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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기쁨>을 소개합니다. - 2011년 1월 16일 3차 수정 - 서경석 상임대표 작성
목 차
1. 어떻게 시작되었나? 2. 나눔과 기쁨의 목표 : 예수님처럼 사는 삶 3. 반찬나눔운동이 갖는 의미 4. 작은 교회에 주신 사명 5. 예수님처럼 살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자 6. 끊임없이 <나눔과 기쁨> 체제를 바꾸어가자 7. 교포사회와 해외에도 <나눔과 기쁨>을 확산시키자. 8. 작은 교회가 성장하도록 돕자. 9. <나눔과 기쁨>이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자. 10. 교회가 민족의 희망이 되게 하자.
1. 어떻게 시작되었나?
안녕하십니까? <나눔과 기쁨>의 상임대표인 서경석 목사입니다. 먼저 <나눔과 기쁨>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설명드리겠습니다. 십년전 IMF경제위기가 왔을 때 저는 정부나 기업이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하지만 일차적으로 동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이들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동네 안의 교회, 학교, 기업, 병원, 식당, 점포,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조금씩 정기모금을 해서 그 돈으로 그 동네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돕자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새마을 운동이 이 일을 하면 잘 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새마을운동에 이 아이디어를 제안했고 새마을 운동도 몇 년간 민간사회안전망이라는 이름으로 이 운동을 했습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면 잘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이라는 단체를 만들고 저의 오랜 친구인 송진섭 안산시장과 의논해서 안산시가 이 일에 앞장서도록 했습니다. 그런데 市가 나서니까 홍보는 잘 되는데 막상 동네에서 모금을 하고 어려운 이웃을 도울 활동가를 찾는 일은 市가 잘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또 다시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세 번째로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이 활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러려면 활동비 지원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기금을 만들어 작은 교회 목사님이 동네에서 나눔 네트워크를 만들어 극빈자를 돕는 일을 하면 매달 30만원씩 6개월을 돕겠다고 홍보했습니다. 그랬더니 전국에서 3백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신청했습니다. 우리는 그 분들에게 교육을 실시하고 이분들을 나누미라고 호칭하고 동네에서 나눔네트워크를 조직하는 일을 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CMS로 모금이 가능하도록 했습니다. 3개월 후에 이분들의 활동을 확인해 보니 이중 2백명은 아무 활동도 하지 않고 그냥 돈만 받아갔습니다. 저는 너무 실망했습니다. 1억8천만원을 그냥 낭비한 셈입니다. 저는 매달 얼마씩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라는 사실을 엄청난 댓가를 지불한 후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지원방식을 실적에 따른 지원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모금한 돈의 15%는 무조건 행정비로 사용하도록 했습니다. 우리가 이 일을 시작한 때가 2005년 3월이었는데 그해 말에 확인해 보니 계속 활동하는 나누미는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운동이 실패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이중 30명은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 중에는 CMS를 월 백오십만원까지 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정도의 CMS에다 일시불로 내는 헌금과 물품지원까지 합하면 매월 수백만원의 지원이 됩니다. 나누미 목사님은 이렇게 모금한 물품과 돈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용돈도 주고, 먹을 것도 주고, 발 마사지를 해주고, 병원도 같이 가고, 말동무도 해 줍니다. 그러면 그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합니다. 처음에는 목사인 줄 몰랐다가 나중에 목사인 것을 알게 되면 “우리동네에 진짜 예수님 같은 목사가 있다”고 동네방네 선전을 합니다. 그러면 그 교회가 소문이 납니다. 도움받는 사람도 교회에 나오고 모금에 참여한 사람도 교회에 나옵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남의 한 목사님은 처음 시골교회에 부임했을 때에는 교인이 한명 밖에 없었습니다. 너무도 어려워서 월 30만원의 지원을 받으려고 <나눔과 기쁨>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그분은 지금 CMS만 月백오십만원을 모읍니다. 그리고 교인수가 30명이 넘으면서 자립을 했습니다. 경기도의 한 목사님도 교인이 2-30명에서 백오십명으로 늘어났습니다. 뿐만 아니라 4층 건물을 사서 중형교회가 되었습니다.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목사님이 되었습니다. 충남의 한 목사님도 처음 나눔과 기쁨을 시작할 때에는 교인이 2-30명에 불과했는데 그후 교인이 백오십명까지 되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에게 도운 사람들 중에 몇 명이 교회에 나옵니까하고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그동안 백 가정을 도왔는데 2-3년이 지나니까 70가정이 교회에 나오더랍니다. 이렇게 도움받는 분들이 교회에 나오는 것은 당연합니다. 고마워서 나오는 것만이 아닙니다. 이분들이 나누미 목사님의 행동을 보고 감동이 되어 하나님이 계신 것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전에는 인생이 너무 힘들고 절망적이어서 하나님이 계시다는 생각을 할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더 중요한 점은 나누미 목사님들의 목회에 큰 변화가 생겼다는 점입니다. 알고 보니 자기가 하는 일이 바로 예수님처럼 사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무엇입니까? 병자를 고쳐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그리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아닙니까? 그런데 지금 자기가 똑같이 그렇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나누미 목사님들은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성장할까만을 열심히 고민하면서 수없이 교회성장 세미나를 찾아다녔는데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예수님처럼 사니까 그 모습이 감동을 주면서 교회가 성장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나누미 목사님들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닫습니다. “내가 여태까지 잘못 목회를 했구나” “교회성장을 위해 노력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분투해야 하겠구나”하고 깨닫습니다. 그 결과 목회철학이 달라졌습니다. 이제부터는 교인수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목회의 성공여부가 교인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예수님처럼 살려고 얼마나 분투하는가 입니다. 목회철학이 바뀌니까 그 다음부터는 큰 교회 목사님들 앞에서도 당당해 집니다. 노회에 가서도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너무도 신나고 행복한 목회가 됩니다. 내가 예수님처럼 사는 것만으로 나의 목회는 성공입니다. 나누미 목사님들은 제게 “목사님께서 저희에게 날개를 달아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인가? 개척교회 명함을 가지고는 사람들을 만나기가 매우 어려웠답니다. 전도하려고 한다며 대화조차 하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실무자의 명함을 갖고 다니면서 누구든지 쉽게 만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명함을 가지고 구청관리들을 만나면 종교편향 소리를 듣기 싫어 도와주려고 하지 않았는데 <나눔과 기쁨>실무자로 가면 얼마든지 도와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목사님의 모습이 완전히 달라지니까 주위의 친구목사들이 묻습니다. 너한테 무슨 일이 생겼니? <나눔과 기쁨>을 하면서 내가 이렇게 바뀌었어. 그래? 그러면 나도 하자. 이렇게 되어서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첫해의 120명이 다음해에 3백명이 되었고, 다음해에 7백명, 다음해에 천삼백명, 작년말에 2천6백명, 그리고 지금은 3천7백명이 되었습니다.
