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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작은 교회가 특별한 사명을 자각할 때입니다.
1.
지금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오랫동안 명성교회, 사랑의 교회,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초대형교회들이 지도적인 역할을 담당해 왔고 한국교회의 모델처럼 되어 왔습니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를 이끌어오기 위해 온갖 수고를 다 한 분들도 바로 이러한 교회들입니다. 그러나 지난 십년간 기독교 인구가 14만명이나 감소했다는 통계보고는 한국교회에 엄청난 충격을 주었습니다. 나아가 초대형교회들이 주도해 온 한국의 교회성장 시스템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갖게 되었습니다. 지나간 70년대에는 기독교가 2.4배나 성장했는데 지금에 와서는 오히려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면 지금 한국교회를 휩쓸고 있는 “성장제일주의”는 근본적으로 파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대형교회의 성장은 대개의 경우 작은 교회들이 열심히 전도해서 모은 교인들이 수평이동을 통해 대형교회로 옮겨진 결과였습니다. 큰 교회들은 교인들을 관리하는 시스템을 잘 발전시켰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교회로 찾아오게 하는 데에는 실패한 셈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형교회의 급속한 성장의 이면에는 매년 수백 수천의 작은 교회가 문을 닫는 슬픔이 있어 왔습니다. 지금 한국사회는 기독교의 신뢰가 떨어지게 된 원인을 초대형교회의 성장제일주의가 야기한 현상들, 즉 물질만능주의, 상업주의, 개교회주의와 같은 메가처치 신드로움(mega church syndrome)에서 찾고 있습니다. MBC나 SBS의 기독교 고발도 이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특히 대형교회들은 성장제일주의의 선두주자들입니다. 이 교회들은 교인들이 교회생활을 열심히 잘 하도록 훈련시키는 제자훈련 프로그램 덕분에 크게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프로그램에는 신앙생활의 긴장은 있어도 십자가는 찾기 어렵습니다. 고난이 있어도 예수님처럼 스스로 선택한 고난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신앙 안에서의 행복한 삶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잘 짜여진 훈련시스템이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모습을 보고 상업주의라는 말까지 생겼습니다. 또 대형교회는 교인들을 세상 속으로 내 보내지 않습니다. 교회가 교인들이 원하는 모든 프로그램을 다 제공하기 때문에 교인들이 교회 밖으로 나갈 이유도 없습니다. 그래서 원튼 원치 않든 개교회주의가 되고 맙니다. 또 기독교의 모든 중요한 재정부담을 초대형교회들이 하다보니 초대형교회는 본의 아니게 교회권력이 됩니다. 그리고 아무도 이 초대형교회의 비위를 상하게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초대형교회의 재력이 한국교회를 지배합니다. 그러나 지나간 70년대에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한 것은 제자훈련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수백, 수천의 교회 젊은이들이 독재와 싸우다가 감옥 가는 모습을 보고 예수 믿으면 저렇게 강해지는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기독교를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생각하고 교회로 몰려 들어왔습니다.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70년 대에는 자기 교회에 매주일 열명 씩 새 신자가 자기 발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전도해도 매주 한 명정도 새 신자가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많은 교회가 열심히 제자훈련을 하는데도 한국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교회에서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 모습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초대형 교회의 모습은 자기들끼리 安住하고 自足하는 모습뿐이었습니다. 70년대와 같은 감동이 없다 보니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라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게 되고 또 그래서 교회로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초대형 교회들은 한 편으로 한국교회의 모델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 모든 문제점의 진원지라는 이중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교회는 기로에 서 있습니다. 계속 대형교회 중심의 성장제일주의로 갈 것인가 아니면 성장제일주의가 더 이상 한국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함을 절감하고 크게 방향전환을 할 것인가의 기로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달을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도 예수님처럼 살고자 애쓸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초대형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교회의 대국민 이미지가 크게 바뀔 것입니다. 또 그렇게 되면 지나간 70년대의 ‘기적적인 성장’이 재현될 수 있습니다. 2.
