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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0-04-06 16:38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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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2,165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왜 70년대에 교회가 크게 성장했나?

  한국교회가 지금 쇠락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가 다시 부흥할 수 있을까하는 문제가 한국교회의 최대과제입니다. 이 과제를 풀어가려면 지난 120년의 한국교회의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쇠락의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하여 올바른 대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특별히 지나간 70년대의 십년동안 어떻게 해서 한국교회가 2.4배나 성장했는지를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70년대의 폭발적 성장의 원인을 빌리그래헴 전도대회, 익스플로어74 등과 같은 대형 복음주의 대회의 영향으로 보는 시각이 있습니다. 부분적으로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저는 그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근본적인 원인은 당시의 한국인들이 교회를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3년전 강남교회의 전병금목사님이 한기총 정책협의회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지나간 70년대에는 자기 교회에 자기 발로 찾아온 새 신자가 매주일 열 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새신자가 매주일 한 두명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도 열심히 전도해서 온 분들이지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시 한국교회는 민주화운동, 인권운동에 앞장서면서 교회가 우리국민에게는 민족의 희망으로 비쳐졌습니다. 수천명의 교회 젊은이들이 감옥가는 것을 보면서 신앙이 없으면 안 되겠구나 하고 사람들이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때는 과거 3.1운동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인구의 1%밖에 되지 않는 기독교인들이 3.1운동에 앞장서는 것을 보면서 우리국민은 예수를 믿어야 나라가 독립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물밀듯이 교회로 들어왔습니다.
  70년대의 한국교회는 역사가 채 백년이 되지 않았던 때입니다. 이렇게 어린 교회에서 인권을 위해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감옥가는 것을 보면서 세계교회가 크게 놀랐습니다. 그리고 전 세계의 교회 대표들이 수없이 한국교회에 찾아왔습니다. 특별히 세계교회협의회는 한국교회에 대해 조사연구를 하고 나서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어떻게 백년도 되지 않은 교회가 한국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었는가를 분석한 보고서입니다. 그 보고서에 의하면 한국교회 내에 두 가지의 큰 축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제도교회 기구(eccleciastical institution)이고 다른 하나는 전위적인 기독교운동(avantgarde  movement)입니다. 제도교회 기구는 개교회-노회-총회-NCC 등 교회기구이고 기독교운동은 기독학생운동, 기독청년운동, 산업선교, 기독자교수운동, 인권목회자운동과 같은 운동이었습니다. 전위적인 기독교운동에 속하는 사람들은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고 독재와 맞섰고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감옥을 갔습니다. 반면에 교회기구는 이들로부터 자극을 받아 갱신을 하고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돕고 보호해주고 재정지원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도교회와 기독교운동이 서로 상대측에 자극과 도움을 주면서 훌륭한 보완/협력관계를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부의 탄압에도 버틸 수 있었고 민주화를 이루는데도 성공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점은 오늘의 한국교회를 분석하는 데에도 매우 큰 도움을 줍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의 한국교회는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지 못하는가? 그 이유가 기성교회와 노회, 총회, 한기총과 같은 제도교회 기구에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기성교회 기구는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큰 차이가 없습니다. 지난 70년대에도 일부 교회들은 문제가 많았고 대부분의 교회 목사님들은 다 견실한 목사님들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대부분의 목사님들은 다 경건한 삶을 살고 계십니다. 70년대에는 목회자들이 훌륭했고 지금은 형편없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큰 차이가 있다면 70년대에는 그 당시의 시대정신에 부합되는 훌륭한 기독교운동이 있었고 지금은 그런 기독교운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랬기 때문에 제도교회기구가 제대로 갱신되지도 못했고 또 시대상황에 바르게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기독교가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지 못했고 그 결과, 기독교가 쇠락하게 된 것입니다.

왜 교회가 쇠락의 길로 들어섰나?

