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독교사회책임은 어떠한 단체인가?
안녕하십니까? 기독교사회책임의 공동대표인 서경석목사입니다. 오늘 광주에 내려와서 이렇게 많은 목사님, 장로님들 앞에서 <기독교사회책임>에 대해 말씀드리게 되어 대단히 반갑습니다.
오늘 저는 먼저 제가 왜 <기독교사회책임>이라는 단체를 시작하게 되었는가하는 개인적인 이유부터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그러려면 제 과거를 간단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좌파였습니다. 그리고 민주화 투쟁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래서 민청학련사건으로 이십년 형을 받았고, 또 YH사건과 동일방직사건으로 감옥을 갔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감옥 살던 때 목사가 될 것을 결심하고 석방 후에 목사가 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그런데 유학가기 전까지 저는 기독교운동에 매진했습니다. 기독학생운동 간사, NCC 청년담당간사, 한국교회사회선교협의회 총무를 역임하면서, 기독학생운동, 기독청년운동, 산업선교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82년 미국에 가서 프린스톤신학교에서 M.Div를 하고 뉴욕 유니온신학교에서 STM을 마치고 미국장로교 뉴욕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6년 만에 귀국하였는데 이 6년 동안에 제 생각이 바뀌어 사회주의는 바람직하지도, 가능하지도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고 또한 북한이 낙원이 아니라 문제가 심각한 나라임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88년 1월에 귀국해서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서리가 되었는데 당시 진보적인 기독교운동권이 전부 김일성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침묵을 지켰지만 6개월이 지난 후에는 내가 지식인으로서 더 이상 침묵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내가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바른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후배들에게 기독교운동은 성경에 기초해서 해야지, 주체사상에 기초해서 하면 안 된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하기 시작했고, 한 후배를 조용히 불러 나는 사회주의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후배가 크게 반발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서경석선배가 개량주의자라는 점이 밝혀졌다고 하며 후배들이 저를 연구원장 직에서 쫓아내는 운동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결국은 몇 달 후에 진보적인 기독교운동에서 쫓겨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복음주의 진영은 관계한 적이 없었습니다. 오로지 NCC 에큐메니칼 운동만 했습니다. 그런데 NCC에서 쫓겨나니까 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한 것이 경실련 시민운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후 사람들에게 시민운동가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천년대에 들어서면서 기독교가 쇠락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면서 제가 더 늙기 전에 다만 몇 년 동안이라도 기독교운동을 해서 그동안의 NGO경험을 가지고 기독교의 발전에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우리집안의 특별한 내력이 있었습니다. 저희 집안은 초창기 기독교집안입니다. 저희 증조할아버지는 서경조 목사님으로 한국최초로 황해도에서 소래교회를 세우신 분입니다. 증조할아버지의 형님이 되시는 서상륜 할아버지는 처음 우리말 성경을 번역해서 국내로 갖고 들어온 분입니다. 남한에서 제일 오래된 새문안 교회도 서상륜 할아버지가 전도한 교인에게 언더우드목사가 세례를 주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집안은 지금도 새문안교회 교인입니다. 그리고 저희 할아버지인 서병호장로님은 한국최초의 유아세례자입니다. 그런데 저는 중학교 시절에 서병호할아버지가 몇 차례나 합동측 총회장과 통합측 총회장을 집으로 초청해서 왜 서로 갈라졌는가, 지금이라도 합칠 수 없는가하며 눈물을 흘리시던 모습을 보곤 했었습니다. 그런 환경에서 자랐기 때문에 저는 집안으로부터 한국교회를 뜨겁게 사랑해야 함을 배웠습니다. 경실련 활동을 할 때에도 경실련이 기독교 단체였다면 얼마나 기독교가 빛났을까하는 아쉬운 생각을 항상 했었습니다. 그래서 더욱더 저의 경륜과 경험을 기독교시민운동의 발전을 위해 쓰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기독교가 부흥하려면 먼저 시대적 사명, 즉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이점은 우리나라 기독교 역사를 보아도 아주 분명합니다. 