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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과 기쁨> 신규 본부장, 지부장, 임시지부장에게 드리는 두 번째 편지
안녕하십니까? 서경석목사입니다. 오늘은 <나눔과 기쁨>의 목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나눔과 기쁨>은 처음에 민간사회안전망 운동이라고 자신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전도가 잘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눔과 기쁨>의 목사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전도가 너무도 쉽습니다.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기만 하면 전도는 그냥 됩니다. 전도는 목표가 아니라 삶의 결과로 따라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나눔과 기쁨>전도법이라고 말합니다.
이 점은 저의 목회경험과도 일치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경실련이라는 시민운동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래서 저는 앞으로도 시민운동을 하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제가 목사입니다. 제가 속한 교단에서는 목사직을 계속 유지하려면 반드시 목회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목사직을 반납해야 하는데 어느 날 서경석 목사가 갑자기 서경석 선생으로 바뀌면 세상사람들은 제가 교회 안에서 징계라도 받은 줄 알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떻게 하면 목사직을 유지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조선족 동포들을 위한 교회를 세우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선족 동포들은 한국에 와서 고단한 삶을 살기 때문에 심방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평일에는 시민운동을 하고 일요일에만 교회에 가서 설교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서울조선족교회를 세웠습니다. 목사직 유지를 위한 얄팍한 생각인 셈입니다. 그런데 교회를 세우고 조선족동포들을 만나보니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이들의 고통이 너무 컸습니다. 가정이 깨지고, 빚이 천만원이고, 자식이 아프고, 감옥에 있고, 암이 걸리고.... 세상에 이렇게 불행한 민족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이들은 거의 다 불법체류자입니다. 어느 날 갑자기 잡혀가고 추방당합니다. 빚도 갚기 전에 중국으로 추방당하면 이들에게는 지옥과 같은 삶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동포들은 나한테 매달립니다. 목사님 살려주십시오. 나는 개인적인 이유로 교회를 시작했는데 걸려도 된통 걸린 셈입니다.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도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께서 조선족동포들을 너무도 사랑하셔서 꾀많은 나를 꾀까지 쓰게 하면서 이들에게 보내셨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이들을 위해 헌신할 것을 각오했습니다. 금년 6월에 서울조선족교회는 창립 십이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저는 죽을 각오로 단식을 여섯 번이나 했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후에도 25일간 단식을 했습니다. 10일, 17일, 23일, 10일, 18일, 25일을 단식했는데 저는 항상 싸움에서 승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무조건 이길 때까지 단식을 했으니까요. 한 번은 단식 23일을 하던 때에 단식 17일째가 되었는데 위출혈이 났습니다. 화장실에 가서 시꺼먼 짜장면을 대야로 하나를 쏟았습니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오다 정신을 잃었는데 붉은 피를 입으로 한 사발을 토했습니다. 즉시 병원으로 실려가서 수혈을 하고 나서야 정신이 돌아왔습니다. 위출혈이 무서운 줄을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긴급하게 병원으로 이송되지 못했더라면 생명이 위험할 뻔 했습니다. 레이저로 피 나오는 곳을 지진 후에 다시 단식을 계속했습니다. 단식 23일이 되니까 법무부가 완전히 손을 들었고 저는 또다시 싸움에서 이겼습니다. 그런데 제가 피를 쏟던 장면을 지켜보았던 조선족 동포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목사님, 우리끼리 토론했는데 도저히 해답을 못 찾았습니다. 왜 목사님은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바치십니까? 목사님이 중국에 와서 인민대회 의원이 될 것도 아니고 중국과 비즈니스를 하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목숨을 바치십니까?” 저는 그분들에게 “당신들이 그 이유를 알고 싶으면 한 달 동안 예배에 참석해서 제 설교를 들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분들이 한 달 동안 제 설교를 듣고 나서 다시 제게 찾아왔습니다.