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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갈등의 해법
서 경석 목사
사회갈등은 어느 사회나 꼭 있어야 한다. 그리고 갈등이 합리적으로 해소될 때 사회의 건강한 발전이 이루어진다. 이를 테면 중앙과 지방간의 갈등, 성장과 분배간의 갈등, 시장과 정부와의 갈등 등은 꼭 필요한 갈등이고 합리적인 대화와 토론을 통해 적정선을 찾아야 하는 갈등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에서 사회갈등의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는 이유는 보수와 진보간의 이념적 갈등이 해법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극단적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과거에도 이러한 갈등을 겪은 바 있다. 일제시대와 군사독재시대가 그러했다. 이 때에는 일제가 청산되고 군사독재가 청산될 때에만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지, 대화와 타협으로는 해결이 불가능했다. 물론 이 시대에도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풀려는 시도가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이광수의 자치론이 있었고 군사독재체제에서는 이철승씨의 중도통합론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전부 국민으로부터 사이비로 지탄받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청산되어야 할 세력과 타협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세력은 끝내 역사 속에서 청산되었고, 더 이상 세력으로서의 친일파, 군사독재세력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사회의 극단적인 대립현상은 대화와 타협이 가능한 대립인가? 아니면 어느 한쪽을 퇴출시켜야만 해결될 갈등인가? 이명박 정부 이후 우리사회의 이념적 갈등은 해소되기는 커녕 더욱 증폭되어 왔다. 그리고 극단적인 좌우대립을 극복하려는 어떠한 민간차원의 시도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점은 사람들이 현재의 이념적 갈등을 대화와 타협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갈등으로 보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러한 극단적인 대립이 생기게 되었다. 그 이유는 우리사회에 거대한 從北(친북)좌파세력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이들과는 어떠한 대화도 타협도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1세기에 좌파세력이 판을 치는 나라는 세계 어느 곳에도 없는데 유독 한국에서 이 세력이 강대하게 힘을 쓰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과거 군사독재시절에 민주화세력이 강고한 투쟁을 하기 위해 자신을 흑백논리로 무장해야 했는데 당시 대부분의 학생세력이 북한의 주체사상론으로 무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학생세력이 주사파(NL)와 맑스레닌주의(PD)로 나뉘어 이념투쟁을 벌였는데 이 투쟁에서 주사파 세력이 승리하면서 NL세력이 한총련을 장악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의 주도로 87년 6월 민주화대항쟁이 성공하였다. 그리고 6월항쟁에서 승리한 후 이들은 氣가 쎄져서 사회 각계로 퍼져나갔다. 교사, 노동자, 시민단체 실무자, 정당, 기자 등 사회각계로 진출하여 전교조,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한총련, 언론노련, 시민단체, 정치권을 친북좌파 내지는 친북좌파의 동조세력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리고 사회를 흔들어대는 모든 움직임을 주동하였다. 미선이또순이 촛불시위도, 대통령탄핵을 뒤집은 촛불시위도 이들의 작품이었다. 그런데 이들이 자신의 몸통을 드러내어 스스로 從北좌파세력임을 국민에게 보여 준 사건이 바로 맥아더동상 철거시도 사건이었다. 이 시도를 통해 이들은 자기들이 인천상륙작전이 없었더라면 김일성에 의해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터인데 그렇게 되지 못해 너무도 원통하다고 생각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었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그 후에도 평택미군철수촉구 시위, 한미FTA반대투쟁, 광우병 촛불시위를 주도해 왔다. 지금도 이들은 야권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그래서 이제와서는 민주당이 이들과의 관계를 단절하고서는 정권탈환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이들과의 관계를 단절했던 진보신당조차도 다시 재통합 과정을 밟고 있다. 이 상태에서는 좌우파간 이념갈등의 해법은 찾아질 수 없다. 진보진영이 종북좌파세력과의 관계를 단절하고 합리적인 진보로 거듭나지 않는 한 보수진영은 이들과 대화하거나 타협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종북좌파세력은 극복 내지는 청산되어야 할 세력이지, 대화와 타협의 상대가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은 내년 선거결과에 촉각이 집중되어 있다. 만일 이 선거에서 우파가 정권재창출에 실패한다면 한국 사회는 끝없는 정쟁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게 되고 선진국의 꿈도 심각하게 위협당할 것이다. 보혁갈등도 더욱 심화될 것이다. 그런데 만일 다시 우파가 집권할 수 있다면 그때에는 우리사회에서 종북좌파를 청산시킬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도 친북좌파와의 단절 없이는 아무 것도 이룰 수 없음을 깨닫고 더 이상 그들에게 끌려다니지 않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보수와 진보간의 진실한 대화도 가능해지고 우리사회는 과거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권때와 같이 제3의 중립지대도 있게 되고 이에 따라 사회적 갈등도 쉽게 극복될 것이다. 