그런데 만일 메가처치가 한국교회를 대표하지 않게 된다면 누가 한국교회를 대표하게할까? 저는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는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의 싸이즈가 교회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의 크기가 교회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라는 생각이 바로 성장제일주의인데, 바로 이 생각 때문에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해졌습니다. 지나간 70년대에는 예수님처럼 십자가를 지고 고난 당하는 교회들은 성장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성장은 교회를 평가하는 절대적인 기준이 될 수 없었습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목사님들이 교인들의 비위를 맞추는 설교만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교회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을 수 있었고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발로 교회를 찾아온 점이 바로 그 증거입니다.
누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하는가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특별히 작은 교회를 주목해 야 합니다. 그렇다고 작은 교회들이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은 교회도 큰 교회와 똑같이 성장제일주의라는 병에 감염되어 있습니다. 다만 작은 교회는 치유가 쉽습니다. 회개와 결단이 쉽습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 힘들었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쉽게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강도만난 자를 지나쳤지만 사마리아인은 참된 이웃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는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부름 받았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작은 교회를 美化해도 안 되지만 주눅이 들어도 안 됩니다. 교회의 자립여부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들이 연대해서 한국교회를 새롭게 바꾸는 일에 나서야 합니다. 작은 교회들이 가장 쉽게 예수님처럼 사는 교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은 작은 교회들만의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먼저 작은 교회들이 나서야 합니다. 그러면 그 대열에 함께 서는 중형교회, 대형교회들이 반드시 생길 것입니다. 또 초대형교회들 중에서도 반드시 그런 교회가 나와야 합니다.
3.
초대형교회가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심각하게 제기시킨 사례가 바로 사랑의 교회 건축 件입니다. 한국교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교회로 평가되어 온 사랑의 교회가 대법원 앞에 2천억원짜리 교회를 짓는다고 했을 때 수많은 기독교인이 이 뉴스를 충격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도 별 수 없구나 하는 개탄의 목소리가 도처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초대형교회들이 과연 한국교회의 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하는 심각한 질문이 제기되었습니다. 사랑의 교회가 제기한 토론은 아직도 진행중입니다. 우리가 비판해야 할 대상은 메가처지 신드로움이지, 메가처치가 아니라는 온건론과 메가처지 신드로움에 사로잡히지 않은 메가처지는 없다는 과격론이 아직도 대립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으로 보면 온건론이 옳지요. 교회가 크든 작든 상관없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면 되는 것이지, 교회가 크다는 이유로 비난받아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현실 속에서는 과격론이 더욱 설득력을 갖는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 메가처치에 대한 분석이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대부분의 신학자들이 메가처지 비판에 적극 나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메가처치에 찍히면 살아남기 어렵다는 두려움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만큼 메가처치는 재력으로 한국교회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메가처치가 돈을 내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되는 일이 없습니다. 이는 마치 삼성 등 초대형 기업이 돈을 내지 않으면 되는 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명성, 사랑의 교회, 여의도 순복음교회 역시 무소불위의 힘을 휘두르고 있습니다. 재력이나 동원력 만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점은 막강한 인적 네트워크, 정치적 영향력입니다. 그래서 “과연 메가처치 신드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운 메가처치가 있을 수 있는가”하는 질문이 심각하게 제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는 아직도 메가처치 신드로움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믿음을 한국교회에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의 교회는 ‘메가처지 신드로움’으로부터 자유로운 ‘메가처지’가 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은 한국교회 전체와 연관된 답변이기 때문에 한국교회 전체에 대한 평가와 반성의 결과로 나와야 합니다. 그리고 사랑의 교회가 이 문제에 대해 정말로 바른 대안을 제시한다면 그 대안은 한국교회를 살리는 결정적인 대안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최소한 다음 세 가지는 꼭 그 대안에 포함되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첫째로 <사랑의 교회>는 돈으로 한국교회를 좌지우지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사랑의 교회>가 무서워서 사랑의 교회를 비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나와서는 안 됩니다. 사랑의 교회는 예수님처럼 자기를 비워 종의 모습을 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모든 일을 자기가 하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자기교회 헌금은 전부 자기가 쓰겠다는 생각도 버려야 합니다. 둘째로 <사랑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을 섬기고 전도하는 일은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합니다. 이일은 작은 교회가 훨씬 더 잘합니다. <사랑의 교회>는 교회예산의 상당 부분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쓰겠다고 발표했습니다만 이것만으로는 메가처치 신드로움은 극복되지 않습니다. 이 모습은 모든 것을 <사랑의 교회>가 하겠다는 욕심의 표현이고 사랑의 교회의 권력의 확장을 의미할 뿐입니다. 이러한 점을 극복하려면 <사랑의 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의 복지와 선교를 위해 사용하려고 생각했던 재정들을 전부 작은 교회에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돈을 작은 교회에 나누어주는 일까지도 제3의 기관에 맡겨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작은 교회가 성장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더라도 시간이 걸려서 수평이동을 통해 다시 큰 교회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 번째로 사랑의 교회는 교회의 재정장부를 전부 공개해서 세상사람들의 비판을 받겠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 진정으로 존경받는 교회가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사랑의 교회가 진정으로 감동적인 모습을 보이면 다른 교회들도 다 사랑의 교회를 따를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사랑의 교회는 본연의 역할을 다 감당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4.
