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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1-07-23 01:07
   <나눔과 기쁨> 신규 본부장, 지부장, 임시지부장에게 드리는 네 번째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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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1,287  


<나눔과 기쁨> 신규 본부장, 지부장, 임시지부장에게 드리는 네 번째 편지


  안녕하십니까? 나눔과 기쁨의 서경석목사입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작은 교회에 주신 사명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나눔과 기쁨>의 가장 큰 성과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자신을 향하신 주님의 사명을 자각하게 된 점입니다. 이제까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항상 제대로 대접받지 못했고 주눅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첫 번째 자각은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을 작은 교회에 맡기셨다는 점입니다. 큰 교회들이 종종 조선족 돕는 행사도 하고 노숙자를 돕는 행사도 합니다. 그런데 조선족 동포들이 큰 교회 행사에 가서 오리털 잠바를 선물로 받았는데 고맙다는 생각은 없이 받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은 작은 교회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이 반찬도시락을 들고 독거노인을 찾아가면 그분들은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그러나 큰 교회 프로그램에는 스킨쉽에서 오는 감동이 없습니다. 사랑을 실천하여 감동을 주는 일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몫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 목사님 자신이 많은 시련을 겪어 왔기 때문에 어려운 이웃을 격려할 수 있는 영적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와 큰 교회는 역할분담을 해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에게 사랑과 복음을 전하는 일은 작은 교회에게 맡겨야 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작은 교회 목사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해야 합니다.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국가적인 과제나 식자층, 중산층, 상류층에게 전도하는 일을 맡아야 합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수평이동을 해서 교인들이 큰 교회로 갑니다. 
  두 번째 깨달음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예수님을 따르기가 훨씬 쉽다는 점입니다. 초대기독교에서도 예수님이 힘없는 자, 아무 것도 아닌 자를 들어 힘있는 자를 무력하게 하신 것처럼,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신 것처럼, 작은 교회가 갖는 특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은 예수님을 따르기도, 가난하고 소외된 자의 편이 되기도, 큰 교회 목사님보다 훨씬 쉽습니다. 또 작은 교회는 잃을 것이 없기 때문에 눈치보지 않고 소신있게 말하기도 쉽습니다. 저는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고 나서야 비로소 작은 교회에는 특권이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은 이제부터 작은 예수가 되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껴안고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앞장서야 합니다. <나눔과 기쁨>은 주님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을 특별히 부르고 계심을 깨닫게 해주는 단체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나눔과 기쁨>과 만난 후에는 예수님처럼 살려고 애쓰게 되고 나아가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는 것을 거부하기 시작합니다. 사실 세상사람들은 교회의 크기로 목회자를 평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스스로 주눅이 들어왔습니다. 이제는 작은 교회 목사들 스스로가 자신을 주눅들게 만들었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세 번째 깨달음은 이제부터는 작은 교회가 한국교회의 갱신과 부흥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그동안 초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이끌어 왔는데 지난 십년간 기독교 인구가 14만명이나 감소한 점은 대형교회 주도의 한국교회 성장시스템에 문제가 있음을 보여 준 것입니다. 지나간 70년대에 2.4배나 성장했던 한국교회가 지금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있다면 한국교회를 지배하고 있는 “성장제일주의”가 근본적으로 파탄을 맞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기독교의 문제점을 성장제일주의로 인한 물질만능주의, 상업주의, 개교회주의와 같은 대형교회의 병리적 현상(mega church syndrome)에서 찾고 있습니다. MBC나 SBS의 기독교 고발도 이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기독교가 2.4배나 성장했던 70년대에는 지금과 같은 성장제일주의는 없었습니다. 대신 수백, 수천의 교회 젊은이들이 독재와 싸우다가 감옥 가는 모습을 보고 예수 믿으면 저렇게 강해지는구나 하고 생각한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왔습니다.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님 말씀에 의하면 70년대에는 자기 교회에 새 신자가 매주일 열명 씩 자기 발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열심히 전도해도 매주 한두 명의 새 신자가 있을 뿐이라고 했습니다. 왜 지금은 교회가 그렇게 열심히 제자훈련을 하는데도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가? 한마디로 교회가 예수님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대형 교회는 자기들끼리 安住하고 自足하는 모습만 보여주었을 뿐입니다. 70년대와 같은 감동이 없다 보니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하고 또 그래서 교회로 찾아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지금 岐路에 서 있습니다. 성장제일주의로 계속 갈 것인가 아니면 크게 방향전환할 것인가의 기로입니다. 이제는 예수님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고 자기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제는 대형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살려는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합니다. 그래야 지난 70년대의 ‘기적적인 교회성장’을 再現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크기로 교회를 평가하는 태도가 바로 성장제일주의인데 이 생각이 바로 한국교회 위기의 근본원인이었습니다. 70년대에는 십자가를 지고 고난당하는 교회들은 성장하지 못했고 그래서 당시에는 교회성장이 교회평가의 절대기준이 아니었습니다. 또 그랬기 때문에 목사들도 교인의 비위를 맞추는 설교만을 하지 않았고, 또 그랬기 때문에 교회가 사람들에게 존경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점이 70년대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발로 교회를 찾아온 이유입니다. 
  이제는 작은 교회를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작은 교회를 美化하면 안 됩니다. 어딘가 부족한 점이 있으니까 성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작은 교회도 큰 교회와 똑같이 성장제일주의라는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는 회개와 결단이 쉽습니다. 부자청년은 예수님을 따르기 힘들었지만 가진 것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은 쉽게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또 대제사장과 서기관은 강도만난 자를 보고도 지나쳤지만 천대받는 사마리아인은 참된 이웃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작은 교회가 한국교회를 새롭게 하는 일에 主役으로 부름 받았음을 자각해야 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가 부흥하지 못한 이유는 작은 교회들이 이 자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들은 반드시 연대해야 합니다. 연대하지 않으면 너무 작아서 보이지도 않습니다. 수천 수만의 작은 교회가 공동으로 예수님처럼 살기를 결단해야 합니다. 혼자서는 결단하기 어렵지만 공동으로 하면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중형교회, 대형교회, 초대형교회도 이 대열에 반드시 동참할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서경석 드림.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5:1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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