  그렇다면 왜 70년대에 그렇게 빛났던 진보적 기독교 운동이 이제와서는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가? 저는 그 이유를 민중신학의 탓으로 돌리고 싶습니다. 지나간 7-80년대에 진보적인 기독교운동을 뒷받침한 신학은 민중신학이었습니다. 민중신학은 예수님이 갈릴리의 민중과 함께 어울리고 그들의 편에 서서 바리새, 사두개, 로마 등 기득권과 맞대결하다가 정치범으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들 기독교인들도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예수는 민중이라고 말합니다. 여기까지는 괜찮습니다. 그런데 민중신학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민중이 예수이고 민중의 부활이 예수의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이쯤 되면 이 주장은 교회의 전통적 입장을 벗어난 주장이 됩니다. 우리는 민중이고 민중이 예수이면, 우리는 곧 예수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독선에 빠져버립니다. 민중신학의 가장 큰 과오는 민중을 절대화한데 있었습니다. 사실 투쟁의 한 가운데서는 자기 자신을 절대화하려는 유혹에 빠집니다. 우리는 80%는 옳고 20%는 잘못되었다, 상대방은 80%는 틀렸고 20%는 옳다고 말하면 투쟁하기 어렵습니다. “상대방은 악마의 세력이고 우리는 정의의 세력이다.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주장해야 투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러한 유혹의 한 가운데에서도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입니다”라는 죄인됨의 고백을 잃어버려서는 안 되었는데 불행히도 민중신학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민중의 절대화 경향은 독재와 싸울 때는 큰 도움이 됩니다. 사물을 단순하게 도식화시켜 주기 때문에 의심없이 투쟁에 전념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지난 시기에 민주화운동은 온갖 흑백논리로 이념적인 무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흑백논리는 투쟁할 때에는 대오를 강고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었지만 독재를 무너뜨리고 민주화과정에 들어서서 변화된 상황에 신축성있게 대응하는 것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거꾸로 질곡으로 변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죄인이라는 생각이 없어지니 자기반성 능력도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실은 변화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자기자신이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모든 이유를 남의 탓으로 돌립니다. 전부다 미국과 노태우의 잘못입니다. 그리고 자기는 하나도 잘못한 것이 없습니다. 모든 것이 기회주의적 속성을 가진 시민들 탓이고 자기들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노태우 정권은 본질적으로 전두환정권과 하나도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 계속 화염병을 던지고 변혁론을 고집합니다. 결국은 얼마전까지도 민주화운동을 지지했던 국민이 이런 교조적인 운동권에 대해 식상해하기 시작하고 결국은 지지를 포기해버리고 맙니다. 결국 운동권은 우리사회를 민주화시킨 혁혁한 공로에도 불구하고 일반 시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맙니다. 그리고 고립화됩니다. 이것이 NCC를 중심으로 한 진보적 기독교운동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진보적인 기독교가 행한 또 하나의 잘못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독선적 태도입니다. 사실은 진보교회가 보수교회를 향해 “우리는 민주화운동을 하느라고 교회를 성장시키지 못했다. 그런데 보수교회는 그동안 교회를 크게 성장시켰다. 그러니 참으로 수고하셨다. 이제부터 서로 손잡고 한국교회를 부흥시키자”라고 말하였다면 보수교회는 기꺼이 진보교회의 지도성을 인정하고 그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하나로 통합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진보교회는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반대로 “전두환정권 하에서 조찬기도회를 하며 악한 권력에 빌붙었던 것을 회개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말하면 회개를 하지 않지요. 그래서 87년 민주화항쟁 이후 민주화과정에 들어서면서 한국교회가 하나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는데 한국교회는 이 기회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실은 한국교회 역사에서 이런 때가 한 번 더 있었습니다. 해방되고 나서 옥중성도가 출옥했을 때입니다. 그때 옥중성도는 손양원목사님처럼 처신했어야 했습니다. 손양원목사님은 바깥에 있는 목사들에게 “우리는 감옥 안에서 육체적으로는 힘들었으나 정신적으로는 자유로왔다. 그런데 당신들은 육체적으로는 자유로왔겠지만 정신적으로는 얼마나 힘들었는가? 그런데 양때들을 돌보느라고 너무도 수고하셨다. 이제부터 서로 힘을 합하여 교회를 부흥시키자”라고 말씀하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출옥성도들은 이런 입장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바깥에 있는 기독교인들에게 “우상숭배한 것을 회개하라”고 했지요. 그러면 회개하나요 안 하지요. 그래서 결국은 교회는 분열되었고 교회는 성장과 부흥의 계기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민주화 항쟁 이후 NCC와 한기총, 진보교회와 보수교회가 하나가 되었더라면 한국교회는 큰 부흥과 성장의 계기를 맞았을 것인데 불행히도 역사는 그 방향으로 가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독선적이었던 당시의 진보교회를 비판할 자격이 제겐 없습니다. 저도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으니까요. 한참 후에야 저는 잘못을 깨달았습니다.