2. 나눔과 기쁨의 목표 : 예수님처럼 사는 삶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눔과 기쁨>에 대한 설명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과거에는 <나눔과 기쁨>을 민간사회안전망운동이라고 설명했는데 지금은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하게 되었습니다. 요즈음은 전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눔과 기쁨>의 목사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도가 너무도 쉽습니다.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기만 하면 전도는 그냥 됩니다. 전도는 목표가 아니라 삶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나눔과 기쁨>전도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점은 저의 목회경험과도 일치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경실련이라는 시민운동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시민운동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입니다. 제가 속한 교단에서는 목사직을 계속 유지하려면 반드시 목회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직을 반납해야 하는데 어느 날 서경석 목사가 갑자기 서경석 선생으로 바뀌면 세상사람들은 제가 교회 안에서 징계라도 받은 줄 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목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조선족 동포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에 와서 고단한 삶을 살기 때문에 심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시민운동을 하고 일요일에만 교회에 가서 설교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서울조선족교회를 세웠습니다. 목사직 유지를 위한 얄팍한 생각인 셈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세우고 조선족동포들을 만나보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고통이 너무 컸습니다. 가정이 깨지고, 빚이 천만원이고, 자식이 아프고, 감옥에 있고, 암이 걸리고.... 세상에 이렇게 불행한 민족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거의 다 불법체류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잡혀가고 추방당합니다. 빚도 갚기 전에 중국으로 추방당하면 이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동포들은 나한테 매달립니다. 목사님 살려주십시오.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교회를 시작했는데 걸려도 된통 걸린 셈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조선족동포들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꾀많은 나를 꾀까지 쓰게 하면서 이들에게 보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각오했습니다. 작년 6월에 서울조선족교회는 창립 십일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저는 죽을 각오로 단식을 여섯 번이나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25일간 단식을 했습니다. 10일, 17일, 23일, 10일, 18일, 25일을 단식했는데 저는 항상 싸움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무조건 이길 때까지 단식을 했으니까요. 한 번은 단식 23일을 하던 때에 단식 17일째가 되었는데 위출혈이 났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시꺼먼 짜장면을 대야로 하나를 쏟았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다 정신을 잃었는데 붉은 피를 입으로 한 사발을 토했습니다. 즉시 병원으로 실려가서 수혈을 하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위출혈이 무서운 줄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긴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더라면 생명이 위험할 뻔 했습니다. 레이저로 피 나오는 곳을 지진 후에 다시 단식을 계속했습니다. 단식 23일이 되니까 법무부가 완전히 손을 들었고 저는 또다시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피를 쏟던 장면을 지켜보았던 조선족 동포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끼리 토론했는데 도저히 해답을 못 찾았습니다. 왜 목사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십니까? 목사님이 중국에 와서 인민대회 의원이 될 것도 아니고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목숨을 바치십니까?” 저는 그분들에게 “당신들이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한 달 동안 예배에 참석해서 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분들이 한 달 동안 제 설교를 듣고 나서 다시 제게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아무리 예수천당을 외쳐도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전도는 전도의 때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에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예장통합측 총회가 창립 백주년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목사님들의 후손을 초청해서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증조부가 황해도 소래에 한국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운 서경조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저도 그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제주도 선교를 처음 하신 이기풍 목사님의 막내 따님을 만났습니다. 그 권사님이 이기풍목사님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제주도에 가서 정말로 헌신적으로 주민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주민들이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듣게 되었는지 저는 정말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전도는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죽을 각오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면 됩니다. 이슬람선교가 어렵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주민을 죽도록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나라 주민들이 반드시 질문하게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왜 이역만리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때가 바로 전도의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면 그들은 반드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나눔과 기쁨>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문준경 전도사입니다. <나눔과 기쁨>이 출범예배를 가질 때 돌아가신 김준곤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처음 문준경전도사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은 전남 증도에서 병들어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거지들을 위해 “대신거지” 노릇을 했습니다. 아침밥을 짓는 집마다 돌아다니며 누룽지를 얻어다 죽을 끓여 병든 거지들을 돌보았습니다. 문준경전도사의 이 모습을 보고 섬 안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주민 전부가 예수믿는 일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문준경 전도사님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에 전부다 예수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이야말로 <나눔과 기쁨>의 표상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가 최선을 다하면 온 국민이 예수 믿는 날이 얼마든지 올 수 있음을 굳게 믿습니다.
