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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의 힘
마 7:7-11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기도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려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 라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두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이면 나도 함께 있겠다고 하셨습니다. 두세 사람이라도 함께 기도하면 무슨 일이든 다 들어주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응답받을 것을 확신하고 하나님께 기도드려야 합니다.
실제로 우리 교인들 중에도 확실하게 기도응답을 받고 사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기도로 병이 낫고, 기도로 어려움이 해결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함께 하신 것을 확실히 믿습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하는 방식은 다양합니다. 어떤 분에게는 기적을 일으키며 응답합니다. 병이 기적처럼 낫습니다. 다만 병 낫게 해달라고 모든 사람이 다 기도한다고 해서 전부 기적이 생기지는 않지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런 모습으로 관계를 맺지는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때는 우리는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천사가 우리 눈 앞에서 여기저기 날라 다니고, 죽은 자가 일어서고, 도끼가 물에 뜨고 그렇게 되면 인간세계는 사라지게 되지요. 그때는 역사도, 종교도, 철학도, 의학도, 물리학도 다 사라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앙과 불신앙의 경계선에 서서 믿는 자에게만 비밀리에 자기를 드러내고 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자에게만 보여주는 기적이 우리에게 너무도 소중한 것이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기적을 통해 보여주기도 하고, 정상적인 일의 진행으로 일하시기도 하고, 또는 우리가 바라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시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의 기도가 응답받는다는 확신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도가 당장 응답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에는 우리의 기도가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고 있는지 부터 헤아려야 합니다. 우리가 우리 욕심대로 기도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무조건 영원히 살게 해달라고 기도한다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종종 우리가 바라는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고 하나님이 바라는 방식으로 응답하십니다.
사도바울에게는 가시처럼 찌르는 병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 병이 자기에게서 떠나가게 해달라고 세 번이나 주께 간구했습니다. 세 번 간구한다는 말을 성서학자들은 간절하게 온힘을 다해 간구한다는 뜻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은혜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해 진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게 병을 주셨다. 오히려 나의 약한 것을 자랑하고 기뻐해야겠다. 내가 약할 때 곧 강해진다.”라고 간증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의 기도를 하나님은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른 방식의 응답에 대해 처음에는 원망하다가 나중에 가서야 “그렇구나”하고 깨닫게 됩니다. 예수님의 기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은 잡히시던 날 전날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할 수만 있으면 이 쓴잔이 지나가게 해 달라”고 피땀 흘리며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기도 역시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고 사흘 만에 부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 예수가 바라는 방식으로 응답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응답하셨습니다.
또 당장 응답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에는 내가 온몸으로 기도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온몸으로 기도하려면 우리가 행동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행동은 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그것은 온 몸으로 하는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가 행동을 하려고 해도 행동할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거나 외국에 있거나 아파서 병원에 있으면 행동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습니다. 이 경우에는 기도 자체가 바로 행동입니다. 젊은 시절, 제가 20년 언도를 받고 감옥에 갇혔을 때 나의 작은 할머니이신 김순애 권사님(김규식박사의 부인)은 너무 연로하셔서 병원에 계셨습니다. 온몸을 쓸 수 없고 다만 두 손만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할머니는 감옥에 갇힌 나를 위해 양손으로 털양말을 짜서 내가 겨울을 잘 날 수 있도록 감옥에 양말을 넣어주셨습니다. 그리고 나를 위해 열심히 기도하셨습니다. 내가 십개월 만에 석방되어 할머니를 찾아갔을 때 그 할머니는 내게 “내가 너를 위해 열심히 기도했단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나는 내가 이 할머니의 기도로 석방될 수 있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무 일도 할 수 없고 오로지 기도밖에 할 수 없는 할머니가 하시는 기도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응답해 주십니다. 기도하는 일이 그 할머니에게는 유일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행동을 충분히 할 수 있는데도 행동하지 않으면서 하는 기도는 하나님께 상달될 수 없습니다. 공부는 하나도 안 하고 시험만 잘 보게 해 주십시오 하고 하나님께 기도한다면 그 기도를 하나님이 들어주실 리가 만무합니다. 모시고 있는 늙으신 어머니의 건강을 기도하면서 어머니를 돌보는 일은 전혀 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은 이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을 것입니다. 말로는 아내를 위해 기도하면서 실제로는 아내를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면 그 기도는 참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기도는 행동하면서 해야 합니다.
