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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기쁨
마태 5: 40
저는 요즈음 시간의 대부분을 <나눔과 기쁨>이라는 단체활동에 쓰고 있습니다. 이 단체는 제가 이사장으로 있는 나눔운동 단체입니다. 이 단체의 명칭이 주는 의미는 나누면 기쁨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이름이 잘 지어졌다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들었습니다. 실제로 나누면 기쁩니다. 저는 이 점을 젊은 시절에 체험했습니다. 저는 대학시절에 수학을 잘해서 수학선생 아르바이트를 빠지지 않고 했습니다. 한 주일에 세 번씩 두시간동안 가르치면 한달 월급 만원을 받았는데 그 당시 만원이면 지금은 50만원은 충분히 되는 돈입니다. 그런데 저는 그 당시 이천원이면 한달 용돈으로 충분했습니다. 남은 8천원을 어떻게 쓸까? 이 궁리 저 궁리를 했지만 제일 좋은 방안은 제 어려운 친구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해서 길거리에 나앉게 되었는데 무연탄 가스중독으로 누이동생과 아버지까지 사망하여 아주 어려운 사정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매달 8천원을 그 친구에게 갖다 주었습니다. 나중에 전부 합해보니까 십만원이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계획을 세워서 준 것도 아니고 매달 어떻게 쓸까를 고민하다가 그 친구에게 갖다 주곤 했습니다. 나누는 기쁨이 제일 컸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인간은 나누는 기쁨을 누리며 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절제하게 만드는 힘도 나누는 기쁨의 힘입니다. 소비하는 일도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소비하지 않고 절제하는 이유는 나누는 기쁨이 그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대학시절에 아르바이트 해서 남은 돈으로 옷을 살까? 영화를 볼까? 아무리 생각해도 역시 제일 좋은 것은 친구를 돕는 것이었습니다. 비싼 옷을 사 입는 것이 기쁨이 아니었습니다.
특별히 기독교인에게 나눔이 기쁨이 되는 이유는 나눔이 신앙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베르자에프라는 신학자가 한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빵을 나누어 먹으면 영적이지만 빵을 혼자 먹으면 영적이 아니다”라는 말입니다. 나누는 삶을 살지 않으면 신앙적인 삶을 살지 않는 것이라는 것이지요.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삶을 살면서 하나님이 계심을 느끼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왜 나를 이렇게 외롭게 버려두는가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누가 자기에게 감동적인 사랑을 보여주면, 그래서 자기의 삶에 희망이 생기면, 그 사랑 속에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전도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몸으로, 행동으로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실천을 통해 상대방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나눔과 기쁨>이 하는 일이 바로 이러한 일입니다. 서울 구로구 <나눔과 기쁨>의 조남영 목사님은 그동안 25가정에 반찬도시락을 나누는 일을 했습니다. 밥은 전기밥솥 때문에 짓기 쉬운데 반찬은 먹거리를 사서 조리를 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기 때문입니다. 반찬도시락은 큰 돈이 들지 않습니다. 하나에 2천5백원 정도입니다. 그렇지만 이 도시락을 작은 교회 목사님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누어주면 그분들이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 합니다. 하루종일 있어도 찾아오는 손님이 없는데 목사님이 도시락을 들고 찾아갔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25가정 중에서 19가정이 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달에는 그중 9명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목사님의 행동이 그분들에게 감동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은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고 속옷을 달라거든 겉옷까지 주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세상의 원리입니다. 왜 나눔이 기쁨인가? 나눔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 뜻대로 살면 우리는 복 받는 삶을 삽니다. 그래서 십일조가 끝이 아닙니다. 적어도 십의 이조, 삼조는 남을 위해 써야 합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쇠락하고 있는데 한국교회가 부흥하려면 나눔운동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눔과 기쁨>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 분은 문준경전도사입니다. 이분은 해방후에 전라남도 증도라는 섬에서 다리 밑의 병든 거지들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거지가 병이 들어서 구걸을 하지 못해 밥을 굶습니다. 그래서 문준경전도사는 아침마다 누릉지를 구걸해서 끓여서 병든 거지를 수발했습니다. 병든 거지 대신 거지노릇을 한다고 해서 문준경전도사에게 붙여진 별명이 “대신거지”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지 마십시오. 증도의 모든 주민이 문준경전도사 때문에 전부 예수를 믿었다고 합니다. 얼마든지 전 주민이 예수믿을 수 있습니다. 단지 우리가 문준경전도사처럼 살지 못했기 때문에 전도가 잘 안 되고 있는 것 뿐입니다. 그래서 전도는 절대로 입술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본이 될 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른 기독교인으로 살았다면 평생에 몇 번은 주위 사람들로부터 “왜 당신은 보통사람과는 달리 어쩌면 그렇게 헌신적으로 사랑을 실천하십니까? 