3. 반찬나눔운동이 갖는 의미
<나눔과 기쁨>이 2009년부터 시작한 사업이 있습니다. 부산의 나누미 목사님 두 분이 반찬나눔을 시작했습니다. 반찬나눔을 하게 된 이유는 밥은 전기밥솥 버튼만 누르면 되지만 반찬은 먹거리를 사서 조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반찬 없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고 목사님들이 매주일 일주일분 반찬 도시락을 50개씩, 70개씩 만들어 어려운 이웃에게 돌렸습니다. 그랬더니 너무 좋아하더랍니다. 뿐만 아니라 반찬 만드는 비용도 주위에서 돕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더 싸졌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은 이 사업을 전국 규모로 하기로 했습니다. 큰 교회가 반찬을 만들면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그 반찬을 나누었습니다. 그래서 성남, 천안, 대구, 인천, 광주, 울산, 서울, 대전, 부산 등 거의 모든 도시에서 매주일 1만 2천개의 반찬 도시락이 나누었습니다. 반찬나눔운동이 급속도로 확산된 이유는 이 운동의 반향이 크기 때문입니다. 서울 구로구의 한 목사님은 매주일 25개의 반찬도시락을 나누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중 16가정이 교회에 나오게 되었답니다. 그리고 지난 가을에 그 중 아홉명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저는 그 소식을 듣고 얼마나 감동이 되었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반찬나눔사역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이 반찬나눔이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함께 하는 共生프로그램이기 때문입니다. 이 프로그램으로 작은 교회의 고통과 恨이 치유되고 있습니다. 저는 전에는 작은 교회 목사님의 고통을 잘 알지 못했는데 <나눔과 기쁨>을 하면서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어떤 여 목사님은 열심히 주일학교를 해서 아동들의 숫자가 50명이 되었는데 인근의 큰 교회가 하기성경학교를 하니까 아이들의 삼분지 이가 큰 교회로 옮겨 갔더랍니다. 또 어떤 목사님은 상가교회에서 목회를 하는데 하필이면 큰 교회 셔틀버스가 자기교회 앞에서 교인들을 실어 나르더랍니다. 그것도 후라이펜을 하나씩 선물로 주면서... 이 모습을 본 목사님은 억장이 무너지지요. 저는 전에는 큰 교회에서의 예배를 즐겼습니다. 큰 교회에서 예배를 보면 참으로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의 아픔을 알고부터는 큰 교회에서 예배 보는 것이 은혜가 되지 않았습니다. 잘 아는 목사님이 교회를 세웠는데 교회가 급속성장을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축하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교회 주변의 수십 개 작은 교회가 문을 닫았겠구나하는 생각만 났습니다. 큰 교회는 더 커져서 교회당을 증축하는데 작은 교회는 매년 3천교회 씩 문을 닫습니다. 큰 교회들은 기독교가 계속 부흥하는 줄 알지만 실제로는 지난 십년동안 교인수는 14만명이나 감소했습니다. 큰 교회가 작은 교회로부터의 수평이동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교인들이 수평이동하는 것을 막을 방법이 없다면 큰 교회는 작은 교회를 배려해야 합니다. 최소한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선교는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큰 교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일반 사회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襟度(금도)가 있어서 대기업은 선박, 자동차, 철강, 반도체 등 중소기업이 할 수 없는 업종만 하고 수건, 세수비누 등 중소기업이 하는 업종에는 들어오지 않는데 한국교회에는 이런 역할분담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작은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을 잘 돌보도록 큰 교회가 도와야 합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간의 상처를 치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2011년부터는 반찬나눔운동의 방식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큰교회가 반찬을 만들고 작은 교회가 반찬을 나누는 방식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 방법이 꼭 좋지 않았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이 받기만 하니까 책임감이 부족해집니다. 그러면 큰 교회도 불만이 쌓이게 되고 나중에는 중단하게 됩니다. 여러 도시에서 이런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그래서 반찬나눔이 매주 1만2천개에서 8천개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1:1 매칭 방식이 최선이라는 점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도 돈을 내야 합니다. 작은 교회가 5개 반찬값을 내면 큰 교회도 5개 반찬값을 지원합니다. 그리고 작은 교회가 반찬값을 낼 처지가 못되어도 CMS 모금을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반찬값을 낼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어야 반찬나눔이 성의있게 진행되고 수량도 많아지고, 또 그 열매도 커질 것입니다.
4. 작은 교회에 주신 사명
<나눔과 기쁨>의 가장 큰 성과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자신을 향하신 주님의 사명 을 자각하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제까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항상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고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첫 번째 자각은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작은 교회에 맡기셨다는 점입니다. 큰 교회들이 종종 조선족 돕는 행사도 하고 노숙자를 돕는 행사도 합니다. 그런데 조선족 동포들이 큰 교회의 행사에 가서 오리털 잠바를 선물로 받았는데 고맙다는 생각은 없이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은 작은 교회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이 반찬도시락을 들고 독거노인을 찾아가면 그분들은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큰 교회 프로그램에는 스킨쉽에서 오는 감동이 없습니다. 행동으로 사랑을 보여서 감동을 주는 일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몫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 목사님 자신이 많은 시련을 겪어 왔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을 격려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와 큰 교회는 역할분담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일은 작은 교회에게 맡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작은 교회 목사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해야 합니다.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국가적인 과제나 식자층, 중산층, 상류층에게 전도하는 일을 맡아야 합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수평이동을 해서 교인들이 큰 교회로 갑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예수님을 따르기가 훨씬 쉽다는 점입니다. 초대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이 힘없는 자, 아무 것도 아닌 자를 들어 힘있는 자를 무력하게 하신 것처럼,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 것처럼, 작은 교회가 갖는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은 예수님을 따르기도,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편이 되기도, 큰 교회 목사님보다 훨씬 쉽습니다. 또 작은 교회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말하기도 쉽습니다. 