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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와 동행하는 삶
시편 23편 4절
우리는 교회에서 예수를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을 항상 듣습니다. 한국교회에서 이루어지는 설교들을 분석하면 결국은 이 말로 귀결됩니다. 큰 교회로 갈수록 더욱 그러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복 받는다는 말은 세상 속에서 복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물론 기독교인이 시련을 당하지만 그 시련도 보다 큰 복을 받기 위한 과정으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이 말은 잘못하면 우리가 복을 받기 위해 예수 믿는 것으로 왜곡될 수 있습니다. 복 받기 위해 예수믿는 사람은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라 가다보면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이 가신 고난의 길도 따라가야 하는데 그런 길은 가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목사님은 대형교회가 사회정의를 위한 설교를 열심히 했더라면 지금처럼 교회가 크게 성장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교까지 하셨습니다. 교회가 사회정의를 위한 설교는 하지 않고 복 받는 설교만 해서 교회가 크게 성장했다는 말입니다. 복받기 위해 예수믿는 사람은 복을 받지 않으면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성황당을 믿는 샤마니즘과 하등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아무리 열심히 예수를 믿고, 열심히 예수님께 기도하더라도 하나님이 복을 주시지 않을 수가 얼마든지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가 간절하게 기도할 때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십니다. 그래서 저는 기도의 힘을 믿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간절히 기도해도 응답을 안 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 생각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젊은 시절에 민주화운동을 하다가 잡히게 되었습니다. 그때 저는 제발 잡히지 말게 해 달라고 눈물로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냥 잡혔습니다. 다시 제발 석방시켜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 기도를 들어주지 않으시고 징역 20년 형을 언도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지금에 와서 되돌아보면 다 하나님의 은총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연단을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가 민주화운동에 매진하다가 감옥까지 간 사건이 그 이후에 저의 사회적 발언권을 높여주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저는 지난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서 저와 우리 집안을 돌보아 주셨다는 점을 감격스럽게 느낍니다.
그래서 예수믿는 사람이 복을 받는다는 말을 우리는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이 말은 예수 믿으면 로또도 즉각 당첨되고 자식이 즉각 대학시험에 합격하고 장사를 하면 무조건 돈을 벌게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은 예수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세상을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앞에 시련이나 연단이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시련이 와도 이를 극복할 힘을 주신다는 말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시편 23편 4절로 잡았습니다.“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내가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지 않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 골짜기를 다니더라도 주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내가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게 아주 뿌듯한 자랑꺼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을 몸으로 느낍니다. 꼭 내 왼쪽 가슴 쪽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느낍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느끼면 마음이 아주 든든해집니다. 아주 부자가 된 느낌입니다.
먼저 예수님이 저와 함께 계시면 제게 남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힘이 생깁니다. 저는 사실은 남을 잘 사랑하지 못합니다. 그렇지만 내가 사랑을 잘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를 죽기까지 사랑하신 예수님이 생각납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제게 남을 사랑할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남의 잘못을 용서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남김없이 피를 흘리신 예수님을 생각하면 그때 느끼는 감격 때문에 용서 못할 사람이 없어집니다. 보통 사람들은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만 사랑합니다. 그리고 질이 나쁜 사람은 용서하지 않습니다.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생각하면 이런 윤리적인 기준을 넘어서서 자격없는 사람도 사랑하고, 나쁜 사람도 용서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제게 그런 힘을 주십니다.
둘째로 나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은 저로 하여금 불의를 행하지 않게 할 뿐만 아니라 불의와 맞설 수 있는 힘을 주십니다. 내가 불의를 행할 생각을 조금이라도 하면 즉각 예수님이 뭐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잘못된 행동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힘든 일은 불의한 구조와 싸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구조와 싸우는 일은 가급적 피하고 싶습니다. 조선족문제도 제가 서울조선족교회 담임목사만 아니었더라면 절대로 개입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선족교회 목사로 이 문제에 부닥치다보니 할 수 없이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제와 부닥쳤을 때 저로 하여금 용기를 가지고 싸우도록 해 주신 분도 내 안에 계신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내 안에서“걱정 말아라. 내가 세상을 이겼는데 네가 왜 걱정을 하니?”하고 격려하십니다. 그래서 조선족문제를 가지고 싸웠습니다. 요즈음은 시각장애인 문제를 가지고 다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어느 시각장애인 목사님에 제게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청하셨는데 제가 도저히 이 請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안마사 협회가 아주 나쁜 사람들이더군요. 그러니 그 사람들하고 싸우지 않을 수 없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저를 걱정합니다.“시각장애인들이 쳐들어 와서 난동부리면 어쩌지요?”그러면 나는“걱정마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데 뭘 걱정해요?”하고 소리 지릅니다. 내 안에 계신 예수님만 믿고 큰소리를 치는 것입니다.