도대체 당신의 삶의 비밀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 질문을 받는 때가 전도의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면 그 고백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기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민족복음화는 우리의 간절한 바램입니다. 그런데 지난 70년대에는 정의실천을 통해 민족복음화 운동을 했습니다. 수백 수천의 기독교 젊은이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보면서 예수 믿으면 감옥가는 용기가 생긴다고 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발로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감옥갈 일이 없습니다. 대신 지금은 사랑으로 복음화운동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지독할 정도로 악착같이 어려운 이웃들을 돕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들이 우리의 행실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달 전에 한 아주머니가 교회로 찾아왔습니다. 아들이 위암수술을 했는데 다시 간에 복수가 차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천 길병원에 가서 치료받아야 하는데 돈이 없어 갈 수 없는 형편이라고 합니다. 우리 교회도 돈이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베드로는 ‘은과 금 나 없어도 내게 있는것 네게 주리, 주 예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했지만 저는 그런 능력도 없습니다. 제가 있는 것이라고는 떼쓰는 능력밖에 없습니다. 아주머니와 같이 길병원 원장실을 찾아가서 무조건 도와달라고 떼를 썼습니다. 그리고 아들을 단식원에 보내어 단식을 하고 관장을 해서 독소를 빼내고 지금은 강원도 정선에 가서 살게 했습니다. 서울조선족교회가 백만원을 내고 나전교회(조광진목사 시무)가 백만원을 내어 폐가를 수리해서 그분 가족이 있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나전교회가 그분들이 먹고 살 수 있도록 돕기로 했습니다. 최근 소식을 들어보니 건강이 너무도 좋아졌답니다. 지난 주에도 한 아주머니가 교회를 찾아왔습니다. 자기 동생의 아들이 27살 난 젊은 조선족인데 얼마 전부터 너무 힘들어 해서 고대구로병원에 갔더니 뇌종양이랍니다. 그런데 집문서가 있어야 입원시킬 수 있다고 해서 입원하지 못하고 있으니 도와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함께 고대구로병원에 찾아갔습니다. 제가 보증을 설 터이니 입원시켜 달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제게도 집문서를 담보로 잡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말에 제가 분노가 폭발했습니다. 고려대학교가 집문서가 있는 사람만 고쳐주겠다고 하는 것이 말이 되는가? 나같이 집없는 사람은 병원치료도 받을 수 없는가? 저는 조선족교회 교인들 보고 전부 고대구로병원으로 오라고 연락했습니다. 병원의 접수창구 앞에 전부 드러누울 심산이었습니다. 그제서야 병원측이 입원시키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병원측에 진단만 제대로 받으면 된다, 수술까지 공짜로 해달라고 하지 않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뇌종양은 수술로 되지 않습니다. 수술을 잘못하면 전신마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게다가 눈에 보이지 않는 뇌종양은 제거가 불가능합니다. 이 경우도 단식을 하고 관장하고 강원도 산골에 가서 살아야 병이 나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도울 예정입니다. 문준경전도사를 다시 생각해 봅시다. 전도사님은 복음만 전하면 되었습니다. 다리 밑의 병자를 살리지 않아도 문준경전도사에게 뭐라고 할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문전도사님은 다리 밑의 병자들을 악착같이 살렸습니다. 그런데 절망에 빠진 조선족들이 교회에 찾아와 호소하는데 우리가 이들을 빈손으로 돌려보낼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이들을 악착같이 살려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랑의 실천을 통해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저렇게 죽도록 사랑을 실천하는구나하고 깨닫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들은 반드시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라고 말할 것입니다. 성도여러분, 주변에 어려운 동포가 있으면 악착같이 도웁시다. 어떤 때는 돕는 일이 너무 힘이 듭니다. 그래서 신경질도 납니다. 윤수련 집사가 자꾸 어려운 사람들의 문제를 들고 와서 나를 괴롭히면 나는 막 신경질을 냅니다. 윤수련집사가 웬수입니다. 그러나 고맙습니다. 계속 나를 괴롭히기 바랍니다. 누가 이기나 보자하고 우리 목사님들을 괴롭히기 바랍니다. 이것이 우리의 믿음생활입니다. 지금 <나눔과 기쁨>에는 3천5백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동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처럼 살자고 결단하고 있습니다. 우리교회 부목사님도 이 운동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 운동에서 한국교회의 희망을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교회가 <나눔과 기쁨> 안에서 가장 本이 되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조선족 동포들 중에 어려운 이웃이 있으면 전부 우리교회가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교회가 다 돕지 못하면 조선족 후원회를 조직해서라도 도왔으면 좋겠습니다. 그것도 안 되면 주위의 교회에 도움을 청하도록 하십시다. 이러한 우리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이 살아계심이 증거되도록 하십시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58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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