저는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은 교회에는 특권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이제부터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껴안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나눔과 기쁨>은 주님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을 특별히 부르고 계심을 깨닫게 해주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나눔과 기쁨>과 만난 후에는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쓰게 되고 나아가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세상사람들은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스스로 주눅이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작은 교회 목사들을 스스로 주눅 들게 만들었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이제부터는 작은 교회가 한국교회의 갱신과 부흥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동안 초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이끌어 왔는데 지난 십년간 기독교 인구가 14만명이나 감소한 점은 대형교회 주도의 한국교회 성장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지나간 70년대에 2.4배나 성장했던 한국교회가 지금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면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성장제일주의”가 근본적으로 파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독교의 문제점을 성장제일주의로 인한 물질만능주의, 상업주의, 개교회주의와 같은 대형교회의 병리적 현상(mega church syndrome)에서 찾고 있습니다. MBC나 SBS의 기독교 고발도 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2.4배나 성장했던 70년대에는 지금과 같은 성장제일주의는 없었습니다. 대신 수백, 수천의 교회 젊은이들이 독재와 싸우다가 감옥 가는 모습을 보고 예수 믿으면 저렇게 강해지는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70년대에는 자기 교회에 새 신자가 매주일 열명 씩 자기 발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전도해도 매주 한두 명의 새 신자가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왜 지금은 교회가 그렇게 열심히 제자훈련을 하는데도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가? 한마디로 교회가 예수님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대형 교회는 자기들끼리 安住하고 自足하는 모습만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70년대와 같은 감동이 없다 보니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또 그래서 교회로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지금 岐路에 서 있습니다. 성장제일주의로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크게 방향전환할 것인가의 기로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고 자기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살려는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난 70년대의 ‘기적적인 교회성장’을 再現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크기로 교회를 평가하는 태도가 바로 성장제일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생각이 바로 한국교회 위기의 근본원인이었습니다. 70년대에는 십자가를 지고 고난당하는 교회들은 성장하지 못했고 그래서 당시에는 교회성장이 교회평가의 절대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목사들도 교인의 비위를 맞추는 설교만을 하지 않았고, 또 그랬기 때문에 교회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점이 70년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발로 교회를 찾아온 이유입니다. 이제는 작은 교회를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교회를 美化하면 안 됩니다.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으니까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도 큰 교회와 똑같이 성장제일주의라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회개와 결단이 쉽습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 힘들었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쉽게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강도만난 자를 보고도 지나쳤지만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은 참된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작은 교회가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主役으로 부름 받았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부흥하지 못한 이유는 작은 교회들이 이 자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들은 반드시 연대해야 합니다. 연대하지 않으면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습니다. 수천 수만의 작은 교회가 공동으로 예수님처럼 살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또 혼자서는 결단하기 어렵지만 공동으로 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중형교회, 대형교회, 초대형교회도 이 대열에 반드시 동참할 것입니다.
5. 예수님처럼 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
그런데 우리가 아무리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쓰더라도 실제로 그렇게 살기는 너무도 어렵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행하고 싶어도 길거리에 쓰러져 있는 사람을 매일 집으로 데려올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공동으로 하면 가능합니다. 이를 테면 경제적 이유든, 가정분란이든, 법적인 문제든, 건강문제든 절망에 빠진 사람은 <나눔과 기쁨> “위기의 전화”에 연락합니다. 그리고 목사님들이 매일 당번을 정해 그 전화를 받고 번갈아 돕는 일에 나서면 우리도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년 2월부터 서울강서구, 안산시, 광명시, 부산사상구, 부산사하구 이렇게 다섯 개 支部에서 처음 “위기의 전화”가 시작됩니다. 이어서 모든 支部가 곧 이 다섯개 지부를 뒤따르게 됩니다. 또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데 우리도 발마사지 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나누미들과 교인들이 발마사지를 배워 발사랑봉사단을 만들어서 어려운 이웃에게 발마사지를 해주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금년 4월에 부산, 대구, 대전, 인천에서 발사람봉사단이 발대식을 갖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지역도 뒤따르게 됩니다. <나눔과 기쁨>은 작은 교회들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사랑을 베풀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왔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민간사회안전망운동”입니다. 돈이 있어야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기 때문에 동네에서 CMS로 정기모금을 해서 그 돈으로 어려운 이웃을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은 매월 1억5천만원을 정기적으로 모금하여 어려운 이웃을 도와 왔습니다. 특별히 금년부터는 동네 후원의 밤 활동을 시작합니다. 우선 스물 세명의 나누미가 먼저 하지만 다음에는 모든 나누미가 합니다. 동네 사람들이 앞장서서 <나눔과 기쁨>후원회를 만들고 이 후원회가 후원의 밤을 개최하고 그렇게 해서 모은 재정으로 지역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입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동네공동체를 키우자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나중에는 대부분의 후원회원들이 교회에 나오게 됩니다. <나눔과 기쁨>이 어려운 이웃을 도울 때 제일 먼저 하는 일이 반찬나눔입니다. 