  90년대의 시대정신은 시민사회의 활성화와 자율화였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꼭 필요한 일은 시민운동의 시대를 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진보적 기독교운동은 NCC진영내의 온건한 세력을 개량주의라며 내쫓았습니다. 당시 저는 진보적인 기독교 안에서 개량주의자로 매도되면서 내쫓겼던 사람입니다. 저도 청년시절에는 좌파였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가서 6년간 유학을 하면서 제가 우물안 개구리였음을 절감하고 사회주의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음을 절감했습니다. 그리고 귀국해서 후배들에게 내 생각을 피력하다가 그만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경실련이라는 시민운동을 새로 만들어서 시민운동의 시대를 여는데 앞장섰습니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저 같은 사람을 기독교운동이 포용을 해서 제가 기독교의 이름으로 경실련과 같은 운동을 전개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렇게 되었더라면 기독교는 90년대 이후에도 계속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렇게 흘러가지 못했고 90년대 이후에는 우리민족의 희망은 더 이상 기독교가 아니라 시민운동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는 보수와 진보로 분열되어 어느 쪽도 우리 민족의 희망이 되지 못했습니다. 90년대 이후 한국교회를 주도하는 일은 복음주의 교회가 하게 되었습니다만 그러나 복음주의 교회는 기독교운동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낼 역량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이 때문에 90년대부터 기독교는 쇠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시대정신에 맞는 기독교운동도 없고 제 기능을 하는 교회연합기구도 있지 못하면 교회는 갱신되지 못합니다. 그리고 각개전투를 하는 춘추전국시대가 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한국교회를 주도하는 일은 막강한 인적자원, 물적자원, 그리고 교섭력을 갖고 있는 초대형교회들이 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들 교회들은 황금만능주의, 상업주의, 이기주의로 비쳐집니다. 게다가 세습문제로 비난까지 받습니다. 그래서 초대형교회들이 언론과 안티기독교세력의 공격목표가 되었습니다. 초대형교회로 대표되는 기독교는 더 이상 국민에게 감동을 주지 못합니다. 그리고 대형교회와 작은 교회간의 갈등은 더욱 심화됩니다. 그러다 보니 한국교회는 지금과 같은 최악의 상황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교회가 다시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한국교회가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제일 중요한 일은 시대에 맞는 기독교운동이 등장해서 민족적 과제 해결에 앞장서는 일입니다. 과거에는 독립운동, 민주화운동, 시민운동이 시대적 과제였다면 지금은 선진화가 시대적 과제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경제선진국만을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경제선진국과 동시에 생태선진국, 복지선진국, 정신선진국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선진화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제까지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 뿐입니다. 브라질, 알젠친, 체코 등 많은 나라가 선진국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주저 앉았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이 되려면 선진화를 위한 개혁에 성공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사회를 보다 효율적이고 경쟁적인 사회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서도 사회적 형평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진화를 위한 개혁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선진화를 위한 세력이 결집되어 反선진화 세력을 강력하게 제압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진화를 위한 세력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을 것인가? 저는 기독교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이 세력의 결집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그동안 시민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지금의 시민단체들은 거의 다 좌편향이 되어 이들 안에서 생각을 같이 하는 사람을 찾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세력이 결집되지 않으면 선진화세력을 만들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은 저만의 생각이 아닙니다. 제 친구 중에 박세일교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친구는 불교도입니다. 한번은 박교수가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경석아. 나는 불교이지만 불교에게 기대할 것은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될 수 있는가의 여부는 기독교에게 달린 것 같다. 기독교가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니 네가 기독교운동을 하면 좋겠다.” 꼭 그 친구의 말 때문은 아니지만 저도 같은 생각이었기 때문에 <기독교사회책임>이라는 단체를 창립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저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기 위해 헌신해야 할 책임이 바로 기독교인에게 있음을 역설하고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면 선진화세력의 할 일은 무엇인가? 첫 번째는 대한민국을 부정하고 대한민국을 흔들려는 친북좌파세력과 단호하게 맞서는 일입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친북좌파세력이 우리나라에 강력하게 포진되어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나라의 극우세력이 진보세력을 향해 메카시즘적인 공격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지금 북한이 망하기 직전인데 무슨 친북좌파가 있겠냐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맥아더동상을 철거하려는 세력이 수천 명이 되는 것을 보고 너무도 놀랐습니다. 제가 나라걱정에 밤잠을 자지 못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도대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는 세력은 어떤 세력입니까? 인천상륙작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김일성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세력입니다. 그야말로 똑 떨어지는 친북좌파입니다. 그래서 맥아더동상철거사건은 우리사회에서 친북좌파가 자기의 실체를 뚜렷하게 국민 앞에 드러내 준 사건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후 이들 세력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전교조, 민노총, 민노당, 전농, 한총련, 범민련, 통일연대, 민중연대, 진보연대 등 3-40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직화된 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시민단체, 노조, 언론, 정치권, 청와대 등 각계에 침투하여 나라를 흔들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정말로 고민을 했습니다. 제가 이들과 맞서 싸우면 사람들은 저를 꼴통보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좀처럼 이들과 싸우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재향군인회와 같은 안보세력이 이들과 싸우는 것은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저처럼 과거에 좌파도 해보고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이 이들과 맞서야 젊은이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내게 애국심이 있다면 꼴통보수 소리를 듣을 것을 각오하고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은 친북좌파와 싸우는 것이라고 공개적으로 천명하고 그들과의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사람들에게 보수로 찍혔습니다. 
  저는 열린우리당을 향해 왜 친북좌파들을 비판하지 않는가고 항의했습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이 친북좌파에게 표를 구걸해서 정권을 쥐려고 생각한다면 나는 한나라당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왜 지난 대선에서 열린우리당이 참패했나? 저는 두 가지 이유였다고 생각합니다. 첫째는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 수 있는 정권이라는 신뢰를 국민에게 주지 못했습니다. 둘째는 열린우리당이 집권을 하면 친북좌파가 발호하면서 나라가 위기에 빠지게 될 것임을 국민들이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자기가 잘해서 보다는 이 반사이익 때문에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맥아더동상 철거사건 때 앞장섰던 바로 그 인물들이 광우병 촛불시위때 다시 앞장섰습니다. 광우병촛불시위는 자연발생적인 시위가 아닙니다. 친북좌파들의 치밀한 계획에 의한 작품입니다. 그런데 광우병촛불시위는 정말로 불행한 사건입니다. 이 시위만 없었어도 우리나라에서 친북좌파가 뿌리뽑힐 수도 있었습니다. 이명박씨가 대선에서 당선된 후에 좌파진영 안에서 큰 반성이 있었습니다. 친북좌파들 때문에 선거에서 졌으니 친북좌파와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우선 민주당은 가장 우파적인 손학규씨를 대표로 뽑았습니다. 민노당에서는 심상정, 노회찬의원이 북한 김정일을 추종하는 세력과는 같이할 수 없다며 민노당을 탈당해서 진보신당을 창당했습니다. 이대로 계속 갔더라면 진보적인 시민단체들 중에 친북좌파와 선을 긋는 단체들이 많이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광우병 촛불시위가 터지고 친북좌파들이 다시 운동의 중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보고 시민단체들도 다시 친북좌파들 주변에 가서 둘러리를 서게 되었습니다. 민주당도 조계사로 촛불시위 주동세력을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그리고 진보세력이 친북좌파와 선을 긋는 일은 다시 요원해 졌습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아직도 대단히 불안한 사회입니다. 언제 다시 민심의 동요가 있을 지 알 수 없습니다. 지난 노무현 前대통령의 자살때도 커다란 민심의 동요가 있었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연민의 情은 당연하지만 그러나 대통령의 자살을 美化한 것은 정말로 잘못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실패한 대통령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보수와 진보의 골을 크게 패이게 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때만 해도 중도가 설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盧정권 이후 우리사회는 완전히 보수와 진보로 갈라졌습니다. 이러한 대립의 일차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빈부의 양극화도 노무현 정권하에서 심화되었습니다. 盧대통령의 평준화 정책으로 경제가 성장하지 못했고 세계 평균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니까 실업이 증가했고 그 결과로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해졌습니다. 셋째로 남북관계도 아주 잘못되었습니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데도 비판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끌려 다녔습니다. 이러한 잘못 때문에 국민은 좌파정권을 심판했습니다.

