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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0-19 15:53
   <10월19일 서울조선족교회 설교> 정직하게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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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2,340  


정직하게 살기 

                                        시편 51편 10절
                        하나님이여 내 속에 淨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요즈음 직불금 문제로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직불금은 농민들이 땅의 힘을 키우기 위해 농사를 짓지 않는 休耕(휴경)을 해야 하는 때에도 소득을 보통 때의 85%까지 보전해 주자는 제도입니다. 그러나 이 제도는 농민만이 혜택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농민이 아닌 사람이 신청을 해서 직불금을 타갔는데 이봉화 차관같은 공무원이 4만명, 고위공무원이 백명 이상, 그리고 몇명의 국회의원이 여기에 포함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도덕적으로 너무도 심각한 문제입니다. 不正直의 수준이 이 정도가 된다면 이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더 심각한 질문은 이런 대규모 비리가 어떻게 지금에 와서야 터지는가하는 점입니다. 그리고 틀림없이 최소한 만명 정도의 기독교인이 이 일에 관계되었을 텐데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왜 그동안 이 문제를 제기하는 기독교인이 한 사람도 없었는지 안타깝습니다. 기독교인들이 정직 불감증에 걸린 것입니다.

  초창기의 한국 기독교인들은 매우 정직했습니다. 역사가이신 이만열 교수님의 말씀에 따르면 조선조 말에 탐관오리가 기독교인이 많이 사는 마을에는 부임하지 않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기독교인들이 부패와 맞서 싸우려고 하기 때문에 재산을 모으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1907년 평양 대부흥 때에도 기독교인들은 스스로 부패와 비리를 고백했습니다. 정직은 성령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 과연 기독교인이 정직하게 살고 있는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습니다. 김영삼 정부 시절에 부패로 감옥 가는 고위공직자들이 많았는데 거의 다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김영삼대통령은 왜 이렇게 기독교인이 많은가 하며 개탄해 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그동안 교회에서 목사님이 설교하면서 부자가 되는 것을 축복으로 간주하기만 했지, 그 과정이 올바라야 한다는 점은 열심히 설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직한 삶은 기독교인으로서 가장 기초적인 삶의 태도입니다. 정직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되지 않습니다. 자식을 키울 때도 가장 중요한 것이 정직입니다. 부모가 정직하지 않으면 자식이 잘 될 수가 없습니다. 한번은 역사학자인 김동길 교수께서 이런 말을 하셨습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회 지도자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그 부모가 정직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나도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통해서 정직하게 살지 않으면 존경받는 사람이 될 수 없고 따라서 사회지도자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직하게 산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제 아버지는 너무도 정직한 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한국기계공업주식회사 사장시절에 누가 수박 한 덩이를 들고 아버지를 찾아오면 그 수박을 집밖에다 놓고 그 사람보고 가져가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집 앞에서 그 수박이 썩어 문드러졌습니다. 어렸을 때 아버지 직장에 간 적이 있는데 아버지 책상 왼쪽 서랍에도, 오른쪽 서랍에도 사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왼쪽 서랍의 사탕은 개인돈으로 산 것이기 때문에 내가 먹어도 되지만 오른쪽 서랍의 사탕은 공금으로 산 것이기 때문에 접대용이지, 내가 먹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렇게 철저하셨습니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자랐음에도 불구하고 나도 비리에 연루된 적이 있었습니다. 미국에서 가난한 유학생으로 살고 있을 때 누가 제 자동차를 박살냈습니다. 그래서 변호사에게 갔더니 저보고 큰 피해를 입은 것처럼 서류를 작성하라고 했습니다. 아프지 않은데도 병원을 다니며 물리치료를 하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큰 보상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당시 돈에 쪼들리던 저는 그 변호사가 가짜 서류를 작성하는 일에 협력했습니다. 당시 미국에서 횡행하던 보험사기에 저도 협력한 것입니다. 그리고 수천불의 보상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두고 두고 후회했습니다. 
  군대생활을 하면서도 잘못한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시설장교로 해군본부에 근무하고 있을 때 포항해병사단에 비리가 있다는 고발이 들어오니까 해군본부로부터 제게 조사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가보니 5-6천만원짜리 보일러 보수공사를 실제로는 거의 하지 않았습니다. 사단장이 다 해먹은 것입니다. 그런데 담당 공병장교가 나와 동갑이고 계급도 같은 중위였는데 저한테 매달리는 것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이 사실을 사실대로 보고하면 자기는 감옥에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 중위의 얼굴이 아른거려서 할 수 없이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보고했습니다. 그리고 평생을 두고 후회했습니다. 
  그런데 저의 잘못을 교회에 돌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점은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설교를 교회에서 들은 적이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저는 혼자 고민하다가 그냥 타협하고 만 것입니다. 