1919년 삼일운동 당시에 많은 교회가 불에 탔고 제암리 교회는 주민들이 가두어진 채로 불에 탔습니다. 그리고 많은 목사, 장로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 전도가 가장 잘 되었습니다.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비쳐져 사람들이 교회로 몰려들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70년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기독교 젊은이들이 독재와 싸우다가 감옥에 갔습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에 앞장 선 교회는 정부의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교회가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비쳐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도 기독교가 다시 부흥의 길로 들어서려면 가장 중요한 민족적 과제를 붙들고 씨름하여 교회가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비쳐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다시 교회로 몰려오게 될 것입니다. 강남교회 전병금 목사님의 말씀에 의하면 지나간 70년대에는 매주일 자기 교회에 자기 발로 걸어 들어온 새 신자가 평균 열 명이 되었답니다. 그래서 교회가 성장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새 신자가 1-2명에 불과한데 그것도 열심히 전도한 결과이지, 자기 발로 찾아온 새 신자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점은 세상 속에서의 교회의 이미지가 선교에 얼마나 중요한가를 보여주는 실예입니다. 그래서 기독교사회운동이 다시 활발해져서 교회가 다시 우리민족의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를 우리민족의 희망으로 만드는 일은 헌신적인 기독교사회운동의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지금 교회가 붙들고 씨름해야 할 민족적 과제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선진국이 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후진국이 중진국을 거쳐서 선진국이 된 나라는 일본과 아일랜드 밖에 없습니다. 체코, 브라질, 알젠친 등 많은 나라가 선진국의 문턱까지 갔다가 다시 주저 앉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선진화세력이 강력하게 결집되어 선진화를 가로막는 세력을 제압하고 선진화를 지향하는 움직임을 격려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 일을 열심히 해야 할 책임이 바로 기독교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특별히 이 점을 제게 일깨워준 사람은 가까운 친구인 박세일교수입니다. 박 교수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단짝 친구인데 그 친구는 불교도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제게 하는 말이“경석아. 나는 불교도이지만 내가 보기에는 지금 기독교가 나라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은 것 같다. 기독교가 나라를 위해 헌신하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앞날에 희망이 없는 것 같다. 그러니 네가 기독교운동을 하면 어떠니? 기독교가 자기 책임을 다하지 않으면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못 될 것 같다.”고 했습니다. 불교도인 그 친구의 말이 제게는 무척 의미 있게 들렸습니다. 그래서 저는 선진화 운동을 위해 <기독교사회책임>을 창립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김진홍목사님과 함께 기독교사회책임을 시작했을 때 동아일보가 우리를 뉴라이트라고 칭했습니다. 저는 그 말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가 왜 우파냐? 우리는 바른 말을 하는 세력이다. 다만 세상이 하도 좌파 쪽으로 가 있다 보니까 우리가 우파로 보이는 것뿐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반면에 김진홍 목사님은 “맞다. 나는 보수다, 그런데 개혁적 보수다.”라고 말했습니다. 결국 작은 차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단체를 달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요즈음도 저는 저를 보고 보수라고 말하면 거북함을 느낍니다. 내가 왜 보수냐? 나는 지금 正論을 말하고 있는 거다. 그런데 정론을 말하는 것을 보수라고 부른다면 보수야말로 좋은 것이다. 다 같이 보수가 되자. 이렇게 말해왔습니다. 그런데 <기독교사회책임>이 선진화를 지향하는 세력이라면 구체적으로 무슨 활동을 해야 하는가? 첫째로 우리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세력, 선진국으로 가는 길을 가로막는 세력과 단호하게 싸워야 합니다. 대표적인 세력이 친북좌파입니다. 친북좌파는 몇 년 전 맥아더 동상 철거사건으로 국민 앞에 뚜렷한 실체를 드러냈습니다. 