  그래서 애국세력은 이러한 상황에서 단호하게 바른 말을 해야 합니다. 친북좌파와 그 동조세력이 나라를 흔들면 이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애국세력을 전국적으로 조직화해야 합니다. 이 일이 바로 기독교의 역할이어야 합니다. 

  저는 시민운동은 원칙적으로 특정정당을 지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시민운동의 탈선을 의미합니다. 저는 경실련운동을 하면서 노무현정권, 김영삼정권, 김대중정권 하에서 한 번도 특정정당을 지지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노무현정권 하에 들어와서는 도저히 중도 입장을 견지할 수 없었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한나라당을 공개적으로 지지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다시 과거의 중도 입장으로 되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려면 민주당이 전교조, 민노총, 한총련 등 친북좌파와 선을 긋고 이들의 지지를 얻어 정권을 탈환하겠다는 생각을 포기해야 합니다. 저는 민주당이 전교조, 민노총 등 친북좌파를 분명하게 비판한다면 즉시 한나라당 지지를 중단하고 정치적 중립을 선택할 것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선진화세력은 다른 한편으로 이명박 정부를 향해서도 할 말을 해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큰 잘못은 人事를 잘 못하고 대동단결을 못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회창, 박근혜 세력과 힘을 합해야 하는데 그것을 못합니다. 그리고 권력을 독식합니다. 이점은 반드시 시정되어야 합니다. 
  둘째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 북한인권, 반핵, 한미동맹 등의 원칙에서는 흔들림이 없어야 하지만 구체적인 정책의 문제에 있어서는 국민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을 때에는 양보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야당이나 좌파가 옳은 주장을 할 때에는 이를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합니다. 
  셋째로 그동안 노무현 정부 하에서는 좌파들이 모든 것을 독식했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하에서 거꾸로 우파가 모든 것을 독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것은 똑같은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 됩니다. 좌파들도 나라를 위해 좋은 일을 할 때에는 공존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전교조에 교육감을 내주지 말아야