매달 전국적으로 4만개의 반찬도시락이 가난한 이웃에게 전달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이 무엇보다 좋은 이유는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들면서도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반찬도시락을 갖고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면 그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합니다. 하루종일 기다려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데 목사님이 반찬을 가지고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프로그램을 하려면 목사님들이 매주일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목사님들끼리의 결속이 단단해 집니다. 그렇게 되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또 하나의 야심찬 프로그램이 <나눔과 기쁨>가게입니다. 이 가게는 두루마리 화장지, 비누 등 생활필수품, 민들레, 홍삼, 천마 등 건강식품, 생태식품들을 획기적으로 싼 값에 판매하여 월 30만원이 있어야 한 달을 사는 사람이 월 25만원에도 한 달을 살 수 있게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그분들에게 월 5만원을 드리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각 가게는 카다로그 판매를 하기 때문에 가게를 내는 비용도 들지 않습니다. <나눔과 기쁨>은 금년 상반기에 5백개의 <나눔과 기쁨>가게를 오픈할 예정입니다. “쓰지 않는 물건 모으기”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꼭 필요한 사업입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 돈을 모금하기는 어려워도 쓰지 않는 물건 모으기는 쉽기 때문입니다. 이미 <나눔과 기쁨>은 2008년에 미얀마에 40피트 컨테이너 다섯 개를 보냈고 2010년에는 대구의 학부모연합봉사단과 학생들이 모은 재활용품을 인도 뱅갈로어 불가촉천민에게 보냈습니다. 또 최근에는 <중병환자 고치기 운동>도 시작했습니다. 암과 같은 중병에 걸렸을 때 과거에는 기도밖에 할 일이 없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암과 같은 난치성 질환은 현대의학은 고치지 못하지만 자연의학은 고칠 수 있습니다. 서울조선족교회의 교인인 정순옥집사(55세)가 대장암수술을 받았는데 임파암으로 轉移되었습니다. 저는 정순옥집사가 항암치료를 받지 않고 자연치유방식을 택해서 9박10일 단식을 하고 관장을 하여 몸의 독소를 빼내게 했습니다. 그리고 전국의 나누미에게 호소하여 정순옥집사가 갈 산골을 수소문했습니다. 이 호소에 23명의 나누미가 응답해 왔습니다. 소개하는 지역들을 답사한 후 강원도 정선지역을 택했습니다. 정순옥집사가 그곳에서 유기농 채식, 생식으로 식사하면서 암에서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나눔과 기쁨>은 이 일을 계기로 <생태건강운동본부>를 만들어 중병환자를 치유하는 일을 시작합니다. 그래서 중병환자가 발생하면 자연치유방식으로 고치는 프로그램을 만들었습니다. 먼저 자연치유 전문가가 진단을 합니다. 척추를 교정하고 막힌 곳, 뭉친 곳을 풀어줍니다. 그리고는 단식으로 몸안의 독소를 빼냅니다. 그리고 맑은 공기와 맑은 물이 있는 산골에 가서 생채식을 하며 살게 합니다. 이 방안이 중병을 고치는 최선의 방안입니다. 그리고 나누미 목사님들을 자연치유 전문가로 만들기 위해 금년 3월부터 16주동안 <자연치유세미나>를 시작합니다. 또 <나눔과 기쁨>은 농촌에서 생태운동을 시작합니다. 농촌나누미들이 자기 교인들로 하여금 관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게 하고 이 전환이 어려움 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나눔과 기쁨>이 모든 지원을 합니다. 생산물의 소비도 책임집니다. 이 외에도 <나눔과 기쁨>은 정부지원 활동인 지역아동센터, 다문화센터, 요양보호사파견센터와 같은 활동도 열심히 합니다. 그리고 행정안전부가 추진하는 “마을기업”도 열심히 신청하려고 합니다. 앞으로도 <나눔과 기쁨>은 정부의 복지프로그램을 나누미에게 소개하는 안내자 역할을 열심히 할 것입니다.
6. <나눔과 기쁨>조직을 계속해서 혁신해 가자.
<나눔과 기쁨>은 지난 6년간 급성장하면서 끊임없는 조직의 혁신을 해 왔으며 앞으로도 다섯 가지 변화를 이루어내려고 합니다. 첫째는 중심적인 활동단위가 바뀌는 일입니다. 초창기에는 중앙본부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졌습니다. 3년 후에는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연합회가 중심적인 활동단위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市郡區단위의 支部조직이 중심적인 활동단위가 되고 있습니다. 시군구 지부조직은 2011년 말이면 전부 만들어질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각 동네가 주요 활동단위가 됩니다. 이를 위해 금년부터 동네후원의 밤이 시작됩니다. 둘째, 각 연합회 본부장 및 지부장의 임기제가 도입되었습니다. 보다 많은 나누미들리더십 역할을 하고 조직이 활력을 갖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연합회 본부장 임기는 3년, 지부장은 2년으로 제한되었습니다. 셋째, 앞으로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조직만으로는 어렵습니다. <나눔과 기쁨>이 작은 교회 살리기에 초점을 맞추고 작은 교회가 계속 중심적인 역할을 하더라도 동시에 큰교회와 중형교회도 함께 참여하는 조직이 되어야 합니다. 넷째, 앞으로는 목사들만의 운동으로 남아 되어도 안 됩니다. 이제는 평신도와 함께하는 단체가 되어야 합니다. 2011년은 이러한 변화의 원년이 될 것입니다. 다섯째, 프로그램이 다양해지면서 연합회 본부장이나 지부장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에서 모든 나누미들이 중심이 되는 프로그램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누미들이 하나씩 프로그램을 맡지 않으면 단체가 제대로 작동될 수 없습니다.
7. 교포사회와 해외에도 <나눔과 기쁨>을 만들자.
작년 7월에 뉴욕, 워싱튼 DC, 엘에이에서 <나눔과 기쁨>설명회가 있었습니다. 그 결과 각 도시에 나누미가 생겼고 작년 11월16일에는 백명의 나누미들이 뉴욕본부를 출범시켰습니다. 그리고 금년 1월17일에는 나누미 백50명이 L.A. 본부 출범대회를 갖습니다. 뉴욕과 L.A.에서 미국式 <나눔과 기쁨>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성공사례를 만들게 되면 <나눔과 기쁨>이 급속하게 미주 전역으로 확산될 것입니다. 한국의 방식과 미주교포 사회의 방식은 같지 않겠지만 그 원리는 같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산다면 교회는 반드시 부흥하고 복음이 반드시 전파됩니다. 또 해외에도 <나눔과 기쁨>운동을 확산시켜야 합니다. 선교사들이 안식년에 한국에 들어와서 <나눔과 기쁨>을 알고 나서는 이 운동이 해외에도 확산되기를 희망했습니다. 그래서 몇 년전부터 해외활동에 관심을 가져왔습니다. <나눔과 기쁨>은 실무자를 해외에 내보내기 보다는 해외 한인선교사 중에서 좋은 분을 찾으려고 합니다. 그러면 그 선교사는 한편으로 자기를 파송한 선교단체에 속하면서 동시에 <나눔과 기쁨>에도 속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 선교사는 <나눔과 기쁨>덕분에 열심히 사랑실천 활동을 하게 되고 그 결과 선교활동도 크게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종종 해외에서 한인선교사가 사랑실천보다는 “돈질”을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나라의 토착교회 목사님들에게 봉급을 드립니다. 그러면 봉급을 받는 목사님들은 자기 교회 교인들을 섬기지는 않고 열심히 한인선교사만 뒤좇아 다니게 됩니다. 이것은 한인선교사들이 그 나라 교회를 스포일(spoil)시키는 일입니다. 우리는 한국교회 초기에 미국선교사들이 네비우스 선교방식에 따라 한국교회 목사님들의 봉급을 절대로 도와주지 않았고 또 교회건축도 돕지 않은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미국선교사들은 한국교회가 철저하게 교인의 헌금으로 유지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선교전략 때문에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한인선교사들이 선교지역에서 토착교회를 도와야 하지만 그러나 돕는 일이 독이 되지 않고 약이 되어야 합니다. <나눔과 기쁨>방식은 나누미가 동네에서 열심히 모금해서 그 동네의 가장 어려운 사람들을 도우면 <나눔과 기쁨>본부가 이들 나누미들에게 활동비를 지급하는 방식입니다. 현지교회 목사님들이 동네에서 모금하여 동네안의 가장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나눔과 기쁨>이 모금한 돈에 매칭펀드를 주고, 현지 나누미목사님에게 활동비를 지급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현지교회 목사님들이 더 열심히 지역의 어려운 사람을 섬길 수 있습니다. <나눔과 기쁨> 국제부는 2011년부터 코이카의 지원을 받아 미얀마 농촌지원사업을 시작합니다. 이를 계기로 <나눔과 기쁨>은 한국의 민간사회안전망 경험을 미얀마에도 적용시킬 예정입니다. 8. 작은 교회가 성장하도록 돕자.
