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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을 체험하기
마태 15:29-31
오늘 본문은 복음서의 수많은 기적 이야기 중의 작은 하나입니다. 복음서는 수많은 기적이야기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으키고, 장님의 눈을 뜨게 하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혈루병, 중풍, 문등병 등 수많은 병자를 고치고 물이 술이 되게 하고 5천명을 먹이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등등 아마 복음서의 삼분지 일은 기적이야기일 것입니다. 또 무리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무리들이 크게 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했다고 했습니다. 대학 시절에 저는 성경을 읽을 때 기적이야기가 영 못마땅했습니다. 잘 믿어지지도 않았지만 그 많은 기적이야기가 괜히 복음서를 차지하고 있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기적 자체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기적 이야기가 갖는 상징적 의미에 대해 관심을 가졌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사역에서 기적은 사역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의 기적을 보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그런데 예나 지금이나 기적을 체험하지 않으면 전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만 기적을 단지 초자연적인 현상, 과학으로 이해되지 않는 현상으로만 해석하지 말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보여주는 모든 증거들을 전부 기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보면 복음이 우리에게 들어와서 우리가 완전히 변화하여 새사람이 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만 보더라도 개망난이, 술주정뱅이, 도박꾼, 싸움꾼 이런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완전히 새사람이 된 놀라운 기적이야기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지금 한국교회가 왜 위기에 처했나? 왜 전도가 잘 안 되나? 그 이유는 이러한 기적이 잘 체험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절대로 입술로 전도되지 않습니다. 기적을 체험해야 합니다. 이점은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람이 저렇게 바뀔 수 있구나 하는 기적 같은 변화가 우리의 삶을 통해 보여져야 합니다.
문제는 어떻게 해야 이러한 기적이 체험될 수 있을까하는 점입니다. 이점과 관련해서 최근 이재철 목사(한국기독교선교100주년기념교회 담임목사)가 놀라운 설교를 했습니다. 이 목사님은 "한국교회의 교인 숫자는 줄지만 대형교회의 교인 수는 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대형교회가 한국교회의 모델이 아니다. 대형교회의 목회자들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 성공신화 등 십자가의 고난이 없는, 듣기 좋은 설교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로 인해 “대형교회 교인들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지 못하여 교회가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설교는 설교자의 삶의 자리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면서 “자기를 헌신하고 자기를 부정할 때, 설교자의 말이 어눌하고 표현력이 짧더라도 교인은 이를 생명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요지를 읽고 그분의 용기에 감탄했습니다. 대형교회가 본이 되지 않는다는 말은 엄청난 말입니다. 이 말이 진보진영의 작은 교회 목사님의 발언이 아니라 이재철 목사님과 같은 큰 교회 목사님의 발언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대형교회에서 예배보는 일을 좋아했습니다. 경배와 찬양도 은혜스럽고 목사님 설교도 깔끔하고 성가대도 장엄하고... 그래서 예배의 감동이 컸습니다. 그런데 제가 작은 교회 목사님들과 어울리는 시간이 늘어나고 작은 교회의 눈으로 한국교회를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대형교회에서의 예배가 은혜가 되지 않기 시작했습니다. 진정한 은혜와 감동은 은혜스러운 예배분위기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모습에서 오는 것인데 그런 모습을 대형교회에서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작은 교회 목사님이 어려운 이웃을 찾아가서 그들의 친구가 되고 그들과 먹을 것을 나누고 그들의 발을 맛사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분들이야말로 예수님의 삶을 실천하는 분들이라는 감동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삶 자체가 병자를 치유해주고,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고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이 아닙니까?
그래서 저는 작은 교회가 불신자 전도의 주역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도는 감동 없이는 안 되는데 감동은 작은 교회에 있기 때문입니다. 대형교회가 성장하는 이유는 불신자를 전도해서가 아니라 교인들이 수평이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대형교회는 가난한 사람들을 전도하는 일은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합니다.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가 전도를 잘 할 수 있도록 작은 교회를 도와야 합니다. 그렇게 하더라도 나중에는 많은 성도들이 수평이동을 해서 큰 교회로 오게 됩니다. 이렇게 하면 매년 작은 교회가 3천교회 씩 문을 닫는 일을 막을 수 있고 또 기독교인도 더 크게 증가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루빨리 큰 교회와 작은 교회가 상생의 길을 찾아 서로 협력해야 합니다.
