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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8-10-12 17:23
   <10월 12일 설교문> 최진실씨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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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 서경석
    조회 : 2,463  
   최진실씨의_죽음.hwp (34.6K) [66] DATE : 2008-10-12 17:23:42




최진실씨의 죽음 

                                                마태 7:13-14

  얼마전 최진실씨의 죽음은 너무도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매스콤이 영안실에서부터 화장장에 이르기까지의 모든 장례과정을 실황중계를 할 정도로 큰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최진실이 워낙 유명한 국민배우였기 때문에 우리국민은 마치 가족이 죽은 것처럼 애통해 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렇게 이쁘고 돈많은 여자가 자살하다니, 이 세상에 없는 것 없이 다 갖춘 최진실이 불행했다니 놀랍다는 반응도 컸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최진실이 4년 전부터 교회에 출석해 온 크리스천이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최근에 자살한 이은주, 유니, 정다빈, 안재환도 다 기독교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최진실이 죽은 후 교회의 반응도 컸습니다. 악플을 단 사람에 대한 분노도 표출되었고, 교회가 심신이 약한 교인들을 돌보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반성도 있었고 자살은 죄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자살하지 않도록 교인들을 잘 가르쳐야 한다는 반성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의 반성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교회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자살하는지를 질문해야 합니다. 기독교인이라면 어떤 고난도 이길 수 있는 믿음과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최진실이 악플이 주는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생명을 끊었다면 근본적으로 최진실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는 삶의 의지를 갖고 있지 않았다는 점이 문제가 되어야 합니다. 
  최진실의 죽음이 우리에게 분명하게 보여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돈과 명성과 화려함과 미모가 인생에서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돈과 명성과 같이 세상 속에서의 성공이 전부인줄 알고 살아오다가 악플에 걸려 세상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으면서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최진실씨가 부와 미모와 명성이 삶의 목적이 아니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 참된 삶의 목적이었음을 진작에 깨달았다면 그는 절대로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최진실씨의 죽음은 우리에게 무엇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인가하는 질문을 던져주고 있습니다.
   
  어제 저는 한 교수님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며칠 전 지방에 갔다가 우연히 그 분을 만났는데 그 분은 기다렸다는 듯이 저에게 상담을 요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분은 지독한 가난 속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분입니다. 그렇게 하고도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에서 박사학위까지 받고 지방대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 후에도 더 성공적인 삶을 살기 위해 일본에 가서 다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그런데 이분이 중병에 걸려서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허파에서 계속 피가 나와 폐암으로 알고 하나님께 매달렸습니다. 그리고 55세 이후의 삶은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맹세를 했습니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병이 나았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잠시 대학을 쉬고 신학공부를 하여 목사안수까지 받았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대학교수입니다. 앞으로 십년은 교수직이 보장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나이가 55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 할 나이가 된 것입니다. 이분이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대학교수로 사는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교수님은 교수직을 그만두고 목회를 할까하고 생각도 하였지만 지금은 한국에 교회가 너무 많고 또 목사도 너무 많은데 꼭 목회를 하는 것만이 하나님께 헌신하는 길인가에 대해 회의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분은 저를 찾아와서 제 의견을 듣기를 원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분에게 저와 인생을 함께 살아갈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그리고 목회를 해야만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씀드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세상을 섬기는 삶,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삶을 함께 살아가자고 권유했습니다. 그리고 몇주 후에 다시 만나 구체적인 일을  의논하기로 하였습니다.
  저는 이분을 만나면서 참다운 행복은 의미를 느끼고 사는 삶,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 하나님의 나라와 그 義를 위해 사는 삶이지, 세상 속에서의 지위나 세속적인 성공이 아님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만일 최진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삶이 얼마나 의미있고 아름다운 삶인가를 알았더라면 절대로 자살하지 않았을 텐데 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 때에는 최진실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최진실은 돈을 열심히 벌었을 것 같습니다. CF도 많이 찍으면서 열심히 돈 버느라고 뛰어다녔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뛰어다녔을 것입니다. 국내뿐만 아니라 전 세계로 뛰어다녔을 것입니다. 그리고 악플은 들여다 볼 시간도 없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 최진실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그 사람들을 위해 보낼 시간조차도 모자라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연예인 사이를 열심히 누비고 다니면서 모금을 해서 어려운 사람을 도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며 행복하게 살았을 것입니다.
  안재환씨도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안재환은 먼저 금치산자 선고를 자청하고 빚잔치를 하고 5년 후든 10년 후든 반드시 빚을 갚겠다고 선언하고 다시 즐겁게 살았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어려운 사람을 도우며 의미 있는 삶을 살려고 애쓰고 방송활동 열심히 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분들은 그렇게 살지 못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 자살한 이은주, 유니, 정다빈, 안재환, 최진실은 모두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이들이 기독교인이 아니었으면 예수 안 믿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했을 텐데 유감스럽게도 이들이 다 기독교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최진실의 죽음 앞에서 한국교회는 심각한 자기반성을 해야 합니다.
 