셋째로 고난과 시련을 당해도 예수님은 이를 이길 힘을 주십니다. 물론 시련을 당하면 힘이 들지요. 그래서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런데도 시련이 계속되면 나는 하나님께서 나를 크게 쓰시려고 시련을 주시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렇게 이해하도록 내 안의 예수님이 역할을 하십니다. 이까짓 시련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생각하면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만병통치약입니다. 그러면 나는 더 너그러워지고 더 참을 수 있고 더 성숙하게 됩니다. 그런데 마지막으로 제가 세상 속에서 회복이 불가능할 정도로 실패할 수가 있습니다. 이때는 정말로 극복하기 힘듭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런 좌절도 극복하게 해 주십니다. 성도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지난 봄까지 JU사건으로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것은 제게 정말로 큰 고통이었습니다. 저는 하나도 잘못한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도 지방법원에서 제게 변호사법 위반으로 유죄를 언도했습니다. 그리고 항소심에서도 유죄가 날까 보아 걱정했습니다. 만일 유죄가 언도되면 어떻게 하지? 시민운동가에게는 명예가 가장 중요한데 명예에 먹칠을 하면 나의 인생은 실패한 것이나 다름없게 됩니다. 그리고 시민운동을 그만두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마지막 언도 공판정에 가기 전에 각오를 했습니다. 이번에 유죄를 받으면 앞으로 시민운동은 그만 하겠다. 그리고 유죄가 나오더라도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상 받으면 됐지 세상의 상에 왜 그렇게 집착하나하고 반성했습니다. 그랬는데 항소심에서 무죄판결이 났습니다. 만일 유죄가 났더라면 틀림없이 가슴이 쓰렸을 것입니다. 그래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고 계속 감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을 허락하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는가? 지난 JU사건때 저는 시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임을 깨달았습니다. “왜 너는 세상에서의 성공에 그토록 집착하느냐? 세상에서의 성공은 너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가 아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 어떻게 서는가가 가장 중요하단다.” 하나님은 이점을 제게 일깨우려고 가끔가다가 제게 시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제가 세상 속에서 열심히 살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제가 열심히 사는 이유는 세상 속의 영광을 추구하기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이 생명을 귀하게 써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열심히 살기는 하지만 아웅다웅 다투면서 살지는 않습니다. 이런 자세를 유지할 수 있는 것도 내 안에 있는 예수님께서 계속해서 내게 “세상에서의 성공과 실패는 하나님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단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기독교인에게 있어서 가장 큰 힘은 영원한 생명에 대한 기대와 믿음입니다. 이 때문에 일찍 죽더라도 그다지 슬프지 않습니다. 65세에 죽든, 75세에 죽든, 뭐 그리 심각한 차이가 있겠습니까? 얼마든지 기쁨 속에서 죽을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하나님의 품안에 있느냐입니다. 또 나라와 민족을 위해, 형제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만일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 때문일 것입니다. 내게는 큰 빽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나와 함께 계신 예수님입니다. 저는 너무도 든든합니다. 예수님만 함께 계시면 뭐든지 다 해결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하나님의 선물인지 알 수 없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나와 같이 하지 않으신다면? 저는 그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습니다. 얼마나 한심하고 위험하고 불안한 삶일까? 아마 매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걱정이 넘치는 끔찍한 삶일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단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 바로 그것이 복의 근원입니다. 그러면 아무리 사망의 골짜기를 지나더라도 두려움이 없습니다. 예수님이 함께 계시면 내 인생이 성공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성공을 세상 속에서의 성공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 속에서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렇게 되면 세상 속에서 성공하지 못한 대부분의 조선족동포들은 어디가서도 위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인은 세상 속에서 실패해도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세상에서의 실패가 하나님 앞에서의 실패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 세상의 실패가 불행도 아닙니다. 참 행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칭찬받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이런 마음가짐을 갖고 주님과 동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나만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고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살리는 일까지 하게 됩니다. 우리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고 어려운 사람이 없도록 하고 세상을 하나님의 나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도여러분, 이렇게 예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 승리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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