저는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고 나선 사람들이 수천 명이 되는 것을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습니다. 도대체 맥아더 동상을 철거하려는 세력은 어떤 세력인가? 유엔군상륙작전이 잘못이라고 생각하는 세력이 아닌가? 그렇다면 북한에 의해 통일되었어야 했다는 세력이 아닌가? 그렇다면 이 세력은 친북좌파라는 말 이외의 다른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하지 않은가? 그런데 이들은 전교조, 민노당, 민노총, 범민련, 한총련, 전농, 통일연대, 진보연대 등의 세력으로 수십 만명을 포괄하는 국내 최대의 조직세력입니다. 저는 이들의 실체를 확인한 후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사람들은 이들과 정면으로 싸우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일 제가 이들과 싸운다면 사람들은 틀림없이 저를 꼴통보수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고민 끝에 이들과 결연하게 맞서 싸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게 애국심이 있다면 꼴통보수라는 말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웠습니다. 금년 봄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에도 저는 촛불시위에 맞서 청계광장에서 열흘 동안 1인시위를 했습니다. 촛불시위를 주도한 세력은 3년전, 맥아더동상 철거를 시도한 바로 그 세력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또다시 이들 세력과 단호하게 맞섰습니다. 저는 친북좌파와는 타협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 친북좌파와 손잡는 세력과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진보는 친북좌파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이들이 친북좌파와 손을 잡는다면 우리는 그들과도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서 진보가 보수에게 패배했는가? 그 이유는 진보진영이 친북좌파와 단절하지 못하고 그들의 둘러리가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사회책임>은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정당의 정책에 대해서는 입장표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민주당(열린우리당)은 친북좌파과 분명하게 선을 긋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민주당을 향해 이점을 분명히 할 것을 계속 촉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나라의 진보진영이 친북좌파와 결연하게 선을 긋는다면 그 다음부터 우리는 진보진영과 대화를 시작하고 화합을 도모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생각이 크게 바뀌어야 합니다. 지난 정권은 “평준화”를 중요시했습니다. 그래서 국토의 균형발전을 위해서는 수도권을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교육의 평준화를 강조하고 빈부의 양극화 극복을 위해 평준화를 강조했습니다. 그런데 선진국이 되려면 평준화가 국가의 기본목표가 되면 안 됩니다. 기본목표를 평준화에서 국제경쟁력 강화로 바꾸어야 합니다. 서울대학교와 전남대학교를 똑같이 만들려고 할 것이 아니라 서울대가 동경대, 북경대, 청화대와 경쟁해서 이기도록 해야 합니다. 삼성전자가 모토롤라와 노키아를 이겨야 하고 서울수도권이 북경권, 상해권, 동경권을 이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평준화만강조하면 하향평준화가 됩니다. 그동안 빈부의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 평준화를 강조했지만 노무현 정권하에서 양극화는 더욱 심화되었습니다. 오히려 경제가 성장하여 일자리가 창출되면 취업이 늘어 양극화가 개선됩니다. 교육 평준화도 마찬가지입니다. 평준화의 결과로 공교육이 붕괴되고 사교육 시장이 커졌습니다. 그렇게 되니까 오히려 부자집 자제는 사교육의 도움으로 서울대학에 더 많이 입학합니다. 그래도 과거에는 가난한 집 자제가 명문고등학교에만 입학하면 서울대학에 갈 수 있었습니다. 수도권규제를 푼다고 해서 지방이 더 낙후하는 것이 아닙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무엇보다 지방의 경쟁력이 커져야 하는데 그러려면 지방분권이 되어야 합니다. 사실은 이회창씨가 주장하는 연방제가 가장 이상적이지만 그것이 되지 못한다면 광주의 경우에는 광주와 전남을 합쳐서 지방의 규모를 키우고 지방에 조세권, 입법권, 각종 인허가권, 교육자치권, 경찰자치권 등을 넘겨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지방의 경쟁력이 높아집니다. 물론 이 조치로 지방간의 격차가 심화될 수 있습니다. 그러면 중앙정부가 낙후된 지방을 특별지원해서 격차를 줄이면 됩니다. 그것이 아니고 수도권을 규제해서 반사이익으로 지방이 잘되도록 하자는 생각은 가능하지도 옳지도 않은 생각입니다.