  교회는 이들에게 무엇이 참된 행복인가를 잘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서의 성공을 축복으로 가르치고, 교회를 열심히 다니고 예수를 열심히 믿으면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점만 가르치고, 긍정적인 사고를 가지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축복하신다는 점만 강조했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는 제대로 가르치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이 자살이 죄임을 몰라서 자살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성공과 행복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보는 성공주의 신앙관이 이들을 자살로 이끌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 속에서 고통을 겪고 실패하면서 자신의 삶을 버림받은 인생으로 본 것입니다. 세상 속에서 성공하고 명성을 가질 때 행복이 온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된 생각이었지만 최진실은 그 점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세상 속에서 실패하면서 하나님으로부터도 버림받았다고 느낀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죽음 이외에 다른 생각은 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최진실씨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다면 악플 따위는 작은 시련에 불과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세상에 영합하지 말고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은 세속적인 성공을 추구하는 삶과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물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도 세속적으로 성공적인 삶으로 간주될 수 있겠지만 목표자체는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이 삶은 예수님을 본받는 삶이고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이 목표가 아닙니다. 최진실이 이러한 삶의 목표를 가졌더라면 절대로 자살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 목회자들은 십자가과 고난을 설교하기를 꺼리는가? 그것은 그런 설교를 교인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인들이 주일날 교회에 나와 그동안에 지은 죄를 다 사함 받고 편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교회에 와서 도전을 받고 전율을 느끼는 것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목회자는 교인들에게 부담스러운 존재입니다. 그래서 일반 목회자들은 교인들에게 심각한 도전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성공을 축복으로 여기도록 설교합니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영적 충족감을 주기위해 <경배와 찬양>시간을 많이 갖습니다. 그러다보면 온몸이 영적인 충족감으로 채워지고 교인들은 큰 은혜를 받습니다. 그렇지만 교인의 삶은 변화된 것이 없습니다. 

  작년에 한국교회는 “어게인 1907년”이라고 하여 영적 대각성운동을 벌였습니다. 교인수가 감소하고 있는데 백년 전 평양 대부흥운동이 다시 재연되어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여기저기서 부흥집회를 가졌습니다. 수만 명이 모여 밤을 새우며 통성기도를 하면서 울부짖었습니다. 그러나 이 대각성운동은 실패로 끝났습니다. 집회를 하고 난 후나 하기 전이나 달라진 것이 없었습니다. 왜 없나? 그냥 감성적인 흥분이었지, 우리의 삶의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결단도, 사회정의에 대한 각오도, 자기 것을 남과 나누겠다는 결단도, 원수와의 화해도, 우리 삶의 진정한 변화도 없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나? 영적 대각성에는 반드시 예수님처럼 살겠다는 각오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각오는 없이 감성적인 분위기만 있었기 때문에 아무런 성과가 없었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바보가 아니고 靈的 존재입니다. 기독교인들이 진정한 변화의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데 그 기독교인을 보고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고난과 십자가를 설교하지 않는 한국교회가 교인들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 못하고,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동반하지 않는 영적대각성운동이 성공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사필귀정입니다.   

  이번 최진실의 죽음을 한국교회는 반성의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겠다는 결단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적인 성공을 축복으로 여기는 성공주의 신앙관을 버려야 합니다. 성공주의 신앙관은 그 문이 크고 길이 넓어서 그리고 가는 사람이 많지만 그러나 그 문은 멸망에 이르는 문입니다. 한국교회는 이 넓은 문을 포기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이 길은 예수님의 따르겠다는 결단의 길입니다. 이 좁은 문은 길이 험해서 그 길로 찾아드는 사람이 적지만 그러나 이 문은 생명에 이르는 문입니다. 

  많은 교회지도자들이 교회가 사회정의에 관심을 갖고 행동하면 교회가 성장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맞는 것 같지만 사실은 맞지 않습니다. 삼일운동 당시 기독교가 민족운동에 앞장서면서 많은 교회가 핍박을 받았습니다. 목사, 장로가 감옥에 갇히고 교회가 불탔습니다. 제암리교회는 주민들까지 함께 불태워졌습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러한 행동 때문에 한국교회가 크게 부흥했습니다. 지나간 70년 대에도 인권운동에 앞장섰던 基長 교회들은 독재정권의 탄압으로 부흥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십년의 기간 동안에 한국교회 전체는 두배 반으로 성장했습니다.
  요새는 어떠한가? 교회가 예수님을 따르는 삶을 살지 않고 교인들에게 영합하면서 물량적인 교회성장만을 추구하니까 교회에 대한 세상사람들의 비판이 커져 결국은 교회의 성장이 멈춰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작은 교회들 안에서는 다른 모습이 보여지고 있습니다. 작은 교회가 성장을 목표로 할 때는 교회가 성장하지 않았지만 목사가 성장의 욕심을 버리고 예수님처럼 살겠다고 결단하니까 오히려 교회가 성장합니다. 그 목사님의 삶이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어 사람들이 다시 교회로 찾아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바른 길로 가면 반드시 우리를 생명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이제는 교회가 예수님을 따라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기독교인들을 참된 교인으로 양육해야 합니다. 악플 때문에 자살하는 교인은 최진실씨가 마지막이 되어야 합니다. 한국교회는 최진실씨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이 아픔을 기필코 ‘한국교회를 바른 길로 가도록 하겠다는 각오’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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