 드러날수 있다면 그것은 개신교에 대한 존경심을 회복할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가장 중요한것은 그 가운데 엎드림과 십자가의 정신,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인류에 대한 사랑, 그리고 부활의 영광과 자기를 내어주는 영성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장엄한 아우라로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주님의 장엄함을 전파할수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은 큰 성전 건축 자체를 비판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다윗과 솔로몬에게 큰 건축의 준비와 실행을 허용하셨습니다.

그것 자체가 죄는 아니었습니다.. 그걸 어떻게 이용하느냐가 더 큰 문제이지 지역과 건물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어서는..

5.
 
그러나 그 훌륭한 성전이 중심이 되서
약자를 핍박하고
사람들이 억울한데도 그것을 외면하고 하나님의 의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며,
결국 선민의식으로 똘똘 뭉치며 주님의 뜻을 저버렸을때,
그리고 주님의 말씀이 제대로 선포되지 않았을때,
그리고 마침내
바로 앞에 나타나신 메시아,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을때
주님께서는 "이 성전을 보느냐. 돌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건축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것은 잘하면 좋은 영적인 구심점과 사역의 공간이 될수 있습니다.
특히,
허영심의 발로가 아닌 압사당하거나 안전사고의 위험까지 있는 상황에서 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거기서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 그리고 주님의 아름다움과 장엄함을 모두
충실히 구현할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그것이 구현될수 있다면
이 건축은 한국교회의 천박성을 극복하고 사회의 존경을 회복하며
도무지 상징할만한게 없었던 대사회를 향한 개신교의 대표성을 제고하고 일반인은 물론 비판적 지식인들조차도 주님 앞으로 나오게 할수 있는 통로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건물이 의미를 담아야 하고 주님의 아름다움을 반영할수 있는 예술성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신고전주의 건축 같은 보편적인 미(구닥다리 표현 같습니다만 솔직히 말해서 누구나 보고 마음을 열고 감탄할수 있는 균형잡히면서도 장중한 건축. 여전히 이런게 사람들 마음속에 보편성을 띄고 있는게 사실입니다.)와 의미와 사상및 한국적인 미도 함께 구현해 낼수 있다면
이것은 오히려 비판적 지식인들조차 교회로 나오게 할수 있는 기제가 될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훨씬 훨씬 더 중요한것은 거기서 십자가와 부활의 사역이 펼쳐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역이 펼쳐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면 그 건물은 자신을 되찌르는 검이 될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4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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