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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1-18 15:10
   <1월18일예배설교> 왜 그렇게 믿음이 약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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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2,276  


왜 그렇게 믿음이 약하냐? 


                                  마태 14: 22-33

오늘 본문은 공관복음서에 나오는 기적이야기 중의 하나입니다. 제자들이 배를 탔는데 풍랑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심야에 저편에서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셨습니다. 제자들은 유령이라며 무서워했는데 예수님이 안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베드로가 “주님이시면 나보고 걸어오라고 하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오너라하시니 베드로는 물위를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무서운 생각이 드는 바람에 그만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베드로가 살려달라고 하니 예수님이 구해주시면서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경구절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주 황당한 구절입니다. 어떻게 물위를 걸을 수 있는가? 말도 안 되지요. 그러나 우리들 믿는 사람에게는 너무도 감격적인 구절입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왜 의심하였느냐? 물위로 걸어오라고 하면 올 것이지, 왜 의심하였느냐?” 참으로 놀라운 구절입니다. 

우리들 인간이 하나님을 의심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이 인간실존의 모습입니다. 만일 인간이 터럭만큼의 의심도 없다면 그때는 우리는 이미 인간이 아닙니다. 역사도 철학도 종교도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만일 물위를 걷는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정신이상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더구나 인간은 의심이 많은 존재로 태어났습니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인생길을 어떻게 가야할지 고민하고 걱정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우리를 물위로 부르시고 왜 그렇게 믿음이 약하냐 하고 질책하십니다. 

성도 여러분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절대로 의심하면 안 됩니다. 물론 동포 중에 인생의 앞길을 걱정하는 분이 많을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먹고 살지만 앞으로는 어떻게 되나? 늙어서 일하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온갖 걱정이 다 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분은 이런 걱정 끝에 병까지 납니다. 물론 우리는 이런 걱정을 해야 합니다. 무사태평이면 안 되고 대비책을 강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드시 함께 하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은 “공중나는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를 걱정하는 사람들을 “믿음이 적은 자들아” 하고 예수님은 질책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여러분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음을 내려놓고 즐겁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돌보고 계심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꺼져가는 심지도 끄지 않고 상한 갈대로 꺾지 않는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는 무엇이 예수님의 뜻인지 알 수 없고 단지 예수님의 뜻을 헤아릴 따름입니다. 그러나 어떤 길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이 오면, 그 길이 옳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는 믿음이 오면 우리는 그 길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물위를 걷는 것처럼 불가능하게 보여도 자신 있게 그 길을 가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향해 배에서 물위로 발을 내딛듯이 그렇게 나서야 합니다. 

제가 시민운동을 할 때 보면 시민운동가 중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한 종류의 사람은 성공할 수 있는 길인가를 확인한 다음에 길을 가는 사람입니다. 성공할 것 같지 않으면 가지 않습니다. 또 한 부류의 사람은 성공할 수 있을지의 여부에는 큰 관심이 없이 그 길이 옳은 길인가를 헤아리고 옳은 길이면 무조건 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길은 물론 고생바가지의 길입니다. 실패 가능성도 큽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도록 이루어내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설혹 성공하지 못하더라도 역사적인 의의가 있는 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두 번째의 길을 택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이 길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인가 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원하는 길임을 확신하면 무조건 발을 내디어야 합니다.
 
우리 서울조선족교회의 십년의 역사는 바로 이런 역사였습니다. 우리교회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 조선족 동포들이 불법체류자라고 추방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때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일단 추방되면 지옥과 같은 삶이 기다립니다. 그런데도 이 문제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정부가 조선족을 추방시키는 것인데 이것을 막아낼 수 있다고 생각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아무리 정부와 투쟁하더라도 이길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전혀 없었습니다. 제가 아까 말한 첫 번째의 부류였다면 나는 투쟁을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옳으면 무조건 그 일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동포들의 고통을 보면서 동포들의 편에 서서 강제추방을 반대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걸고 단식을 했고 결국은 강제추방을 막아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교회는 그렇게 해서 시작된 교회입니다.