<나눔과 기쁨>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단체이지만 동시에 작은 교회도 열심히 도우려고 합니다. 그래야 많은 목사님들이 <나눔과 기쁨>활동에 참여할 것입니다. 2011년 여름에 부산연합회가 시범적으로 질 높은 지역연합 하기성경학교를 개최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렇게 되면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작은 교회를 떠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 2월부터 결혼중매 사이트를 시작합니다. 결혼적령기의 젊은이들은 배우자를 만나기 위해 작은 교회를 떠나 큰 교회로 가는데 이들이 작은 교회를 떠나지 않아도 좋은 배우자를 만날 수 있다면 작은 교회 성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주선 하에 “결혼중매 사이트”에서 배우자를 찾게 합니다. 그리고 금년 6월에는 두주간 유럽연수 프로그램을 갖습니다. 40명의 목사님들이 왕복 비행기값만 준비하여 베르린, 하이델베르그, 파리, 고펜하겐, 프라하, 로마, 베니스, 제네바 등 각 도시를 순방하며 유럽교회의 역사를 배우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각 도시의 교포교회 목사님들이 숙식과 교육을 책임 맡습니다.
9. <나눔과 기쁨>이 한국교회의 희망이 되자.
지금은 <나눔과 기쁨>에서 3천5백명의 목사님이 활동하지만 금년 말에는 이 숫자가 최소한 6-7천명이 될 것입니다. 그 때에는 <나눔과 기쁨>은 한국교회에 대해 보다 책임적인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지난 1월6일 한기총은 재개발문제 대책위원회 주관으로 "잘못된 재개발정책의 시정과 교회차별 철폐를 위한 시국기도회"와 행진을 했습니다. 이 자리에 천명의 목회자와 시민들이 참석했습니다. 재개발 과정에서 주민의 85%가 쫓겨나고 이 과정에서 교회들도 같이 쫓겨나면서 전국적으로 1만2천교회가 사라지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가난한 사람과 부자가 함께 공존하는 개발, 교회가 차별당하지 않는 개발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이 기도회와 행진에 <나눔과 기쁨> 목회자 5백명이 참가했습니다. <나눔과 기쁨>이 아니었더라면 시국기도회가 초라하기 그지없었을 뻔 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눔과 기쁨>이 한국교회에 대해 더 큰 책임감을 느껴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갱신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지나간 70년대와 지금을 비교해 보면 70년대에는 한국사회가 대단히 낙후되었었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그동안 한국사회는 끊임없이 개혁되고 발전했지만 교회는 여전히 낙후된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지난 40년동안 개혁된 것이 거의 없습니다. 이 상태로는 교회가 결코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교회갱신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가 갱신되려면 먼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인 한기총부터 갱신되어 한국교회 개혁의 사령탑이 되어야 합니다. 작년에 이광선목사님이 한기총 대표회장이 되시면서 한기총을 개혁하려고 애썼지만 유감스럽게도 개혁은 거의 되지 않았습니다. 한기총 외부에 강력한 교회갱신운동이 있지 않으면 한기총은 절대로 개혁되지 않는다는 점이 우리의 처절한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눔과 기쁨>이 교회개혁을 촉구하는 광야의 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2013년 부산에서 WCC총회가 개최되어 6억의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교회지도자 6천명이 2주간 한국에 머물게 됩니다. 이 기회는 한국교회가 세계교회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교회가 WCC총회에 온 세계교회 지도자들에게 뚜렷하게 보여줄 것이 없다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의 책임이 무겁습니다. 이 때에 <나눔과 기쁨>의 목사님들이 예수님처럼 살 것을 결단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2천년 전에 갈릴리에서 하신 일들을 再現해내야 합니다.