세 번째로 선진국이 되려면 우리는 현 정권에 대해 비판과 견제를 해야 합니다. 권력은 견제가 없으면 반드시 권력을 남용하고 부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 말로는 선진화를 지향한다면서 실제로는 가진 자의 편을 들게 됩니다. 요즈음에는 전문가조차도 경제위기 해소대책과 가진 자를 위한 대책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 말로는 과거의 잘못된 것을 시정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정치보복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럴 때는 비판과 감시를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지향하는 선진국이 단지 경제선진국이 아니라 생태선진국, 복지선진국, 정신선진국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한나라당이 제대로 된 선진화 세력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여든 야든 다 제대로 된 선진화 세력이 될 수 있도록, 비판과 견제를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네 번째로 우리는 북한 인권문제를 제기해야 합니다. 지난 정권은 북한의 인권문제에 대해 침묵을 지켰습니다. 우리는 이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특별히 기독교는 헌법처럼 중요한 안식일법조차도 인간을 억압할 때에는 폐기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독교는 지난날 유신독재와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그렇다면 유신독재보다 백배는 더 독재인 수령독재 하에서 북한주민이 당하는 인권유린에 대해 기독교가 침묵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북한체제의 붕괴까지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그렇게 되면 한반도의 평화가 심각하게 위협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북한인권과 한반도의 평화를 동시에 추구해야 합니다. 또 대북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일반적인 대북지원은 상호주의에 입각해서 핵문제와 인권문제와 연계시켜야 하지만 생명과 직결된 긴급구호는 무조건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사회책임>은 북한에서 餓死사태가 다시 발생하게 된다면 한국정부는 무조건 식량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다섯 번째로 한국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 깊은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려면 경쟁을 강조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경쟁을 하면 불가피하게 경쟁에서 낙오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을 돌보는 일을 정부에게만 맡길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다시 평준화의 늪에 빠지게 됩니다. 그래서 낙오된 사람들의 생존권 요구와 정부의 지원대책 사이의 간극을 기독교가 메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정부가 안심하고 선진화의 길로 매진할 수 있습니다. 3년전에 <기독교사회책임>은 <나눔과 기쁨>이라는 단체를 만들어 민간차원의 사회안전망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교회, 학교, 기업, 병원, 식당, 점포, 주민 등 동네의 구성원들이 매달 얼마씩 돈을 모아 그 동네의 가장 어려운 차상위 계층(극빈자이나 자식이 있어 정부지원을 전혀 받지 못하는 사람들)을 돕는 운동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에 작은 교회 목사님들 3백명이 참여하였고 저는 모금을 해서 이분들에게 매달 30만원씩의 활동비를 지급했습니다. 그런데 3개월 후에 이분들을 조사했더니 이중 2백 명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돈만 받아갔습니다. 저는 지원금 1억 8천만 원을 헛되게 낭비한 셈입니다. 무조건 매달 얼마씩 지원하는 방식은 반드시 모럴 헤저드를 가져오고, 밑 빠진 독에 물붓기로 끝남을 엄청난 댓가를 지불한 후에야 깨달은 셈입니다. 그래서 다음부터는 지원방식을 바꾸어 실적에 따른 지원을 했습니다. CMS로 한 달에 십 만원을 정기적으로 모금하면 30만원을 지원하고 또 십 만원을 더 모으면 또 30만원을 지원하는 식입니다. 그리고 실적이 없으면 지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더니 돈 낭비가 사라지고 목사님들도 열심히 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연말에 점검해보니 120명이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중 30명은 정말로 열심히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이 <나눔과 기쁨> 활동을 열심히 한 목사님들의 삶 속에서 엄청난 변화가 생기게 되었다는 점입니다. 이 목사님들은 그동안 가난한 사람을 돌보는 일을 제대로 하지 못했습니다. 