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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2-01 23:38
   <2월 1일 설교> 우는 자와 함께 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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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2,681  


                                              우는 자와 함께 울라

                                                                                                            롬 12:14-18


  요즈음 우리나라는 용산참사로 대단히 시끄럽습니다. 경찰이 철거민의 농성을 진압하면서 6명의 고귀한 인명이 희생된 적은 일찍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태에 대해 경찰이 책임져야 하는가가 당장의 관심사이지만 원인은 보다 근본적인데 있습니다. 도시 재개발을 할 때 건설업자와 건물주는 큰 이익을 보지만 세입자는 거의 빈손으로 쫓겨나다시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에 불만을 품은 철거민들이 전국철거민연합이라는 과격한 단체를 끌어들여 대신 투쟁하도록 하는 것이지요. 그러면 전철연은 건물 위에 망루를 만들고 화염병과 사제총, 새총 등으로 무장을 해서 과격투쟁을 하고 그렇게 해서 보상금을 받으면 그 돈을 함께 나누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번에는 이 농성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인명피해가 생긴 것입니다.

  이 사태가 나자 지난번 광우병촛불시위를 주도한 세력들이 좋은 기회가 왔다며 사건 발생 7시간만에 다시 기자회견을 하고 개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어제 밤에도 수천 명이 가두집회를 하고 다시 쇠파이프를 등장시켰습니다. 오늘은 민주당 등 정당들이 중심이 되어 대규모 집회를 하는 모양입니다. 반정부세력들이 이 기회를 절호의 기회로 착각하고 이명박 정부를 가진 자의 정부로 규정하면서 이명박 퇴진 구호를 내걸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기면 교회는 어떻게 대응하는가?
  대부분의 교회는 이런 일에 무관심합니다. 이러한 일들이 교인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前까지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마치 교회는 하나님은 사회적인 문제에는 개입하지 않으시고 개인적인 일에만 관심을 갖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인들의 기도를 보면 건강문제, 가정문제, 경제문제가 대부분입니다. 나라를 위해 기도하는 일도 쉽지 않습니다.
  또 교회 목사님들은 교회가 부흥하는 데 도움이 되는 방식으로 교인들을 양육합니다. 교회가 부흥하면 그것으로 만사가 오케이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는 말씀만 열심히 전하고 기도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회문제에 관심을 갖기는 좀처럼 쉽지 않습니다. 
  교회에서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정의 실현을 위해 행동하라고 설교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우선 목사들 자신이 정의를 위해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목사님들이 이렇게 하는 이유는 신학교에서부터 그렇게 교육받았기 때문입니다. 용산참사와 같은 일이 아무리 생겨도 행동할 줄을 모릅니다. 하다못해 재개발과정에서 쫓겨나게 된 임대교회 목사님조차도 행동하지 않습니다. 기도만 하다가 그냥 쫓겨납니다.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목사가 투쟁에 나서면 목사답지 않다고 손가락질을 받을까보아 신경쓰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사회적 문제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 않는 동안에 수많은 사람들은 그대로 고통을 감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회가 적극적인 관심을 기울였다면 충분히 해결될 수도 있었던 문제들이 전혀 해결되지 않고 넘어갑니다. 결국 교회의 무관심 때문에 고통을 겪는 셈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불의와 비리에 대해 무관심해 하는 것은 우리의 죄입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러한 우리의 무관심을 죄라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교회는 가진 자의 편, 불의의 편에 동조하는 결과를 빚습니다.   
  물론 일부 교회는 이들 세입자들,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기도하는 교회는 그래도 좋은 교회입니다.
기도만 하고 행동은 하지 않는 교회는 이러한 이슈에 무관심한 교회와 크게 다를 바가 없지만 그래도 무관심보다는 낫습니다.
  그런데 더 안타까운 교회는 대형교회들입니다. 대형교회는 세입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어도 기도하지 못합니다. 교회 안에 좌파와 우파가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이 전철연과 같은 폭력집단을 비판하고 법질서를 강조하면 좌파가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반면에 세입자들의 고통에 대해 언급하면 가진 자들, 기득권세력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결국 큰 교회 목사님들은 설교에서 이런 예민한 이슈를 피해갑니다. 이러한 동안에 힘없는 세입자들은 계속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동안 전철협과 같은 세력만 키우게 됩니다. 
  과거에 러시아가 공산화될 때와 같습니다. 러시아 정교회가 정의의 문제에 무관심한 결과로 결국 러시아가 공산화되었습니다. 공산화의 근본책임은 사회정의를 외면한 교회에 있었던 것입니다.

