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로그인  회원가입   처음으로     
칼럼
 칼럼
 칼럼

선진화시민행동
사단법인 사랑의나눔
 
칼럼 >>  일반
ㆍHOME >  칼럼 >  칼럼 >>  일반
 
 
작성일 : 08-09-08 00:47
   <설교문> 화해의 사명
트랙백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2,331  


                            화해의 사명

                                                                                          마태 5:9, 10:34-36   


  요즈음 제 심경이 아주 황량합니다. 
  어제 김지하 시인이 법보신문에 기고를 했는데 그 안에 저를 꾸짖는 구절이 나오더군요. ‘불교는 더 성숙해져야한다’고 호통을 치는 목사까지 나타났다며 “그 목사가 누구인가? 나와 함께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되어 재판도 받고 뒷날 ‘경실련’을 만들면서 내게 와 ‘경제평화를 통한 사회성숙’을 역설하던 진보개신교의 일꾼 서경석 목사가 아닌가!" 하고 말하고 ”도대체 개신교 역사가 얼마나 됐다고 ‘성숙’ 운운인가? 불교역사, 불기(佛紀)가 올해 2552년임을 모르는가?" 라고 저를 꾸짖었습니다. 김지하 시인은 내가 좋아하는 형님인데 그 형님으로부터 야단을 맞고 나니 정신이 부쩍 났습니다. 지금 내가 전쟁터 속에 있구나하는 실감을 했습니다. 
  성숙이라는 표현은 라디오 인터뷰를 하다가 즉흥적으로 한 말이라 그 표현은 적절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좋은 표현을 잘 찾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불교의 행동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불교가 이번에 범불교도대회를 하면서 정부가 요구조건을 수락하지 않으면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하는, 운동권式 투쟁을 하면 사람들은 불교를 가볍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사회는 완전히 전쟁터입니다. 보수와 진보로 갈라져서 서로 견원지간으로 싸웁니다. 그리고 저는 그 전쟁터의 한 가운데 서 있는 느낌입니다. 더욱이 나는 지난 백일동안 진행된 촛불집회에 맞서서 1인시위를 하면서 촛불이 꺼지도록 하는데 앞장섰으니 더욱 그러합니다. 
  아마 틀림없이 우리 교인들도 나에 대해 사람들로부터 말을 많이 들었을 것입니다. 서울조선족교회 담임목사가 서경석 목사다 라고 하면 서목사가 좋다는 사람, 싫다는 사람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또 우리 교인 중에서도 왜 목사님이 싸움꾼이 되었나 하고 궁금해 하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사실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입니다. 오늘 본문도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화해의 역군이 되어야 합니다. 어떠한 대립과 갈등의 상황 속에서도 화해의 길을  찾아나서야 합니다. 더구나 기독교인은 죄인됨의 고백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더욱더 겸손한 마음으로 대화를 모색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 편으로 성경에는 화평이 아니라 대결을 강조하는 구절도 있습니다. 오늘의 또 다른 본문인 마태 10장 34-36절이 그러합니다. “내가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검을 주러 왔다. 자신과 아비, 딸과 어미, 며느리와 시어미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다”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은 좀 더 깊게 생각하면 화평하지 말자는 말이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를 실현하기 위한 노력을 철저하게 하라는 요구입니다. 예수님이 원하는 평화는 거짓평화, 겉으로만 의 평화가 아닙니다. 그래서 진정한 평화를 위해서는 때로는 진실을 들추어내야 하고 대립과 갈등도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된 평화, 정의와 인권이 실현되는 제대로 된 평화를 원하십니다.

  나는 정말로 화해의 역군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지금 나는 싸움꾼 노릇을 하고 있습니다. 진짜 평화를 위해서는 지금은 싸울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안타깝습니다. 시민사회도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서 서로 만나지 않습니다. 만나더라도 할 말도 없을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 우리나라 시민운동이 언제까지 이렇게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있을 것인가? 그래서 시민운동을 반성하는 자리를 만들어보자는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누었는데 한참 생각하고 나서는 결국 그 자리를 만들지 않기로 하고 말았습니다. 모여서 이야기를 해 보았자 좋은 결론이 나올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정도로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中道가 설 자리조차 없습니다.