교회성장만을 꿈꾸면서 교회성장 세미나를 열심히 찾아다녔지만 교회는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눔과 기쁨> 활동을 하면서 이 목사님들이 독거노인을 찾아가서 노인과 친구가 되어 모든 이야기를 들어주고 발 안마를 해주고, 병원을 함께 가고, 먹을 것을 주고,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일했습니다.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하신 일이 바로 병자를 치유해주고 배고픈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자들의 친구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일인데 작은 교회 목사님들이 예수님처럼 행동한 셈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우리 동네에 훌륭한 목사님이 있다는 소문이 나기 시작하고 도움을 받은 분도 교회에 나오고, 많은 사람들이 소문을 듣고 교회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교회가 크게 성장했습니다. 송파구의 류춘실 목사님은 8년간 목회를 했지만 계속 실패하다가 <나눔과 기쁨>활동을 시작하면서 무료급식, 문화교실, 공부방, 발마사지 샵, 반찬나누기 등을 하면서 30명의 교인이 150명으로 늘어났습니다. 아산시의 박선호목사님은 교인이 20명이었는데 <나눔과 기쁨> 활동 후, 무료급식과, 발마사지 샵을 하면서 출석교인 150명의 교회가 되었습니다. 안산시의 김병천 목사님도 개척교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나눔과 기쁨>을 만나, 지역아동센터, 무료급식, 나눔가게, 알콜중독자 치유센터, 노인요양보호센터 활동을 하며 매월 천만원(물품포함)의 모금을 해서 차상위 계층을 돕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교회자립은 물론이고 4층건물까지 갖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까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삶도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과거에는 목회의 성공만을 추구했는데 이제는 삶의 목표가 예수님처럼 사는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하니까 그곳에 엄청난 감동이 있게 되고, 또 그렇게 되니까 교회가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나눔과 기쁨> 목사님들은 목회가 너무도 행복해 졌습니다.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각오가 중요하지, 교회규모가 중요하지 않음을 깨달았습니다. 자기 목회에 대한 자부심이 생기니까 어디 가서도 당당합니다. 큰 교회 앞에서도 주눅이 들지 않습니다. 이렇게 되니 다른 목사님들도‘나도 하겠다, 나도 하겠다’하고 나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눔과 기쁨>활동이 시작된 지 3년 반 만에 이 활동을 하는 목사님의 숫자가 1,300명으로 늘어났고, 그동안 100억원을 모금해서 연인원 100만명의 가난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었습니다. 이 상태로 계속 늘어나면 앞으로 2년 내로 전국의 모든 동네에서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는 목사님들이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살면 반드시 감동이 있고, 또 감동이 있는 곳에 반드시 교회성장이 있다는 <나눔과 기쁨>의 경험은 서울조선족교회 목회경험 속에서도 절실히 느낀 점입니다. 조선족 목회를 하면서 저는 조선족이 강제추방당하는 것을 막기 위해 무기한 단식을 여러 번 했습니다. 한번은 단식 17일째 되는 날 위출혈이 생겨 입으로 피를 쏟고 변으로 피가 나오면서 졸도를 했습니다. 가까운 데 병원이 없었더라면 생명이 위험할 뻔 했습니다. 긴급수혈과 레이저수술 후 정신을 회복하고 단식을 계속했습니다. 결국 단식 23일째 되던 날 우리는 요구사항을 관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피를 쏟던 광경을 지켜 본 조선족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목사님께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왜 목사님은 우리를 그토록 사랑하십니까? 목사님이 중국에 가서 정치인이 될 것도 아닌데 도대체 무슨 이해관계로 우리를 그렇게 사랑하십니까? 그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분들에게“여러분이 한 달만 우리 교회에 와서 제 설교를 들으시면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라고 답변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분들이 한 달 후에 제게 와서 하는 말이 “목사님이 믿는 그 하나님을 우리도 믿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너무도 쉽게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이러한 경험을 하면서 저는 한 가지를 분명히 깨달았습니다. 기독교인들은 살다 보면 반드시“왜 당신은 그토록 헌신적으로 사랑을 실천하십니까? 왜 당신은 그토록 열심히 정의를 위해 일하십니까? 도대체 당신의 비밀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가 바로 전도의 순간입니다. 