2013년 부산에서 WCC 총회가 개최됩니다. 이 총회는 정말로 중요합니다.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약 6억의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교회지도자 6천명이 2주간 한국에 머물게 됩니다. 그런데 지금 보수교회는 WCC 반대운동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기독교 안에서 WCC 찬반토론이 한창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WCC를 놓고 찬반토론을 할 때가 아닙니다. 도대체 한국교회가 WCC 총회에 세계교회 지도자들에게 무엇을 보여줄 것인가를 고민해야 합니다. 만일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특별히 보여줄 것이 없다면 이번에 한국에서 WCC 총회를 개최할 특별한 의의가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한국교회는 세계교회에 무엇을 보여줄 수 있을까? 제 머리에는 떠오르는 것이 없습니다. 명성교회, 사랑의 교회와 같은 초대형교회가 자랑거리가 될 수 있을까? 오히려 WCC지도자들은 뒤로 흉을 보면서 성장제일주의가 가져온 문제점들을 보고싶어할 것입니다. 그러면 반대로 진보교회가 내세울 만한 것이 있는가? 그것 역시 없는 것 같습니다. 진보교회는 북한인권문제에 대해서조차 침묵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과도하게 이명박 대통령 규탄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진보교회는 이념의 덧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WCC총회를 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한국교회는 새로운 기독교운동을 통해 세계교회에 보여줄 것을 찾아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과거의 역사만 우려먹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3년을 정말로 값어치 있게 사용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독교운동은 어떤 것이 되어야 하나? 첫째로 새로운 기독교운동은 예수그리스도만이 우리를 구원하신다는 복음주의적 신앙관에 굳게 서 있되, 신앙적 확신이 부족한 기독교인들도 함께 포용해야 합니다. 신앙적으로 미흡한 점은 성령께서 잘 해결하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나치게 바리새적 분리주의자가 되면 안 됩니다. 둘째로 새로운 기독교운동은 복음적 신앙의 토대 위에서 예수님처럼 살고자 분투하는 운동이면서 동시에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운동이어야 합니다. 이미 한국교회는 이러한 역사적 경험을 갖고 있습니다. 일제시대 삼일운동 당시의 한국교회가 그러했고, 70년대의 한국교회가 그러했습니다. 스스로를 희생시키며 고난의 길을 택했습니다. 지금은 그때와 상황이 크게 다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섬기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셋째로 한국교회를 하나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보수와 진보가 만나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가 이러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국교회가 세계교회를 향해 보수와 진보의 하나 됨을, 로잔느와 WCC의 하나 됨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넷째로 마지막으로 이 운동은 우리의 죄를 참회하는 운동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의롭기 때문에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죄를 절실히 깨닫기 때문에 회개운동을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최근 두 개의 움직임이 기독교 내에서 있었습니다. 하나는 에큐메니칼 운동진영에서 있은 그리스도인 선언 발표이고 또 하나는 WCC반대 대책위원회 결성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개의 움직임은 각기 자기중심적인 움직임일 뿐 한국교회 전체를 하나 되게 만들겠다는 움직임이 아닙니다. 앞으로는 이러한 파당성을 극복해야 합니다.
5.