  세입자들의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려면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하나님이 이러한 사건에 개입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개입하시려면 우리가 행동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통해 일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움직여서 우리가 정의로운 행동을 결단하도록 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사건 사건에 개입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정의로운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런데 교회는 행동에 나서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세입자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재개발 지역 상가건물에 많은 작은 교회들이 세입자로 입주해 들어와 았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들은 적은 돈만 보상 받고 나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다못해 버티고 싸우더라도 보상비가 올라갈 터인데 목사체면에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기도만 합니다. 그리고는 그냥 쫓겨납니다. 목사들이 신학교에서 그렇게 배웠기 때문입니다. 

  포세이돈 어드벤처라는 유명한 옛날 영화가 있습니다. 큰 호화여객선이 엄청난 해일로 뒤집어져 아비규환이 되었는데 여기에 두 종류의 목사가 등장합니다. 한 분은 사람들과 함께 열심히 기도합니다. 그렇지만 그분들은 결국 전부 몰사를 했습니다. 또 한 분의 목사가 등장합니다. 이분은 몇 사람의 동조자를 규합해서 탈출을 시도합니다. 뒤집어진 배에서 계속 위로 올라갑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이 목사는 동료를 구하다가 대신 목숨을 잃습니다. 이 목사의 죽음으로 결국 몇 명이 배의 맨 바닥까지 올라갔고 그 밑바닥에서 생존자를 찾던 구조대원과 접속되면서 구조가 됩니다. 이 영화는 두 번째 유형의 목사가 옳은 목사임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골방에서 기도만 하면 안 되고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을 한 대표적인 분은 세계적인 신학자인 디이트리히 본훼퍼 목사입니다. 그분은 나치시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어떤 미치광이가 트럭을 타고 도시를 질주하며 사람을 치고 있는데 기독교인이 골방에서 기도만 하고 있으면 그것이 옳은 행동입니까, 아니면 그 트럭에 올라타서 미치광이로부터 운전대를 빼앗아야 합니까 하고 질문합니다. 그리고는 본훼퍼목사님은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합니다. 그러나 암살단 가입사실이 탄로나면서 본훼퍼 목사님은 붙잡히게 되었고 끝내는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 목사님의 행동은 전 세계 기독교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은 “즐거워하는 사람과 즐거워하고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어야 합니다. 고통당하는 세입자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어야 합니다. 이 ‘고통을 함께 나누는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요즈음 제가 제일 좋아하는 성경귀절은 마태복음 7장의 “나더러 주여 주여하는 자마다 천국 간다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 갈 수 있다.”는 구절입니다. 성경에 이 구절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기도만으론 안 됩니다. 행동하면서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야 입술로 하는 기도가 아니라 온몸으로, 피땀 흘리며 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피땀흘리며 드리는 기도여야 하나님께 상달됩니다.

  그런데 기독교인은 어떤 입장을 가지고 행동해야 하는가?
  용산참사를 두고 우리사회는 두 가지 입장으로 갈라져 있습니다. 하나는 전철연과 같은 폭력집단은 응징되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법 질서가 지켜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입니다. 다른 하나는 경찰의 살인진압을 규탄하고, 가진 자를 대변하는 이명박 정부가 세입자를 내몰았다며 MB퇴진을 주장하는 세력입니다. 그런데 저는 이 둘 다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MB퇴진을 주장하는 세력은 주장이 너무 지나치고 법질서만 강조하는 세력은 틀린 것은 아니지만 그것만으로는 미흡합니다. 