  그런데 특별히 요즈음 한국교회가 관심을 갖고 꼭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전교조를 반대하는 교육감후보를 단일화하는 일입니다. 전교조를 지지하는 교육감 후보는 반드시 단일화되지만 전교조를 반대하는 후보는 항상 난립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후보단일화에 성공하지 않으면 경기도처럼 전교조교육감이 당선될 수 있습니다. 경기도에서는 좌파성향의 투표율은 40%였고 우파성향이 60%였지만 좌파는 후보가 단일화되고 우파는 후보가 난립하여 결국은 패배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후보난립을 막으려면 거물급 후보가 출마하여 다른 후보들이 스스로 포기하게 해야 하지만 거물급 후보를 출마시키는 일은 후보단일화보다 더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상태로 가면 교육감 선거가 위태롭습니다. 
  그러면 反전교조 교육감 후보를 단일화시키는 방안은 있는가? 지난 대선시기의 이명박-박근혜 씨의 후보단일화 과정처럼 하면 됩니다. 그래서 한나라당에 버금가는 초대형 단체를 만들어 그 단체의 회원들이 예비선거와 여론조사를 통해 후보를 단일화시키면 됩니다. 실제로 인터넷상으로 모바일 선거를 하는 것은 선거법에 전혀 저촉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지난 한달 동안 “反전교조 진영”은 초대형 NGO를 만드는 일에 합의하고 <바른교육국민연합>이라는 단체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공동상임대표로 이상훈장관, 김진홍목사, 최성규목사, 박영식 前총장, 김정숙 여협 회장, 인공스님을 모시기로 결정하였습니다.
  지금 서울에서는 30만의 회원을 갖는 단체가 되기 위해 힘을 쏟고 있습니다. (1) 약 3백개의 우파단체들과 학부모단체가 회원가입운동에 적극 나서고, (2)재향군인회, 자유총연맹 등의 단체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가입하고 (3) 기독교 등 종교계도 적극적으로 회원으로 가입하고 (4) 전교조를 반대하는 교육감후보들이 자신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회원가입운동에 앞장서도록 합니다.
  특별히 이 단체가 필요한 이유는 전교조와의 싸움때문입니다. 한 학교에 전교조 교사 3명만 있으면 학교장이 속수무책이 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전교조를 제압하려면 광역자치단체에 회원 수만명을 갖는 反전교조 단체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기필코 친북좌파의 핵심세력인 전교조를 몰아내야 합니다.

세종시문제와 획기적 지방분권문제에도 관심가져야 

  교회는 세종시문제에도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세종시로 수도가 분할되면 안 된다는 점은 너무도 당연한 상식입니다.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 선진국을 보더라도 대통령집무실, 국회, 행정부가 반경 3-4km이내에 밀집해 있습니다. 對面협의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우리나라 행정부처의 일부가 과천에 있는 것도 그리 좋은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9부2처2청과 국무총리가 세종시로 가는 것은 엄청난 행정비효율을 야기시키므로 반드시 막아야 할 일입니다. 
  이렇게 세종시 수정안이 너무도 당연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수정안으로 국론이 모아지지 않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진보진영에 있는 사람들 중에 단 한명도 공개적으로 수정안을 지지하는 사람이 없는 것도 놀라운 일입니다. 일이 이렇게 된 데에는 청와대가 그동안 박근혜, 이회창씨에 대해 큰 포용력을 발휘하지 못했던 잘못이 큽니다. 그래서 지금에 와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커다란 승부수를 두지 않으면 이 문제를 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국민투표는 해답이 아닙니다. 투표를 하는 과정에서 친이계와 친박계는 사생결단으로 싸우게 되어 투표 후에는 分黨으로 치닫게 됩니다. 그러면 누가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대통령의 승부수는 획기적인 지방분권이어야 합니다. 원래 이명박대통령이 서울시장시절에 수도분할을 반대하면서 진정으로 국토균형발전과 수도권인구분산을 실현하려면 수도분할을 할 것이 아니라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에 행정부처이전을 백지화하기에 앞서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실행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치계획권, 조세권, 입법권, 교육권, 경찰권 등을 전부 지방정부에 주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세종시로 가게 되어 있는 9부2처2청의 업무가 지방정부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종시로 행정부처가 이전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유선진당은 자기들의 공약인 강소국연방제가 실현되었기 때문에 행정부처 이전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획기적인 지방분권처럼 중요한 개혁이 없습니다. 평상시에는 기득권세력의 저항 때문에 절대로 할 수 없는 개혁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여당이 쪼개질 상황이라면 이를 막기 위해서도 여당은 이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아직 정부여당 내에서 이러한 움직임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지자체 선거가 끝나면 지방의 사회세력들이 지자체 장들과 함께 획기적인 지방분권을 촉구하는 운동을 시작해야 합니다. 어차피 4년제 중임 대통령제 때문에 개헌논의가 있어야 하는데 이 기회에 지방분권도 실현해야 합니다.
     