10년 전에 한국교회가 하나 되도록 하기 위해 매달 한번씩 2백명의 교회 인사들이 모여 작정하고 기도운동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1년을 계속 했는데 결국은 중단을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열심히 기도했지만 그 기도는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기도의 반향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나중에는 동력이 떨어져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나는 한 가지 큰 반성을 했습니다.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들기 위한 구체적인 행동프로그램은 하지 않은 채로 기도만 하는 것으로는 하나님의 응답을 기대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한국교회를 하나로 만드시려고 하더라도 하나님이 마치 번개가 치듯이 기적을 통해 교회를 하나 되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통해 일하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행동을 하지 않고 기도만 한다면 하나님은 일하실 수가 없습니다. 행동하는 것은 기도의 한 부분입니다. 열심히 행동하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해야 그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며칠 전에 우리나라 최대교단인 예장합동측 총회가 <기도한국 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기도한국2009발대식>을 가졌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나라가 총체적인 위기상황이므로 교단을 살리고 민족을 살리기 위해 기도운동을 시작한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기도를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꼭 맞는 말도 아닙니다. 총체적 위기가 문제라면 위기극복을 위한 행동을 함께 해야 합니다. 지난 날 IMF 경제위기 때에는 온 국민이 나서서 금모으기를 했습니다. 지금은 교회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연구해서 합당한 행동프로그램을 가져야 합니다. 경제위기로 어려운 이웃들이 많아지기 때문에 이들을 위한 고통분담 운동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런 일을 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기도만으로는 안 되는 구조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라인홀드 니버라는 세계적인 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분이 쓴 유명한 책이 <도덕적 인간과 비도덕적 사회>(moral men and immoral society)라는 책입니다. 인간이 타락한 죄인이기 때문에 인간이 만든 사회는 도덕적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 개인이 전부 도덕적이 된다고 해서 그 사회가 도덕적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회가 도덕적이 되려면 구조악과 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사람들과 함께 정의를 위한 운동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습니다. 이러한 행동 없이 교회에서 기도만 하고 있으면 그것은 게으른 행동이고 온몸으로 기도하는 것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가 지금의 총체적 위기극복을 위해 기도하려면 동시에 사회개혁을 위한 노력도 해야 합니다. 경제위기 시대에는 평상시에 불가능한 개혁도 가능해집니다. 과거에 IMF 경제위기가 왔을 때 우리나라는 많은 개혁을 할 수 있었습니다. 기득권세력의 저항이 약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때 기업이 자기 체질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개혁을 하지 못했다면 이번에 기업들은 전부 다 쓰러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때 개혁을 했기 때문에 이번 위기를 잘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하는 기업이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과 같은 때에 경제체질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사회전반의 개혁을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금 한국교회는 기도운동과 더불어 이러한 개혁이 가능하도록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기도에 진정성이 담기게 됩니다.
예장 합동측 총회의 행동이 틀린 것이 아니지만 자칫 기도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는 식으로 교인들을 잘못 인식시킬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교인들을 잘못 인도하는 것이 됩니다. 오히려 기독교인이 남보다 더 열심히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저 사람이 왜 저렇게 열심히 사회개혁을 위해 일하는가 보았더니 알고 보니 기독교인이구나”라고 말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온몸으로 기도하는 자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태복음 7장 21절에서 “나보고 주여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어야 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무도 너무도 귀중한 말씀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는 우리가 드리는 기도가 옳은 기도인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기도는 단지 무엇을 간구하기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간구도 포함되지만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고 하나님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소통하는 행위가 기도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순간이 기도의 순간입니다. 그래서 살전 5:17에서 사도바울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한 순간도 하나님과 떨어져 있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기도하고 있을 때, 그래서 하나님 안에 있을 때 우리는 가장 행복합니다. 기도는 응답만을 받기 위해 기도한다면 무엇을 이루어달라는 기도만 한다면 성황당에 가서 복을 비는 행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기도의 근본 목적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기 위한 기도를 드리고 또 결단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 기도의 과정에서 간구의 기도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쉬지 말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만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내가 바뀌어지고 나의 모든 것이 고쳐집니다.
요즈음 나의 제일 큰 고민은 화내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잘 고쳐지지 않습니다. 내가 같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일을 잘 못한다고 막 화를 냅니다. 그리고는 곧 후회를 합니다. 그리고 또 순간을 참지 못하고 다시 화를 냅니다. 화를 내는 행위는 아주 큰 죄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인내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미가 급한 성격이니까 화낼 수 있다고 쉽게 양해할 일이 아닙니다. 저 자신을 분석해 보면 화를 내는 근본 원인은 내 마음속에 겸손함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겸손한 사람이 화를 낼 리 없습니다. 내가 내 직원을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님처럼 생각한다면 내가 화를 낼 리가 없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화를 내는 것입니다. 문제는 제게 있습니다.
그래서 며칠 전부터 열심히 기도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최소한 하루에 두 시간을 기도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두 시간을 기도한다면 내 일과에 지장이 있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해보니까 그렇지 않더군요. 운전할 때 기도하고 걸어갈 때도 기도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든 일을 시작할 때와 끝날 때 기도합니다. 그런데 기도를 많이 하면 기도하는 중에 내 죄가 드러나고 내 죄를 밝히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감히 남에게 화를 낼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나의 여러가지 악습들을 고치기 쉬워집니다. 그러다 보니 기도제목이 바뀌었습니다. 화내지 말게 해 주십시오에서 기도를 열심히 하게 해 주십시오로 바뀌었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기도제목이 바뀝니다. 기도생활을 하는 중에 우리가 더욱 성숙한 기독교인으로 성장하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이런 저런 요구가 많습니다. 그러나 한참 기도를 하다보면 그런 요구가 사라집니다. 그 요구를 하나님이 들어주지 않아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또 나의 기도가 부끄럽게 생각됩니다. 저는 당뇨가 있습니다. 그런데 당뇨를 낫게 해 달라는 기도는 한 번도 하지 못했습니다. 제가 당뇨를 고치기 위해 운동도 하고 먹는 것도 조심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은 하지 않고 기도만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또 오래 살게 해 달라는 기도도 하기 어렵습니다. 얼마 전에 제 친구의 장인이 되는 장로님이 92세에 돌아가셨습니다. 그러면 부인이 되는 권사님이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습니까? 그래서 저는 그 권사님을 위로하려고 만났습니다. 그런데 그 권사님은 얼굴에 슬픈 기색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헤어질 수밖에 없잖아” 하고 권사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권사님은 죽지 않게 해 주십시오 라고 하나님께 매달리지 않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92세까지 살게 해 주셨으니 그 기도를 할 염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십시오”라는 기도밖에 드릴 수 없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기도하는 기독교인이 되십시오. 그것도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십시오. 여러분의 기도가 어눌해도 상관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중심을 보시지, 기도가 청산유수인가 아닌가를 보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중언부언하는 기도를 원치 않으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실 것입니다. 기도의 힘을 믿고 항상 기도하는 성도님 되시기 바랍니다. 아멘.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44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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