사실 제일 힘들었던 때가 <고향에 돌아올 천부적 권리>를 주장하며 싸울 때입니다. 그동안 저는 정부를 향해 동포들이 최소한 5년은 있게 해 달라고 주장했었습니다. 한국에 입국할 때 천만원씩 빚을 지고 입국하니 2년은 일해야 이 돈을 갚는다. 그리고 나서 3년은 일해야 적어도 2-3천만원을 갖고 돌아갈 수 있을 것이 아닌가하며 싸웠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정부는 동포들에게 4년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크게 만족했고 이제는 동포들이 귀국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4년 반이 되어도 동포들이 중국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입니다. 그때의 나의 낙심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교회는 크게 고심하다가 결국은 고향에 돌아와 살 천부적 권리를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길밖에는 동포들의 문제를 주장할 명분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이 천부적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어거지 주장이었기 때문에 과연 이 주장을 정부가 받아들여줄지는 극히 의문이었습니다. 그 당시 청와대 정부수석이 유인태씨였는데 제게는 너무 가까운 친구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조차도 이 일은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당시 우리 교회는 여의도 고수부지에 2천8백명이 모여서 결단기도회를 가졌습니다. 눈물로 기도했지요. 그러나 그때 우리는 성공가능성을 전혀 예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야말로 百尺竿頭 進一步(백척간두 진일보)처럼 백척이 되는 대나무의 위에서 앞으로 한발짝을 내미는 행동이었고 베드로가 물위로 발을 내딛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계기로 조선족동포들은 전부 합법적인 신분을 누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저는 요즈음 새로운 일을 시작했습니다. 한국교회가 경제위기상황을 맞아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을 하도록 조직하는 일입니다. 제가 관계하고 있는 <나눔과 기쁨>에서 반찬나눔사역을 시작했습니다. 맨 처음시작은 부산의 작은 교회 목사님이 했습니다. 가난한 이웃의 상황을 보니 밥해 먹는 일은 힘들지 않습니다. 그런데 반찬이 문제입니다. 반찬은 먹거리를 사서 조리를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님은 매주일 반찬도시락을 만들어 어려운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그분들이 너무도 감사해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나눔과 기쁨 본부에서 이 일을 전국적인 규모로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대구에서는 5백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각각 열 개씩의 도시락 반찬을 나누기로 하였습니다. 성남시에서는 백명의 목사님이 이 일을 하기로 했습니다. 이런 식으로 확산되기 시작하면 서울시는 적어도 2천오백명의 작은 교회 목사님이 이 일에 참여하게 됩니다. 3월 초순에는 작은교회 목사님 2천오백명을 포함해서 1만명의 기독교인이 모여 시청앞광장에서 반찬나눔운동 출정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려면 큰 교회가 반찬만들기에 나서 주어야 합니다. 과연 이일을 큰 교회가 할 까? 아직은 모르지요. 그러나 나는 믿고 발을 내딛을 생각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일이니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 일을 성사시켜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지요. 이 일이 정말로 성공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가 큰 부흥의 계기를 갖게 될 것입니다. 

맹인목사님이신 김호경목사이란 분이 있습니다. 이분은 맹인학교 교목으로 어려움없이 지내는 분입니다. 그런데 이분은 시각장애인이 생존을 위협받는 상황을 보면서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분은 이 일에 적극 나서지 않는 보건복지부에 항의하면서 무기한 단식을 하기로 결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게 전화를 걸어 격려의 말씀을 부탁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맹인이 무기한 단식을 하면 우리같이 눈뜬 사람을 전부 죄인으로 만드는 것이니 단식은 하지 말라 그 대신 내가 돕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저는 시각장애인을 돕느라고 바쁩니다.

김호경 목사님이 베드로처럼 물위로 발을 내딛으시니 저까지 동원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김호경목사님과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저도 돕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그러다 보니 새로운 희망이 만들어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구역모임을 활성화해서 사랑실천운동을 하자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전체 교인을 40구역으로 나누어서 구역활동을 활발하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이 작은 구역모임들이 활발하게 되어 우리교회가 초대교회처럼 되자는 것입니다. 새로 우리교회에 온 사람들이 이 구역모임 안에서 예수님의 사랑의 감격을 느끼게 하자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구역원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의 모든 문제를 다 내놓고 구역모임 안에서부터 해결의 길을 찾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기 문제를 자기 혼자 풀지 못합니다. 모임을 통해 하나님이 해결해 주시도록 해야 합니다. 모임에서 자기 문제를 털어놓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모임에서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반드시 개입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인들은 이 구역모임을 열심히 하겠다고 결단을 해야 합니다.
 
지금도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왜 그렇게 믿음이 약하냐?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답변해야 합니다. 아닙니다. 믿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을 믿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처럼 예수님을 향해 물위에 발을 내딛어야 합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믿음생활입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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