그러면 누가 새로운 기독교운동의 주체가 되어야 하나? 나는 작은 교회들이 주님 앞에 나와 그동안의 죄를 고백하고 예수님처럼 살 것을 결단하면서 이 운동을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작은 교회가 복이 있습니다. 작은 교회가 도덕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우월해서가 아닙니다. 작은 교회가 회개와 결단이 쉽기 때문입니다. 나는 특별히 <나눔과 기쁨>을 주님께서 이일에 부르셨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눔과 기쁨>의 나누미활동가의 숫자가 3천명을 넘어섰습니다. 이 3천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차상위 계층을 섬기고 돌보면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아픈 사람을 고쳐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또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정확하게 예수님께서 2천년전에 갈릴리에서 하신 일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결단을 가지고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나서야 합니다. 지금은 나누미목사님들의 숫자가 3천명이지만 이 규모는 2010년 내로 6천명까지 늘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2011년 내로 1만명으로 늘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1만명이 정말로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결단을 한다면 우리는 세상 속에서 정말로 큰 파문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나아가 2012년까지 나누미의 숫자가 2만명으로 늘어난다면 그 때는 정말로 엄청난 역사를 이룰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2013년 WCC총회 때에는 <나눔과 기쁨>이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소개할 좋은 사례가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나누미가 열심히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면 반드시 그 나누미 목사님이 속한 교회가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점이 그동안의 <나눔과 기쁨>의 경험입니다. 소외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나누미 목사님의 사랑의 손길과 만난 후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자신이 버림받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분은 교회의 초청에 반드시 응하게 되어 있습니다. 왜 그동안 전도가 잘 되지 않았는가? 사랑의 기적이 체험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면서 입술로 전도를 했지 사랑의 실천으로 전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눔과 기쁨>이 처음 출범예배를 가졌을 때 돌아가신 김준곤 목사님께서 문준경전도사님 예를 들으시며 설교를 하셨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은 죽도에서 병들어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거지들을 위해 “대신거지” 노릇을 했습니다. 그래서 아침밥을 짓는 집마다 돌아다니며 누룽지를 얻어다 죽을 끓여 병든 거지들을 돌보았습니다. 문준경전도사의 이 모습을 보고 섬안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전 주민이 예수를 믿은 것입니다. 왜 백프로 예수믿는 사회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 목사들이 문준경 전도사님처럼 살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백 프로 예수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눔과 기쁨>은 앞으로 온 국민이 예수 믿게 되는 날이 반드시 올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은 예수님처럼 살기 위해 분투하는 모임입니다. 매일매일 반성하고 결단하고 헌신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습니다. 민간사회안전망, 반찬나눔운동, 쓰지 않는 물건 모아 나누기, 소비자협동조합, 의료협동조합, 지역아동센터, 다문화센터, 요양보호사파견센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통해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교회가 만들자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사들이 이렇게 살았더니 교회가 크게 부흥하더라는 경험을 세계교회에 보여주자는 것입니다. 6.
특별히 작은 교회들은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작은 교회에 맡기셨다는 사명을 자각해야 합니다. 일전에 큰 교회들이 <한국교회 희망연대>를 만들어 조선족 돕는 행사도 하고 노숙자를 돕는 행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족 동포들이 그 행사에 가서 오리털 잠바를 받아왔는데 고맙다는 생각은 없이 당연한 것처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은 작은 교회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이 독거노인을 찾아가 먹을 것을 나누고 말동무를 하고 발안마를 하면 그분들은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큰 교회의 프로그램에는 스킨쉽에서 오는 감동이 없습니다.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고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와 큰 교회는 역할 분담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작은 교회의 몫이어야 합니다. 이것까지 큰 교회가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작은 교회 목사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수평이동을 해서 큰 교회로 갑니다. 저는 수평이동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왜 그동안 큰 교회가 계속 성장했는데도 지난 십년간 14만명이나 감소했는가? 그 이유는 교인들이 큰 교회로 수평이동하면서 매년 3천교회씩 작은 교회가 문을 닫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에는 작은 교회 목사님의 고통과 恨을 잘 몰랐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서울조선족교회가 평안하면 저 역시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눔과 기쁨> 상임대표가 되어 작은 교회 목사님들과 접촉하면서 그분들의 아픔을 알고 나서는 제가 그동안 얼마나 個교회주의에 빠져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작은 교회 목사님은 열심히 주일학교를 키웠는데 학생들이 인근 큰 교회의 하기성경학교 행사에 참석하더니 주일학교 학생의 삼분지 이가 옆 교회로 옮겨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님은 억장이 무너집니다. 어느 교회는 셔틀버스를 작은 교회 문 앞에 세워놓고 교인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그것도 후라이펜을 판촉물로 주면서. 그러면 작은 교회 목사님은 분노에 찬 눈으로 큰 교회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전에는 큰 교회에서의 예배를 즐겼습니다. 