4대강 살리기와 이명박 정부의 실패 

  4대강 정비가 곧 4대강을 죽이는 것이라는 목소리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4대강 정비는 너무도 필요합니다. 해마다 강이 범람해서 우리국민이 받는 고통이 너무도 크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대강 정비 반대의 목소리가 이렇게 큰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지금 우리사회는 MB반대와 MB찬성으로 양분되어 있습니다. 사안의 옳고 그름은 따지지도 않습니다. 그리고 중간의 비판적 지지세력조차도 존재하지 않고 있습니다. 4대강 정비는 꼭 해야 하지만 그 실행은 반대론자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서 합리적으로 하자는 ‘비판적 지지’운동이 진작에 나왔더라면 지금처럼 반대목소리가 커지지 않았을 것인데 이점을 생각하면 정말로 아쉽습니다. 
  이명박정부의 특징은 시민사회를 국정의 파트너로 삼고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는 전부 시민사회를 국정의 파트너로 삼고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에게는 시민사회가 안중에 없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촛불시위가 큰 역할을 했을 것입니다. 촛불시위이후 정부는 시민단체의 돈줄을 끊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좌우를 가릴 것 없이 모든 시민단체가 경제적으로 빈핍해 졌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사회는 무조건적인 MB반대와 무조건적인 MB지지로 갈라졌습니다. 전통적인 시민단체들은 다 MB반대가 되고 우파단체들은 MB지지 켐페인에 동원되었습니다. 중간의 비판적 지지세력이 존재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시민사회를 홀대하고 국정의 파트너로 삼지 않은 점이 4대강 정비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대여론이 이렇게 커진 중요한 이유였다고 생각됩니다. 이제라도 정부는 비판적 지지세력을 육성하는 일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북한인권문제와 대북 인도적 지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이명박 정부의 중요한 치적의 하나가 對北정책 정상화 노력입니다. 이제는 더 이상 김정일 비위맞추기와 퍼주기로 가면 안 됩니다. 국제공조에 의한 압박을 통해 북한이 핵을 폐기하고 점진적으로 인권을 개선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북한을 붕괴시키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한편으로 북한인권을 개선해야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당근과 채찍을 함께 써서 북이 핵을 폐기할 때까지 북을 계속 압박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이 미얀마 수준의 인권유린국가가 될 때까지 계속 압박을 가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지난 정권의 퍼주기, 비위맞추기에 길들여진 북한으로서는 이명박정부의 상호주의 정책에 쉽게 부응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일정기간동안 납북간의 힘겨루기가 불가피합니다. 우리는 이 기간을 진득하게 견뎌야 합니다.
  이러한 이명박정부의 대북정책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해 교회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는 중국에 대해 압박을 가하는 일입니다. 한국정부는 중국과 대립할 수 없지만  교회는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중국정부가 탈북난민을 북한에 강제송환하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을 적극 전개해야 합니다. 특별히 금년 11월에 G20 정상회의가 있기 때문에 이때 대규모 집회를 통해 중국을 압박해야 합니다.
  둘째는 대북 인도적 지원활동입니다. 북한동포들이 굶어죽지 않게 도와야 합니다. 아무리 김정일 정권이 밉다고 해서 우리 동포들이 굶어 죽은 것을 방치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도와야 합니다. 한국에서 아무리 쌀을 보내더라도 그 쌀이 굶어 죽는 동포들에게는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이 명백해졌습니다. 쌀은 군대, 평양시민, 당간부, 군수공장에게만 가지, 일반주민에게는 가지 않습니다. 이점이 지난 십년간 탈북자들의 일관된 증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이들 탈북자들의 말을 따라야 합니다. 김정일 정권을 통해 식량을 보낼 때에는 옥수수가루를 보내야 합니다. 옥수수가루는 생명이 없기 때문에 酸化가 되어 두주일 밖에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옥수수가루는 반드시 서민들에게 배분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두만강 변에서 탈북자나 조선족을 통해 식량을 지원해야 합니다. 이 방법은 그동안 두만강에서 오랫동안 해 온 방식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쌀 지원이 김정일 체제를 강화시키지 않으면서도 굶주리는 주민들에게 전달되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방식은 한국정부가 할 수는 없기 때문에 민간운동이 해야 합니다. 

