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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선교 이대로 안 된다. - 미얀마를 다녀와서 -
서경석 목사 (기독교사회책임 공동대표)
지난 한 주간 미얀마 양곤을 방문해서 미얀마의 해외선교활동을 엿볼 기회가 있었는데 느낀 점이 많아 여기에 글을 올린다. 며칠간 방문하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 무리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지만 쓰지 않고는 못배길 것 같아 용기를 내어 방문 소감을 올린다.
미얀마를 방문하고 절감하게 된 첫 번째 생각은 이제는 한국교회가 세계 기독교를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다는 점이다. 미얀마에는 한인 선교사 가정이 약 50가정이 있다. 미국과 미얀마의 사이가 좋지 않다보니 미국선교사는 미얀마에서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다보니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 있는 선교사는 대부분 한국인이다. 그런데 이러한 곳이 미얀마 뿐은 아닐 것이다. 나는 지난 여름 유럽의 6개 나라를 돌았는데 영국에 가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다. 영국 기독교는 전체 인구의 2%에 불과한 반면에 이슬람교는 인구의 17%를 차지하고 있었다. 요한 웨슬레와 죤 녹스의 나라인 영국이 이래도 되는가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다른 유럽국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미 유럽교회는 세계선교에 대한 책임감을 감당할 수 없게 된지 오래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기독교와 세계선교에 대해 책임적인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런데 한국교회가 이러한 지도적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는가가 문제다. 우선 국내의 목회자 수급 불균형 때문에 한국에서 일할 곳을 찾지 못해 해외로 나온 선교사가 많다. 그렇게 되면 선교사 활동이 살기위한 방편이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한국교회의 물량주의, 실적주의가 끼치는 악영향이다.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가 실적에 급급하면 선교사들도 그러한 경향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용은 어떻든 간에 외양에만 집착한다. 그러다 보니 돈을 지원해서 교회를 세우고 마얀마 목사들에게 봉급을 주고 신학교를 돕는 일에 힘을 쏟는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미얀마 교회는 미얀마의 민중 속으로 파고드는 것 보다는 한인선교사들로부터 지원받는 일에만 관심을 갖게 된다. 그 결과 미얀마교회는 미얀마 사회에서 아무런 영향력도 갖지 못하고 목사직은 생활유지를 위한 방편이 되어버린다. 이렇게 되면 한국교회와 한인선교사들은 미얀마 교회를 정신적으로 병들게 만들고 있는 셈이 된다.
이러한 점은 초창기 한국교회와 너무도 대비된다. 옛날 미국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을 때 네비우스 선교방법이라고 해서 교회의 자립성장을 강조했다. 그런데 미얀마에 와 있는 한인선교사들에게서는 이러한 자세를 찾기 어렵다. 물론 미얀마교회에도 책임이 있다. 한국교회 초대교인들은 독립심이 강했다. 한국최초의 교회인 소래교회만 하더라도 서경조 목사님이 교회를 건축할 때 언더우드 선교사의 지원금을 받기를 거절했다. 한국 최초의 교회는 한국인의 힘으로 지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초창기 교회가 이렇게 의식있는 교회였기 때문에 훗날 3.1운동에도 앞장설 수 있었고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순교하신 주기철목사님 같은 분도 나올 수 있었다. 그렇지만 미얀마 교회로부터는 이러한 모습을 찾기 힘들다. 그런데 여기에 미얀마에 교회 몇 개를 세우고 미얀마 목사들 몇 명에게 봉급을 주었다고 하는 한국교회의 실적주의가 미얀마 교회를 더욱 병들게 하지 않나 염려된다. 물론 우리는 미얀마교회를 도와야 한다. 그러나 그 결과로 미얀마교회가 민중 속으로 파고들어가지 못한다면, 그리고 교인들의 헌금으로 살아가겠다는 자립의지를 잃어버린다면 차라리 돕지 않는 것만 못하게 된다. 우리가 미얀마교회를 도울 때에는 교회가 더 민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는 것을 격려하는 방식으로 도와야 한다.
이러한 해외선교의 배경에는 신학적인 문제도 존재한다. 선교사들의 마음 속의 목표는 교회를 세우고 영혼을 구원하는 데 있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義를 구하는데 있지 않은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생각하는 틀이 매우 좁다. 전도에 대한 관심이 있어야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미얀마를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겠다는 더 큰 생각이다. 선교사들이 미얀마를 정의가 넘치는 사회, 사랑이 넘치는 사회로 만들기 위해 목숨을 바친다면, 예수님처럼 가장 낮은 자들을 위해 자신을 헌신한다면, 미얀마 사람들은 선교사들을 향해 “당신은 왜 그렇게 목숨을 바쳐 우리를 사랑합니까? 그 사랑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하는 질문을 반드시 하게 되어 있다. 그러면 그때가 바로 전도의 순간이다. 이렇게 우리의 사랑실천을 통해 미얀마 사람들이 복음의 힘과 기적을 체험할 수 있어야 전도가 가능해진다.
우리는 우리민족에게 복음을 전해 준 외국선교사들의 삶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당시의 미국교회는 지금의 한국교회보다 훨씬 더 건강하고 훨씬 더 복음적이었다. 적어도 당시 미국교회는 우리처럼 물량주의, 실적주의에 빠져 있지 않았다. 우리는 세계선교의 중책을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도 우리자신을 철저하게 반성해야 한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게 해서는 안 된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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