10. 한국교회가 우리 민족의 희망이 되게 하자.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고자 하면 가난한 사람을 도울 뿐만 아니라 교회가 나라와 민족의 희망이 될 수 있도록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과거 한국교회가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것처럼 지금 상황에 맞는 시대적 과제 해결에 앞장서야 합니다. 큰 교회 목사님들이 한국교회의 지도자인 이유는 그분들이 이러한 시대적 과제 해결에 앞장서시기 때문입니다. 작은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외면하면 결코 한국교회의 중심세력이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시대적 과제인가? 그것은 선진화와 통일입니다. 그런데 선진화라고 해서 경제선진국만 생각하면 안 되고 동시에 생태선진국, 복지선진국, 정신선진국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진화는 쉽지 않습니다. 이제까지 후진국에서 중진국을 넘어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본뿐입니다. 브라질, 알젠친, 체코같은 나라들이 선진국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주저앉았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이 되려면 개혁에 성공해야 합니다. 우리사회를 효율적이고 경쟁적인 사회로 만들면서도 동시에 사회적 형평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런데 선진화 개혁을 이루려면 선진화 세력이 결집되어 反선진화 세력을 강력하게 제압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일을 해낼 세력은 기독교밖에 없습니다. 제가 그동안 시민운동을 열심히 했지만 지금의 시민단체들은 다 좌편향이 되어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가 새롭게 자각해서 선진화세력을 만들어야 합니다. 선진화세력이 제일 먼저 할 일은 대한민국을 부정하는 從北좌파세력과 단호하게 맞서는 일입니다. 저는 몇 년 전만 해도 이 세력이 얼마나 큰 지를 몰랐습니다. 지금 북한이 망하기 직전인데 무슨 종북좌파가 있냐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맥아더동상을 철거하려는 세력이 수천 명이 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제가 나라걱정에 밤잠을 자지 못한 것은 그때가 처음입니다. 도대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겠다는 세력은 어떤 세력입니까? 인천상륙작전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세력이 아닙니까? 다시 말하면 김일성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되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똑 떨어지는 從北좌파입니다. 그래서 맥아더동상 철거사건은 종북좌파가 자기의 실체를 뚜렷하게 국민 앞에 드러내 준 사건입니다. 저는 이 사건이후 이들 세력에 대해 조사했습니다. 그랬더니 이들은 전교조, 민노총, 민노당, 전농, 한총련, 범민련, 통일연대, 민중연대, 진보연대 등 3-40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최대의 조직화된 세력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단체들은 전부 종북좌파의 통제 하에 있습니다. 저는 철거사건에 대해 우리나라 시민단체들은 어떤 입장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시민단체에 메일을 보내어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질문했습니다. 그랬더니 한 단체도 철거사건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단체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우리나라의 지식인 사회가 얼마나 허약한지를 절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나는 어떻게 할까를 고민했습니다. 만일 내가 종북좌파들을 반대하면 틀림없이 시민운동 후배들이 나보고 꼴통보수라고 말하고 서경석을 변절자라고 할 것입니다. 그 말이 정말로 듣기 싫었지만 나는 내가 진정으로 애국자라면 꼴통보수라는 말을 들을 것을 각오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한 달을 고민하다가 “지금의 시대정신은 친북좌파를 척결하는 것”이라고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저는 꼴통보수로 찍혔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북좌파를 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내가 보수로 불린다면 보수는 좋은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종(친)북좌파 척결”은 절대로 보수적인 생각이 아닙니다. 이것은 바른 생각입니다. 우리 역사에는 반드시 청산되어야 하는 세력이 있습니다. 이미 친일파와 군사독재세력은 역사에서 청산되었습니다. 개인은 존재해도 세력으로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종북좌파세력이 청산되어야 합니다. 진작에 청산되어야 했는데 아직도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보수도 진보도 다 필요하고 우도 좌도 다 필요하지만 종북좌파는 절대 안 됩니다. 좌파와 종북좌파를 엄격히 구분해서 종북좌파를 악착같이 척결해야 역사가 한 단계 진전합니다. 특별히 민주당은 전교조같은 종북좌파와 손을 잡으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는 한 민주당은 절대로 정권을 잡을 수 없습니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으면 전교조가 설칠 터인데 그 꼴을 어떻게 보나하고 생각하는 국민이 워낙 많기 때문입니다. 민주당이 종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면 당장은 어려울지 모르지만 곧 정권잡을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 같은 사람이 얼마든지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처럼 평생을 진보로 살아온 사람조차도 민주당을 반대한다면 민주당은 정권잡기 힘들 것입니다. 저는 시민운동과 기독교운동은 특정정당을 지지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탈선입니다. 저는 과거 경실련운동을 하면서 노태우정권, 김영삼정권, 김대중정권 하에서 한 번도 특정정당을 지지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노무현정권 하에서는 도저히 중도의 입장을 견지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한나라당을 지지했습니다. 종북좌파와 손을 잡는 정치세력을 반대하다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는 다시 중도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민주당이 전교조, 민노총, 범민련, 한총련과 같은 김정일 추종세력과 선을 그어야 합니다. 그렇게만 되면 저는 즉시 한나라당 지지를 중단하고 정치적 중립을 선언할 것입니다. 특별히 저는 호남의 기독교인들에게 할 말이 많습니다. 광주의 기독교는 주민의 40%로 정치적 영향력이 대단히 큽니다. 그런데 광주의 교회는 대부분 민주당을 지지합니다. 그렇다면 호남의 교회들은 민주당에게 친북좌파와의 관계를 단절하라고 강력히 요구해야 합니다. 교회가 정당에 영향을 끼쳐야지, 거꾸로 정당이 교회를 지배한다면 이는 옳지 않습니다. 특별히 기독교인들은 김정일 세력과 단호하게 맞서야 합니다. 김정일 세력은 사탄의 세력입니다. 북한정권은 기독교를 자기들의 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국민교육 장소인 신천 역사박물관은 反기독교 선전장입니다. 저는 신천역사박물관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제 증조부되시는 서경조목사님이 다른 초대교회 목사님과 언더우드목사님 아들인 원한경 박사와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는데 그 밑에 “양키의 앞잡이 야소교인들”이라는 설명문이 있었습니다. 