  나중에 제가 경실련이라는 시민운동을 하면서는 정말로 철저하게 정직한 삶을 살려고 애썼습니다. 한번은 윤종용 당시 삼성전관 사장님이 제게 행운의 열쇠를 선물했습니다. 금 한냥으로 만든 열쇠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비리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액수가 50만 원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행운의 열쇠를 팔아 그 돈을 경실련에 입금시키고 영수증을 삼성전관에 보내면서 경실련을 도와주어서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이렇게 악착같이 정직하려고 했던 이유는 사무총장인 내가 이렇게 살아야 간사들도 나를 본받아 정직하게 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직은 혼자만의 정직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정직한 사회를 만들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직운동은 반드시 정의실현 운동으로 발전해야 합니다. 비리가 있으면 고발해야 하고 잘못된 제도는 고쳐야 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고난을 당하기도 해야 합니다.

  제가 경실련 사무총장을 할 때 한번은 한화그룹의 김승연 회장이 LA의 실베스타 스텔론의 660만 불짜리 집을 회사 돈으로 샀다는 고발이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한화그룹이 경향신문을 소유하고 있었기 때문에 언론사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일체 보도하고 있지 않았고 만일 경실련이 이 건을 검찰에 고발하면 그때부터 기사화하겠다는 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고발하지 말아 달라는 엄청난 압력과 로비가 한화그룹으로부터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때 재벌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았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영향력 있는 인사들을 다 동원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저는 정의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를 절감했습니다. 금품공세는 전혀 없었습니다. 금품이 통하지 않는 것은 한화그룹이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말이면 내가 도저히 안 들을 수 없는 그런 분을 통해 제게 압박을 해 왔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끝내 김승연씨를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모든 신문에 이 사실이 보도되었고 김승연씨는 구속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동안 내가 고발할 것인지 아닌지를 숨죽이며 지켜보던 경실련 실무자들이 안도의 한숨을 쉬고 얼굴에 긍지가 피어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정의롭게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절감했습니다.
  경실련에서 공명선거운동을 할 때입니다. 그동안 포항제철의 박태준회장이 경실련은 참으로 훌륭한 단체라고 생각하고 몰래 경실련을 재정적으로 지원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매우 고맙게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경실련에 포항제철이 선거부정을 하고 있다는 고발이 들어왔습니다. 그 고발을 받고 저는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포항제철의 지원이 너무 필요했는데 이 돈을 더 이상 받을 수 없게 되어서입니다. 그리고는 포항제철의 선거부정을 고발했습니다. 그랬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포항제철의 간부가 뛰어와서 서목사님이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까하고 항의했습니다. 저는 그 주간에 머리가 너무 아파 밥을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인간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서 나는 정의의 반대는 의리라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정의의 반대는 의리”라는 말은 단 하나밖에 없는 “서경석 어록”입니다. 과거에는 감옥갈 용기만 있으면 정의를 지킬 수 있었지만 지금은 의리를 저버릴 줄 아는 용기가 있지 않으면 정의를 지킬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저는 경실련 사무총장을 지내면서 수없이 의리를 저버렸습니다. 경실련을 도와준 기업이 잘못을 저지르면 경실련은 가차없이 그 기업을 비판했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감수하지 않고 정의롭게 살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물론 모든 기독교인이 경실련처럼 행동할 수는 없습니다. 일반 교인들이 사람들의 소소한 문제까지 따라다니며 문제제기를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기본적으로 정의를 지키며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또 정의를 지키는 일은 혼자의 힘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이점에서 영국의 윌버포스는 우리에게 큰 귀감이 됩니다. 그분은 1833년 영국에서 노예제도폐지법을 통과시키는 일에 앞장선 영국 하원의원입니다. 당시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막강한 나라였지만 산업혁명의 후유증으로 경제적 양극화와 도덕적 타락이 극에 달했었습니다. 그리고 GNP의 40%가 노예산업이어서 노예제도는 영국을 지탱하는 핵심적인 경제기반이었습니다. 그래서 칼 막스는 가장 먼저 공산화시킬 수 있는 국가를 영국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러나 윌버포스와 그의 동료들의 복음적 자기헌신과 사회개혁운동 때문에 영국은 공산화되지 않고 사회문제를 극복하고 존경받는 나라로 변화될 수 있었습니다. 윌버포스는 처음부터 기독교인은 아니었지만 기독교인이 된 후에 완전히 새 사람이 되어 매일 2시간씩 경건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당시 사회지도층이 극렬하게 노예제도를 옹호했지만 윌버포스는 정의의 세력을 만들어 이를 끝내 폐지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윌버포스와 그의 동료들은 하나님의 역사하심만을 믿고 담대하게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윌버포스의 헌신적인 노력에 감동한 많은 사람들은 그를 ‘영국의 양심’이라고 불렀고, 그의 영향으로 영국 국회의원들의 1/3이 복음주의 크리스천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정의를 위한 노력은 지금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이렇게 정의를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을 열심히 도와야 합니다. 
  저는 최근에 시각장애인인 김호경 목사님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동안 시각장애인들에 대해 대단히 불만이 많았습니다. 2년 전에 시각장애인들이 한강다리에서 강물로 뛰어들면서까지 생존권투쟁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당시 <기독교사회책임>은 이들을 적극 지지하고 함께 데모까지 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까 시각장애인협회가 문제가 많았습니다. 이들은 안마시술소와 깊게 연관되어 매춘으로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습니다. 게다가 대부분의 안마시술소는 시각장애인이 실제주인이 아니고 실제주인은 따로 있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안마행위를 시각장애인만 하도록 한 결과가 시각장애인을 위한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비리구조를 지탱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안마행위를 시각장애인이 독점하는 것도 사실은 틀렸습니다. 안마가 건강을 위해 너무도 중요하기 때문에 시각장애인만 하면 안 되고 적어도 백만명이 이 일에 종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누군가 이러한 구조적 비리와 반드시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알고보니 김호경목사님 그룹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정부가 대안제시 없이 피부미용사 자격증을 일반인에게 주어 건강한 사람도 안마업을 하게 되면 시각장애인은 살 길이 없어지니 대책을 강구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을 하려고 하니 도와달라고 찾아온 것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이 계신 것을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김호경 목사님께 절대로 단식을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습니다. “목사님의 요구는 너무도 정당한 요구인데 그 요구 때문에 단식을 하면 우리들 같은 정상인들이 정신적으로 너무 큰 고통을 겪습니다. 우리 같은 사람을 전부 죄인으로 만드는 결과가 됩니다.  제가 30여명의 영향력있는 목사님들이 여러분의 운동에 동참하도록 해보겠으니 무기한 단식은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하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함께 온 목사님 사모님이 울음을 터뜨렸습니다. 김호경 목사님이 고혈압이어서 단식을 할 처지가 아닌데도 단식하겠다고 고집을 부려 자기는 기도밖에 할 수 없었는데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하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께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고 역사하시는데 무엇을 걱정하십니까하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김호경 목사님 같은 분이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김호경 목사님의 투쟁은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도처에서 정의로운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일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 당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십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우리는 절대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윌버포스처럼 일견 보기에는 전혀 불가능하게 보였던 노예제도 폐지도 얼마든지 관철시킬 수가 있었습니다.

