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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식.
요10:11-15
오늘은 기쁜 날입니다. 권사님 열세 분, 집사님 세분이 안수받는 날입니다. 우리교회가 세워진지 십년 만에 이런 경사가 생겼습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감사할 일입니다.
오늘 안수 받는 분들에게 담임목사로서 하고 싶은 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리고 이미 두 번이나 권면의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 시간에 모든 교인들 앞에서 다시 드릴 권면의 말씀이 있습니다.
제일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이제부터 여러분은 우리교회의 주인이라는 점입니다. 지난 십년간 우리 교회는 전적으로 목사님들에 의해 주도되어 왔습니다. 목사님의 힘과 권한이 다른 어느 교회보다 컸습니다. 그동안 교인들이 목사님들로부터 온갖 도움을 다 받다보니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회는 동포들이 잡히면 보호소에서 꺼내주고 강제추방에서 벗어나게 하고 병원에 입원해서 치료받게 하고 재판에서 이기게 하고 자식이 한국에 올수 있도록 하고... 그야말로 교회가 교인들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 노릇을 했습니다.
그동안 서울조선족교회가 이런 일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아주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다 보니 교회의 민주화라는 관점에서는 문제가 많은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제가 다니던 새문안교회에 대해 문제제기를 많이 했었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교회의 비민주성에 대한 비판입니다. 그렇지만 지금의 서울조선족교회는 새문안교회에 비해 훨씬 더 비민주적인 교회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제는 교회의 모든 결정을 교인들이 해야 합니다. 담임목사가 영향력이 큰 것은 좋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주인은 교인이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교회로 바르게 설 수 없습니다. 교회에 주인의식을 가진 교인들이 얼마나 많으냐에 교회의 미래가 달려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목자와 삯꾼에 관한 말씀입니다. 목자는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주인이기 때문에 이리가 오면 목숨을 바쳐 양을 지킵니다. 반면에 삯꾼은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입니다. 주인이 아니고 손님입니다. 그래서 이리가 오면 도망칩니다. 이렇게 주인과 손님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큽니다.
손님은 교회에 와서 할 말이 많습니다. 이것도 문제고 저것도 문제입니다. 왜 교인들이 친절하지 않나? 왜 교회가 냉냉한가? 불평불만이 많습니다. 그러면 주인은 무조건 죄송하다고 하고 어쩔 줄 몰라 합니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뛰어다닙니다. 교회 안에 외로운 사람은 없는지 돌아보고 그런 사람들을 챙기는 일을 합니다. 교회 안에서 말썽과 다툼이 생기면 열심히 교회를 위해 기도하고 이 말썽을 수습하기 위해 힘쓰는 사람도 바로 주인의식을 가진 교인들입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교회에 대한 문제제기를 할 때도 매우 조심스럽습니다. 교회에 명백히 문제가 있는데도 사람들이 그 문제를 지적하지 않는다면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혼자라도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교회는 잘못된 길로 갑니다. 그렇지만 문제제기를 잘못하면 교회에 덕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될 수 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이점을 잘 헤아려야 합니다. 대학시절에 나는 새문안교회 대학생회 회장을 지냈습니다. 중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새문안교회를 다녔기 때문에 대학시절에는 새문안교회를 무척이나 사랑했습니다. 더욱이 할아버지이신 서병호장로님은 당시 새문안교회 원로장로이셨습니다. 그런데 대학생인 제 눈에 기성교회의 온갖 문제점들이 전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율법주의, 위선, 분열, 사회적 무관심, 권위주의 등 교회의 어느 것 하나 마음에 드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학생회 회지를 발간하면서 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당회부터 시작해서, 성가대, 제직회, 선교부, 교육부 등 전부가 대학생회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또 당시의 대학생들은 교회어른에 대해 별로 존경심이 없었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많은 젊은이들이 계속 교회를 떠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저는 교회를 떠나는 대신 교회를 비판하는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장로님 중에서 젊은이들이 거의 유일하게 존경하는 장로님으로 김병옥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분이 한번은 나를 불러서는 “네가 내는 회지를 잘 읽고 있다. 좋은 말을 많이 했더구나. 그렇지만 교회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비판을 해라. 그 이상으로 비판을 하면 교회에 덕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해가 된단다.” 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손님과 주인의 차이가 얼마나 큰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새문안교회에 대한 주인의식을 가지고 교회를 비판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손님이 되어 교회에 대해 온갖 비판을 서슴지 않았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야 누가 주인의식을 가지고 있는 교인이고 누가 아닌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교인은 교인 앞에 잘 나서지 않습니다. 