  왜 우리나라가 이렇게 되었는지 꼭 따져보아야 합니다. 나는 일차적인 책임이 노무현 정부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 김대중정부 때만 하더라도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그때에는 그래도 中道가 설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보수와 진보로 쫙 갈라졌습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는 보수세력을 철저하게 배제시키고 진보세력이 모든 것을 獨食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중에는 자기가 살기 위해서도 처절하게 싸우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나도 지난 정권 하에서 덕을 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시시한 정부위원회 자리도 들어가 보지 못했고 KBS 심야토론에 토론자로 나가는 일도 철저하게 제외되었습니다. 하다못해 대통령이 보내주는 추석선물도 끊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전쟁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제부터 이명박 정부가 잘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지요. 이명박 정부가 잘해야 되지요.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좌파는 둘째 치고 이회창씨와 박근혜씨까지 배제시켜 정치적인 위기를 맞은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념갈등을 이명박 정부 탓으로만 돌릴 수도 없습니다. 지금의 좌우대결의 근본원인이 친북좌파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친북좌파가 있는 한 우파는 좌파와의 대결구도를 청산할 수 없습니다. 이 상태에서 화해를 말하는 것은 친북좌파와 손잡은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우파의 입장에서는 친북좌파는 청산의 대상이지 대화의 대상이 아닙니다.
 
  사실 지난 대통령선거 직후에 우리나라에 친북좌파를 청산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안에서 從北주의 반대투쟁이 터져 나오고 심상정, 이회찬 씨가 떨어져 나와서 진보신당을 만들었습니다. 또 민주당 안에서도 손학규씨가 대표가 되면서 합리적 온건파가 권력을 잡았습니다. 이러한 기조가 6개월만 더 갔더라도 우리나라 친북좌파는 심각하게 코너에 몰렸을 것이고 확실하게 배제시킬 수 있었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광우병 촛불시위가 등장하면서 상황이 완전히 반전되었습니다. 촛불시위의 결과로 다시 친북좌파가 좌파의 중심에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합리적 진보세력은 친북좌파 세력의 둘러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친북좌파는 앞으로도 상당기간 동안 뿌리 뽑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좌우파 간 전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좌파진영을 친북좌파가 주도하지 않고 합리적 진보세력이 주도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래서 합리적 진보세력이 선진국을 지향한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法治를 지지하고, FTA도 찬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된다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제일 먼저 당신들은 전교조, 민노총, 범민련, 진보연대 등 친북좌파 세력과 단절했느냐고 물을 것입니다. 만일 단절했다고 답변하면 그러면 같이 손잡고 일하자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친북좌파와 단절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들과 함께 대화할 수도, 손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서는 진보와 보수가 나뉘어져 싸운다고 치고 기독교 안에서도 계속 보수와 진보가 싸움을 계속할꺼냐?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런데 지금 기독교 내의 보수와 진보의 싸움은 얼마나 심한지 말도 못합니다. 기독교 내의 보수와 진보와의 거리는 불교와 기독교와의 거리보다 더 먼 것 같습니다.
  요즈음 불교가 하는 행동에 대한 기독교의 불만이 폭발 직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인들이 꾹 참습니다. 종교간 분쟁으로 비화시키지 않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기독교 내에서는 보수와 진보가 마음 놓고 싸웁니다. 특히 진보 기독교의 보수교회 공격은 눈뜨고 보기가 어려울 정도입니다. 기독교 안에서의 보수 진보 싸움을 진정시키기 위한 노력이 정말로 필요합니다. 

  저는 어제 설교를 준비하면서 종일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나도 기독교 지도자의 한 사람인데, 더욱이 보수 진보 간 전쟁의 한 가운데 서 있는 사람인데, 내가 과연 기독교 안의 보수와 진보간의 대결을 승화시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동안 기독교 내의 좌파세력에 대해 “저 친구들은 친북좌파다. 친북좌파의 앞잡이다. 아무런 희망이 없는 친구들이다.” 이렇게만 생각하고 대화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보고 뱀같이 지혜롭고 비들기같이 양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마태 10장) 그렇다면 좌파와 싸움도 하지만 동시에 대화를 위한 노력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왜 우리는 좌파들과 이렇게 싸우는지를 열심히 설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진정성이 전달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뱀처럼 전략만 가지고 싸운다면 우리에게서 비들기 같은 양순함이 있을 공간이 사라질 것입니다. 