기독교가 가난한 사람을 돌보아야     

  기독교 선진화운동이 또 한 가지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은 경제위기로 고통 받는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제가 특별히 소개해야 할 단체가 있습니다. 그 단체는 <나눔과 기쁨>이라는 단체입니다. <나눔과 기쁨>이라는 단체는 동네 안의 교회, 학교, 기업, 병원, 식당, 점포, 주민 등 동네의 구성원들이 매달 얼마씩 돈을 모아 그 동네의 가장 어려운 차상위 계층(극빈자이나 자식이 있어 정부지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그런데 처음부터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이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었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거쳐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이 활동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독거노인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발 안마를 해주고, 병원을 함께 가고, 먹을 것을 주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하신 일이 바로 병자를 치유해주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일인데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예수님처럼 행동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니까 우리 동네에 훌륭한 목사님이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도움 받은 분도 교회에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교회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크게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삶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목회의 성공만을 추구했는데 이제는 삶의 목표가 예수님처럼 사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하니까 그곳에 엄청난 감동이 있고, 또 그렇게 되니까 교회가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아산시의 한 목사님은 교인이 20명이었는데 <나눔과 기쁨> 활동 후, 무료급식과, 발마사지 샵을 하면서 출석교인 150명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께 그동안 몇 명을 도왔는데 지금 몇 명이 교회에 나옵니까 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백명의 어려운 분들을 도와왔는데 2-3년이 지나니까 그중 70명이 교회에 나오더랍니다.
  안산시의 한 목사님도 <나눔과 기쁨>을 만나, 지역아동센터, 무료급식, 나눔가게, 알콜중독자 치유센터, 노인요양보호센터 활동을 하며 매월 천만원(물품포함)의 모금을 해서 차상위 계층을 도왔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교회자립은 물론이고 4층 건물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면서 <나눔과 기쁨>목사님들은 목회가 너무도 행복해 졌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각오가 중요하지, 교회규모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자기 목회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니까 어디 가서도 당당합니다. 큰 교회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니 다른 작은 교회 목사님들도 ‘나도 하겠다, 나도 하겠다’하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활동이 시작된 지 3년 반 만에 이 활동을 하는 목사님의 숫자가 재작년 말까지 1천3백명으로 늘어났고, 100억원을 모금해서 연인원 100만명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고 최근에는 반찬나눔운동을 하면서 참여하는 목사님의 숫자가 2천8백명이나 되었습니다. 
  왜 이렇게 <나눔과 기쁨>이 급성장을 하였나? 이 활동을 통해 교회가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나눔과 기쁨>성장법 혹은 <나눔과 기쁨>전도법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처럼 살면 반드시 감동이 있고, 또 감동이 있는 곳에 반드시 교회성장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제가 서울조선족교회 목회를 하면서도 절실히 느낀 점입니다. 조선족 목회를 하면서 저는 조선족이 강제추방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기한 단식을 6번이나 했습니다. 한번은 단식 17일째 되는 날 위출혈이 생겨 밑으로 피를 쏟고 입으로 피를 토하면서 졸도했습니다. 가까운 데 병원이 없었더라면 생명이 위험할 뻔 했습니다. 긴급수혈과 레이저수술 후 정신을 회복하고 단식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단식 23일째 되던 날 모든 요구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피를 쏟던 광경을 지켜 보던 조선족들이 제게 물었습니다. “목사님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왜 목사님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십니까? 목사님이 중국에 가서 정치인이 될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이해관계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까?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 “여러분이 한 달만 우리 교회에 와서 제 설교를 들으시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들이 한 달 후에 제게 와서 하는 말이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을 우리도 믿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도 쉽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을 우리도 믿겠습니다”라는 말을 또 한번 들은 적이 있습니다. 예장통합측 총회가 백주년을 맞으면서 초대교회 목사님의 후손들을 초청해서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 증조할아버지가 한국최초의 교회인 황해도 소래교회를 세우신 서경조목사님이시기 때문에 그 자리에 참석했었습니다. 그런데 이기풍목사님의 막내딸이 오셔서 아버지에 대한 증언을 하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제주도 선교를 할 때 주민들을 위해 목숨을 내놓고 돌보았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주민들이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을 우리도 믿겠습니다”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토씨하나도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그 권사님에게서 듣고 저는 너무도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 경험을 하면서 저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살다 보면 반드시 “왜 당신은 그토록 헌신적으로 사랑을 실천하십니까? 왜 당신은 그토록 열심히 정의를 위해 일하십니까? 도대체 당신의 비밀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전도의 순간입니다. 전도는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줄 때에만 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행실을 보고 “아! 하나님이 계시구나”하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조선족 동포 2천8백명과 함께 18일간 단식한 적이 있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인 권리를 요구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때 투쟁이 끝나면서 동포 7백명이 예수를 믿겠다고 나섰습니다. 그래서 명성교회를 빌려 7백명에게 세례를 주었습니다. 목숨 걸고 사랑을 실천하면 그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반드시 주님을 영접하게 되어 있습니다.