큰 교회에서 예배를 보면 참으로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의 아픔을 알고부터는 큰 교회에서 예배 보는 것이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잘 아는 목사님이 서울근교에 교회를 세웠는데 교회가 급속성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축하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교회 주변의 수십 개 작은 교회가 문을 닫았겠구나 하는 생각만 났습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의 갈등문제는 한국교회 최대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큰 교회는 작은 교회와 共生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전도하는 일은 작은 교회에 맡기고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국가적인 과제나 식자층과 中上層에게 전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큰 교회가 작은 교회와 일을 나누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일반사회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는 襟度(금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은 반도체, 선박, 자동차, 제철, 항공기 등의 분야에만 진출하고 생필품 제조업에는 진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중소기업의 몫입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에게도 살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역할분담이 없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와 큰 교회 사이의 갈등이 매우 심각합니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 놓고 있습니다. <나눔과 기쁨>이 작년부터 전국적인 규모로 <반찬나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극빈자들이 밥해 먹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반찬은 먹거리를 사서 조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 목사님들이 매주일 일주일분 반찬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돌리니까 그분들이 너무도 좋아 했습니다. 이를 보고 <나눔과 기쁨>은 이 사업을 전국화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반찬나눔사업을 시작한지 1년4개월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전국 십여개 도시에서 1만개의 반찬 도시락이 매주일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반찬나눔사업이 무엇보다 좋은 점은 큰 교회가 만찬을 만들고 작은 교회가 반찬을 나누는,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의 共生 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반찬나눔 사업을 통해 작은 교회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고 또 이 네트워크가 민간사회안전망활동(지역에서 정기모금을 하여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운동), 재활용센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나누미 목사님들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민간사회안전망 활동을 하게 되면 반찬나눔사역도 1만개에서 2-3만개로 곧 늘어나게 됩니다. 이런 식으로 발전하면 교회가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꿈은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리고 교회는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고 다시 부흥의 계기를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의 가장 큰 성과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깨달음입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氣가 살아난 것입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면서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한 점입니다. 사실 세상사람들은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지 않는데 오히려 우리들 자신이 그렇게 생각해 왔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대형교회로부터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세상사람들은 오히려 작은 교회 목사님의 몸짓 하나에서 감동을 받습니다. 그래서 우리들 자신을 가로 막고 있었던 것은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작은 교회 목사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한다는 자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서 수백, 수천명의 작은 예수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7.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려면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 뿐만 아니라 나라와 민족의 희망이 되는 일도 해야 합니다. 과거에 한국교회가 독립운동에 앞장서고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것처럼 지금의 시대에 맞는 민족적 과제 해결에 앞장서야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무엇이 민족적 과제인가? 선진화와 통일입니다. 그런데 선진화라고 해서 경제선진국만 생각하면 안 됩니다. 경제선진국과 동시에 생태선진국, 복지선진국, 정신선진국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선진화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 뿐입니다. 브라질, 알젠친, 체코 등 많은 나라가 선진국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주저 앉았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이 되려면 선진화를 위한 개혁에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사회를 보다 효율적이고 경쟁적인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형평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진화를 위한 개혁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화를 위한 세력이 결집되어 反선진화 세력을 강력하게 제압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진화를 위한 세력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기독교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이 세력의 결집이 불가능합니다. 제가 그동안 시민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지금의 시민단체들은 다 좌편향이 되어버려 이들 안에서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세력이 새롭게 결집되지 않으면 선진화세력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이 생각은 저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제 친구 중에 박세일교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불교도입니다. 한번은 박교수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석아. 나는 불교이지만 불교에게 기대할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기독교에게 달린 것 같다. 기독교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네가 기독교운동을 하면 좋겠다.” 꼭 그 친구의 말 때문만은 아니지만 저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사회책임>이라는 단체를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저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 책임이 기독교인의 어깨 위에 놓여 있음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8.