가급적 다른 사람들이 나서도록 주선합니다. 그리고 자기는 뒤에서 봉사만 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순간에는 교회를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그러면 양이 목자를 알아보듯이 교회가 어려움에 처할 때 사람들은 그 분을 믿고 따릅니다. 김병옥장로님은 6.25때 피난가지 않고 교회를 지킨 분입니다. 그리고 진보적인 젊은이들을 끝내 돌보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위해 사재를 털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교인들이 그냥 목사님만 따라가면 안 됩니다. 교회의 본질이 훼손되고 있다고 생각할 때, 교회가 잘못 가고 있다고 생각할 때에는 바른 말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할 때에는 결단을 하고 총대를 메는 사람이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지 목사님을 따르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실 교회가 너무 조용해도 좋지 않습니다. 그러면 교회가 활력이 없어집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때로는 일부러라도 교회 안에서 문제제기를 해야 합니다. 이 분별을 잘하는 사람이 주인의식을 가진 교인입니다.
또 주인의식을 가진 교인이 제일 열심히 할 일이 바로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교회가 아무리 시끄럽고 문제가 많아도 흔들림이 없는 교회는 그만큼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교인이 많기 때문입니다. 마치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는 배와 같습니다. 이런 배는 아무리 풍랑이 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이렇게 기도하는 교인에게는 하나님께서 교회를 잘 이끌어 갈 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주인의식을 가진 교인이 또 한 가지 열심히 해야 할 일은 예수님의 뒤를 따르기 위해 분투하는 일입니다. 고등학교 시절에 진교훈 선생님이라고 독일어선생이 계셨습니다. 나는 독일어 점수는 나빴지만 그분의 강의때 하시는 말씀은 열심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신 분이고 나중에는 서울대 철학과교수가 되셨습니다. 물론 지금은 은퇴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고등학생인 내가 잘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하시곤 했습니다. “교회에 가서는 전율을 느껴야 해.” 그게 무슨 말이지? 그동안 교회는 내게는 즐거운 곳, 거기 가면 내가 짝사랑하던 여학생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면 전율을 느껴야 한다는 말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난 후 대학교 상급학년이 된 다음에야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죄사함 받고, 쉬임 얻고, 위로 받고 그것만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이 전율을 느끼며 사는 기독교인이 있어야 교회가 남에게 쉬임을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편히 쉬게 하리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교회에 와서 편히 쉬게 되려면 그 사람 대신 온갖 스트레스를 짊어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 시절부터 “전율을 느껴야 한다”는 말을 갖고 고민했기 때문에 지금의 서울조선족교회가 생겼는지도 모릅니다. 고난 당하는 조선족동포들을 보면서 저는 한국교회가 이들을 위해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그 십자가를 져야 하는 사람이 바로 내가 되어야 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주인의식을 가진 사람은 예수를 힘들게 믿습니다. 삶이 고단합니다. 남들이 잘 때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말로만 주여주여 하지 않고 행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해야 합니다. 남들의 본이 되어야 하고 분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공부도 열심히 하고 신학공부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배고픈 사람, 고통받는 사람, 외로운 사람들의 친구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가 세상사람에게 등불 되고 소금이 되고 희망이 될지 고민해야 합니다. 또 주인의식을 가진 우리교인들은 교회의 지도자만이 아니라 조선족 동포사회의 지도자도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자기 인격이 성장하고 신앙이 성장하고 삶이 성장하도록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인의식을 가진 분들이 보여주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복음전파의 치열함입니다. 이웃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는 책임감을 치열하게 느껴야 한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같이 천국에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을 가지고 이 생이 다할 때까지 기쁨과 감사 속에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죽은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을 예비하셨을지는 우리는 잘 모릅니다. 다만 우리는 성경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자만이 구원을 얻는다는 점을 알 뿐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치열하게 전도를 해야 합니다.