  말할 것도 없이 기독교는 통합의 기독교여야 합니다. 보수만 가지고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진보만 있어도 안 됩니다. 기독교의 제사장적 전통과 예언자적 전통이 함께 보완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또 누구든지 예수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보편성의 원칙과 기독교는 가난한 자의 편이라고 하는 당파성의 원칙이 함께 보완관계를 이루어야 합니다. 보편성만 있으면 어떻게 되나? 하나님이 한국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다 공평하게 대우하신다면 어떻게 되나? 그렇게 되면 우리 조선족동포들 같은 사람들은 소외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조선족 동포들 같은 사람들을 특별히 사랑하시고 우리 편에 서 주셔야 하나님이 모든 국민을 다 공평하게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보편성과 당파성이 보완되어야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우선 기독교 안에서부터 보수와 진보가 대화하고 이야기 나누는 일을 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우선 중간지대에 계신 홍정길 목사님, 김명혁 목사님, 박종화 목사님 같은 분과 이야기 나누는 일부터 시작해야겠습니다. 겸손함을 가지고 그분들에게 다가가서 내 생각을 털어놓는 일부터 하겠습니다. 
 
  어제 저는 <우리들병원>에 대한 정부의 표적 세무조사를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이 성명서를 제 홈페이지에 올렸습니다. 이명박 정부가 90명의 조사관을 투입해서 <우리들병원>을 특별세무조사를 하고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세무조사의 이유가 이 병원이 노무현 전대통령과 친분이 깊다는 것 이외에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나만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니고 언론이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표적 세무조사”는 잘못되었다고 소리질렀습니다. 우파들이 지난 정권하에서 그렇게 소외되고 보복을 당했는데 이번에는 우파가 정권을 잡았다고 다시 좌파진영에 있는 사람들을 - <우리들병원>은 좌파도 아닙니다 - 보복한다면 이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은 필요하지만 좌파들을 손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면 좌우익 싸움이 끝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좌우익싸움에 종지부를 찍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치우친 것을 바로잡는 일을 해야지, 다른 쪽으로 다시 치우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저 같은 사람이 이명박 정부를 위해 그렇게 애쓴 것이 다 헛된 것이 됩니다.   
 
  그런데 세상 속에서 뿐만 아니라 우리 교회 안에서도 화해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물론 교회 안에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잘못되었다고 분명히 지적해야지요. 무조건 은혜로 덮으려고만 해서는 안 되지요. 그러나 이러한 우리의 모든 행동의 근본은 “화해”여야 합니다. 우리 교회 안에서 어떤 문제로 집사님 한 분이 고통을 겪고 있다면 우리 교회는 그분의 편에 서야 합니다. 그 한 분의 아픔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기독교는 99마리의 양을 우리에 두고 한 마리의 잃은 양을 찾아나서는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또 우리의 일상의 삶 속에서도 막힌 담을 헐고 서로 소통하고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렇게 소통하려는 의지가 약할 때에는 그 의지가 생길 때까지 열심히 기도를 하십시오. 기도를 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힘을 주십니다. 저도 반년이상 제 가까운 한 친구와 관계가 소원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놓고 기도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제게 소통할 수 있는 힘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먼저 그 친구에게 전화를 걸고 만나자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 믿는 사람들은 화해의 역군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지만 이 길이 기독교인이 가야 할 길입니다. 끊임없이 막힌 담을 헐고 대화와 소통의 길을 열어가기 위해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서경석목사의 세상읽기

주소: 서울 마포구 토정로319, 3층
EL: 02-2275-0476, FAX: 02-2268-8217, E-mail: sksgo7788@naver.com

copy rightⓒsuhkyungsuk.pe.kr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