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 저는 이 말을 듣고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전도는 아무 때나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서울역 앞에서 십자가를 들고 아무리 예수천당을 외쳐도 전도가 되지 않습니다. 전도는 전도의 때가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몇년 전에 똑같은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예장통합측 총회가 창립 백주년을 맞이하여 초대교회 목사님들의 후손을 초청해서 식사대접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증조부가 황해도 소래에 한국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를 세운 서경조 목사님이시기 때문에 저도 그 자리에 초대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제주도 선교를 처음 하신 이기풍 목사님의 막내 따님을 만났습니다. 그 권사님이 이기풍목사님의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이 목사님이 제주도에 가서 정말로 헌신적으로 주민들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나중에 주민들이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 우리도 믿겠습니다.”고 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토씨하나 틀리지 않고 똑같은 말을 듣게 되었는지 저는 정말로 감동이 되었습니다. 전도는 하나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죽을 각오로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면 됩니다. 이슬람선교가 어렵다고 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나라에 가서 그 나라 주민을 죽도록 사랑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나라 주민들이 반드시 질문하게 되어 있습니다. “도대체 당신은 왜 이역만리 한국에서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십니까?” 그러면 그때가 바로 전도의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의 신앙을 고백하면 그들은 반드시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나눔과 기쁨>이 가장 존경하는 분이 문준경 전도사입니다. <나눔과 기쁨>이 출범예배를 가질 때 돌아가신 김준곤 목사님께서 설교하시면서 처음 문준경전도사님을 소개해 주셨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은 전남 증도에서 병들어 구걸조차 하지 못하는 거지들을 위해 “대신거지” 노릇을 했습니다. 아침밥을 짓는 집마다 돌아다니며 누룽지를 얻어다 죽을 끓여 병든 거지들을 돌보았습니다. 문준경전도사의 이 모습을 보고 섬 안의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주민 전부가 예수믿는 일이 절대로 불가능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문준경 전도사님처럼 살지 못하기 때문에 전부다 예수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문준경 전도사님이야말로 <나눔과 기쁨>의 표상입니다. 지난 6월, 저는 광주 호남신학교 뒷산 선교사 묘지에서 있은 서서평선교사 77주기 추모예배에 참석했었습니다. 서서평선교사의 본명은 엘리자베스 쉐핑(Elisabeth J. Shepping, 1880~1934), 독일계 미국인입니다. 32살 처녀의 몸으로 미국 남장로교회 간호선교사로 한국에 와서 54살에 별세하셨습니다. 그분은 한국 어린이 14명을 양자로 키웠고 고아들의 어머니, 한센환자의 어머니로, 간호사 사역의 주춧돌로, 전도사로서 교육자로서 예수님처럼 살다 가셨습니다. 저작거리를 헤매는 여자 나병환자나 거지들을 만나면 집에 데려 와서 목욕시키고 밥을 먹이고 자기 옷을 나누어 입혔기 때문에 선교사님은 평생 두벌 옷을 갖지 못했다고 합니다. 서서평선교사는 자신에게 부쳐온 선교헌금을 가난하고 버림받은 사람들을 위해 몽땅 써 버린 후 정작 본인은 1934년 6월 말에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장기마저 세브란스에 기증한 그녀가 남긴 전 재산은 담요 반장, 쌀 두 홉과 현금 27전이 전부였습니다. 장례식때 동아일보는 서서평선교사를 “재림한 예수”로 평했습니다. 그녀의 삶은 광주사람들은 물론 일본인마저 성녀로 부를 정도로 경외의 대상이었다고 합니다. 저는 평소에 어떻게 광주의 기독교인이 전체 주민의 40%까지 되는가가 궁금했었는데 그 의문이 풀렸습니다. 서서평선교사, 최흥종목사, 손양원목사, 문준경전도사 같은 분들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이분들이 광주전남 지역의 모든 시민들로부터 넘치는 존경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서서평, 최홍종, 손양원, 문준경과 같은 신앙의 선배들의 뒤를 따라 우리도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면 우리는 틀림없이 우리 민족 전체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만 쓰겠습니다.
서경석 올림.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5:1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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