요즈음 북한에 삐라 뿌리는 일이 사회적 쟁점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처음 시작한 사람은 탈북자인 이민복전도사입니다. 그런데 이 분이 이 일을 처음 시작하게 된 동기는 김정일 타도가 아니었습니다. 북한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죽음의 공포 속에서 살다가 죽는 것이 너무 안타까왔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 북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고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전도의 치열성이 있어야 합니다.
최근에 분당 만나교회에 대해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는 담배피면서 예배보는 방이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담임목사님이 어떤 사람을 전도했는데 나는 담배를 피기 때문에 교회에 못갑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담배 피는 사람도 예배볼 수 있게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이 방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예배보면서 담배를 피우면 안 되지요. 그러나 담배피우고 있는 중에도 예배를 보는 것은 좋은 일이지요. 그렇다면 그렇게 하자는 것이 목사님의 생각이었습니다. 제가 감탄한 것은 그 담임목사님의 복음전도의 치열함입니다.
권사님, 안수집사님 뿐만 아니라 모든 주인의식을 가진 성도들이 이러한 복음전도의 치열함이 있어야 합니다. 금년에는 누구를 전도해야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이를 위해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로 인도하려고 애써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반드시 전도가 가능하도록 해 주십니다. 전도는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지요.
그런데 전도는 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말이 없으면 안 되지만 전도는 제일먼저 나의 삶으로 되는 것입니다. 나의 삶으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내가 열심히 사랑과 정의를 실천해서 나의 삶이 감동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방이 하나님이 계신 것을 느낍니다. 그만큼 전도는 어렵습니다. 또 그만큼 전도의 치열함은 우리의 삶에 큰 도전이 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까지는 열심히 예수를 믿었는데 대학교에 들어가서 여러 가지 책을 읽으면서 점점 신앙에 회의가 왔습니다. 나중에는 신앙이 거의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계신 것에 대해 회의만 생겼습니다. 그래서 대학교 1학년 여름방학때 CCC에서 하는 입석수양회에 참석해서 하나님께 내게 얼굴을 보여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무리 기도해도 하나님은 자신을 내게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한 선배가 제 옆에 와서 저를 위해 함께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러다가 그분이 갑자기 울기 시작했습니다. 자기가 형제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지 못한다며 울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나중에 회개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그 선배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구나하고 느꼈습니다. 그분의 이웃에 대한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하나님께 반발하지 않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동이 올 정도로 사랑을 실천하고 정의를 실천할 때 주위의 사람들은 나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이 있는가보다” 하고 느끼게 되고 그때 비로소 전도가 가능하게 됩니다. 그리고 정말로 치열하게 예수님을 따라 살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분은 당연히 남에게 전도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열여섯분이 권사와 안수집사가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그러나 이 직분은 명예스러운 직분만이 아닙니다. 이 직분은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직분입니다. 고단하고 힘들게 전율을 느끼며 살겠다는 결단을 하는 직분입니다. 오늘 이 결단을 하시는 여러분이 되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나는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으니 이 직분을 받지 않겠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젊은 시절 제가 목사안수를 받을 때 제가 목사가 될 마음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1년을 연기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 여전히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냥 목사안수를 받았습니다. 그러면 지금은 좋은 목사인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부족하고 죄많은 목사입니다. 죽을 때까지도 좋은 목사가 되기는 영영 틀렸습니다.
그런데 권사님, 안수집사님도 저와 비슷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이 직분이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직분임을 명심하고 이 마음의 부담을 갖고 살아가겠다, 끝까지 분투하는 삶을 살겠다는 자세를 가지고 안수예배에 임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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