  기독교는 두 가지 입장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기독교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편에 서야 한다는 점입니다. 성경 안에는 이러한 주장이 수없이 나타납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도 그렇고 마태복음에서 너희들 중 가장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나에게 한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그러합니다. 누가복음에는 아예 가난한 사람은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실제로도 예수님은 창기, 죄인과 함께 지내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성경이 한편만을 편든 것은 아닙니다.  당파성과 더불어 보편성이 함께 있습니다. 기독교는 항상 모두를 생각합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만인을 구원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당파성과 보편성을 함께 견지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는 일차적으로 억울한 사람, 가난한 사람의 편에 서야 합니다. 
재개발을 하면 건설업자, 토지건물 소유자가 이익을 봅니다. 반면에 세입자는 3개월간의 영업이익과 이사비를 받습니다. 적으면 수백 만원, 많아야 1-2천만원 정도 입니다. 1억원 이상을 인테리어에 투자하고 권리금을 주고 임대한 사람은 너무도 억울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지금의 재개발 정책이 가진 자를 위한 정책임을 지적하고 이를 비판해야 합니다. 
  그러나 반면에 건설업자가 이익을 보지 않으면 재개발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집 주인에게도 이익이 되어야 재개발이 가능해 집니다. 그래서 건설업자와 집주인에게 충분한 이익을 보장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건설업자, 건물주, 세입자가 다같이 이익을 보는 조화로운 방식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그 다음에 기독교는 어떤 방법으로 싸워야 하나?
  그것은 오늘 본문말씀처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운동방식이어야 합니다. 전철연처럼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을 쏘는 방식은 안 됩니다. 또 정부를 증오하는 운동은 기독교가 지지할 수 없습니다.

  우선 재개발 지역의 임대교회들이 나서야 합니다. 이 임대교회들이 자기들끼리의 연대기구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들이 자신들을 위해서도 싸우지만 그보다 자기 주위의 힘없는 세입자들을 위해 대신 싸워야 합니다. 먼저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한 후 이 개선책을 위해 집회도 하고 행동도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한국교회가 이러한 운동을 지지하도록 한국교회 전체에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리고 온건하지만 집요하게 운동을 전개해야 합니다. 그래서 전철연과 같은 폭력집단이 더 이상 개입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저는 그저께부터 이러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모든 방식을 동원해서 재개발지역의 임대교회들을 연락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들을 하나로 묶어 합리적인 대안을 추구하는 세입자들의 운동을 만들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작은 교회 목회자들이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하는 운동의 목표가 바르고 방법이 선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함께 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싸움을 성령께서 함께 하시는 싸움이 되게 만들어야 합니다. 

  우리들 기독교인은 이 싸움의 과정에서 세입자들을 위로하고, 격려하고, 그들에게 힘이 생기게 해야 합니다. 이 싸움을 통해 세상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행동을 보면서 세입자들이 정의가 실현될 수 있음을 깨닫게 되고 또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이 싸움의 과정이 곧 전도의 과정이 됩니다. 

  사실 이러한 일이 그동안 우리교회가 조선족 동포를 위해 싸워온 방식이었습니다. 여러분도 기억하시지요? 지난 날 2천8백명의 조선족동포들이 아홉 개 교회로 나뉘어져서 18일간이나 단식투쟁을 하면서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 권리”를 요구하며 싸웠던 기억이 나시지요? 그때 싸움을 끝낼 때 7백명이나 예수 믿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우리 교회가 7백명에게 한꺼번에 세례를 주었지요. 7백명이 모일 장소가 없어 명성교회를 빌려서 3시간 동안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날 저는 팔이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평생 잊지 못할 경험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문제와 부닥칩니다. 그리고 불의를 시정하기 위해 싸워야 할 때가 올 수 있습니다. 그러면 먼저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되 전체를 생각하면서 가장 합리적인 대안을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는 선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들의 공감과 지지를 얻어야 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목표가 바르고 방법이 선한 방식으로 싸우게 되면, 끝까지 집요하게 싸우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지난 십년동안 우리교회가 수없이 투쟁을 했지만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셨고 우리는 항상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문제를 해결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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