선진화/통일세력이 제일 먼저 할 일은 무엇인가? 그것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친북좌파세력과 단호하게 맞서는 일입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친북좌파세력이 우리나라에 강력하게 존재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극우세력이 진보세력을 향해 메카시즘적인 공격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북한이 망하기 직전인데 무슨 친북좌파가 있겠냐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맥아더동상을 철거하려는 세력이 수천 명이 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제가 나라걱정에 밤잠을 자지 못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도대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는 세력은 어떤 세력입니까? 인천상륙작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김일성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세력입니다. 그야말로 똑 떨어지는 친북좌파입니다. 그래서 맥아더동상철거사건은 우리사회에서 친북좌파가 자기의 실체를 뚜렷하게 국민 앞에 드러내 준 사건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후 이들 세력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전교조, 민노총, 민노당, 전농, 한총련, 범민련, 통일연대, 민중연대, 진보연대 등 3-40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직화된 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시민단체, 노조, 언론, 정치권, 청와대 등 각계에 침투하여 나라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정말로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이들과 맞서 싸우면 사람들은 저를 꼴통보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처럼 이들과 싸우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내게 애국심이 있다면 꼴통보수 소리를 듣을 것을 각오하고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친북좌파와 싸우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이들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에게 보수로 찍혔습니다. 저는 열린우리당을 향해 왜 친북좌파들과 손을 잡는가하고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친북좌파의 표까지 구걸해서 정권을 쥐려고 한다면 나는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 지난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했나? 저는 두 가지 이유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는 정권이라는 신뢰를 국민에게 주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열린우리당이 집권을 하면 친북좌파가 발호하면서 나라가 위기에 빠질 것을 국민이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가 잘해서가 아니라 반사이익 때문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맥아더동상 철거사건 때 앞장섰던 바로 그 인물들이 광우병 촛불시위때 다시 앞장섰습니다. 광우병촛불시위는 자연발생적인 시위가 아닙니다. 친북좌파들의 치밀한 연출에 의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광우병촛불시위는 정말로 불행한 사건입니다. 이 시위만 없었어도 우리나라에서 친북좌파가 뿌리 뽑힐 수도 있었습니다. 이명박씨가 대선에서 당선된 후에 좌파진영 안에서 큰 반성이 있었습니다. 친북좌파들 때문에 선거에서 졌으니 친북좌파와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우선 민주당은 가장 우파적인 손학규씨를 대표로 뽑았습니다. 민노당에서는 심상정, 노회찬의원이 북한 김정일을 추종하는 세력과는 같이할 수 없다며 민노당을 탈당해서 진보신당을 창당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갔더라면 진보적인 시민단체들 중에 친북좌파와 선을 긋는 단체들이 많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때 광우병 촛불시위가 터지고 친북좌파들이 다시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시민단체들은 다시 친북좌파들 주위에 가서 둘러리를 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진보세력이 친북좌파와 선을 긋는 일은 다시 요원해 졌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 상황에서 단호하게 바른 말을 해야 합니다. 친북좌파와 그 동조세력이 나라를 흔들면 이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국적인 애국운동을 조직화해야 합니다. 특별히 지금 천안함 침몰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우리 국민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습니다. 47명의 희생이 헛되지 않으려면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대응해야 합니다. 무력보복까지는 할 수 없더라도 무력보복보다 더 혹독한 보복을 해야 합니다. 우리 국민이 철통같이 단결하여 나라를 새롭게 변화시켜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전교조와 같은 김정일 추종세력이 더 이상 한국사회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사실 이런 친북좌파세력은 이 나라 역사 속에서 진작에 정리되었어야 했던 세력입니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기필코 민주당, 진보신당, 진보지식인들이 친북좌파 세력과의 관계를 끊게 해야 합니다. 이러한 결단은 일시적으로는 진보세력의 위축을 가져올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진보세력의 보다 큰 성장과 발전을 도모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나라가 한 단계 도약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국민 대단합 운동을 누가 만들어 낼 수 있을까? 지금 우리나라에서 이 일을 할 수 있는 세력은 기독교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앞장서서 전국의 약 50개 도시에서 <나라사랑범국민운동>을 조직하는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눔과 기쁨>도 이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합니다. 저는 시민운동과 기독교운동은 특정정당을 지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탈선입니다. 저는 과거에 경실련운동을 하면서 노무현정권, 김영삼정권, 김대중정권 하에서 한 번도 특정정당을 지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정권 하에 들어와서는 도저히 중도의 입장을 견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나라당을 지지했습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지지한 것이 아니라 친북좌파세력과 연대하는 정치세력을 반대하다보니 한나라당 지지가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시 과거의 중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민주당이 전교조, 민노총, 범민련, 한총련과 같은 김정일 추종세력과 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하면 저는 즉시 한나라당 지지를 중단하고 정치적 중립의 길을 택할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독교는 결코 김정일세력과 양립할 수 없습니다. 평양에 있는 봉수교회나 칠골교회는 전부 가짜교회이고 교인들도 전부 가짜입니다. 지시에 따라 교회에 출근하는 노동당원들입니다. 북한의 주민들은 성경책을 소지하고 있다가 들키면 정치범수용소로 가야 합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김정일 추종세력 혹은 그들과 연대하는 정치세력과 단호하게 선을 그어야 합니다.