전도는 입술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줄 때에만 됩니다. 사람들이 우리의 행실을 보고“아! 하나님이 계시구나”하고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저는 교회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큰 교회들이 <한국교회 희망연대>를 만들어 조선족을 돕는 행사도 하고 노숙자를 돕는 행사도 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족 동포들이 그 행사에 가서 오리털 잠바를 받아왔는데 고맙다는 생각없이 당연한 것처럼 받아갔습니다. 저는 그 모습을 보고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일은 작은 교회가 해야 되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작은 교회 목사님이 독거노인을 찾아가서 먹을 것을 나누고 말동무를 하고 발안마를 하면 그분들이 감동이 되어 눈물을 흘립니다. 그리고 복음을 쉽게 받아들입니다. 큰 교회의 프로그램에는 스킨쉽에서 오는 감동이 없습니다. 반면에 사랑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감동을 느끼게 하는 것은 작은 교회 목사님들입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와 큰 교회는 역할 분담을 해야 합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을 돕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작은 교회의 몫입니다. 이것까지 큰 교회가 직접 하려고 하면 안 됩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작은 교회에 가서 목사님의 사랑을 듬뿍 받게 해야 합니다.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이 수평이동을 해서 큰 교회로 갑니다. 저는 수평이동을 반대하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 불가피합니다. 그 대신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성장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해도 시간이 지나면 교인들이 큰 교회로 옮겨오지만 그래도 작은 교회를 문 닫게 해서는 안 됩니다. 그동안 큰 교회가 계속 성장했는데도 지난 십년간 교인 14만명이 감소했습니다. 왜 그런가? 교인들이 큰 교회로 수평이동하면서 매년 3천교회 씩 작은 교회가 문 닫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에는 작은 교회 목사님의 고통과 恨을 잘 몰랐습니다. 제가 목회하는 서울조선족교회가 평안하면 저 역시 아무 걱정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나눔과 기쁨> 상임대표가 되어 작은 교회 목사님들과 접촉하면서 그분들의 아픔을 알고 나서는 제가 그동안 個교회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을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수평이동으로 끊임없이 교인들을 빼앗겨야 하는 작은 교회 목사님들의 고통을 큰 교회 목사님들이 헤아려야 합니다. 저는 전에는 큰 교회의 예배를 즐겼습니다. 큰 교회에서 예배를 보면 참으로 은혜가 넘쳤습니다. 그런데 작은 교회의 아픔을 알고부터는 큰 교회에서 예배 보는 것이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잘 아는 목사님이 서울근교에 교회를 세웠는데 교회가 급속성장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축하할 마음이 나지 않았습니다. 교회 주변의 수십 개 작은 교회가 문을 닫았겠구나 하는 생각만 났습니다. 큰 교회와 작은 교회 사이의 갈등문제는 한국교회 최대의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큰 교회는 작은 교회와 共生하는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전도하는 일은 작은 교회에 맡기고 큰 교회는 작은 교회가 할 수 없는 국가적인 과제나 식자층과 中上層에게 전도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큰 교회가 절대로 작은 교회가 자기들대신 가난한 사람에게 전도하도록 일을 나누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모두 다 큰 교회가 독점합니다. 교회간 관계는 마치 정글과도 같습니다. 작은 교회들이 설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일반사회는 그렇지 않습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는 襟度(금도)가 있습니다. 그래서 대기업은 반도체, 선박, 자동차, 제철, 항공기 등의 분야에만 진출하고 생필품 제조업에는 진출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중소기업의 몫입니다. 그래서 중소기업에게도 살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내에는 이런 금도가 없습니다. 큰 교회는 먼저 개척교회 지원방식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저는 항상 큰 교회 목사님들에게‘개척교회를 지원할 때 매달 얼마씩 정기적으로 지원하는 것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입니다. 