작은 교회의 자각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작은 교회의 몫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큰 교회들이 <한국교회 희망연대>를 만들어 조선족 돕는 행사도 하고 노숙자를 돕는 행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족 동포들이 그 행사에 가서 오리털 잠바를 받아왔는데 고맙다는 생각은 없이 당연한 것처럼 받았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은 작은 교회가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이 독거노인을 찾아가 먹을 것을 나누고 말동무를 하고 발안마를 하면 그분들이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큰 교회의 프로그램에는 스킨쉽에서 오는 감동이 없습니다.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주고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와 큰 교회는 역할 분담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작은 교회의 몫이어야 합니다. 이것까지 큰 교회가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작은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수평이동을 해서 큰 교회로 갑니다. 저는 수평이동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대신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교인들이 큰 교회로 옮겨오지만 그래도 작은 교회를 문 닫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동안 큰 교회가 계속 성장했는데도 지난 십년간 교인 14만명이 감소했습니다. 왜 그런가? 교인들이 큰 교회로 수평이동하면서 매년 3천교회 씩 작은 교회가 문 닫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에는 작은 교회 목사님의 고통과 恨을 잘 몰랐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서울조선족교회가 평안하면 저 역시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눔과 기쁨> 상임대표가 되어 작은 교회 목사님들과 접촉하면서 그분들의 아픔을 알고 나서는 제가 그동안 얼마나 個교회주의에 빠져 있었는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느 작은 교회 목사님은 열심히 주일학교를 키웠는데 학생들이 인근 큰 교회의 하기성경학교 행사에 참석하더니 주일학교 학생의 삼분지 이가 옆 교회로 옮겨가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되면 목사님은 억장이 무너집니다. 어느 교회는 셔틀버스를 작은 교회 문 앞에 세워놓고 교인들을 실어 날랐습니다. 그것도 후라이펜을 판촉물로 주면서. 그러면 작은 교회 목사님은 분노에 찬 눈으로 큰 교회를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전에는 큰 교회에서의 예배를 즐겼습니다. 큰 교회에서 예배를 보면 참으로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의 아픔을 알고부터는 큰 교회에서 예배 보는 것이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잘 아는 목사님이 서울근교에 교회를 세웠는데 교회가 급속성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축하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교회 주변의 수십 개 작은 교회가 문을 닫았겠구나 하는 생각만 났습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의 갈등문제는 한국교회 최대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큰 교회는 작은 교회와 共生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전도하는 일은 작은 교회에 맡기고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국가적인 과제나 식자층과 中上層에게 전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큰 교회가 작은 교회와 일을 나누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모두 큰 교회가 독점합니다. 일반사회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는 襟度(금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은 반도체, 선박, 자동차, 제철, 항공기 등의 분야에만 진출하고 생필품 제조업에는 진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중소기업의 몫입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에게도 살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역할분담이 없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와 큰 교회 사이의 갈등이 매우 심각합니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이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내 놓고 있습니다. <나눔과 기쁨>이 작년 말부터 전국적인 규모로 <반찬나눔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극빈자들이 밥해 먹는 것은 어렵지 않은데 반찬은 먹거리를 사서 조리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 목사님들이 매주일 일주일분 반찬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돌리니까 그분들이 너무도 좋아 했습니다. 이를 보고 <나눔과 기쁨>은 이 사업을 전국화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반찬나눔사업을 제일 먼저 시작한 교회는 분당의 만나교회입니다. 만나교회는 매주일 7백개의 도시락을 만들어 65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에게 나누어 주면 이분들이 이 도시락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 일이 천안, 인천, 대전, 광주, 서울, 대구, 부산 등 전국적으로 매주일 1만개의 도시락이 나누어지고 있습니다. 반찬나눔사업이 무엇보다 좋은 점은 큰 교회가 만찬을 만들고 작은 교회가 반찬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의 共生 프로그램입니다.
  뿐만 아니라 반찬나눔 사업을 통해 작은 교회의 네트워크가 만들어지면서 이 네트워크가 민간사회안전망활동(지역에서 정기모금을 하여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운동), 재활용센터, 요양보호사 파견센터, 지역아동센터, 다문화센터, 노인대학, 소비자협동조합, 의료협동조합 등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가 가난한 사람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고 한국교회는 다시 부흥의 계기를 맞을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감사한 것은 <나눔과 기쁨>활동으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각성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 삶을 살면서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세상사람들은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지 않는데 기독교 안에서만 그렇게 해 왔습니다. 세상사람들은 대형교회로부터 감동을 받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초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지 말고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을 따르려고 분투하는 목회자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합니다. 이렇게 해서 수만명의 작은 교회목사님들의 氣가 살아나야 합니다. 한국교회에서 수백, 수천명의 작은 예수들이 나와야 합니다. 그렇게 될 때에만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할 것입니다.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야

  그런데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만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편에 서서 그들을 대변하는 일도 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은 운명적으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고 그들의 편에 서는 모습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용산참사를 겪으면서 신도시개발, 재개발, 재건축, 뉴타운의 문제가 크게 부각되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교회가 나서야 합니다. 신도시개발, 재개발을 하면 그 지역의 세입자들, 저소득층 주민들은 거의 다 떠나야 합니다. 서울시 길음 뉴타운의 경우 원주민과 세입자가 재개발 후 재정착을 한 비율은 17%에 불과하고 나머지 83%는 전부 내쫓겼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가난한 사람라고 해서 내쫓기는 일이 없도록 제도를 선진국형으로 바꾸자는 것이지요. 전부 철거한 후 재건축하는 방식은 반드시 주택가격을 상승시켜 대부분이 내쫓기게 되므로 원주민의 재정착을 전제로 한 도시재생 방식으로 개발방식을 바꾸자는 것이지요. 이미 대부분의 선진국들은 다 이 방식으로 전환했기 때문에 우리도 그 방향으로 가자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러한 방식으로 전환하지 않으면 교회가 살아날 수 없습니다. 신도시로 개발되는 김포지역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김포지역이 신도시개발지역으로 지정된 후 60여개의 임대교회는 이사비용만 받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자기 건물이 있는 23개의 교회는 보상가가 시세의 60% 밖에 되지 않아 그 돈으로는 보상가의 네 배나 되는 종교부지를 구입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2-3개 교회가 빚을 내어 종교부지를 구입했지만 그나마도 건축비가 없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교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자립교회는 임대교회로 전락하게 되었습니다. 
  원주민과 세입자의 재정착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는 도시개발을 하려면 정부예산이 투입되어야 합니다. 신도시가 되면 재산세가 크게 증가하기 때문에 정부예산이 미리 투입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정부예산은 없이 주민을 쥐어짜서 도시를 만들겠다는 발상자체가 이제는 배격되어야 합니다.
  작년 일년동안 기독교사회책임은 이 문제를 가지고 일곱 번이나 도심에서 시위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한기총에 재개발문제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습니다. 재개발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돕는 일은 특별히 한국교회가 나서야 할 일입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58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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