9.
기독교선진화 세력이 관심 가져야 하는 문제에 북한인권문제가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중요한 치적의 하나가 對北정책 정상화 노력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김정일 비위맞추기와 퍼주기로 가면 안 됩니다. 국제공조에 의한 압박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점진적으로 인권을 개선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북한을 붕괴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한편으로 북한인권을 개선해야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서 북이 핵을 폐기할 때까지 북을 계속 압박해야 합니다. 그래서 북한이 최소한 미얀마 수준은 되게 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지난 정권의 퍼주기, 비위맞추기에 길들여진 북한으로서는 이명박 정부의 상호주의 정책에 쉽게 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정기간 동안 납북간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합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견뎌야 합니다. 더욱이 천안함 침몰사건이 북한의 소행으로 드러나고 있는 만큼 남북 상황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잘못을 시인하고 재발방지 약속을 할 때까지 우리는 최고수준의 압박을 가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한국교회가 특별히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중국을 비판하는 일입니다. 한국 교회는 중국정부가 탈북난민을 북한에 강제송환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금년 11월 G20 정상회의때 대규모 집회를 통해 중국을 압박해야 합니다. 둘째는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입니다. 북한동포들이 굶어죽지 않도록 돕는 일은 한국교회의 의무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북한이 천안함 침몰에 대해 사과조차 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는 김정일 정권에게 식량을 보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두만강 변에서 탈북자나 조선족을 통해 식량을 지원해야 합니다. 이 방법은 그동안 두만강에서 해 온 방식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쌀 지원이 김정일 체제를 강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전달되도록 해야 합니다. 10.
그런데 기독교사회책임과 같은 운동은 사실은 보수적인 운동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수운동으로 비쳐지는 것은 우리나라 좌파세력의 잘못 때문입니다. 좌파들이 북한인권문제와 친북좌파세력에 대해 침묵하고 있어서 북한인권 문제를 제기하고 친북좌파를 비판하면 보수로 분류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운동은 때로는 보수로, 때로는 진보로, 때로는 중도로 비쳐질 수 밖에 없습니다. 다만 우리는 세상사람들에게 어떻게 비쳐지는가에 개의하지 않고 양심이 명하는 대로, 성경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기독교인으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사셨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에 용산참사를 겪으면서 신도시개발, 재개발, 뉴타운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이 문제 해결에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신도시개발, 재개발을 하면 그 지역의 세입자들, 저소득층 주민들은 거의 다 떠나야 합니다. 서울시 길음 뉴타운의 경우 원주민과 세입자가 재개발 후 재정착을 한 비율은 17%에 불과하고 나머지 83%는 전부 내쫓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전부 내쫓기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선진국형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싹쓸이로 철거한 후 재건축하는 방식은 반드시 주택가격을 상승시켜 대부분이 내쫓기게 되므로 원주민의 재정착을 전제로 한 도시재생 방식으로 개발방식을 바꾸어야 합니다.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이 방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지요. 또 이러한 전환이 있어야 교회도 살 수 있습니다. 신도시로 개발되는 김포지역의 경우를 보면 김포지역이 신도시개발지역으로 지정된 후 60여개의 임대교회는 이사비용만 받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자기 건물이 있는 23개의 교회는 보상가가 시세의 60% 밖에 되지 않아 그 돈으로는 보상가의 네 배나 되는 종교부지를 구입하지 못했습니다. 겨우 2-3개 교회가 빚을 내어 종교부지를 구입했지만 그나마도 건축비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자립교회는 임대교회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원주민과 세입자의 재정착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도시개발을 하려면 정부예산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신도시가 되면 재산세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정부예산이 미리 투입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정부예산은 없이 개발이익 만으로 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자체를 이제는 배격해야 합니다. 작년 일년 동안 기독교사회책임은 이 문제를 가지고 일곱 번이나 도심에서 시위를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기총에 재개발문제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재개발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에 특별히 한국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11.