그렇게 하면 절대로 교회가 성장하지 못합니다. 지원받는 교회로 하여금 <나눔과 기쁨>활동을 하도록 권유해 주시고, 재정 지원할 때 저희를 통해 실적에 따른 지원을 하도록 해 주십시오’하고 말하고 다닙니다. 그리고 요즈음 들어서야 지원방식을 바꾸는 교회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나눔과 기쁨>의 경험은 농촌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농촌교회도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결심을 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돌보면 반드시 성장합니다. 농촌목회는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농촌목회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농촌교회로 부임하더라도 하루빨리 벗어나기 위해 아예 짐을 풀지 않는 목회자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각만 바꾸면 농촌교회에 무한한 미래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금 한국농촌에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절대로 사실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농촌을 망친 것은 농업 포퓰리즘입니다. 그동안 정부는 농민이 데모를 하면 무조건 다 지원해 주었습니다. 부채도 탕감해주고 온갖 지원을 해줍니다. 그 결과 농민은 적자를 보아도 정부가 다 해결해 줄 것으로 생각하고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농촌이 희망이 없는 것은 이처럼 농민의 정신상태가 병들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농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새마을 운동입니다. 정신개조운동입니다.‘하면 된다’는 믿음을 가지고 다시 일어서는 용기입니다. 농촌교회 목사님들이 발 벗고 나서서 새마을 지도자가 되어야 합니다. 모세처럼 민중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농촌은 반드시 살아납니다. 그런데 목사님이 교회 안에서 성경공부만 하고 있으면 교회도 부흥하지 못하고 농촌도 살아나지 못합니다. 농촌교회 목사님은 바지를 걷어붙이고 농촌과 농업 살리기에 앞장서야 합니다. 목사님의 모습을 보면서 주민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껴야 합니다. 그러면 모든 주민이 다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더욱이 도시가 공해로 찌들어 있는 요즈음 농촌은 우리의 희망입니다. 은퇴한 도시민은 한결같이 농촌에서 사는 것이 꿈입니다. 이렇게 꿈의 지역에 살면서 절망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농촌교회 목회자는 농촌을 생태적으로 청정하고 유기농업을 하고 고루 잘사는 지역으로 만드는 데 앞장서야 합니다. <나눔과 기쁨>의 “예수님처럼 살기운동”은 해외선교에서도 꼭 필요합니다. 저는 최근에 미얀마를 방문하고 한국선교사가 하는 일이 문제가 많음을 알고 놀랐습니다. 한국선교사가 미얀마 원주민 교회의 목사님에게 봉급을 주고, 교회도 지어주고, 교회 담장도 고쳐줍니다. 한국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교인들이 자부심을 느낄 만합니다. 그러나 그 결과 현지교회 목사님은 자기 교인들의 헌금으로 살아갈 생각을 하지 않고 한인선교사가 주는 돈으로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는 가난한 교인들을 섬기지 않게 되고 교회는 더 약해집니다. 한국교회의 고질적인 병폐인 물량주의, 상업주의, 실적주의가 한인선교사를 병들게 하고 그 결과 현지교회까지 병들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새는 격입니다. 이러한 현실은 미얀마 뿐 아니고 남아연방도, 연길시도 다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한인선교사가 현지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같은 방식은 안 되고 현지 교회 목사가 <나눔과 기쁨>처럼 동네에서 정기적으로 모금해서 그 돈으로 동네 안의 가장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한인선교사는 <나눔과 기쁨>의 방식대로 현지교회 목사의 모금실적에 따라 재정지원을 합니다. 그렇게 해서 미얀마의 목사님으로 하여금 더 열심히 지역의 가장 어려운 사람을 섬기게 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선교사들의 마음 속 목표는 교회를 세우는 일입니다. 그러나 교회건립이 목표이면 오히려 목표달성이 어렵습니다. 그것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 선교사들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선교사는 예수님의 사랑과 공의를 실천하는 일에 더 힘을 쏟게 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드시 현지인들에게 질문을 받습니다. “당신은 왜 먼 나라에서 여기까지 와서 우리를 그렇게 죽도록 사랑하십니까? 