두 번째 극단적인 좌우대립의 원인은 우리사회가 극단적으로 정치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사실 노태우정권, 김영삼, 김대중 정권때까지만 해도 정부 자신이 국민대다수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우리사회에 광범위한 중간지대가 존재할 수 있었고 따라서 대다수의 시민단체들이 보수도 진보도 아닌 중립에 서 있을 수 있었다. 경실련과 같은 단체가 대표적이다. 경실련은 특정 정권을 지지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고 특정 정책에 대한 찬반만을 말해 왔다. 그리고 이러한 단체들이 균형추의 역할을 하여 우리사회의 많은 사회적 갈등을 조정해 낼 수 있었다. 그러나 노무현정부는 스스로 좌편향으로 치우쳤고 중간지대가 더 이상 존재할 수 없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경실련 조차도 좌와 우로 분열되어 우는 경실련을 떠나고 좌는 경실련을 장악하게 되고, 경실련 스스로 중립적인 위치를 포기하고 좌편향 단체로 전락하고 말았다. 중도적인 시민사회가 더 이상 존립할 수 없게 되면서 시민사회 전체가 좌와 우로 갈라지게 되었다. 그리고 우파정권이 들어서면 좌파들은 가진 것을 전부 빼앗기고 좌파정권이 들어서면 우파들이 모든 것을 빼앗기는 "all or nothing"의 전쟁상태가 만들어지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는 집권 후 과거의 “좌파독식”을 시정하는 일에 착수했지만 자기 선거캠프의 사람들에게만 논공행상을 하고 광범위하게 인재를 구하지 못함으로써 정반대의 “우파독식”으로 감으로써 “all or nothing"의 전쟁상태를 완화시키는데 전혀 성공하지 못했다. 자기가 속한 진영이 정권을 잡지 못하면 아무 것도 얻지 못하는 현실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진영의 공식입장과 다른 생각을 드러내지 못하게 만들어 결과적으로 公論의 형성을 불가능하게 한다. 지난번 세종시 문제가 논란이 되었을 때 그래도 우파에서는 찬반논의가 활발했지만 좌파진영에서는 단 한사람도 수도분할은 잘못되었다는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이번 무상급식을 둘러싼 서울시 정책선거에서도 단계적 무상급식이 옳다는 주장을 한 이름 있는 좌파 지식인이 한 명도 없었다. 이점은 시민사회의 과도한 정치화로 인해 지식인 집단 안에서 知性과 양식이 실종되었음을 의미한다. 자기가 속해 있는 정치적 진영의 노예가 되어 살고 있는 것이다. 이 상태에서는 갈등 해소를 주도할 제3세력의 형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면 이 상태에서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그렇지 않다 우파진영에서 정직하게 발언하는 일단의 그룹이 나와야 한다. 그래서 그 그룹이 보수와 진보의 구분을 뛰어넘어 사회전반에 대해 바른 목소리를 내어 正論그룹으로서의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正論그룹이 되려면 적어도 다음 네 가지의 입장에 서야 한다. 첫째는 친북좌파세력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고 북한인권의 편에 분명하게 서야 한다. 이러한 입장을 취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부담스러운 일이어서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이러한 coming out으로 본인이 ‘꼴통보수’로 비쳐지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지식인들의 이러한 기회주의적 처신 때문에 젊은이들이 바르게 지도되지 못하고 있다. 둘째는 복지포퓰리즘을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중진국들이 선진국으로 가는 문턱에서 좌절하는 이유가 포퓰리즘 벽을 넘어서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복지를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능력만큼 복지를 해야 한다. 앞으로 한국은 고령화 사회, 인구감소, 통일이후에 대한 준비 등으로 복지수요가 엄청나게 생기게 되어 있는데 이에 잘 부응하기 위해서도 똑똑한 복지, 지속가능한 복지를 해야 한다. 셋째는 기득권세력의 독점과 횡포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하여 공정사회 건설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관예우를 반대하고, 재개발과정에서 쫓겨나는 사람들의 편에 서고, 대형마트는 카드수수료가 1.5%밖에 안 되는데 소점포는 3.5%를 내야하는 현실, 대형마트 때문에 수만명의 재래시장 상인이 생계를 잃는 현실에 맞서야 한다. 넷째는 긍지를 지닌 인간으로써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 가난한 나라를 위해 더 많은 돈을 쓰고, 조선족 동포를 포용하고, 사회적 소수자를 보호하고, 북한동포를 도와야 한다. 그리고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해야 한다. 지금과 같이 좌우대립이 극심한 상황에서는 이러한 正論그룹이 나오더라도 당장 큰 역할을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지금부터 이러한 그룹이 나와서 계속 사회적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그래야 나중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검토해야 할 점이 교회의 역할이다. 교회가 사회발전에 바르게 기여해야 국민이 교회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게 되고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보여지게 된다. 또 그래야 전도의 길도 열리게 된다. 그렇다면 기독교 안에서도 正論그룹이 나와서 한국사회를 향해 바른 말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적 신뢰를 쌓고 영향력을 확대해야 한다. 이렇게 해서 기독교가 국민적 신뢰가 있는 사회세력으로 성장할 때에만 사회갈등을 극복해 낼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된다. 아직 기독교내에는 이러한 집단이 존재하지 않고 있다. 기독교 지식인들 안에서 이러한 논의가 심각하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5:1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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