  조선족 동포 여러분도 정직하게 사셔야 합니다. 그동안 중국은 부패가 일상화된 사회였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은 부패와 싸워야 합니다. 정직하지 못했던 과거가 있으면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이제부터라도 새로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가정부로 일하시는 동포들은 이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윌버포스처럼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경건의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철저하게 정직을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가정부로 일하면서 서울조선족교회 교인임을 당당하게 밝히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잘하시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집주인을 전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을 욕보이게 됩니다. 집주인을 전도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또 언젠가는 중국으로 돌아갈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저는 중국으로 돌아가는 동포들에게 중국 정부와 맞서 싸우면서 민주화투쟁을 하라고까지는 말하지 못하겠습니다. 그 일은 조선족에게 너무도 벅찬 일입니다. 그러나 부패와 싸우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합니다. 과거 조선 조 말에도 기독교인은 극히 소수임에도 불구하고 탐관오리와 맞섰습니다. 그렇다면 우리 동포들이 이를 못할 리가 전혀 없습니다.
  기독교인이 짠맛을 잃으면 어떻게 세상사람들의 대접을 받겠습니까? 쓸모없이 되어 사람들의 발에 짓밟힐 뿐입니다. 우리가 정의롭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하나님이 역사하심을 증명해 낼 수 있겠습니까? 
  기독교인이 되면 그저 좋은 일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단호하게 불의와 맞서 싸울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결단 없이 어떻게 불신자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부디 하나님께서 반드시 역사하심을 믿고 담대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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