도대체 당신의 비밀은 무엇입니까?”그러면 이러한 질문을 받는 때가 바로 전도의 순간입니다. 선교지역에서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면, 그 나라 국민을 죽도록 사랑하면, 틀림없이 큰 전도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나눔과 기쁨>의 경험을 통해 저는 한국교회를 향해 부탁드리고 싶은 말씀들이 있습니다. 첫째로 한국교회가 교인들에게 영적인 충족감을 주는 교회로 自足할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살려고 노력하는 교회가 되려고 결단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초대형 교회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크기와 상관없이 예수님처럼 살려고 분투하는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대표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그곳에 반드시 감동이 있고, 기적이 체험될 것입니다. 또 그렇게 하면 한국교회에 대한 안티세력도 줄어들 것입니다. 둘째로 한국교회는 작은 교회의 고통과 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만큼은 작은 교회가 전담하도록 맡겨주어야 합니다. 작은 교회를 더 이상 애물단지로 보지 말고 작은 교회 안에 한국교회를 새롭게 할 굉장한 가능성이 있음을 새롭게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개척교회와 미자립교회를 지원할 때에는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으로 도울 것이 아니라 <나눔과 기쁨> 활동을 통해 지원할 수 있도록 지원방식을 전환시켜 주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작은 교회들은 신학교 학생 수를 획기적으로 줄이고, 군소교단의 방만한 신학교 문제, 자격 없는 목사안수 문제를 근본적으로 정비하여 목회자의 수급불균형을 해소하는 개혁이 시급합니다. 목회자 수급불균형이 계속되는 한 작은 교회 목회자의 고통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한국교회의 개혁과제가 산적함에도 불구하고 어느 것 하나 개혁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한국교회의 어디에도 개혁주도 기구가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안에서는 사회개혁은 청와대가 주도합니다. 그렇다면 기독교에서는 한기총이 개혁의 사령탑이 되어야 합니다. 한기총이 교회 지도자들이 1년에 한 번씩 거쳐 가는 명예직이 아니라 한국교회의 개혁의 사령탑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여섯 번째로 기독교사회책임이 해야 할 역할이 있습니다. 그것은 국민화합을 위해 힘쓰는 일입니다. 그동안 기독교사회책임은 기독교와 불교와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노력을 했고 이 노력이 큰 결실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기독교사회책임>은 종교간 화합뿐만 아니라 기독교 내에서의 보수-진보간 화합을 위해서도 힘을 쏟아야 합니다. 지금 기독교내의 보수-진보간 대립구도 너무도 심각합니다. 그러나 친북좌파세력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동안에는 화합을 위한 노력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친북좌파와 그 동조세력, 그리고 이를 반대하는 애국세력간의 대결이 불가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진보진영이 친북좌파 세력과 선을 긋고 다른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는 얼마든지 그들과 함께 대화하고 연대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다시 中道의 영역을 복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원래 이 길이 <기독교사회책임>이 가고 싶은 길이었지만 그동안 우리는 친북좌파세력과 맞대결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 때문에 그동안 <기독교사회책임>은 우파단체로 비쳐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앞으로 우리는 친북좌파와 선을 긋는 단체라면 그 단체가 제아무리 진보적인 단체라 하더라도 그 단체와 사안별 연대를 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기독교사회책임>은 끝까지 이 세상 속에서 진실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기를 희망합니다. 우리는 특정이념이나 특정의 정치적 입장을 추구하는 단체가 아닙니다. <기독교사회책임>은 기독교인으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고자 애쓰는 단체이고 이러한 우리의 행동을 통해 사람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느끼게 하고, 그래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파되기를 바라는 단체입니다. 이 단체에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