제가 항의를 하니까 떼겠다고 말은 했지만 끝내 떼지 않았고 지금도 그 사진은 그곳에 걸려 있습니다. 그 사진은 신천역사박물관의 존재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한국교회가 북한에 식량을 주어도 소용없습니다. 북한에서는 성경책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발각되면 무조건 정치범수용소로 가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김정일세력이 기독교를 제대로 안 것입니다. 기독교인은 김정일 수령독재체제를 절대로 용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평양에 봉수교회와 칠골교회가 있지 않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교회들은 다 가짜입니다. 제가 북한을 여섯 번이나 갔었고 갈 때마다 봉수교회를 갔습니다. 처음 봉수교회에 갔을 때는 얼마나 감격스러웠는지 모릅니다. 살짝 한 여신도에게 물었습니다. 어떻게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까? 그랬더니 “자기 할머니가 권사님이었는데 할머니 무릎에 누워 찬송가를 배웠고 후에 봉수교회가 세워져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 답변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항상 하는 상투적인 답변인줄을 몰랐습니다. 그리고 저는 귀국 후 성령님의 놀라운 役事에 감격해 하는 설교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4년전인가 워싱튼에서 프리덤하우스가 주최하는 북한인권대회가 열렸습니다. 그때 탈북자인 김형식교수가 발제를 했습니다. 그분은 35년간 김형직 사범학교의 국어교수를 하다가 모스크바 대학의 조선어 교수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부인은 반드시 평양에 “인질”로 남아야 합니다. 김형식교수는 중앙당에 부인이 봉수교회 교인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봉수교회 교인은 대남공작에 종사하는 사람들로 주로 구성되는데 교인이 되면 외국인과의 접촉이 잦아 식량과 의복의 배급이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앙당은 봉수교회 교인이 300명인데 이미 교인이 되려고 신청한 사람이 60명이 있어서 부인을 61번째 대기자명단에 올려놓겠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김 교수는 부인이 봉수교회 교인이 되려면 십년은 족히 기다려야 할 것 같아 할 수 없이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작년에 인명진 목사님이 북한을 다녀왔는데 봉수교회에 가지 못했답니다. 방문객이 없는 줄로 알고 교회가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인목사님이 봉수교회가 가짜임을 확인해 준 셈이었습니다. 한국교회는 지난 20년 동안 봉수교회가 가짜인 것을 모르고 계속 교류하고 공동기도문을 교환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일을 그만해야 합니다. 20년간 속았으면 되었지 어떻게 가짜인줄 알면서도 사기극을 계속합니까? 아프리카 최고 독재자는 이디아민이었습니다. 아시아의 최고 독재국가는 미얀마입니다. 그런데 저는 김정일이 이디아민처럼만 되고 북한이 미얀마처럼만 될 수 있다면 더 이상 願이 없겠습니다. 미얀마가 동남아 최악의 인권유린 국가이지만 그래도 종교의 자유는 있습니다. 종교의 자유도 없는 나라는 지구상에 북한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이 김정일세력과 담대하게 맞선다고 해서 기독교가 북한을 무너뜨리거나 북한과 전쟁하자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지지합니다. 이명박 정부의 가장 중요한 임무도 한반도에서 전쟁이 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북한을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한반도의 평화만을 추구하면 안 되고 한반도의 평화와 북한인권을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평화만을 추구하겠다는 생각은 북한의 인권참상을 외면하는 대가로 남한 사람들의 생명과 재산과 안전을 북의 김정일로부터 보장받겠다는 너무도 이기적인 생각입니다. 기독교인은 이 생각을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야당은 북한인권을 말하면 평화가 깨진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인권을 개선시키지 않으면서 평화만 추구하면 그 평화는 진정한 평화가 아닙니다. 사이비 평화, 거짓 평화입니다. 인권문제를 제기하는 순간 그대로 깨지는 평화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십년간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가 추구한 평화도 이런 평화였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인권문제를 말하니까 그 순간 그대로 깨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인내심을 갖고 북한인권을 말해야 합니다. 북한체제가 조금씩이라도 유연하게 변화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중에 개방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습니다. 북한이 끝까지 경직된 체제로 가면 루마니아의 차우세스크같은 운명을 맞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북한인권을 말하는 이유는 북을 붕괴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북을 연착륙시키기 위해서입니다. 또 평화는 안보 없이는 되지 않습니다. 연평도 포격이후 한국의 포사격 훈련에 대해 북한이 보복하겠다고 위협했지만 한국은 훈련을 강행했습니다. 이러한 단호한 태도가 평화를 지킵니다. 만일 그렇지 않고 북한을 두려워하고 북한의 눈치만 보면 북한은 기회있을 때마다 한국을 공격할 것입니다. 연평도 포격사건이 일어난 이유도 천안함 폭침이후 한국국민이 단합된 모습으로 단호하게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한국이 강력하게 대응하니까 북한은 거꾸로 대화공세로 나오고 있습니다. 야당은 북한에 강력하게 대응하는 것은 전쟁하자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이 생각은 옳지 않습니다. 김정일이가 천안함을 폭파한 이유는 그래야 “이명박정권이 북한과 맞대결하니까 천안함 사건이 터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명박은 앞으로 김정일과 친하게 지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야당과 좌파단체, 좌파언론은 천안함 폭침이후 그런 주장을 쏟아내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이명박정부가 야당 말대로 북한에 굴복했더라면 북한은 “봐라. 한방 얻어맞으니까 정신차리지 않는가? 앞으로도 삐딱하게 나오면 다시 한방 때리자”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북한이 도발하면 그보다 열배 스무배 더 큰 고통을 북한에 안겨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북과 대화할 때도 유리한 상황에 서게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무리 김정일 정권이 밉다고 북한 동포까지 미워하면 안 됩니다. 요즈음 북한동포가 다시 굶어죽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들을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김정일정권에게 식량을 갖다 주면 다시 김정일 체제가 강화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두만강 변에서 식량을 주어야 합니다. 이 방식은 그동안 미국단체가 해왔던 방식입니다. 그리고 이 방식은 김정일 정권을 강화시키지 않으면서 북한동포에게 식량을 전하는 방법입니다. <나눔과 기쁨>은 함경북도의 각 郡에 있는 유치원과 탁아소의 어린이들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5:1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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