교회는 세종시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종시로 수도가 분할되면 안 된다는 점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을 보더라도 대통령집무실, 국회, 행정부가 반경 3-4km이내에 밀집해 있습니다. 對面협의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리나라 행정부처의 일부가 과천에 있는 것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9부2처2청과 국무총리가 세종시로 가는 것은 엄청난 행정비효율을 야기시키므로 반드시 막아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세종시 수정안이 너무도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정안으로 국론이 모아지지 않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 중에 단 한명도 공개적으로 수정안을 지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청와대가 그동안 박근혜, 이회창씨에 대해 큰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잘못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커다란 승부수를 두지 않으면 이 문제를 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민투표는 해답이 아닙니다.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친이계와 친박계는 사생결단으로 싸우게 되어 투표 후에는 分黨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승부수는 획기적인 지방분권이어야 합니다. 원래 이명박대통령이 서울시장시절에 수도분할을 반대하면서 진정으로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인구분산을 실현하려면 수도분할을 할 것이 아니라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행정부처이전을 백지화하기에 앞서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치계획권, 조세권, 입법권, 교육권, 경찰권 등을 전부 지방정부에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세종시로 가게 되어 있는 9부2처2청의 업무가 지방정부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종시로 행정부처가 이전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유선진당은 자기들의 공약인 강소국연방제가 실현되었기 때문에 행정부처 이전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획기적인 지방분권처럼 중요한 개혁이 없습니다. 평상시에는 기득권세력의 저항 때문에 절대로 할 수 없는 개혁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당이 쪼개질 상황이라면 이를 막기 위해서도 여당은 이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정부여당 내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지자체 선거가 끝나면 지방의 사회세력들이 지자체 장들과 함께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촉구하는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어차피 4년제 중임 대통령제 때문에 개헌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 기회에 지방분권도 실현해야 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하려고 하지 않으면 기독교운동이 지방분권의 실현에 앞장서야 합니다.
12. 그런데 기독교는 이명박 정부도 비판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人事를 잘 못하고 대동단결을 못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회창, 박근혜 세력과 힘을 합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했습니다. 둘째로 과거 노무현 정부 하에서 좌파들이 모든 것을 독식했다고 해서 이명박 정부 역시 모든 것을 우파가 독식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됩니다. 좌파들도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할 때에는 그들과 공존해야 합니다. 셋째로 특별히 이명박 정부는 시민사회에 대한 관심이 없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전부 시민운동을 파트너로 삼아 국정을 운영한데 반해 이명박정부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시민단체들을 지원하거나 키울 생각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명박정부에 대한 비판적 지지세력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극단적인 반대와 극단적인 지지만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우리는 특별히 4대강 살리기에서 극명하게 보고 있습니다. 4대강 정비는 꼭 해야 하지만 그 실행은 반대론자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면서 합리적인 길을 찾아야 한다는 ‘비판적 지지’ 운동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비판적 지지세력을 육성해야 합니다. 기독교는 이러한 입장을 취함으로써 우리국민으로부터 진정한 애국세력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당장의 인기에 연연하거나 당장의 비판을 염려하지 말고 나라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국민은 기꺼이 기독교의 품안으로 들어 올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58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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