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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재개발 과정의 不義를 외면할 것인가?
서경석목사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기독교사회책임>은 요즈음 재개발문제를 가지고 외로운 투쟁을 하고 있다. 지난 11월 7일에도 70명의 목사와 주민들이 광화문에서 여섯 번째 시위를 했다, 그리고 오는 12월 11일에는 30여명의 목사들, 교인들, 주민들이 도로를 점거하면서 일곱 번째 시위를 벌일 예정이다. 이날 이들은 체인으로 서로를 묶고 길거리에 누워 교통을 방해할 예정이므로 전원 체포될 것이 틀림없다. 이미 열 명의 목사를 포함한 25명이 체포되는 일을 자원했다. 그런데 이렇게 시위하고 체포당하는 일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7월14일에도 목회자 167명을 포함한 3백명이 덕수궁 앞에서 車路를 점거하고 구호를 외치다가 주동자인 5명의 목사들이 체포되었었다. 왜 이렇게 극단적인 불법시위를 하는가? 그것은 합법적인 시위에 대해 언론이 관심을 갖지 않아 왔기 때문이다. 지난 10월12일 기독교사회책임의 목사들과 주민들 천오백명이 국회의사당 앞에서 집회를 갖고 십자가 행진을 했지만 언론이 이를 거의 보도하지 않았었다. 언론의 무관심 때문에 시위가 더욱 과격해지고 있는 것이다. 왜 이들이 투쟁을 하는가? 용산참사를 보면서 그동안 한국교회가 재개발 과정의 불의에 무관심했던 것에 대해 반성했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이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할 데가 없어 과격폭력단체인 <전철연>을 찾아갔고 그 결과 용산참사가 일어났는데 교회가 진작 이들의 편에 섰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재개발문제는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우리나라 신도시, 재개발 정책이 가난한 주민들을 내쫓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서울시 길음동 뉴타운의 경우 원주민과 세입자가 재개발 후 재정착을 한 비율은 17%에 불과했고 나머지 83%는 전부 내쫓겼다. 개발이익을 극대화하려다 보니 주민들에 대한 보상을 60-70%만 해주었기 때문에 개발 후에 다시 재입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토지공사나 주택공사가 주도하는 신도시개발의 경우에는 상황이 더 심각하다. 오로지 개발이익만으로 신도시를 건설해야 하므로 보상비는 시세의 60-70%밖에 되지 않은 데다가 세금까지 내야 하기 때문에 재산이 반토막이 되어 신도시에 재정착하는 사람은 원래 주민의 10%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지역내의 교회의 처지도 하등 다를 바 없다. 김포-한강 신도시 개발지역의 경우 개발이 진행되면서 60여개의 임대교회는 이사비용만 받고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자기 건물이 있는 23개의 교회는 보상가가 시세의 60% 밖에 되지 않아 보상가의 4배나 되는 종교부지를 구입할 수 없었다. 겨우 2-3개 교회가 종교부지를 구입했지만 그나마 건축비가 없어 건물을 짓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교회는 보상금을 교회장소를 빌리는 비용과 인테리어비용으로 소진하여 아예 종교부지 구입을 포기하고 있다. 그리고 교인들도 뿔뿔이 흩어져 교회는 미자립교회로 전락하고 있다. 왜 이런 비인간적인 제도가 생겼는가? 그 이유는 1981년 전두환정권이 들어서면서 권력의 정통성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5백만호의 주택을 짓겠다고 공약한 후 정부예산을 쓰지 않고 개발이익만으로 신도시를 건설할 수 있도록 택지개발촉진법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는 개발이익의 극대화를 위해 보상가를 턱없이 싸게 하니 대부분의 주민들이 내쫓기게 되었다. 사실은 전두환 정권 이후 역대정권이 이러한 재개발 방식을 고쳤어야 했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런데 선진국은 한국과 같은 비인간적인 재개발 정책을 변경한지 오래다. 미국, 영국, 일본 등 선진국은 원주민의 재정착을 전제로 한 재개발 방식을 택하고 있어 가난한 사람이 억울하게 내쫓기는 일이 없다. 그렇다면 한국도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래서 기존건물을 완전 철거하고 전부 새로 신축하는 방식을 쓰지 않고 부분적으로 철거하고 부분적으로 재개발하는 도시再生방식으로 가야 한다. 그래서 재개발 후에도 임대교회도 있고 가난한 주민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용적율을 높여주고 신도시의 공공시설은 지방자치단체의 예산으로 지어야 한다. 그래서 이명박정부가 서민을 위한 정부가 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면 마땅히 재개발 정책부터 바꾸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이 문제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상황을 몰라서가 아니라 이해관계가 상반되기 때문이다. 지금 부천시의 수백개 교회들이 재개발 문제에 봉착했는데 큰 교회들은 작은 교회와 중형교회가 전부 쫓겨나고 나면 자기들은 더 크게 성장할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정반대의 운명에 처해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대부분 큰 교회 목회자들이기 때문에 작은 교회와 중형교회의 비극을 외면하고 있다. 두달 전에 기독교사회책임이 재개발제도의 개혁을 위해 4천명의 작은 교회 목사들의 서명을 받았지만 큰 교회목사님이 한분도 서명하지 않아 차마 서명결과를 발표하지 못한 바 있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끝내 이 재개발의 비극을 외면할 것인가? 이대로 가면 아마도 만개의 교회가 사라질 것이다. 작은 교회, 중형교회는 다 사라지고 소수의 대형교회만 남을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4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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