얼마전 한국교회희망연대라고 큰 교회들이 힘을 함쳐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프로그램을 했습니다. 조선족도 섬기고 노숙자도 섬기고 태안반도에 봉사도 갔습니다. 다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한국교회희망연대는 가난한 사람들을 전도하고 섬기는 일은 큰 교회가 잘 할 수 없는 일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한국교회 희망연대가 조선족동포들에게 오리철 잠바를 하나씩 나누어줄 때 우리교회 교인들도 많이 가서 잠바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감동이 없습니다. 교인들도 그다지 감사해 하지 않습니다. 왜 감동이 없나? 스킨십이 없기 때문입니다. 꼭 필요한 일은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발맛사지를 하고 빨래를 해주고, 그런 구체적인 사랑실천행위입니다. 도와주는 돈의 액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랑과 감동이 느껴지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면 이일은 작은 교회에 맡겨야 합니다.
또 복음이 들어가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목에 칼이 들어와도 정의를 외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하는 데 큰 교회에서는 이러한 설교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대형교회 목회자라면 지금 서울조선족교회에서 하는 설교와 같은 설교를 절대로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대형교회에서는 교인들이 편하게 예수를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기독교인이 아무리 늘어나도 이들로 인해 세상이 밝아졌다는 소리가 들리기 어렵습니다. 이점이 제가 이재철 목사님의 말씀에 공감하는 이유입니다.
교회가 정말로 제대로 된 교회가 되려면 예수님의 기적이 체험되어야 합니다. 누가복음에 세리 삭개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삭개오는 키가 작았습니다. 예수님의 무리가 지나가는데 사람들 때문에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삭개오를 보시고 내가 오늘 네 집에 머물겠다고 하셨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님과 만나고 감동이 넘쳐 ‘내 재산의 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내가 속여서 얻은 것은 네 배로 갚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이 오늘 네 집에 구원이 임했다며 삭개오를 축복하셨습니다. 삭개오는 예수님과 만나고 나서 그 큰 감동 때문에 자기의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결단하였습니다. 우리도 삭개오처럼 되어야 합니다. 삶의 근본적인 변화를 결단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모습을 보여야 다른 사람들도 큰 감동을 받고 예수를 믿게 됩니다.
제가 대학교에 입학을 하고 나서 신앙의 회의가 왔습니다. 고등학교까지는 잘 믿었는데 대학교에 들어가서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CCC 수양회에 참석해서 하나님을 열심히 찾았습니다. 애타게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내게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니까 한 선배가 제 옆에 와서 나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까 그 선배가 막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형제를 위해 자기가 진심으로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며 울며 기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제게 큰 감동이 왔습니다. 남을 위해 울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면서 더 이상 내가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부인할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다시 믿음생활로 되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전도는 나의 삶을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줄 때 가능한 일입니다. 내가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 내 안에서 얼마나 엄청난 변화가 일어나는가를 증거할 수 있어야 비로소 복음이 남에게 전파됩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신앙의 강도에 따라 복음을 받는 사람의 신앙의 강도도 결정됩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처럼 목숨을 바쳐가며 다른 사람에게 전도했습니다. 반면에 가볍게 전도하면 전도 받은 사람도 가볍게 믿습니다. 그리고 그런 값싼 믿음은 세상을 변화시키지 못합니다.
우리의 신앙은 기적을 체험하는 신앙, 감동이 있는 신앙, 온몸을 바쳐 헌신하는 신앙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들도 온 몸을 바치게 할 수 있습니다. 요즈음 전도가 너무 어렵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가만히 있어도 사람들이 교회에 찾아오고 예수를 믿었는데 요즈음은 아무리 노방전도를 열심히 해도 예수를 믿으려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맞는 말이 아닙니다. 너무 쉽게, 너무 가볍게 전도할 생각을 하니까 힘든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사람들에게 복음이 얼마나 우리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놓는지를 보여주게 된다면, 우리가 이웃을 위해 자기를 희생하고, 정의를 위해 생명을 바치는 삶을 산다면 세상사람들은 우리의 행실을 보고 반드시 복음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자신입니다.
성도여러분, 남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갑시다. 감동을 주는 신앙생활을 하십시다. 그런데 우리 교인들이 그렇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면 저는 막 속이 상합니다. 교인들끼리 다투는 모습이 일반 사람들과 하등 다르지 않을 때에는 저는 속이 상해 혼자서 막 웁니다. 감동적인 삶을 살아야 합니다. 너무나 감동적으로 사랑하고, 봉사하고, 헌신하고,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그런 모습을 보일 때 남들이 진심으로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님을 영접하게 될 것입니다.
[이 게시물은 웹지기님에 의해 2012-01-18 18:14:31 칼럼에서 복사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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